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뜻 영성

Re:Re:Re:하느님 뜻 안의 삶(3)|▣ 보조교사방

은가루리나 2018. 1. 7. 14:54

moowee | 등급변경| 조회 95 |추천 0 | 2018.01.07. 13:15



Re:Re:하느님 뜻 안의 삶(3)|▣ 보조교사방  2018.01.05



"저 무위 신부는

참으로 부족하고 죄스럽고 내일 또 죄를 짓는 신부이지만,

하느님이 저의 주인이시며 제 삶의 중심이 되시는 분이시기에

그분께 저의 부족하고 죄스럽고 내일 지을 죄까지도 모두 완전히 100%를

다 내맡겨 드렸기에,


어느덧 지금

하느님 뜻 안의 삶을 살 수 있는 첫 걸음을 지나

마지막 걸음인 네 번째 걸음걷고 있는 중이라고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고백(성호경 그음)합니다.


제가 지금 네 번째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저의 노력이나 능력 또는 하느님에 대한 많은 지식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나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moowee 18.01.05. 10:17



사랑하는 하내영 여러분!

여러분 중에도 분명
저처럼 네 번째 걸음을 걷고 계신 하내영이 계실 겁니다.

네 번째 걺음을 걷고 있다는 가장 중요한 증거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말씀대로,
자신의 삶이 지금 이 세상에서 < 하느님 외에 >
★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는 삶.★
살아가고 있다면 그 하내영은 분명 네 번째 걸음을 걷고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네 번째 걸은을 걷고 있다고 여겨지는 하내영은,
아래의 댓글로 그 사실을 고백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 "나 무위는 부족하고 죄스럽고 내일 또 죄를 짓더라도
네 번째 걸음을 걷고 있는 중입니다." 라고!


moowee 18.01.05. 14:41

                                                
자신이 네 번째 걸음을 걷고 있는다고 여기는 하내영은 이것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을 그 어떤 것도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거절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사고가 <이원론>에서 벗어난 사고의
소유자인가 이닌가도 헤아려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moowee 18.01.06. 08:41 new         

[비이원적 사유는,
모든 것의 좋지 않고 문제가 되고 위태로운 부분들을 제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방법이다.

그것은 너무 쉽게 "이건 불가능해!" 또는
"그건 말도 안 돼!"라고 말하기를 거부한다.]


비이원론의 의미에 대해서는
위의 명지조각보님의 댓글을
참조하시고, 더 자세히 아시려면 추천도서 리차드 로어 신부님의 <벌거벗은 지금>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moowee 18.01.06. 08:54 new

.
■ 하느님을 찾음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중략)


우리는 하느님의 의지가 무엇인지 하느님에게서 찾아내야 한다.
대체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포기하길 원하신다.

아무도 자기 약함이나 잘못이나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하느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만일 어떤 큰 결함이 그대를 방황하게 만들고
그 때문에 하느님께 가까이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어떤 경우라도 하느님이 그대 가까이 계시다고 여겨야 한다.


★자기 집에서나 장터에서보다
사색과 기도, 신심행위들을 통해 더 많이 하느님께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머리를 덮개로 가리고 탁자 아래 하느님을 숨기려는 것과 같다.★

★ 일정한 형식 속에서 하느님을 찾으려는 사람은
형식을 고수하느라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하느님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한 형식 없이 하느님을 찾는 사람은
자신 안에 계신 하느님, '아들과 함께 사시는' 하느님, 생명 자체이신 하느님을 발견한다.




천상의 책

19-44



1926년 8월 4일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이는 어디에 있든지 안전하다.

네 층이 있는, 무한히 크고 신비로운 집의 비유.

'지고한 피앗' 전기의 경탄할 만한 힘과 속도.



3 예수님은 그러나 매우 인자하신 음성으로, 

"딸아, 무엇이라고? 

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내 뜻 안에 있지  달리 어디에 있겠느냐?하셨다. 




"내 뜻의 집은 크다. 

그러니 네가 어느 한 층에 있지 않으면  틀림없이 다른 층에 있다. 

실제로  내 뜻은 네 개의 층이 있는 집이다.


