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靈쇄신운동

15. '성령 쇄신 운동'의 그늘 ; 1)은사의 오해와 남용 ♣ 聖靈쇄신운동 ♣

은가루리나 2017. 3. 29. 15:43


'성령 쇄신 운동'의 그늘 ; 1)은사의 오해와 남용


'성령 쇄신 운동'의 그늘 



    성령쇄신 운동에는 그늘진 측면도 있다.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한계와 개인의 욕망 때문에 생겨나는 부정적이고 어두운 모습(갈라 5,17-21; 로마 7,7-25 참조)이다. 한국 가톨릭 성령 쇄신 봉사자 협의회에서 발간한 여러 책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지적하고 있다. 곧 성령 은사의 오해와 남용, 외적 은사에 대한 집착, 봉사자들의 자질 미흡, 전문 봉사자의 부족, 일부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의 일탈, 성령쇄신운동에 대한 성직자들의 올바른 이해와 지원의 부족, 기존 가톨릭 신자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일부 기도회의 광적인 분위기, 남성과 청년들의 참여 저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여러 문제점들 가운데 '성령 은사의 오해와 남용, 봉사자들의 자질 미흡'이 가장 큰 문제라고 판단된다. 다른 문제들이 직. 간접적으로 이 문제와 결부되어 일어나기 때문이다.

    ​1) 은사의 오해와 남용

    ​성령의 은사는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신앙 쇄신과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은사의 본래 목적은 잊은 채, 오직 축복을 많이 받겠다는 욕심에서 은사에 집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상식을 넘어선 기이한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신자들은 "이상한 언어의 은사를 받았다며 남들 앞에서 이상하게 행동하기도 한다.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며 마치 자신이 예언자가 된 양 미래를 점쳐 주기도 한다. 치유 기도를 해 주면서 자신의 칭치유 능력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는 기이한 행동이라는 쭉정이가 아니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좋은 결실을 맺어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공동선을 위하여"(1코린 14,4.12; 에페 1,11-16참조)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만족보다는 '교회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1코린 14,5참조) 은사를 청하고, 주어진 은사는 교회 공동체의 유익이 되도록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개인의 만족과 이익만을 목표로 은사를 청하고 사용하는 경향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는 은사의 본래 목적을 오해하는 잘못된 행태다. 일찍이 바오로 사도는 이런 잘못되 행태에 대해 분명한 지침은 남겼다. 그는 모든 신자가 신령한 언어로 말하기를 바라지만 그보다는 예언할 수 있기를 더 바란다고 하였는데, 왜냐하면 신령한 언어는 개인의 성장을 도울 뿐이지만 예언은 교회를 성장하게 하기 때문이다(1코린 14, 1-5). 아울러 그는 신령한 언어를 금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은사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누기 신령한 언어의 은사를 받았더라도 이를 해석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공동체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1코린 14.26-40참조).

    성령께서는 여러 가지 은총의 선물로써 교회를 도와주신다(1코린 12,4-11참조).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은사가 아니라 각자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선사하심으로써 교회 공동체를 풍요롭게 가꾸신다. 그러므로 특정한 은사에 지나치게 관심을 두거나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은사는 뛰어난 것이든 더 단순하고 더 널리 퍼진 것이든 교회의 필요에 매우 적합하고 유익한 것이므로 감사와 위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령쇄신운동의 참여자들 가운데 일부는 신령한 언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은사는 좋은 것이기에 이 은사에 마음을 열도록 사람들을 격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신령한 언어에만 집중할 정도로 이 은사를 강조해서는 안 된다. 또한 모든 이가 신령한 언어로 말해야 한다고 강조하거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신령한 언어만이 아니라 치유의 은사도 지나치게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치유의 은사 그 자체는 성령의 특별한 은사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재도 구원 활동을 펼치신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주는 표징이다. 예수님의 치유 행위는 ​그분께서 인류를 해방시키시려고 오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표징이었다. 치유는 예수님과 만나서 자신의 상처를 그분께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얻는(루카 8,43-48참조) 은총으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고(루카 17,18참조), 마음을 굳건히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그 목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외적으로 병이 낫는 데에만 매달리는 이들이 종종 있다. 대체로 이런 이들은 기도나 안수를 단지 치료의 수단으로만 여기면서 내적인 변화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또한 공식 검증과 인준을 받지 않은 채 치유나 기적을 주장하고 대중들 앞에서 선전하며, 미처 확인되지 않은 치유 사실을 기도 모임에서 증언케 함으로써 사람들을 선동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치유 은사를 오해하고 남용하는 것으로서, 객관적인 의학적 검증도 없이 유인물을 통해 공적으로 치료 효과를 주장하는 행위는 물론이고, 전적으로 육체적 치료에만 집착하는 행동도 피해야 한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제3장 ‘성령쇄신운동’의 빛과 그늘

1. ‘성령쇄신운동’의 빛

1) 하느님 현존 체험과 신앙 쇄신
2) 다양한 은사를 통한 삶의 변화

2. ‘성령쇄신운동’의 그늘

1) 은사의 오해와 남용
2) 가계(家系) 치유
3) 일부 봉사자들의 그릇된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