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문

< 주님의 기도 해설 > ╋ 내맡김 기도문

은가루리나 2017. 9. 2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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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wee 등급변경▼ 조회 415  추천 0  2009.12.17. 17:2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 주님의 기도 해설 >



사실은 아무나 하느님을 "아버지" 라 부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빛내는 사람들" 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빛내는 사람일까요?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빛내는 사람들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사람들" 입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현존인 "성령" 이시며, 

땅은 인간의 현존인 "영과 육" 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자신 안에 이루어지게 하는 사람은 

이미 "하느님 나라" 의 삶을 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것이며 

죽음으로써 완성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자신을 창조해 주신 주인님, 

하느님 아버지(뜻)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 입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하고 탁월한 방법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뜻)께 내맡긴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자신의 모든 것 즉,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

(자신의 생명, 배우자, 자녀, 부모, 친지 그리고 소중한 재산 등)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 이시라고 인정하고

그 모든 것들을 하느님께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이 나의 모든 것의 "주인님" 이심을 고백하며

"주인님께서 그것들을 필요로 하실 때에는 

그 언제라도 그것들을 기꺼이 내드리겠다."

고 결심하며 그렇게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뜻)께 맡기며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 에 만족할 줄 알며,

"자신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 할 줄 알며,

"유혹이나 악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진정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며

그들을 "하느님의 자녀"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의 자녀들이 부모인 자신의 뜻을 따라서 잘 자라주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자녀인 우리 인간들이 당신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하느님의 자녀" 는 "하느님의 뜻" 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드립니다.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를 자신 안에 건설하여 살아갑니다. 





내맡긴 영혼들이 나서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1) 

▣ 보조교사방


moowee 등급변경▼ 조회 406 추천 0 2018.01.12. 10:01




moowee 2018.01.12..09:34 new



◀ 루이사 피카레타(1865-1947) : < 천상의 책 >

◀ 마더 예우제니아(1907-1990) : < 아버지 영광을 위한 삶 >



{ 나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면서
★ 아버지다운 내 사랑의 호소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게 하고 있다. ★

내가 너희에게 알리고자 하는 이 무한한 사랑은 영원한 사실인 까닭이다.

★ 언제나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법을 다른 이들에게도 가르쳐 주어라. ★

그러면 너희를 이처럼 뜨겁게 사랑하는 아버지를
오늘부터 내가 너희 모두에게 보여 줄 수 있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아들들인 사제와 수도자들아,
너희는 모든 사람에 대한, 
특히 너희에 대한 이 아버지의 사랑을 알리도록 힘써야 한다.

나의 뜻이 모든 사람과 너희 안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일하여라.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알고, 흠숭하고, 사랑하게 하는 일이다.

나에 대한 이 사랑을 활성화시키지 않고
시간을 끌며 내버려두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사랑받고 싶은 열망으로 내 목이 타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며 저는 오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먼저 
<루이사 피카레타(1865-1947)>를 통해서 당신 아드님의 가르침을 주셨는데,

★ 가르침(아버지를 사랑하는 법) ★ 이 널리 알려지지 않으니까,
그 다음으로 아버지께서 직접 
<마더 예우제니아(1907-1990)>에게 당신의 메시지를 주시지 않았나?" 하는.



* * * * * * *




루이사 피카레타의

<천상의 책>에서 어떤 오류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합니다.

마더 에우제니아의 

<아버지 영광을 위한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답니다.


그렇다면,

<천상의 책>의 예수님 말씀과

<아버지 영광을 위한 삶>의 성부 하느님의 말씀에서

그 어떤 한 가지라도 서로 다른 말씀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만일, 그 어떤 말씀 한 가지라도 다른 말씀이 발견된다면

이 두 책은 서로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맡긴 영혼들이 나서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1)  

▣ 보조교사방


moowee 등급변경▼ 조회 392 추천 0 2018.01.21. 08:43




질서[秩序]  (다음사전)
 秩  10획, 부수 : 禾   차례 질

 序  7획, 부수 : 广   차례 서

(1) (기본의미) 사물들의 규칙적인 배치나 배열. 또는 그 원칙.

(2) 일정한 범위 안에서 일의 원인과 결과를 지배하는 근본 원리.

(3) 하나의 사회에서, 지켜야 할 도리로 간주되는 차례절차.




