미셀 모란 회장님

2017년 은사학교 미셀 모란 3강

은가루리나 2018. 12. 12. 23:42


[2017년 은사학교 미셀 모란 3강  

성령은사의 심화 ]



여러분들~ 다시 돌아오신 것을 제가 환영합니다.

오늘 제가 시작할 때 아침에 우리가 강의했었잖아요.

거기에 끝부분에 그 부분을 아직 못했거든요 

그거를 마무리하고 오늘 지금 가야될 주제를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성령쇄신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있었다고 얘기했죠?

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의 선물인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깊이 깊이 좀 나눠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래서 교회,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교회에서 사용하는 

교회 안에서 어떻게 사용할 건지를 조금 더 나누어보겠습니다.

두 가지는 연결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아침에 바티칸 제 2차 공의회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바티칸 공의회.

그리고 공의회가 몇 년 동안 이렇게 계속 되었었지요.

근데 공의회가 일어나기, 행해지기 몇 년 전부터 교회 안에서는

전례의 형식과 그리고 교회에 따라 성경을 어떻게 바라봐야하는 지를 

성경에 대한 연구를 이런 것에 대한 새로운 쇄신을 찾고 있었거든요.


공의회에서 가장 중요한 그 문서 중에 하나인데요,

이것은 '교회에 대한 이야기'로 하는 문서입니다.

바로 '인류의 빛'이라는 문서 'Lumen Gentium' 그런 문서입니다.

우리가 교회로서 정체성이 무엇인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신학적인 그런 이야기를 하는 교회에 대한 문서입니다.


제 2차 공의회 동안에 특별히 교계제도로써의 교회 안에서

여러가지 의견들이 있어서 거기서 논쟁이 있었어요. 사실은.

두 명의 아주 영향력있는 주교님께서 계셨거든요, 거기에.

그 논의의 대상은 뭐냐하면 

성령의 은사를 어떤 측면에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논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저희들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성령강림에 대해 이야기했었습니다.

그 성령강림의 특징들에 대해 이야기 드렸었잖아요.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내려오셔서 제자들의 힘을, 역량을 강화시킨 후에

그리고 제자들을 내보내신다고 파견하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9세기 초기교회에서 그들은 성령으로부터 은사를 받고 힘을 받아서

파견되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출생, 탄생이지요, 교회의 탄생.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한 가지 방법으로 

우리가 받은 이 은사라는 선물은 아주 특별한 것이겠죠. 

왜냐하면 그 은사로써 교회를 시작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그 여러가지 기초를 세우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도행전에서 읽은 그 이야기들은 우리 초대교회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은사를 받고 

사람들의 은사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볼 수있는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어떤 그룹이 이 은사에 대해 많이 연구했습니다.


그 은사만이 그 당시에 처음 초세기에 필요했던 것들이라고 이야기했어요.

그 기초가 딱 놓인 이후에는 

그리고 제도가 딱 하나씩 하나씩 정착된 이후에 

그 같은 방식으로는 은사가 필요없다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은사는 이미 그 제도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지요.


아마 4세기쯤에,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사용하는 은사들이 

서서히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특별히 사목하는 사람들, 주교님이나 그런 분들에게만 

은사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는 이 은사라는 것은 

특별한 성인들만이 가지고 있고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들이 거룩함을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특별한 표징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공의회 교부들이 이 사실을 보고 연구하기 사작하면서

그 안에서 다른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특별히 어떤 추기경님께서 몇 분과 함께 

그 당시에 사용되는 은사들은 이제는 권위가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은사들은 필요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쉬에넨스 추기경님과 다른 분들은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어요.

그게 아니라고.

이 모든 은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이것이 우리가 성경에서 읽은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쉬에넨스 추기경님께서 생각하셨던 그 해석이 이기신 것 같아요.

그 당시 디베이팅(논쟁)에서 이기신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분의 의견이 '인류의 빛 (Lumen Gentium)' 11항,12항에

나와있기 때문이지요.

내가 '인류의 빛' 12항을 노트에다 적어드렸습니다.



제가 이야기한 것을 요약해드리면, 

단순히 성사를 통해서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는 성사와 교역(교회의 역사)을 통해서, 교회활동을 통해서

하느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고 인도하시며, 여러 가지 덕행으로 꾸며주실 뿐만 아니라

또한 당신의 은혜를 당신의 말씀대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시며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이 은총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신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특별히 '특은'이라고 특별한 은총을 나누어주시는데,

모든 계층의 신자들에게 나눠주신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래서 이 은총들을 통해서 여러가지 역할들과 활동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교회의 쇄신과 건설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위해서요.

