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2,1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 만찬 중에 하신 일을 생각하고 있노라니
사랑하올 그분께서 내 마음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나눌 때
나는 다만 그 제자들만이 아니고 온 인류 가족에 둘러싸여 있었다.
내가 그들 모두와 함께 있었고 한 사람 한 사람 다 알고 있었으며
그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또 너도 불렀다.
너에게 나와 요한 사이의 영예로운 자리를 주어, 내 뜻의 작은 비서로 세웠던 것이다.
3 그리고 구운 어린양을 잘라 내 사도들에게 주면서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각각으로 주었다.
피를 뽑아내고 구워 토막을 낸 그 어린양은 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 생명의 상징이었다.
내가 만인에 대한 사랑으로 결국 어떻게 될지를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4 나는 또한 내 수난을 상징하는 그 어린양을 모든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으로 내주고자 하였다.
내가 행하고 말하고 겪은 모든 것이
내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위한 음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5 내가 왜 모든 사람을 불러 그것을 주었는지 그 까닭을 알겠느냐?
왜냐하면 나도 그들에게서 음식을 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과 일과 말을, 곧 그들의 모든 것을 내 음식으로 받고 싶었던 것이다."
6 "제 사랑이시여, 저희의 일이 어떻게 주님을 위한 음식이 될 수 있습니까?" 하고 내가 묻자,
예수님은 이렇게 답해 주셨다.
7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내 뜻이 살 힘을 주는 모든 것으로 산다.
빵이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내가 그렇게 되도록 원했기 때문이다.
8 피조물의 모든 일도 그의 뜻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나를 위한 음식이 되게 하겠다는 뜻으로 일하면 그 결과 내 음식이 되는 것이다.
내게 사랑을 주고자 하는 뜻으로 일하면 사랑이 되고, 보속하고자 하면 보속이 된다.
마찬가지로 나를 모욕하려는 뜻으로 일하면
그 일이 내게 상처를 주거나 심지어 나를 죽이기까지 하는 칼이 된다."
9 그분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뜻은 사람을 자기 창조주와 더욱 닮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사람의 뜻 안에 내 무한성과 능력의 일부를 담아 주었고, 그것에 영예로운 위치를 부여하여
사람의 전 존재를 지배하는 여왕이 되게 함으로써 사람의 일을 전부 맡아 간직하게 했기 때문이다.
10 사람이 귀중품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금고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영혼도 자기의 뜻을 가지고 있어서 이 안에 스스로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를 안전하게 보존한다.
11 단 하나의 생각도 잃지 않는다.
눈과 입과 행위로 할 수 없는 것이라도 자기의 뜻으로 행할 수 있다.
한 순간에 수없이 많은 선을 원하거나 수없이 많은 악을 원할 수도 있다.
뜻이 그 영혼의 생각을 하늘로 날아오르게 할 수 있고,
더없이 멀고 깊은 나락의 심연에 빠뜨릴 수도 있다.
12 활동하고 보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영혼은 자기의 뜻으로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가 행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자신의 뜻 안에 보존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13 오, 그러니 이 뜻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펼쳐질 수 있겠느냐!
얼마나 많은 선과 얼마나 많은 악을 내포할 수 있겠느냐!
14. 이 때문에 내가 그 무엇보다도 사람의 뜻을 소유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를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을 가진 셈이 되고, 견고한 성채를 정복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아주 굉장하고도 특이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니까 루이사가 예수님 안에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루이사가 자기의 마음을 예수님께 드렸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모두가 다 루이사의 묵상의 결과이고 열매입니다.
예수님이 루이사한테 그냥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루이사가 영성체를 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여서 생각할 때라든지,
아니면 루이사가 이렇게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 루이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한테도 굉장히 중요하고, 사람들한테도 가르쳐줘야 할 중요한 것입니다.
항상 루이사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 하십니다.
이것은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들 안에 그것을 받아들이고 원하는 것이 있을 때에만
우리한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에서도 그렇습니다.