진리 [眞理] 참된 이치 

眞  10획, 부수 : 目   참 진

理  11획, 부수 : 王   다스릴 리


참된 이치. 또는 우주의 근원적 원리.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

본연의 위치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창조된 목적 = 본연의 위치 = 질서 =

원칙 = 근본 원리 = 참된 이치 = 우주의 근원적 원리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는 <불변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근본 원리(원칙)가 있고 질서(차례)가 있습니다.


근본 원리에 따라 질서가 바로서는 자리가 본연의 위치이며,

모든 사물이 그 본연의 위치 에서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의 창조목적 입니다.



모든 것은 순서(順序)가 있습니다.



순서  [順序]  

順(차례 순) 序(차례 서)


정해진 기준에 따라 여럿을 선후로 구분하여 나열한 것



하느님 신앙에 있어서도 순서가 있습니다.



순서를 지키는 것이

질서가 바로서는 길이며,

질서를 바로 세우면 모든 것이 본연의 위치로 돌아오며

그렇게 본연의 위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창조목적을 구현하는 일입니다.



<신명 6>

4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5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6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7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인들은 이 말씀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모세오경을 꿰차고 살았습니다.

또 그럼에도 하느님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하면 하느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성경은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쟝 삐에르 꼬사드)과 

거룩한 위탁(동 비딸 러오데)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과 거룩한 위탁을 꿰차고

그 내용을 입으로 달달 외우고 머리로 다 저장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본연의 위치, 질서를 벗어난 것입니다.

하느님의 창조목적을 잃어버린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하느님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일은 "知彼知己"로부터!  ■ 내맡긴 영혼은 ■ 


moowee  등급변경▼ 조회 715  추천 0  2010.11.05. 10:58



모든 일의 시작은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상대만을 알아서도 안 되고, 나만을 알아서도 안 됩니다.

자신과 상대를 모두 다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나도 알아야 그 관계가 올바로 형성되고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면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하느님이 이러저러한 분이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해서

우리가 하느님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은 절대로 우리 인간의 지식으로 알고 얻게 되는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이사 55,8-9)


인간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의 하느님에 대한 지식

즉 "神學"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하느님이 직접 당신을 알려 주셔야 하는 것"뿐입니다.


하느님은 그 오랜 세월을 수많은 예언자를 통하여 당신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알량한 지식이 그것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분명히 당신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가르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그 낮디낮은 머리로 무엇을 자꾸 생각해내어

인간의 방식으로만 하느님을 알려 해왔던 것입니다.


이에, 

너무도 답답해하시던 하느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환히 다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입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사랑이십니다.

사랑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아는 지름길"입니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면 

하느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알려 주십니다(知彼).

또한,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면 

저절로 "자신에 대해서" 올바로 알게 됩니다(知己).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靈眼이 열려

"자신이 얼마나 미약하고 미천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또, 하느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그분의 지혜가 얼마나 높으신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을 먼저 사랑하면 "知彼知己"가 가능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자신의 편지들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먼저 강조하셨고

또 인간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찾아 얻을 수 있지만,

저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더 먼저 가능해질 때, 

인간에 대한 사랑은 저절로 뒤따라오게 되는 것이며 더 쉬운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올바로 알려면 먼저 하느님을 아는 것이 먼저이고,

하느님을 알려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며, 

하느님을 사랑하면 하느님을 알게 되고,

하느님을 알게 되면 그때 비로소 자신의 본 모습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의 인간은 참으로 부족하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아마, 

현자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친 외침이 바로 그 말이 아닌가 합니다.


하느님 앞의 인간은, 엄마 앞의 "똥싸개 젖먹이"보다 못한 존재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미약하고 미천한 우리를 "철부지" 또는 "어린이"로 대접해 주셨습니다.

엄청난 어른 대접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똥싸개 젖먹이가 "엄마의 사랑"을 자기의 지식, 생각, 경험으로 알 수 없습니다.

엄마의 사랑을 아는 방법은 

그저 "엄마의 사랑"을 통해서 "느낌"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느낌"입니다,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가슴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체온과 심장의 두근거림과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몸으로 느끼며 엄마의 사랑을 알아 갑니다.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된 똥싸개 젖먹이는 "엄마"만을 찾습니다.


똥싸개 철부지의 엄마에 대한 사랑의 표현은 "엄마만을 찾는 일"입니다.

무조건 엄마만을 찾습니다.