그래서 쉬에넨스 추기경님께서 생각하셨던 것이 여기에 이렇게 반영되었죠.



제 2차 공의회에 신학적인 분석들에서 흘러나오는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성령쇄신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부터 시작된 거잖아요.

우리가 이야기 들었던 대로 

주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선물을 주신다고 이야기하셨고

특별한 은총을 주시는데 

우리 평신도 안에서 모든 계층의 평신도들에게 주신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령의 이런 차원을 보시면 성령께서는 당신의 이 은사를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다는 거죠.아멘!

물론 추기경님께도 드립니다.

주교님에게도, 사제에게도, 수녀님, 수사님들에게도 주십니다.

'모든 이' 라고 이야기하시지요.


그래서 주님께서 결정하시는 대로, 원하시는 대로 은사를 주신다는 거죠.

이것이 바로 '성령세례의 은총' 입니다.


그럼 왜 이런 은사를 주님께서 주실까요?

우리가 아주 아주 거룩해서 주시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아주 아주 지성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주시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어서 주시는 것도 아니라는 거죠.

'교회의 쇄신'을 위해서 주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소유가 아니예요.

주님께서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건설할 수 있게끔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이 방금 발씀했던 것을 주제로 해서 오후 주제로 넘어갈 것입니다.

거기 보시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 800항 있습니다.

'은사는 감사로 받아들여야하고 교회의 모든 사람들이 감사로 받아들여야 된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사도직의 활성화 그러니까 열심히 사도직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거룩함을 위해서.

이것이 아주 진정성 있는 것.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따라갈 수 있도록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그런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테스트해봐야 됩니다.

우리가 실제로 분별해봐야 됩니다.

이것이 성령쇄신이 지금의 단계에서 우리의 성숙함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예요.


여러분들이 아주 작은 어린 아이였을 때 

여러분들이 아주 어리석은 일이나 실수를 행할 수 있잖아요? 어린이니까.

그래서 부모님들은 대개 

"아기니까 당연히 실수를 통해서 배우는 거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성장하고 나서 애들처럼 행동할 수 없잖아요?

교황 요한 바오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성령쇄신에 이렇게 요구하셨습니다.

교회안에서 성숙함을 가지고 성장하여야 한다고 이렇게 이야기 하셨지요.


벌써 50살이 되었어요. 50살,

우리 안에 이 성숙함이 있어야 되고 

그래서 성령 안에 은사를 어떻게 이용하고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알아야 되겠지요?


그리고 실제로 이 은사가 진정한 은사인지 아닌지 분별할 줄도 알아야되고

그리고 이 은사들을 다른 사람들이 받아서 사용할 수 있도록

그런 것들을 도와주고 알아야한다는 거죠.


오늘 아침에 제가 이야기했던 주제의 마지막은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한 은총이라고 이야기를 했었었는데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령쇄신의 은총을 아주 경이적인 방법으로 이용하셨다는 거죠.

그래서 교회 안에서 이 성령쇄신의 새로운 차원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당신께서 이끄셨다는 거죠.


아침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새 날개 두 개이야기' 기억하시지요?

그리고 우리가 이미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것을 재발견하는 시점이라는 것이지요.

그럼 은사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합시다.



3강을 넘기시면 베네딕토 16세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쇄신의 긍정적인 하나의 요소는 

성령으로부터 오는 성령의 은사라고 하는 은사의 중요성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 성령쇄신에서 얘기하는 성령의 장점은 

실제로 은사가 실재하고 현존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주신다는 거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으로부터 오는 우리에게 아주 힘을 실어주는 말씀이셨지요.


아주 우리에게 힘을 주는 말씀이셨죠.

우리 교회의 사명이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은사의 중요성을 아는 것, 알려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특별히 해야하는 사명을 받은 거지요.


교회를 일깨우는 것입니다.

실제로 은사가 실제한다는 것을! 대단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성령쇄신을 쭉 돌아보면, 

성령쇄신안에서 

성령의 은사가 실제로 많이 발견되고 많이 이용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요.

그런데 성령쇄신안에서 성령쇄신의 차원이 점점 힘을 잃고 있는 것을 저는 발견합니다.


우리 성령차원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과 똑같다는 것이죠.


우리가 주님께서 교회안에서 은사적으로 활동하라고하는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내가 누군가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에요.