첫째 층은 가장 낮은 층으로서 

바다와 초목과 과 

그리고 우주 만물 중  하위 부분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들을 포괄한다. 


모든 곳에서 내 뜻이 다스리며 지배하기에, 그의 자리는 언제나 왕좌이다. 

내 뜻이 만물을 손바닥 안에 잡아 쥐고 있는 것이다.


5 둘째 층은 와 들과 천체들의 층이다. 


셋째 층은 푸른 하늘이다. 


넷째 층은  아버지의 나라이고  나의 나라이며  성인들의 나라이다. 



내 뜻이 이 모든 층에서 여왕이기에  

영예로운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즉 

어느 층에 있든지  

너는 언제나 내 뜻 안에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네가  우주 만물 중 하위 부분에 속하는 것

이를테면  바다 속을 돌아다니고 있다면, 

내 뜻이 거기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너도 내 뜻과 하나 되어  내 뜻이 행하는 바를 함께 하도록 하려는 . 


 뜻은 또한  

산 위에서나 계곡 아래에서나 꽃이 핀 들판에서나 

사랑과 영광과 권능을 떨치면서  

모든 것 안에서 너의 동반을 기다린다. 

가 아무것도 빼놓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7 더욱이, 

너는 내 뜻의 행위를 되풀이하는 사람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일단  첫째 층을 통과한 후에는  둘째 층으로 옮겨 가거라. 

그러면 

내 뜻이  위용을 떨치는 태양 안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음을 볼 것이다. 


그것은  태양의 빛과 열로  너를 변화시키며  너 자신을 잊게 하여, 

하느님의 뜻이 사랑하고 찬양하는 것과 같이 

너도 사랑하고 찬양하는 법을 배워  알게 하려는 것이다.


8 그러므로 

너는 우리 (성삼위)의 집 안에서  네 창조주의 업적들 사이를 두루 돌아다녀라. 

창조주께서  어디서든지 너를 기다리고 계신다


네가 그분의 길을 배워 

내 뜻이 모든 피조물 안에서 행하는 바를 되풀이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면 네가 언제나 '지극히 높으신 의지' 안에 있음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9 그뿐만 아니라  언제나 나와 함께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나를 늘 보지는 못하더라도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내 뜻과 내 업적들에서 떨어질 수 없기에, 

네가 내 뜻 안에 있으면  

내가 너와 함께 있고  너도 나와 함께 있는 것이다."




15 나중에 그분은 당신 자신을 위로하시려는 듯 

예의 그 빛나는 펜을 손에 쥐신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이르셨다. 



"딸아, 다른 모든 것은 제쳐 놓고 

무척 나의 관심을 끄는 '지고한 뜻의 나라' 에 대해서 말하자꾸나.


16 너는 내가 언제나 네 영혼 깊은 곳에서, 

내 뜻의 특성과 그 천상적인 법, 내 뜻의 능력과 신적인 기적들, 

그 매력적인 아름다움과 무한한 기쁨, 

이 '하느님 피앗의 나라' 를 지배하는 질서와  완벽한 조화에 대하여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17 우선 나는 준비부터 하고,


내 뜻의 모든 재물을 네 안에 형성한다

그런 다음 너에게 말한다. 


네가 너 자신 안에 내 뜻의 재물이 있음을 느끼면서 

내 뜻의 대변자이며 선포자

내 뜻의 전신기이며 작은 나팔이 되게 하려는 것이니, 


이는 그 날카로운 소리로 행인들의 주의를 끌어  

네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려는 것이다.



18 내가 너에게 주는

내 뜻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은 수많은 전깃줄과 같 것이다


그러므로 적당한 통신 시설과 필요한 준비가 갖추어지면, 

단 하나의 전선만으로도  온 도시나 지역을 밝히기에 충분할 것이다.



19 전기의 힘은 

바람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공공장소 및 사사로운 모든 장소에 

빛을 준다. 


여기에서 

전선은  내 뜻에 대한 가르침이고


전력 황홀케 할 만큼 빠른 속도로  

인간 뜻의 밤을, 정욕의 어두움을  몰아내는 빛을 형성할 

'피앗' 자체일 것이다


그러니, 오, 내 뜻의 빛은 얼마나 아름답겠느냐!