똥을 싸도, 오줌을 싸도, 조금만 배가 고파도, 조금만 추워도, 조금만 더워도,,,,,


엄마는 무조건 

자신만을 찾는 자신의 똥싸개 젖먹이에 대해 더욱 큰 사랑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 엄마보다도 우리의 하느님은 

무조건 당신께 모든 걸 내맡겨 매달리는 내맡긴 영혼들을 더욱 사랑해 주시며 

행복을 느끼십니다.


"여인이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이사49,15)



엄마와 똥싸개 젖먹이와의 대화법은 오로지 "느낌"입니다.

엄마와 똥싸개 젖먹이는 서로 "척"하면 "착"입니다.

생각이 필요 없습니다, 

지식이 필요 없습니다, 

경험이 필요 없습니다.


느낌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존재만이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앞의 인간은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면 

비록 그의 몸은 살아 있더라도 영은 죽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마태22,32)


여러분!

하느님을 느끼십니까?

하느님을 어떻게 느끼십니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느끼십니까?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느끼십니까?

당신의 배우자나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뜨겁게 느끼십니까?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배우자나 자식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맡긴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느님을 정말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못합니까?

그렇다면, 무조건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만을 애걸하십시오.

"사랑하는 저의 주인님, 제가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모든 일은 "知彼", "知己"입니다.








20-11



1926년 10월 15일




혼이 천상에서 누리는 영광과 지복과 행복은

지상에서 하느님 뜻을 소유한 정도에 비례한다.




14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하고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그분께서 우리가 아버지의 뜻 안에서 살기를 원하시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였다. 

그러자 언제나 인자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이르셨다.




15 "딸아, 

내가 가르친 '주님의 기도' 중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의  의미는,

모든 이가 적어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는 점이다. 

자기 천상 아버지의 뜻을 실행할 각오가 서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무도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16 그런데 너는 그 직후에 나오는 구절, 

곧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는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내 뜻의 나라가 땅에도 와서 

이 나라 안에서 살게 되도록 기도함을 뜻하는 것이다. 


17 하늘에서는 내 뜻을 실행할 뿐만 아니라  내 뜻 안에서 살기도 하므로, 

그들은 내 뜻을 그들 자신의 것으로, 그들 자신의 나라로 소유하고 있다. 

내 뜻을 실행하면서도 소유하고 있지는 않다면, 

그들의 행복은 완전하지 못할 것이다. 

참행복은 영혼 깊은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18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 뜻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지만,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는 것이다.




19-59,19 따라서 '주님의 기도'중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라는 말마디 안에, 

모든 이가 하느님의 지고하신 뜻을 실행하기를 비는 기도가 있고,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사람이 자신의 기원인 이 뜻 안으로 돌아와 

그의 행복과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고, 

그의 하느님 나라 소유권도 되찾게 하기 위한 기도가 있다.“




12 하기야  내가 세상에 온 후부터 

교회가 '주님의 기도'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청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청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느냐?

이 간청의 모든 중요성은  내 뜻 안에 머물러 있을 뿐,

사람들은 이하지 못하고 

스스로 간청하는 바를 얻기 위한 참된 관심도 없는 상태로 

단지  기도를 위한 기도를 해 오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2일 강의 첫시간 ▶

 

          <주님의 기도>

 

루이사의 글로 들어가기 전에 가톨릭 교리서 요약편 579번(?)을 보면
*성소 안에서의 주님의 기도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주님의 기도는 복음전체의 요약입니다.
성 토마스아퀴나스는 완전한 기도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살아있는 주님의 기도'라 말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에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자기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기도를 사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하며
우리 모두가 주님의 기도로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의 구조는 성부께 청하는 7가지 청원기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3구절은 하느님의 영광을
나중 4가지 청원은 자비하신 성부께 우리의 비참함을 말씀드리며 원하는 것을 청합니다.

 

복음의 핵심에는 항상 항상 성부의 위대하심을 얘기합니다.
누가 만일 누구를 사랑하면 그 사람에 대해 자랑하고 얘기하고 그러지 않겠어요?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슴 속에 감출 수가 없습니다.
성서에서 말하기를 온 우주의 피조물이 성부의 영광을 보고 말한다고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첫번째로 하느님의 이름의 영광

 

두번째로 성부의 왕국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왕국의 온 피조물 안에서는 하느님의 속성이 드러납니다..
하느님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태양에서 그분의 영원한 생명의 빛을,
꽃에서는 그분의 아름다움을
새들의 지저귐에서는 하느님의 말의 조화와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왕 축일 감사 성모경에 보면 그 속성이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정의의 나라, 성덕의 나라, 빛의 나라, 생명의 나라, 은총, 자비,....