역사적으로 이 순간 우리는 조심해야 할 것같아요.

우리는 지금 은사를 성장시켜야하는 단계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은사를 좀더 심화하고 깊이,

다른 이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받고 그것을 사용하도록 

그들에게 권고하고 이끌어 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서로서로가 중요하고, 왜 공동체가 중요하냐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제가 성령세례를 받을 때는 어린 나이,17살밖에 되지 않았어요.

전혀 몰랐습니다.뭐가 뭔지도.

저는 그냥 기도회 일원이 되기를 바랬었고요.


그런데 제가 기도회중에서, 

제가 받았던 은사들이 성장하고 움직이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나서 그 기도회 회원들이, 

그 은사를 성장시키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이끌어 줬었어요.


제가 여러분들을 볼 때 

여러분들도 그런 이야기들을 갖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근데, 우리는 그것에 대한 의무가 있다는 거죠.

다른 이들이 그들의 은사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삶을 나누어야하고, 이 성령차원이 좀 더 심화되어야된다는 거죠.


우리가 생각합니다.

왜 우리가 점점점 성령차원이 힘이 약해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생각할 수있는 이유들이 있어요. 생각이 나요.


성령쇄신이 나이가 들고 성장하면서, 머리가 굵어지니까, 

뭔가를 컨트롤하려하잖아요.

어떤 부분에서 컨트롤하는 것은 좋아요.


보통 처음 미팅을 하게 되면 혼란스럽잖아요.

그래서 그곳에는 분별이 필요한 리더쉽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을 완전히 꼼짝 달싹 못하게 하게 해서

성령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어떻게 분별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데요.

우리가 기도회하면서, 혹시 주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이렇게 물어봅니다.

어떤 때는 다섯사람이 동시에 혼란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이런 말씀을 하는데, 

아, 저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도 하고요,

그래서 혼잡스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죠.

이 세분들만 은사를 진행하세요. 이렇게 할 수있습니다.

혹시 말씀을 받으신 분이 있으면, 이 세분에게 나누어 보세요. 이렇게.


간혹가다보면, 이런 방법이 실제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이긴 합니다만,

그런데, 그렇게 기도회를 운영하시면, 성령차원이 점점 약화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혼잡스럽지 않게 기도회를 진행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하고,


그래서 성령의 불을 끌 정도를 

이렇게 사람들을 쥐어짜고 하는 방법은 안된다는 것이죠.



우리가 두번째로 왜 성령차원을 잃어가는 것인지 말해보자면,

어떤 때는 받은 은사를 자기가 수집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내가 주님께 예언의 은사를 받아서 내 안에 꽉 간직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치유의 은사를 받아서 내 안에,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분별의 은사를 받아서 내 안에,

중요한 것은 내 안에 머물고 사용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여러분들이 대회에 나가서 트로피받아서 수집해 놓은 것,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에요.



그것들을 사용함으로써 그것이 은사가 되는 것입니다.


은사에 대해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들이 개인 소유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봉사를 위해서 주어지는 도구라고 생각을 해야합니다.

이 은사를 계속 사용하면서 그것이 실지로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우리 성령차원이 점점 약해지는지, 

세번째 이유를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50주년을 맞이하는 이 순간까지,

주님께서는 특별한 사람을 통해서 특별한 은총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주님께서는 특별한 방식으로 당신의 일을 하시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 저 사람은 은사가 엄청나게 많은 스타!' 라고.

'자 우리 이 스미스신부님의 특별한 치유미사에 갑시다.'

'아, 오늘 이 신부님 치유미사를 왔기 때문에 분명히 치유받을 거야.'


근데 누가 미사를 집전하든간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치유할 수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거든요.


실제로는 은사가 탁월한 스타는 없어요.

왜냐하면, 모든 은사는 하느님이 주신 것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쇄신의 정의를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계층에 있는 신자들에게 은사가 주어지고,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그리고 세상에 선교하기 위해서 주어진다.아멘!



성령님의 선물, 그리고 카리스마, 이 두가지를 이야기 하겠습니다.


우리가 보통 성령님의 선물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간단한 성령의 은사를 이야기합니다.


이사야서 11장 2절에 있습니다.


이것은 성화를 위한 선물이다.

우리가 특별히 견진성사를 통해서 주어지는 선물이다. 이렇게 말하죠.


그리고 가톨릭교리서에서 이야기하듯이 이것은 영구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성령칠은을 다 받으신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 리스트를 드렸지요.