복음에서도 기적들을 행하실 때, 언제든지 믿느냐? 고 물으시고,
사람들이 믿을 때, 그것을 조건으로 기적을 행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 매력을 느끼고 예수님께 끌리고 이렇게 되는 것은
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것은 은총을 받기 위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열려있고 은총을 받아드릴 성향, 열림이 있어야지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우리 쪽에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영혼 안에 이런 성향, 받아들일 지향이 준비 되어 있지 않으면
그런 영혼 앞에서는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실 수가 없습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요한 6,44)
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제들은 특별히 하늘에 계신 성부님께 기도하고 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끌리게 되도록 성부님께 기도하고 청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토양이 좋아야 되는데,
사제로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 좋은 토양을 이뤄야 하는 것입니다.
시작 부분 기도에서 우리가 이것을 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우리의 성부님께 우리가 청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저희에게 아드님의 얼굴을 보여 주소서.
저희는 오직 그분을 통해서,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만 아버지께 이를 수 있겠나이다!"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의 얼굴, 예수님의 신비를 우리 마음속에 열어 보여주시기를
우리가 성부께 청합니다.
그렇게 예수님한테 끌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딸아,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나눌 때
나는 다만 그 제자들 하고만 같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온 인류 가족에 둘러싸여 있었다.
내가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있었고
그 모든 피조물들을 내가 한 사람 한 사람 다 알고 있었고 그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구절은 예수님이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식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사신 것이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사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머리라는 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것도 생각해야 됩니다.
하느님이시고 모든 피조물의 첫째이시며 머리이시고 그리고 주님이신 예수님,
온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티 없으신 분이시고,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예수님의 신비를 설명하는데 넉넉하지가 않습니다.
나의 인간적인 체험은 예수님을 설명하기에 부족합니다.
내 인간적인 경험만 가지고는 예수님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론을 공부할 때, 예수님을 설명할 때
흔히 우리의 조그만 인간 경험을 가지고 예수님을 설명하는 것은
예수님을 조그만 인간으로 축소시켜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성모님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모님은 그냥 보통 여자가 아닙니다.
성모님은 여자 중의 여자,
그러니까 아주 특별한 여자, 영어에 The 정관사 같은 완전한 여자입니다.
최대로 가능한 정도로 완전히 완전한 분입니다.
죄가 없고 마음과 정신과 의지에서 절대적으로 순결하시고,
그래서 우리가 그분을 이해하려면,
너무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비유로써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이 비유도 우리의 빈약한 경험으로만 비유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신비를 다 이해하려면
우리가 인간적인 능력으로 상상하는 것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는 상상이 안 되기 때문에
그분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열어보여 주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먼저 그분께서 우리에게 열어보여 주셔야지 좀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읽었던 이 짧은 문장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
우리가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알아볼 수 있게끔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주시면서,
예를 들면 최후 만찬 때,
"모든 세대의 온 인류가 최후 만찬 때 나와 함께 있었다. 내 앞에 있었다." 라고 하십니다.
그 모든 인류가 최후만찬 때 당신과 함께 있었는데,
예수님이 "내가 그들을 하나하나 다 알고 있었고 이름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 그 이름으로 불렀다."
예수님 자신을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 이름으로 불렀다고 하십니다.
지금 성사를 세우시는 그 순간이 아니라 마지막 만찬 순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있고 양고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3 “구운 어린양을 잘라 내 사도들에게 주면서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각각으로 주었다.
피를 뽑아내고 구워 토막을 낸 그 어린양은 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 생명의 상징이었다.
내가 만인에 대한 사랑으로 결국 어떻게 될지를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4 나는 또한 내 수난을 상징하는 그 어린양을
모든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으로 내주고자 하였다.
내가 행하고 말하고 겪은 모든 것이
내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위한 음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제 양고기를 제자들에게 다 나누어 주셨는데,
그것은 실제로 당신 자신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각 사람들이 먹을 음식으로 변하게 했는데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것을 제자들에게 준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할 때에는, 사랑은 하느님이 먼저 사랑하신 겁니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하나씩 다 주시면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겁니다.
당신 사랑으로 양고기를 당신 자신으로 변화시켜서 주신 겁니다.
그분의 모든 삶이 음식으로 변했습니다.
5 “내가 왜 모든 사람을 불러 그것을 주었는지 그 까닭을 알겠느냐?
왜냐하면 나도 그들에게서 음식을 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과 일과 말을, 곧 그들의 모든 것을 내 음식으로 받고 싶었던 것이다.”
사랑은 사랑으로만 갚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 예수님을 음식으로 바꾸어 주었다면
사랑이 우리를 또 예수님을 위한 음식으로 바꿔줘야 합니다.