20 사은 내 뜻의 빛을 보면서 

자기 영혼 안에  그 가르침의 전선과 연결되기 위한 장치를 갖추어, 

내 지고한 의지의 전기가 지닌 빛의 힘을 받으며 릴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으냐?


21 보아라,

내가 네 영혼에 연결된  내 가르침의 전선 하나를 잡겠다


너는 이 전선 속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흠숭합니다. 찬미합니다..... ' 따위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흘려 넣어라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아라."



22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당신을 사랑합니다.' 가  빛나는 글자로 바뀌었고, 

지고하신 의지의 전력(電力)이 그 빛나는 글자들을 불어나게 하여 

온 하늘 궁창으로 올라가게 하였다.


23 그리하여 그것은 태양과 별들 하나하나 안에 자리하고, 

천국으로 들어가 복된 이들 각 안에 자리하며 

하느님 어좌의 발치에서 빛나는 화관을 이루었다. 

그리고 지존하신 임금님의 가슴 속으로도 들어갔으니, 

한마디로 말해서 

하느님의 뜻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  하느님 뜻 전기의 빛이 형성되는 것이었다.




24 그때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딸아, '지고한 피앗' 전기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모든 곳에 다다르게 되는지 보았느냐? 


세상의 전기는 아래쪽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갈 뿐  

별들에게 도달할 힘이 없다. 



하지만 

나의 전기는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어디든지 퍼져 나갈 힘이 있다. 


전선이 놓여 있기만 하면, 

황홀케 할 만큼 빠른 속도로, 피조물 가운데에 그 자신의 길을 내는 것이다.“





무화 18.01.05. 22:51


사랑하는 저의 예수님
'적당한 통신 시설과 필요한 준비'가 거내영과 끊임없는 화살기도아닐까요?

거내영의 봉헌을 하고 끊임없는 화살기도를 잘하여
제 영혼 안에 피앗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잘 받아들일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고
그 지식의 전선에 불이 들어오게 되면
부족한 제가 천상 전신기나 천상 나팔이 되어
온 도시나 지역에 하느님 뜻에 대한 지식이 퍼져나가게 되고
모든 이들이 하느님 뜻에 대한 염원을 하게 되고
그 첫 단계 내맡김의 삶을 받아들여
하느님 뜻 안의 삶을 가능케 하게 되고...ㅎ ㅎ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moowee 18.01.04. 10:32


<1 코린 13 >
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거내영의 핵심은
★★★ 사랑 ★★★ 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 >



아무리 어느 영성이 뛰어난 영성이라하여도,
그 영성의 주인공이신 하느님, 그 하느님에 대한 사랑,
★사랑의 하느님을 사랑러브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지 못하는 영썽은, ★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
<아무것도 아닙니다. >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탁월성이 바로,
★ 사랑의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가르쳐준다 ★ 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르쳐 주냐고요???


하느님에 대한 愛사랑가,
★ 끊임없는 화실기도 성가 ★ 를 통하여 말입니다.


하느님 愛사랑가가 끊임없이 불려지는 데,
사랑의 원천이시며
사랑 자체이신 사랑의 하느님이 그냥 바라만보고 계시겠습니꺄?


끊임없는 화살기도는 하느님을 ★ 감동 ★ 시킵니다.
하느님과의 ★ 사랑이 공명되어 ★ 하느님과 < 일치 >시켜줍니다, 정말입니다!

곧 하느님 사랑과 우리 사랑과의 주파수를 일치시켜줍니다.
男女라하여 아무나 서로 사랑을 일치시킬 수 있나요?

아닙니다, 아니어요.
서로의 사랑이 ★공명 ★ 되어야 합니다.