그래서 어떻게 이것들을 이해할 지 설명을 드립니다.

오늘 오후에는 크게 다루지는 않을 거에요.

성령칠은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특별한 은사, 카리스마,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요.

이것은 앞에서 말했던 성령칠은과는 다른 은사입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께서 주시는 카리스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영구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주님께서 판단하셔서 그 때 그 때 주신 거지요.


다른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이것은 교회건설을 위해서, 우리의 성화를 위해서 주어지는 은사가 아닙니다.



자 코린도1서 12장을 펴보세요.

같이 이 구절을 읽겠습니다.


첫번 째 단계는 1절에 이렇게 나와있어요.

코린도인들에게 왜 이 서한을 쓰는 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그 곳에, 문제가 좀 있었거든요.


문제는 코린도인들은 성령차원의 날개와 교회의 날개사이에서 불균형을 이루었거든요.

그러고 나서 복잡하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그들이 잘 못하고 있는 것을 교정시키려고 이 서한을 쓰신 겁니다.



여러분들이 잘 못된 것을 바로 잡을 때,

여러분들이 특유의 표현방식 있잖아요?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들을 격려할 때, 여러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바오로사도께서 그들이 잘 못하고 있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이 글을 쓰셨다는 것을요.


그래서 1절부터 3절까지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래서 바오로사도께서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바로 잡아주신다는 것을 여러분께서 읽었어요.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바로 잡아 주시는 것을 읽으셨어요.


 40초


아무도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잘못된,

그러니까 성령에 힘입은 사람은 나쁜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하는 사람 중에 성령 안받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해야 된다는 것을 그 바오로 사도 바오로가 이야기 하신 것은

이 은사는 몸 안에서 교회 안에서 흐른다는 것을 이야기 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어떤 이상한 사람이 나와서 미친 짓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지요.

이런 식으로 ~


“내가 모든 은사를 갖고 있는 사람이야.”

“내가 여러분들이 들어야 될 가장 중요한  소리야”

“내가 손만 얹으면 모든 사람들이 치유될거야” 라고 말입니다.


이 모든 잘못된 것을 바오로 사도가 바로 잡으려고 하신 겁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부터 받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주님께서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셨지요.


4절부터 11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1코린 12장)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8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9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믿음이, 

어떤 이에게는 그 한 성령 안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0 어떤 이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예언을 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1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



팬태스틱!


우리가 여기에서 보는 것은 은사의 다양성과 하나의 일치성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조차 이렇게 흐른다는 것이지요.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주님께서는 각각 개인에게 당신이 원하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렇게 주신다는 거지요.


바오로 사도가 성령의 은사를 아홉가지로 나열했습니다.


11절에 마지막으로 “여러 가지 은사들은 한 성령으로부터 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지요.

당신이 원하시고 선택하시는 대로 각각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은사를 주신다고 했어요.


나머지는 지금 읽지 않을 건데 잠시 중단하고요.



그러면 아홉가지 은사를 한번 쳐다볼까요?

주님의 몸인 우리 교회를 건설할 때 사용되어지는 은사입니다.

우리의 사명을 수행할 때 사용되는 도구들이지요.


은사라는 것은 성령께서 저희들에게 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타고날 때부터 갖고 있는 재능이 아니에요.


우리는 아마 아주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알 수가 있다고 치고.

그런데 그런 지혜로운 사람들은 인간적인 재능으로 타고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여러분들일 수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과 은사적으로 지혜의 은사를 받아서 사용하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달라요.

은사는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러분들! 우리 보면 세상에 아주 어리석은 사람들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런 아주 어리석은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말씀을 세상에 말씀하시는가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분별할 때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보고 분별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을 통해서 흐르는 영을 판단해야 한다는 거지요.



제가 꽃동네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 보면 많은 여러 가지 장애들을 가지고 재능이 다른 꽃동네 가족들을 보았어요.


그런데 어떤 자매님은 말을 표현을 잘 못하는 분이었어요.


우리가 기도하는 시간이었는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중에

이 자매님이 막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아까도 말했듯이 말을 조리있게 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말을 잘 못하니까 저것은 들을 필요가 없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꽃동네 사람들은 이미 그 자매님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자매님이 하는 이야기를 잘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었지요.


그런데 사실 그 기도회 안에서 그 자매님은 공동체에 힘을 주는

예언의 말씀을 하고 있었던 거지요.


이것은 사람의 재능이 아니에요. 