 

하느님의 속성들이 온 피조물 안에 반영되어 있음을 볼 수 있지만
그것들이 우리 안에 온전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2천년 동안이나 청했는데도(주기도문) 아직도 다 있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에는 기도가 뜻하는 것을 잘 알면서 확신을 가지고 간절하게 청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생각하며 하느님같이 되는 것을 생각하며 청해야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할 때에는 내 자신만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그 아름다운 속성이 우리 안에 현존할 수 있도록 청해야합니다.

 

세번째가 핵심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왜 핵심일까요?
하느님의 뜻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같이 모든 것을 지휘하기 때문입니다.
바이롤린, 첼로, 등의 악기들은 하느님의 속성들입니다.
우리가 당신의 소중한 것, 당신을 나눠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속성들이 종합하여 다스리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속성, 사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지상에서 하느님을 보여주는 존재가 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하느님의 거울)
(
우리의 성소는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나눠갖고 하느님의 모습이 되어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세번째에서 당신 뜻이 핵심인데
주님의 뜻이 우리 안에 들어오려면 우리 안에 그릇이 있어야 되는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장소가 되어있지 않으면
컵도 없이 물만 있는 것과 같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속성은 온갖 좋은 것들을 갖고 있는 바닷물에 견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기도할 때 좋은 것만 청할 것이 아니라
그 좋은 것을 담아놓을 수 있는 공간을 청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무한함을 담을 수 있는 공간, 그릇 말입니다.

 

하느님의 뜻에서 창조, 구원, 성화사업도 나왔습니다.
구원의 삶도 하느님의 뜻에서 나왔습니다.

 

"내가 거룩하듯이 너희도 거룩하여라. 내가 완전하듯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우리가 이 모든 것의 도착지점입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아버지와 뜻이 많이 달라서 아버지의 것을 다 소유 못하는 거죠.

 

하느님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은
우리의 마음 속에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을 다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모든 마음을 내 마음으로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청하여 가져야 합니다.
만약 내가 하느님의 뜻을 내 안에 갖고 있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닙니다.

그 좋은 모든 것들이 그분의 나라일 뿐 내 것이 아닙니다.

 

세번째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했지만
우리 안에 하느님이 뜻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나머지 4가지 조차도)
문제는 내가 청하는 음식이 아니라
요리사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주어도 내 안에서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뜻이 없으면
매일 먹는 음식들,
하느님의 말씀,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 일용할 빵(영적, 육적 전부) 이 소용이 없습니다.

내 뜻이 하느님 뜻이 아니면 나는 병자입니다.
다 (영적 육적인 음식들) 소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4가지 청원의 완전한 성취는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주셔도 소화를 못시킵니다.물질적인 것도, 하느님 말씀, 성체성사등)
담을 그릇이 없어서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루이사에게 도달하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먹는 물, 밥등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게 아닙니다.
긴 과정을 거쳐서 왔죠,
그게 다 하느님의 속성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물질적인 것들도 하느님의 뜻의 사랑이 있어서 온 것이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병자를 많이 고쳐 주셨는데, 우리가 그런 사람들 입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뜻을 갖고 있지 않으면(그 과정, 사랑) 우리가 귀머거리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내 뜻과 하느님의 뜻이 다르니까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선생님인데 우리 마음 안에 없으니까.

 

성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을 갖고 있는데 소화를 못 시켜서 효과가 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안에 오시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
용서도 하느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원수를 용서할 수 있겠어요?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 있지 않으면 불가능 한 것입니다.

 

유혹.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다스리지 않는다면
인간의 의지는 아주 약하고 부서지기 쉽고 불안정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하느님의 뜻의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야만 악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최종적 승리는 우리 영혼 안에 하느님의 뜻이 다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의 뜻입니다.(Divine Will is Divine Will )
무한하고 전능하고 조화롭고 평화롭고...
만일 하느님의 뜻과 하나가 되면 영원토록 즐길 것이고 하느님께 감사해아 합니다.

 

 

 

구원의 역사에서 우리는 단계적으로 원래의 정의와 성덕 안에 창조되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고 있었죠.
처음 창조되었을 때는 주님의 기도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분들 삶의 첫 단계는 창조자이신 하느님께 계속 영광과 찬양을 드렸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하느님의 거울'이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우주의 왕이고 여왕이었습니다.
자기들의 삶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얘기했습니다.
 