<다음사전>
공명共鳴
1.진동계의 진폭이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현상
2.어떤 화학 결합이나 분자 결합 구조가 두 가지 이상의 구조식으로 혼합되어 있는 상태
3.남의 행동이나 사상 등에 깊이 동감하여 함께 하려는 생각을 가짐


"네가 내 뜻 안에 있으면 내가 너와 함께 있고 너도 나와 함께 있는 것이다"


아빠 궁전 안 어느 곳에나 계신 아빠
저는 하느님 뜻 안에 있으니까 지금도 함께 계시지만
제가 당신 뜻의 행위를 되풀이 하여
나중에 진짜로 아빠가 원하시는대로 넷째 층에서 만나요 하이 남녀

아버지의 뜻이 제 안에서 이루어지소서~~~ 아멘! 사랑1 사랑2

아버지의 완전한 영광(천 21-23-14)을 위하여!!!



Re:Re:3부 주의 깊게 바라보는 눈길 - 자유인, 대자유인의 삶으로의 길| ★벌거벗은 지금

moowee | 등급변경

조회 265 |추천 0 | 2017.12.27. 23:03



"아무리 성경필사 수십 번을 하여도,

아무리 성경통독을 수십 번하여도,

아무리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완전 이해하여도,

아무리 내맡김 영성을 자나깨나 옆꾸리?에 차고 다닌다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무신 책을 얼마나 많이 읽고

더나아가 그 책 전체를 암송까지 한다 하여도 울리는 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누가 더 하느님을 죽기까지 사랑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모든 일은 "知彼知己"로부터!| ■ 내맡긴 영혼은 ■

moowee | 등급변경 | 조회 712 |추천 0 | 2010.11.05. 10:58




모든 일의 시작은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상대만을 알아서도 안되고, 나만을 알아서도 안됩니다.

자신과 상대를 모두 다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나도 알아야 그 관계가 올바로 형성되고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면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하느님이 이러저러한 분이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해서

우리가 하느님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은 절대로 우리 인간의 지식으로 알고 얻게 되는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이사55,7~8)

 

인간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의 하느님에 대한 지식, 즉 "神學"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하느님이 직접 당신을 알려 주셔야 하는 것"뿐입니다.

 

하느님은 그 오랜 세월을 수많은 예언자를 통하여 당신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알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알량한 지식이 그것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분명히 당신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가르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그 낮디 낮은 머리로 무엇을 자꾸 생각해내어

인간의 방식으로만 하느님을 알려 해왔던 것입니다.

 

이에, 너무도 답답해 하시던 하느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환히 다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입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사랑이십니다.

사랑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아는 지름길"입니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면 하느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알려 주십니다(知彼).

또한,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면 저절로 "자신에 대해서" 올바로 알게 됩니다(知己).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靈眼이 열려

"자신이 얼마나 미약하고 미천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또, 하느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그분의 지혜가 얼마나 높으신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을 먼저 사랑하면 "知彼知己"가 가능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자신의 편지들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먼저 강조하셨고

또 인간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찾아 얻을 수 있지만,

저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더 먼저 가능해질 때, 인간에 대한 사랑은

저절로 뒤따라오게 되는 것이며 더 쉬운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올바로 알려면 먼저 하느님을 아는 것이 먼저이고,

하느님을 알려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며, 하느님을 사랑하면 하느님을 알게 되고,

하느님을 알게 되면 그때 비로소 자신의 본 모습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의 인간은 참으로 부족하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아마, 현자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친 외침이 바로 그 말이 아닌가 합니다.

 

하느님 앞의 인간은, 엄마 앞의 "똥싸개 젖먹이"보다 못한 존재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미약하고 미천한 우리를 "철부지" 또는 "어린이"로 대접해 주셨습니다.

엄청난 어른 대접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똥싸개 젖먹이가 "엄마의 사랑"을 자기의 지식, 생각, 경험으로 알 수 없습니다.

엄마의 사랑을 아는 방법은 그저 "엄마의 사랑"을 통해서 "느낌"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느낌"입니다,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가슴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체온과 심장의 두근거림과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몸으로 느끼며 엄마의 사랑을 알아 갑니다.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된 똥싸개 젖먹이는 "엄마"만을 찾습니다.

 

똥싸개 철부지의 엄마에 대한 사랑의 표현은 "엄마만을 찾는 일"입니다.

무조건 엄마만을 찾습니다.