말도 조리있게 하지 못하는 그런 자매님이거든요.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자매님을 선택하셔서 당신의 말씀을 전했던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귀를 쫑긋 기울여서 당신께 정말 말씀하시는지 볼 수 있게

귀를 기울여서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아홉가지 은사는 세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어요.

이것은 우리가 이해하는 한가지 방식일 뿐입니다.


말과 관련되는 은사에는 심령기도, 예언, 해석 은사 이 세가지.

그리고 지식의 은사라고 되어 있는데 지식의 말씀 은사, 지혜의 말씀 은사 그리고 영분별,

그리고 능력의 은사가 있어요. 믿음, 치유, 기적 세 은사이죠.



제가 심령기도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이 은사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는데요.


이 좋은 은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몸이 성장되도록 할 때 사용되어지는 겁니다.


심령기도의 은사는 두 가지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리고 이 심령기도는 

우리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에도 아주 잘 사용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심령기도가 왜 중요한 은사 중의 하나라고 말씀 드릴까요?

바오로 사도께서 모든 이에게 주어질 수 있는 은사라고 얘기하셨잖아요.


그래서 저는 모든 이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는 중요한 은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앞에서는 그렇게 중요한 은사라고 대우받지 못했지만~)



다락방에서 성령께서 모든 이에게 내려 오셨을 때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든 이들이 심령기도를 했습니다.


가톨릭은 아니고 다른 개신교 모든 종파의 사람들이

“심령기도를 한다는 것은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증거입니다”라고 

그들은 얘기를 해요.


그런데 가톨릭 교회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믿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이 원하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주신다는 것을

우리가 믿고 있기 때문이죠.


이 심령기도의 한 측면을 보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더 깊이깊이 심화된 기도를 바친다는 것이죠.


그러면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이 그런 은사를 가지기를 원하시겠어요?

당연히 그렇지요.


왜냐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더 깊이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지요.


로마서 8장에 “우리는 무엇을 기도할지를 모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십니다.”라고 하십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그런 기도의 선물이 되겠습니다.

정말 우리들은 어떤 때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우리 자신이 모르잖아요.

심지어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신다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도록 허락을 하면

항상 기도하라고 얘기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행하기가 쉽게 된다는 거지요.


과연 어떻게 계속 기도할 수가 있냐구요?

이렇게 앉아서 우리가 수업 듣고 있는데 어떻게 기도하지요?

이 시간에도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기도해주신다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이 심령기도의 은사를 꼭꼭 청하셔야 됩니다.

우리가 이 성령 안의 삶을 더 심화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사도 바오로께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가장 밑 단계의 은사라고 할 수 있는

이 은사를 모든 사람들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같이 기도할 때

심령기도를 잘 할 수 있도록 그들을 권고하고 이끌어 주어야 된다는 거지요.

그러면 성령께서 더 깊은 차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때는 너무 제도적으로 꽉 묶여 있어서

우리는 어떤 때에만, 

어느 정해진 곳에서만 심령기도를 하기 바라는 기도회가 있을 수 있어요.


3번 성가 그리고 우리가 성령 안에서 심령기도를 할 겁니다.

그 다음에 4번 부르고 성령께 찬미를 드리고 들어볼 겁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큰 잘못이 없는데,

여러분들 개인의 기도 삶에서 이 심령기도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단순히 기도회에서만 쓰여지는 그런 은사가 아니에요.

이 은사를 더 사용하고 사용할수록 주님께서 저희를 더 깊이깊이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방금 말씀드린 이상한 언어로 기도하는 은사,

그리고 다른 차원에서 심령기도 말고

어떤 이상한 언어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거에요.


우리는 모두 그 이야기를 듣게 되면

모든 하던 것을 멈추고, 듣고, 그리고 들었던 그것을 해석해야 되겠지요.


방금 읽었던 고린도전서 12장에 어떤 사람들은 이 은사를 가지고 사용 안할 수도 있고,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은사를 사용하면서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12장에서 봤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 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를 원하셨는데요.

제가 심령기도에 대한 은사에 대해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기로 앞에서 말씀드린 것은

개인적인 차원과 공동체적인 차원 이 두 가지 차원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아홉 가지 은사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제가 이 심령기도에 대해 자꾸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성령으로부터 받은 은사가 좀 더 심화되면

우리가 주님께 찬미찬양드리는 거 있잖아요.?

찬미찬양이 좀 더 심화되면 결국은 심령기도로 이렇게 넘어간다는 것이죠.



