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76

꼬리글

꼬리글 2011.06.01 내맡김의 영성은 제가 만들어 낸 영성이 아닙니다. 그리고 과거엔 없었던 영성이 어느 날 갑자기 새로 생겨난 것도 아닙니다. ‘거룩한 내맡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불과 몇 년 전까지 저는‘내맡김’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저 스스로 사용해 본 적이 없었고 또 제 기억으로 그 단어가 쓰인 책을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거룩한 내맡김 영성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몸에 병을 얻고 지리산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후 약 3년이 지난 어느 날,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이라는 책을 읽어 본 그다음의 일입니다. 그 책은 저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읽어 본 책 중에서 그 책보다 더 제 영혼에 큰 충격을 던져 주었던 책은 그때까..

제3부 23 허무맹랑한 거룩한 내맡김 영성?

pp323-325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3부 허무맹랑한 내맡김의 영성 23 허무맹랑한 거룩한 내맡김 영성? 2010. 12. 24. “하느님이 자신을 창조하신 자신의 주(인)님이심을 인정하고,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배우자, 자녀, 재물 등)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며, 또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겠다는 ‘맹세 수준의 굳은 결심’을 미사를 통해서 봉헌해 드리면, 자신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 되며, 또한 하느님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되어(하느님을 소유하여), 그때부터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삶(갈라 2,20 참조)’을 살게 된다.”라는 소위 거룩한 내맡김 영성은 머리로 살아가는 지식이 높으신 분들에게는 시뻘건 대낮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아주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

제3부 22 내맡김 영성은 참으로 영성의 알파요 오메가인가?

pp320-322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3부 허무맹랑한 내맡김의 영성 22 내맡김 영성은 참으로 영성의 알파요 오메가인가? 2010. 08. 12. 내맡김 영성은 하느님을 향한 신앙의 최초 영성이다. 구약 성경에 하느님께서 최초의 인간을 창조하시고 ‘후회하셨다’(창세 6,6 참조)고 기록되어 있다. 왜 후회하셨는가? 당신 뜻대로 살기를 바라고 창조하신 인간이,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 의지로 하느님 뜻을 배반하고 인간 자신의 뜻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하느님께서는 최초로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셨다. 하느님은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 뜻대로 살아갈 것을 요구하셨고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그러한 뜻에 순명하였다. 아브라함과의 계약에 있어서의 중요한 의미는, 아브라함이 자기가 살..

제3부 21 평생 딸랑 이거?

pp315-319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3부 허무맹랑한 내맡김의 영성 21 평생 딸랑 이거? 2010. 06. 22. < 창 화살 제3부 21 평생 딸랑 이거? 2010. 06. 22. 나는 앞으로 남은 삶을 ‘딸랑 이거’ 하나만으로 살아가겠다. 이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딸랑 이거’ 하나면 충분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딸랑 이거’ 안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혜롭다는, 슬기롭다는 사람들에게는 빈 깡통처럼 보여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빈 깡통 안에는 엄청난 보물이 담겨 있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말이 맞다. 그냥 생겨난 말이 하나도 없다고 내가 말한 그대로다. 깡통에 무엇(지식)이 잔뜩 담겨 있으면, 소리를 낼 수가 없다. 깡통을 비워야 한다. 지식..

제3부 20 나의 착각일까?

창 화살 제3부 20 나의 착각일까? 2010. 06. 22. pp312-314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3부 허무맹랑한 내맡김의 영성 20 나의 착각일까? 2010. 06. 22. 카페 ‘마리아처럼’1)을 사랑하고 자주 방문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나의 착각일까? 나의 오만에서 비롯된 교만한 생각일까? 잘못된 생각일까? 거룩한 내맡김 영성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나의 낮은 지식과 폭넓지 못한 사고에서 비롯된 단순 무지의 소산일까? 아니면, 내가 죽다 살아나서 그 영성에 매달릴 수밖에 없어졌기 때문일까?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나와 가깝던 사람들도 이 카페를 사랑하면 나만이 아니라 하느님과 더욱 가까워지게 되고, 이 카페를 멀리하면 하..

