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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 신심행위와 거룩한 내맡김의 삶

은가루리나 2019. 8. 14. 02:44


외적 신심행위와 거룩한 내맡김의 삶  ▣ 보조교사방


무화  등급변경▼  조회 184  추천 0  2017.03.09. 11:14




moowee 17.03.03. 19:07



무슨 분야든지 < 기본 교육 >이 튼튼해야 하고 바로서야 합니다.


제가 지난 35년의 사제생활 동안 만나온 구교우 중 

소위 <열심하다는 신자들>은 외적인 신심행위 

즉 빠짐없는 평일미사 참례, 고해성사 자주보기, 많은 묵주기도 바치기, 

삼종기도와 조만과 바치기 등에 충실히 하는 것을 

신앙생활의 전부로 알고 계시는 분이 많습니다.


물론 그런 외적신심행위가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어야 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지만

신앙생활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며

오히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구교우들의 생각은 아니, 구교우인 과거 병을 얻기 전까지 저의 생각은 

그런 <외적신심행위에 충실한 것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의 가장 큰 원인을 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교회의 가르침>으로 보고 있습니다.


재2차 바티칸 공의회가 <1965년>에 끝났으나 

공의회의 정신은

그 이후에도 신앙인들의 생활 속에 계속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선포 50주년인 2013년에

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 선포하셨던 <신앙의 해>는 바로, 

<50년전 공의회 이전>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교회의 모습을 

다시 쇄신시켜 보자는 의미로 선포된 교회의 거룩한 몸짓이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해 선포로 전 세계 교회는 신자들 대상으로

<제2차바티칸 공의회 문헌>과 <가톨릭교리서>를 다시 공부시키느라 

한 동안 떠들썩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외적인 행사나 교육으로만 신자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쇄신시키고  변화된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신자 개인들의 노력에 합하여 

전적으로 하느님의 도우심(은총)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며,

그러하기에 

하느님의 은총, 이끄심에 전적으로 의탁하고 

더나아가 위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서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변화시켜주신 삶(영성)>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 스스로 아무리 외적신심행위에 충실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신자의 삶을 전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설령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moowee 16.02.03. 15:25



<순서>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올바른 순서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일>이며,

그 다음으로<곁들여 받게 될 모든 것>을 얻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너무 많은 신앙인들이 잘못된 순서 즉,

<곁들여 받게 될 이 세상의 썩어 없어질 것들>을 먼저 찾고 구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일>이 먼저인데,

하느님이 원하시지도 않는 <외적 신심행위>를 하느라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수십 년의 세월을 하느님께 가까이 나가려다 그만 미끄러지고,

또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려다 또 넘어지고 

죽을 때까지 다람쥐 쳇바퀴 돌듯합니다.


순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牲(희생 생)고생>입니다, 

죽을 때까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moowee 16.06.07. 06:59



<외적인 행사>로 해결될 수 없는 일이 바로 '신앙'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

신앙의 쇄신은 내적인 변화로부터 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도<인간이 시도하는 변화>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변화시켜주신 변화>입니다.!


하느님께서 변화시켜주신 삶을 살아갈 때,

그때 비로서 

참된 쇄신, 참 삶, 복음화된 삶,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때야 말로 

이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가 드러날 수 있는 것입니다.

븐명, 하느님의 자비는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또한 분명히, <하느님의 사랑>보다 아래의 순서입니다.


곧, 이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회복하면>

<하느님의 자비>는 저절로 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서, 순리입니다!



우리교회가 아무리 <하느님의 자비>를 외쳐 보십시오.

사랑은 자비요, 자비는 사랑이라하지만, 

사랑 없는 자비는 그저 자비로서의 자비,

소위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에 불과할 것입니다.


자비는 누구나 베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眞자비>는 

<사랑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자아가 있고 참(眞)자아가 있고,

사랑이 있고 참(眞)사랑이 있듯이,

자비가 있고 참(眞)자비가 있는 것입니다.


진짜 자비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사랑>이 참(眞)자비인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프란치스코교황님께서

지금 <하느님의 자비>를 외치실 수밖에 없으신 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이 세상에서 너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찾아볼 수 없으시기에>

그렇다면 

차라리 <하느님의 자비라도> 외칠 수밖에 없으시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moowee 17.03.08. 11:13



내맡긴 영혼들에게 있어서  삶 = 기도 = 삶 입니다.


소위 열~씸하다는 신자들이 <거내영>을 만나,

특히 <화살기도 능구 3개월>을 알게 되어 거의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

"능구 3개월을 하는 동안 아무 기도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기본적인 아침.저녁기도, 삼종기도, 묵주기도, 성체조배, 성경읽기 등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들 의아하게 생각하십니다.


하기야 이러한 질문은 

평소에 기도를 열~씸히 바쳐오시던 분들이 하시는 질문입니다.

그런 기본적 기도는 그대로 하시고 

나머지 모든 시간을 화살기도를 바치시라고 말씀드리면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 모양입니다.



제가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기도를 하지 말라 하지 않았습니다.

단, 기도에 얽매이지 말라 말씀드렸습니다. 


평일미사도 꼭 참례해야 하고, 이런저런 기도모임에도 참석해야 하고,

그래야만 자신의 의무를 채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되고,

그렇지 않으면 죄짓는 것처럼 찜찜하게 여겨지는 

바로 그런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거내영의 기도는 삶 자체가 기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하루가 <미사의 제대>가 되어야 하는 것

입니다. 


나의 하루의 삶 자체가 <제대 위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렇게 이끌어주시면 이리 가서 아버지만 사랑하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저렇게 이끌어주시면 저리 가서 아버지만 사랑하며 

사는 것이 <기도>입니다.


외적인 신심행위에 얽매여서는 아니 되는 것이 거룩한 내맡김의 삶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