그러고 나면 모든 은사들이 따라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 드렸 듯이 다른 은사들을 방출할 수 있는 Key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이 심령기도의 은사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거예요.


제가 여러분들 은사학교가 많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은사에 대해 기본적인 것들을 다루지 않을 겁니다.


앞에서 심령기도에 대해 말씀드렸었는데 영의 식별, 분별에 대해 말씀 나누고 싶어요.

그러면 이것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어디로부터 왔지?

우리 사람의 영으로부터 올 수도 있고,

우리가 근본적으로 보다 쉽게 할 수 있는 분별의 방법은

이것이 성령으로부터 온 것인지 우리 사람의 인령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이것이 악령, 마귀 새끼로부터 온 것인지 이걸 알아야 해요.



그러면 요한1서 4장을 보겠습니다.

요한1서 4장 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는 영을 식별해야 된다는 것이죠.

저는 그게 아주 간단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거짓 예언자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여기 있습니다.


아시아나 아니면 한국이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서구에는 이런 거짓 예언자들이 좀 있어요.


그리고 "미셀 모란은 예언하는 예언자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예언적인 서적도 쓰고, 그리고 아주 거룩한 생각을 책으로써 펴고,

그런데 우리는 정말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해요.


우리가 볼 때 어떤 분들은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보여요.


우리가 거룩한 생각들을 모두가 쓸 수 있잖아요.

그리고 옆에 있는 형제들이나 자매들과 생각을 나눌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어디서부터 나오냐면 "이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라고 했을 때부터죠.

그래서 이것을 통해서 그 사람이 자기만의 플랫폼을 만들거든요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야"라는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 놓고 시작한다는 거죠.


이런 사적 계시들이, 아시아에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마귀로부터 온 것은 아닌데

성령의 핵심에서부터 우리를 옆으로 새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분별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도 바오로가 이야기한 것은 열 가지를 볼 수 있겠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저희들에게 가르치신 것들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은사는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지표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고

주님께서 선택한 사람들에게 주어질 수 있고

주님께서는 너무나 인자하게도 모든 것들에 은혜를 주신다.

주님께서 주실 때 우리는 그윽이 그 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된다.


어떤 때 사람들이 와서 저한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받은 은사가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그 시간에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많은 것들을 주신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말씀드린 대로 모든 계층들의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여러분들이 얼마나 거룩함에 달린 거 아니고,

우리가 얼마나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고

여러분 중에 나는 아무런 은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성령께 더 내어 맡기라고 저는 권고하고 싶어요.


여러분들이 "오소서 성령님"이라고 할 때 여러분들 진짜 성령이 오신다고 믿으세요?

그리고 성령께서 오시면 이 은사를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잖아요?

오시게 되면 그 은사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성령께 더 많이 내어 맡기시면 맡기실수록

은사를 더 많이 더 자유롭게 공짜로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은사를 사용하고 은사를 받는 것은 아주 지극히 보편적인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성령세례를 받고나서부터는 당연히 은사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셔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은사를 하나하나 여러 가지 은사를 받을 것이고

주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실 때 선택하시지만 그것을 아주 너그럽게 공짜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몸인 교회를 건설하고 

그리고 세상의 선교를 위해서 사용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당연히 당신의 몸이 완전하게 무장되기를 원하시잖아요?

그래서 당신은 성령의 은사를 도구로써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아주 자비롭게 저희들에게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아주 지혜롭게 은사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세요.


아주 관대하게 아주 풍성하게

그런데 주님께서 주신 이 은사를 받는데 우리가 좀 느려요.

우리가 은사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은사를 사용하는데 더디다는 거예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때 다른 시간에 그렇게 주님으로부터 은사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칠은'을 다 받았습니다.


이것은 영구적인 거예요.

그런데 어떤 때는 주님께서 어떤 은사를 주셨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은사라고 하는 것은 공짜로 그냥 주신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냐에 따라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서,

우리 모두가 은사 받을 준비를 다 해야되는거예요.



"아, 주님 저는 받을 자격이 안돼요" 그렇게 하지 마세요.

주님은 이미 우리가 가치 없다는 것을 다 잘 알고 계셔요.

이 세상에 누구도 받을 가치 있는 이는 아무도 없거든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조차도 실은 당신 앞에는 그렇게...(웃음)


주님께서는 당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은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짜로 주어진 이 은사를 우리는 다 받을 수 있다 이런 말씀이에요.