그래서 루이사가 즉시 주님께 물어보았습니다.
6 “제 사랑이시여, 저희의 일이 어떻게 주님을 위한 음식이 될 수 있습니까?” 하고 내가 묻자,
예수님은 이렇게 답해 주셨다.
7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내 뜻이 살 힘을 주는 모든 것으로 산다.
빵이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내가 그렇게 되도록 원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이 원하셔서 빵이 인간에게 영양분을 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8 피조물의 모든 일도 그의 뜻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나를 위한 음식이 되게 하겠다는 뜻으로 일하면 그 결과 내 음식이 되는 것이다.
내게 사랑을 주고자 하는 뜻으로 일하면 사랑이 되고, 보속하고자 하면 보속이 된다.
마찬가지로 나를 모욕하려는 뜻으로 일하면
그 일이 내게 상처를 주거나 심지어 나를 죽이기까지 하는 칼이 된다.”
내 심장 박동이 뛸 때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면,
그 심장 박동이 예수님께 드리는 사랑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닮은 하느님의 모상입니다.
우리의 의지는 인간 존재 안에서 왕이나 여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의지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제일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의지 안에 하느님의 모습이 들어있습니다.
물론 우리 눈 안에서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목소리에서 하느님의 부드러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얼굴의 아름다움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온 몸의 조화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안에서 하느님과 가장 닮은 것을 찾아내려면 그 사람의 의지로 가면 됩니다.
그 사람의 의지가 하느님을 제일 많이 닮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9 “사람의 뜻은 사람을 자기 창조주와 더욱 닮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사람의 뜻 안에 내 무한성과 능력의 일부를 담아 주었고,
그것에 영예로운 위치를 부여하여 사람의 전 존재를 지배하는 여왕이 되게 함으로써
사람의 일을 전부 맡아 간직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면
그가 하는 그 모든 일이 그 사람의 의지 안에 예금처럼 맡겨져 있습니다.
사람의 의지가 금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의지는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의 의지가 원하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 사랑, 보속, 경배, 사랑에 대한 응답,
우리 의지가 무엇을 하든지 원하는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의지가 그만큼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당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한 음식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우리의 삶을 예수님의 음식으로 바꿀 수 있고 바꾸어야 됩니다.
영적 음식입니다. 이것이 한 면입니다.
다른 면은 우리의 의지는 우리 인간 존재의 모든 것을 담아 두는 금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단 한 가지 생각도 딴 데로 흘러가서 잃어버리지 않고
전부 우리 의지 속에 들어가 있다고 하십니다.
눈으로 또 입으로, 또 일로 할 수 있었던 것을 그 의지는 한 순간에 다 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의지는 작은 책입니다.
세말(世末)에 가서 열어보아야 될 책입니다. 아주 큰 책 앞에서 열어보게 될 작은 책입니다.
생명의 책 앞에서 열리는 작은 책입니다.
묵시록에 보면,
세말에 우리는 어떤 한 시점에 도달하게 되고 우리 앞에 아주 큰 책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많은 작은 책들이 있는데
만약 큰 책에 있는 것이 이 작은 책에 없다면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곤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삶의 끝부분에 가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 의지의 이 작은 책이 펼쳐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그 작은 책 안에 다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책에 기록된 것이 그 큰 책에 기록된 것과 같지 않으면,
그 책을 다시 쓰기 위해서 연옥으로 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 작은 책이 큰 책과 완전히 같아질 때까지 하늘나라에 갈 수가 없습니다.
작은 책에 쓰여 있는 것을 보면서,
'아, 그게 아니고, 그런 뜻이 아니었고,' 라고 아무리 변명을 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오, 모든 죄, 이것은 어떻게 되나?' 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고해성사를 보게 되면 모든 죄가 다 용서되고,
하느님의 자비가 그 끔찍했던 죄를 대신하게 되고,
예수님이 하신 일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가 죄가 있던 자리를 대신 채우게 됩니다.
그것을 다 바꿔놓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 모든 피조물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 모든 사람들의 삶을 다시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저질렀던 나쁜 일들은,
만일 우리가 그것을 깨닫고 그것에 대해서 미안해하고 후회하면,
그리고 우리가 용서를 청하면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 없애주십니다.
그 대신에 당신이 하신 걸로 그 자리를 메워 주십니다. 아멘
(p.99-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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