제3부 19 무리수無理手는 절대 금물?

pp307-311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3부 허무맹랑한 내맡김의 영성 19 무리수無理手는 절대 금물? 2010. 06. 21. 창, 화살 제3부 19 무리수無理手는 절대 금물? 2010. 06. 21. 그동안 사반세기가 넘는 사제 생활(28년)을 해 오면서 가까이 지내던 교우분들을 통하여 한 가지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은, 누구나 모든 일에 있어서 절대로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리수’란 무엇인가? 무리수를 검색해 보면 두 가지 설명이 나온다. 첫째로 ‘무리수無理手’는 바둑, 장기 등에서 무리하게 두는 수, 어떤 일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상태이다. 둘째로 ‘무리수無理數’는 실수實數면서 유리수有理數가 아닌 수, 유리수로 나타내지 못하는 수이다. 내가 이 단상斷想에서 말하고자 ..

제3부 18 단상斷想하면, 단상亶想할 수 있다?

창 화살 제3부 18 단상斷想하면, 단상亶想할 수 있다? 2010. 06. 20. pp304-306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3부 허무맹랑한 내맡김의 영성 18 단상斷想하면, 단상亶想할 수 있다? 2010. 06. 20. 단상斷想하면, 단상單想이 단상檀想되어, 단상緞想으로 하느님을 단상亶想할 수 있다. 생각을 끊으면斷想, 하느님을 향한 한 가지 생각單想이 박달나무처럼 더욱 단단해져檀想, 비단결 같은 마음으로緞想 하느님을 굳게 믿을 수亶想 있게 되는 것이다.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하려는 사람들은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더 나아가 생각을 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하루의 생활 중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는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되었다. 그런데 문..

제3부 17 오늘 아침에 주님께서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을 알려 주셨다

pp299-303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3부 허무맹랑한 내맡김의 영성 17 오늘 아침에 주님께서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을 알려 주셨다 2010. 06. 19. 창 화살 제3부 17 오늘 아침에 주님께서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을 알려 주셨다 2010. 06. 19. 창 화살 제3부 17 오늘 아침에 주님께서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을 알려 주셨다 2010. 06. 19. 처음 이 지리산에 들어와 살면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을 믿어 온 하느님은 나에게 있어서 과연 어떤 하느님이신가?”를 반문하게 하시더니 그동안 머릿속으로 믿어 온 당신을 이제 삶으로 드러내 주시는 것이었다. 내가 믿어 온 하느님은 지금 저 하늘의 수많은 별과 지구의 모든 피조물을, 그중에 특히 나를 만드시고, 그 만드신 ..

제3부 16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다?

창 화살 제3부 16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다? 2010. 06. 18. pp295-298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3부 허무맹랑한 내맡김의 영성 16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다? 2010. 06. 18.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설교의 주제가 ‘생각’이다. 생각, 생각, 또 생각은 모든 것을 만드는 것이니, 늘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고……. 자신의 교회도 그 생각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늘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을 하게 되면 좋은 일만 생긴다고……. 한 시간의 설교가 ‘하느님’이 아니라 온통 ‘생각’으로 얼룩져 있었다. 사람의 생각은 참으로 중요하다. 생각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웬만한 지식인이라면 벌써 다 알고 있다. 수많은 지식인이 실제로 하느님 없이 자신의 생각만으로 자신이..

제3부 15 ‘하다’의 반대말은?

창 화살 제3부 15 ‘하다’의 반대말은? 2010. 06. 17. pp291-294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3부 허무맹랑한 내맡김의 영성 15 ‘하다’의 반대말은? 2010. 06. 17. ‘하다’의 반대말은? ‘되다?’ ‘되어지다?’ ‘하지 않다?’ ‘안 하다?’ ‘못 하다?’ 우리가 보통 ‘○○을(를) 하다’라고 말할 때, 그 ‘하다’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하다’를 한영韓英사전에서 찾아보면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이 ‘행하다(두Do, 액트Act, 트라이Try, 메이크 프랙티스Make practice)’이다. ‘두do’의 반대말은 ‘두 놋do not’일까? ‘두 놋’이나 ‘기브 업Give up’보다는 ‘어밴던Abandon’이 더 가깝다 (“6. ‘내맡기다’는 말의 한자나 영어의 의미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