은사를 받은 목적은 당신의 몸인 교회를 건설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바로 공동 선을 위해서 있는 것이죠.

이 카리스마(은사)는 항구적인 것이 아니에요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여기 있다가 저기 갈 수도 있고,

나한테도 올 수도 있고 딴 데로 갈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한 가지 딱 예외가 있어요. 바로 심령기도의 은사입니다.


코린토 전서 14장 4절

<신령한 언어로 말하는 이는 자기를 성장하게 하지만, 

예언하는 이는 교회를 성장하게 합니다.>


그것은 심령기도의 은사가 우리 자신을 교육시켜서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그것이 그 은사를 통해서 성령께

우리 마음을 열 수 있게 이끌어 주시는 은사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은사들은 복음화의 도구입니다.

복음화하는데 아주 강력한 도구입니다.


제가 치유 은사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제가 치유의 선물 치유의 은사라고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여러 종류의 치유의 은사가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죠.

치유 은사는 특별한 몇 사람들만 받을 거야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렇게 다시 말씀드리고 싶어요.


특별한 치유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특별한 치유은사.


그리고 어떤 사람은 특별한 예언의 말씀을 은사로 받은 사람이 있다.

여러분들이 치유나 예언에 대해 특별한 은사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100% 그 은사를 행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이죠.


제가 지금 왜 치유은사에 대해서 초점을 마추냐 하면은,

성경을 보면 많은 이야기 에피소드가 치유은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잖아요.


복음을 보면 나쁜 사람들도 거짓 예언자들도 치유하는 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치유에 대해 강조를 하셨을까요?


그 당시 대부분 사람들이 아파서?

역사적으로 보면, 아픈 사람들은 항상 존재하잖아요.


예수님께서 치유에 대해서 강조를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치유되는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그들에게 도래한다는 것을 

믿게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마음이나 육체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는 그런 치유가 일어나면

그 사람들을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한다 이런 것뿐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징표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죠.


단순히 치유하시는 것이 아니고.


바로 구원의 메시지를 더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바로 구원의 메세지를 더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진리를 직접 자기 눈으로 목격할 수 있도록

이적과 기적을 행하셨던 것이지요.


우리가 교회 성장기에 가보면 그곳에 치유하는 팀들이 있잖아요.

그분들이 병원에 가서 치료하면 되었잖아요.



첫 번째 모든 치유는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기적의 치유가 안 되는 수가 있어요.

왜 그러는지 저희들도 몰라요. 미스터리에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는 이 치유를 통해서 당신의 하늘나라를 사람들에게 더 폭넓게

제시하신다는 것이지요.



5번에 나오는 것처럼, 이 은사는 복음화의 강력한 도구라는 것이 나와 있지요.

치유은사를 통해서 우리가 세상에 이렇게 증거할 수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살아 계시고 이렇게 활동을 하고 계시다고.

바로 이 은사가 하느님 나라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 은사는 그 증거가 될 수 있지요.



우리가 이렇게 치유은사 봉사를 하게 될 때

“제 다리가 아픈데 기도 좀 해 주세요. 치유 좀 해 주세요.” 이런 것이 아니고


다리가 아프면 의사를 먼저 찾아보겠지요.

우리는 의학적인 치유 봉사를 대체해서 할 수 없어요. 하지 않아야 돼요.


그곳에 있는 신자들에게,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권능을 이 은사를 통해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치유 은사 대회', 이런 것을 하는 것은 실제로 중요해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요.


그리고 냉담자들을 불러서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을 권능을 직접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지요.


몇 년 전에 인도네시아를 갔었습니다.

저희가 기도하는 봉사자팀들이랑 가정들을 방문했었는데 어떤 한 가족을 방문했습니다.

그 가정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이 아픈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아버지께서는 기도가 끝나자마자 바로 병원에 가야했습니다.

진료 시간이 다 되었거든요.


그래서 그 가정에 아버지를 위해서 간단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약속된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가셨지요.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어요.

병원에서 아주 생각하지 못했던 빠른 회복의 결과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기도했던 그 가정에 있던 아들 두 명이 아주 놀랐어요.

그리고 저에게 와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리고 나서 냉담했던 그 두 아들을 교회로 다시 회두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하시는 방법이라는 것이지요.

한 달 뒤에 그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렇게 되자 아, 성공적인 치유는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아주 열매를 크게 맺은 은사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 아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왔기 때문이지요.