똥을 싸도, 오줌을 싸도, 조금만 배가 고파도, 조금만 추워도, 조금만 더워도,,,,,

 

엄마는 무조건 자신만을 찾는 자신의 똥싸개 젖먹이에 대해 더욱 큰 사랑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 엄마보다도 우리의 하느님은 무조건 당신께 모든 걸 내맡겨 매달리는

내맡긴 영혼들을 더욱 사랑해 주시며 행복을 느끼십니다.

 

"여인이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49,15)

 

엄마와 똥싸개 젖먹이와의 대화법은 오로지 "느낌"입니다.

엄마와 똥싸개 젖먹이는 서로 "척"하면 "착"입니다.

생각이 필요없습니다, 지식이 필요없습니다, 경험이 필요없습니다.

 

느낌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존재만이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앞의 인간은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면 비록 그의 몸은 살아 있더라도 영은 죽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마태22,32)

 

여러분!

하느님을 느끼십니까?

하느님을 어떻게 느끼십니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느끼십니까?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느끼십니까?

당신의 배우자나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뜨겁게 느끼십니까?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배우자나 자식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맡긴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느님을 정말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못합니까?

그렇다면, 무조건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만을 애걸하십시오.

"사랑하올 저의 주인님, 제가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모든 일은 "知彼", "知己"입니다.




사랑하는 하덧사 하내영 여러분!


사실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하느님 뜻 안의 삶>의 길에 들어서서 첫 번째 걸음을 걷고 있느냐 아니면,

네 번째 걸음을 걷고 있느냐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하느님께 내맡긴 철부지 똥싸개들에게 있어서는 말입니다!


제가 하내영 여러분께 지금 여러분의 영적인 걸음 상태에 대해서

여러분이 몇 번째 걸음을 걷고 계시는가를 질문드린 것은,

스스로의 영적상태를 돌아보시라는 뜻에서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 인간의 지혜로 알아들을 수 없는 하느님을

우리가 진실로 진실로 사랑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의 <인간적 사유의 한계>를 벗어나야 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아래의 말씀조차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딸아, 무엇이라고? 

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내 뜻 안에 있지  달리 어디에 있겠느냐?


내 뜻의 집은 크다.


"내 뜻이 이 모든 층에서 여왕이기에  

영예로운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즉 

어느 층에 있든지  

너는 언제나 내 뜻 안에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네가  우주 만물 중 하위 부분에 속하는 것

이를테면  바다 속을 돌아다니고 있다면, 

내 뜻이 거기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너도 내 뜻과 하나 되어  내 뜻이 행하는 바를 함께 하도록 하려는 . 


 뜻은 또한  

산 위에서나 계곡 아래에서나 꽃이 핀 들판에서나 

사랑과 영광과 권능을 떨치면서  

모든 것 안에서 너의 동반을 기다린다. 

가 아무것도 빼놓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또 우리가

<인간적 사유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간적 사유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가장~ 탁월한 방법이 바로,

<하느님만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러할 때 하느님께서는 비로서, 

우리의 지성과 인식과 사유와 감정의 영역을 확장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 주셔야만 참으로 어리석고 비천한 우리가

전능하시고 한없이 위대하시고 놀라우신 하느님을 알아뵙고,

하느님을 죽도록 뜨겁게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Re:Re:3부 비이원적 사유가 아닌 것들< 무뇌 인간>| ★벌거벗은 지금

moowee | 등급변경 | 조회 324 |추천 0 | 2017.12.22. 07:49




< 실로, 비이원적 사유 또는 관상은
모든 언어와 생각을 초월한 '절대자'와 만났다는 신호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저장하는 실질적인 하드웨어를 바꾸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윤리도덕이나 신앙체계를 바꾸는 게 아니다.
사물과 사건을 받아들여 그것을 경험으로 삼는 방법 그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




"망설임"은 내맡긴 영혼의 태도가 아닙니다.| ■ 내맡긴 영혼은 ■

moowee | 등급변경
| 조회 673 |추천 0 | 2010.09.26. 08:55



내맡기기 전에는 모든 일에 있어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 아주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고,

또 생각을 많이 할 수록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또, 머리가 좋은 사람은 생각없이 지내는 시간이 전혀 없이

항상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엄청난 발견과 발명을 하는 것이며,

"생각이 많은 사람"이 마치 머리 좋은 사람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맡김 이후에는 바로 그것을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빨리 벗어날 수록 빠른 "영적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내맡김"이 뭡니까?

