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섭리에내맡김

제1장 -08 우리가 얼마나 거룩한지를 판단하는 유일무이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얼마나 친밀히 순종하느냐이다.

은가루리나 2016. 8. 11. 18:10



《하섭내 제 1 장 우리의 몫을 행하고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겨 드림에 대하여

- 08 우리가 얼마나 거룩한지를 판단하는 유일무이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얼마나 친밀히 순종하느냐이다.》



제 1 장


우리의 몫을 행하고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겨 드림에 대하여



 08 


우리가 얼마나 거룩한지를 판단하는 유일무이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얼마나 친밀히 순종하느냐이다.





   하느님의 뜻은 

모든 것들을 초자연적이며 천상적인 의미로 충만케 해줍니다. 

하느님의 뜻은 지고합니다. 

그것에 닿는 모든 것은 신적 광채로 불타오릅니다.


완덕으로 이끄는 올곧은 길을 계속 걸어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받은 모든 영적인 자극이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분명하게 확신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극들이 우리의 생활 상태에서 의무들의 이행을 위축시킬 때는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지 않은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의무들은 하느님의 뜻으로서의 분명한 표지이며 

그 어떤 것으로도 이 의무들을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의무들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무시하거나 선택해야 할 그 무엇도 없습니다.


이것들은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한다고 확신할 때, 

이러한 의무들을 채워나가는 데 쓰이는 모든 시간은 

우리에게 매우 귀중하고 유익합니다.



성덕(聖德)은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거부하지도, 찾지도 말아야 하며 

그분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말아야합니다.


저서들, 박학한 사람들의 충고, 염경기도와 묵상기도는 

하느님이 원하시기만 한다면, 

그분과의 일치를 향해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해줄 것입니다.


정적주의(靜寂主義)가 이러한 수단들과 우리의 감각 사용을 죄악시할 때 

그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어떤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걸어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은 그들의 생활 방식과 영적인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분명한 것입니다. 

개인의 모든 활동을 배제하고 

침묵만을 찾는 일종의 자기포기를 마음속에 그리고자 안간힘을 쓰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우리 스스로 행위하기를 원하시는 경우에는 

그때의 행위가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그들이 행하는 일상생활의 의무와

하느님이 그들에게 마주치게 하는 그들의 당면한 모든 문제들을 

처리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완덕을 성취하기 위해 그 외의 다른 어떤 것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이 일상의 의무들을 넘어선 일들을 해낼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요청을 받은 사람들은  

그러한 요청에 이끌려질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은 

계명으로 주어진 것을 행하는 데 있어 결코 소홀함 없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예기치 않게 주실 수 있는 계명들에 늘 순종하면서 

영감이 이끄는 곳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인들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바 그대로 하느님이 만드신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계획에 따라 성인들을 만드셨으며, 

성인들 모두는 이 계획에 일치합니다. 


이러한 순종은 참된 자기포기이며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모든 성인 남녀들은 그들의 삶의 처지에서, 

하느님이 그들에게 부여하신 의무들을 수행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숨겨진 삶, 두드러지지 않는 삶을 살았으며 

이 세상의 죄악을 피하는 삶을 영위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때문에 성인이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뜻에 절대로 순종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순종이 완전하면 할수록 그들의 성덕도 더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덕행이 빛나는 성인 성녀들이 

놀랍고도 비범한 활동 때문에 

하느님의 계획에 덜 완전하게 자신들을 내맡겼다고 잘못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들이 하느님께로부터 특별한 활동을 요구받았는데도 불구하고 

평범한 의무들만 실행하는 데에 만족했다면, 

그분의 뜻에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하느님과 사이가 틀어져 

더 이상 어떤 순간도 그분을 섬기는 시간으로 그것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요구하심을 만나기 위해 

힘을 다해 스스로 노력하고 능력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은총을 통해 사람에게 다가오는 영감(靈感)은 

이렇게 노력하는 경우 뒤따라 올 것입니다.


물론 평범한 그리스도교의 법만으로 의무가 주어진 사람들이 있어 

그들은 거기에만 머무르는데, 

그런 것은 하느님이 그들에게 부과하는 제한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법에 매어있을지라도 

또 다른 법에 역시 순종해야 할 사람들이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다른 법이란  

성령께서 그들 마음 깊숙한 곳에 새겨 놓은 작용하는 법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가장 거룩할까요? 

그런 사람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행위는 무익한 일입니다.

누구나 눈앞에 놓여 진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거룩함은 하느님께 순종하는 데에 있고, 

우리가 지닌 능력을 다해 그분과 함께 일하는 데에 있습니다

여러 가지 조건들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거룩함은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들의 수치나 종류에 따라 찾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기심의 발로에서 행동하거나 

또 그것을 깨닫는 즉시 발로 짓밟아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느님 계획에 속하지 않는 풍요로움 속에서 

영적으로는 빈한(貧寒)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 나는 문제에 대해 몇 가지의 해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거룩함은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으로 측정됩니다.


그리고 이 거룩함은 하느님의 뜻과 

우리에 대한 그분의 계획이 무엇이든지 간에 거기에 개의치 않고 

이 두 가지에 순종하려는 원의가 자라남에 비례하여 증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 그리고 요셉 안에서 이 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인격적인 삶에는  

숭고한 이상 보다는 더 큰 사랑이 있었고 형식보다는 더 큰 영성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사물들과 사건들 속에서 거룩함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다만 그것들을 다루어 나가는 방법에서 거룩함을 찾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완전성에로 이끄는 특별한 노선이나 뛰어난 길은 없고, 

단지 대부분의 사람들에 있어서 최선책이 되는 것은 

그들 각자의 생활방식에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에 순종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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