아버지는 아주 행복하게 기쁘게 돌아가실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을 이끄시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이 은사를 사용하고 계시는지를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은사를 우리가 갈구해야 돼요. 갖기를 갈망해야 돼요.


자, 코린토 전서 12장으로 돌아갑니다. 31절 앞부분을 다 같이 읽어봅시다.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여러분은 열심히 원하셔야 해요. 간구하셔야 해요.

성령의 은사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코린토 전서 14장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은사, 특히 예언할 수 있는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12장에서는 우리가 받는 은사에 대해 전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13장에서는 은사를 어떤 식으로 다양하게 해서 사람들이 이끌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4장에서 바오로 사도가 은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1절에서 권고하신 것처럼 사랑을 추구하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성경에 은사를 받기를 기대하면서 사랑을 추구하라고 이야기하셨어요.

당신의 은사를 가지고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방문할 수 있기를 간구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은사를 위해서 기도하세요.


바로 여러분들의 봉사활동에 훌륭한 도구들이기 때문이지요.



어떤 때 저는 손에 아무것도 놓지 않고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주님, 제 손에 놓아주시겠어요?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것을 제 손에다 쥐어주시겠어요?”라고 기도합니다.

오늘 이 순간 주님께서 원하시고 필요하신 것을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이 자리 이 시간이 그날인데 손을 보세요.

주님께서 제 손에 얼마나 주셨는지. 그리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한테 준 이 은사로 오늘 뭐했냐?”고.

우리한테 주시라고 먼저 말씀드렸잖아요.


그런데 오늘 하루가 끝날 때쯤, 여러분과 제가 다를 거라고 믿는데,

마지막에 “주님, 오늘 게을렀어요. 오늘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과 기도를 나누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열심히 은사를 청하셔야 하고 기도를 하셔야 해요.


기도를 통해서 받는다면 그것을 사용해야 할 의무가 생겨요.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해서 주님께 대답해야 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것을 잘 관리하는 청지기가, 관리자가 되어야 하는 거에요.


지도자로서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그들이 은사를 받을 수 있도록 권고하고 권유하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다음 강의 때 말씀드릴 것인데 은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서로서로에게 격려하고 도와줘야 합니다.


그 부분도 다음 강의 때 말할 거에요.


마지막으로 코린토 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해 말씀하신 것처럼 사랑이 방법이라고.

바로 은사는 사랑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은사를 사용하면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지요.


여러분들이 은사를 사용할 때 마지막이 중요한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그 영광을 차지하면 안됩니다.

항상 여러분들의 눈이 주님께 향하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모든 것에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방식을.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성령의 은사를 좀 더 깊이깊이 다루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좀 더 심화 할 수 있는 키는, 

저는 이 50주년을 맞이한 이때에 특별한 은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 자신을 활짝 열고, 우리는 기대를 잔뜩 하면서 성령께 유순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1998년에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저희들에게 행하신 연설에 명확하게 나와 있어요.


1998년에 성령강림 때 아주 유명한 강의를 했었었는데 

단순히 성령쇄신 팀들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고 

모든 가톨릭 신심단체가 다 모인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침에 말씀드린 것처럼 제도적인 교회와 은사들이 교회에 몸담기를

이야기 하셨던 그 장소였습니다.


이 두 차원은 둘 다 본질적인 것이라고 

상호공존적인 본질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래서 또 모든 시민단체에게 그들에게 주어진 신심활동의 은총대로 활동하라고

또 이야기하셨지요. 그것이 우리 성령쇄신들에게는 우리가 받은 은사를 열심히 사용하고

여러분들 노트에 나오는 그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성령이 주시는 은사에 유순하게 열어놓으십시오.

그리고 그것들을 끊임없이 주시는 성령께 

감사하는 마음과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기도문 잘 적혀 있지요?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좋은 기도문 같아요.


“주님, 저는 완전히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대하고 있어요. 주님,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기다리세요.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서 기다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어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당신께서는

우리들을 더욱 더 깊이 심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또 우리가 주님 앞에서 기다리면 우리는 분명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 9가지 은사를 추구하고 있으면서 성령의 9가지 열매도 주시겠지요.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말씀하신 것 기억하셔야 해요.

모든 사람이 열매를 맺어야 된다고.

주님께서 저희를 더 깊이 심화될 수 있도록 열어두십시오.


성령 하에서 삶이 더 심화될 수 있고 여러분들이 받은 그 은사가 더 심화될 수 있고,

그러면 우리는 열매를 맺어서 영원히 지속되는 그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아멘.


주님께 영광을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