온 피조물들이 다 이브의 다스림 안에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아담 안에 있어서 아담은 각 피조물들의 핵심적인 본질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맞는 이름을 지어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피조물을 창조했고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다 가르쳐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그래서 아담이 그것을 볼 수 있었고 이름을 준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이러한 성덕을 가지고 자기 삶의 초기 단계를 살았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삶의 초기에는 하느님이 주신 모든 것을 갖고 있을 만큼 큰 그릇이었습니다.

 

그런데 시험이 왔습니다.
시험은 필요한 것입니다.
아담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자유를 가진 존재는 그 자유로 시험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탕자의 아들처럼.
두 아들 다 노예는 아니고 자식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의 문은 열려져 있었습니다.
강제로 살고 있는게 아니었죠.

 

아담과 이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봐라 이 안보다 더 좋다.
이들은 거짓말쟁이의 말을 믿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문은 항상 열려져 있으니까.
아버지의 소유물들이 집 안에 있었고, 나갈 때 조금만 갖고 갈 수 있었습니다. 탕자처럼!

작은 아들은 조금 받았지만 금방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텅자처럼 집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서 나간다는 것이고
아버지의 집에서 나갔으니까
아버지의 소유물들을 내 안에 담을 공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는 너무 작고 하느님의 재산은 한이 없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하느님의 뜻의 풍요함을 담을 자리가 없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는 여력이, 자리가 없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하느님이 마땅이 받으셔야할 영광과 찬양을 드릴 능력이 비어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가 비참한 것입니다.
무능하고 약한 인간의 의지가 모여 많은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탕자의 경우처럼 왜 고생하나 하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면

버렸던 모든 것을 다시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과 이브도 아버지의 집에서 정의, 성덕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밖으로 나갈 자유도 받았습니다.
나가기로 결정하고 모든 것(아버지의 나라, 뜻,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습니다.
병에 걸려 죽을 것이고, 그들 마음 속에는 더 이상 하느님의 은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빛도 없어졌고 영원히 어둠 속에 갇혔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존엄성도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원래 계획에 충실하셨기 때문에,

아담과 이브가 이계획을 거부했지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메시아를 보내주셨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는데 4천년 걸렸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오셨습니다.
우리는 동정녀 마리아의 피앗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성모마리아는 땅이 아니고 하늘이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하늘을 떠난 적이 없으십니다.
땅에 있는 엄마(하늘) 안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마리아 안에서 완전히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 땅의 하늘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아담과 이브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새 아담과 이브는 첫 아들 같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충실했습니다.
그 충실함 때문에 우리가 구원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도록 순명하였습니다.
낙원에서의 문제는 아담과 이브의 불순명이었습니다.
이 불순명이 모든 문제의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불순명한 아담과 이브대신 순명하는 아담과 이브가 되자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 뜻 속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인류가 원죄때문에 어둠과 죽음 속에 갇혀 있었는데
때가 차고 인류의 역사 중심점에 와서는 우리의 예수님과 성모님을 갖게 되었고
예수님이 당신 십자가의 부활을 통하여 빛의 나라의 문을 열어
신앙과 천사들의 도움으로 그곳으로 옮겨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에 가는 길에 예수님이 계시고
그분의 교회, 천사와 계명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명을 받아들이면서 받는 고통을 통해
우리 모두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봉헌된 사람들, 수도자들, 우리 모두가 교회가 되고
그 교회가 어둠 속의 빛의 길이 되어 생명의 나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우리는 원죄 짓기 전의 아담과 이브만큼 못합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멀리 뛰어나오시는 아버지의 마중을 받는 상태입니다.
어둠 속에 있다가 깨닫고 고통을 많이 받아서, 아버지가 껴안을 만한 것입니다.
덕행을 쌓기 위해서는
길에서의 그 모든 고통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자기 뜻을 아버지의 뜻에 집어 넣을 만큼 겸손해져서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을 껴안고 반지, 옷, 신발, 등 최고급으로 주시고
또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축제를 벌입니다.

 

그런데 이 잔치가 끝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아버지를 다시 알고, 다시 사랑하고, 아버지가 가르쳐 주려고 했던 것을 다시 배워야만 합니다.
이제 아버지의 뜻이 아들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아버지의 왕국이 아들의 왕국이 됩니다.

이게 루이사의 글 안에서 주님께서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