생각마저, 지식마저, 경험마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기고,

그래서 "생각없이", "지식없이", "경험없이" 살아가는 것,

즉, "無腦人間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대신, 하느님이 주시는 靈感과 智慧와 召命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뛰어난 지식도 그 주인을 따라 무덤으로 들어갑니다.

인간의 모든 생각도 경험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사라없어질 지식과 경험과 생각을 모두 다 버리고,

아니, 하느님께 내맡기고 영원히 함께 할 하느님의 지혜를 좇기 위해

그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긴 영혼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겼다 하면서

자꾸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생각"을 통하여 "지금 여기에"에 끌어들입니다.

"교만 마귀"가 그렇게 유도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지식과경험을 "내맡김의 영성"에 자꾸 대입시켜 비교하려 합니다.

과거의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것이 되었는데,

그래서 내맡긴 영혼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하는데

"교만 마귀"가 내맡겼다는 사람의 생각을 통하여

내맡겼다는 사람의 영혼을 "난도질"합니다.

생각의 주인이 그것을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그것을 벗어나지 않으면 영적성장을 이룰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이 오래 지속되는 사람은 "100%"를 내맡기지 못한 것이라고 보아도

거의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내맡긴 영혼"은 날이 갈 수록 모든 일에 "망설임"이 없어집니다.

"망설임"이란 국어사전에 "머뭇거리고 뜻을 정하지 못하다."라고 분명히 적혀있습니다.

하느님께 내맡긴 사람은 이미 뜻을 정한 사람을 말합니다.

 

어떻게 뜻을 정했습니까?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살 뜻을 이미 정했고

그 뜻을 하느님께 내맡겼고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아주셨는데 그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자꾸 과거의 경험을 "지금의 내맡김의 영성"에 들이 대며 말입니다.

 

모든 일에 자꾸 망설이는 사람은 "뜻을 정하지 못한 사람"이며,

뜻을 정하지 못했기에 완죤히 내맡기지 못한 것입니다.

 

지식을 버려야 합니다.

경험을 버려야 합니다.

지식과 경험을 끌어 들이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내맡김의 초보에는 누구나 지 아무리 잘나고 똑똑했던 사람이라도

하느님이 주시는 느낌을 알아채려 노력하며 마침내는 영감을 받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智慧"입니다.

 

그리고, 내맡김을 미리 경험한 선배들의 경험을 존중하고

머리숙여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혜"가 뭡니까?

국어사전에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 슬기" 또는

"불교에서, 미혹을 끊고 부처의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힘을 이르는 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지혜라는 단어 바로 밑에 "지혜검(智慧劍)"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 뜻은 "불교에서 번뇌를 끊어버리는 맑은 지혜의 힘을 칼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번뇌"는 생각입니다.

생각을 끊어버려야 맑은 지혜의 힘이신 "하느님"을 얻습니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불러들이는 "생각"과 부르스를 땡기지 맙시다!

망설이고 주저하지 맙시다!

"아님말구"입니다.

 

100%를 완죤히 내맡긴 영혼이라면 - - - - - - - - - - -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고 일어서는 모든 오만을 무너뜨리며,

'모든 생각'을 포로로 잡아 그리스도께 순종시킵니다." (2코린10,5)


 




만일,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떤 <영성이나 이론에 먼저 얽매이면> 그 사람이야 말로,

것이 자신의 율법이 되어 율법 아래 놓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1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통하여 의로움이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갈라 2)


"누구든지 율법을 전부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율법 전체를 어기는 것이 됩니다."(야고 2, 10) 


과거의

<지식을 버려야 합니다.

경험을 버려야 합니다.

지식과 경험을 끌어 들이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내맡김의 초보에는 누구나 지 아무리 잘나고 똑똑했던 사람이라도

하느님이 주시는 느낌을 알아채려 노력하며 마침내는 영감을 받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智慧"입니다.>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살고 있는 사랑하는 하내영 여러분!

지금 당신은 <하느님 뜻 안의 삶 네 번째 걸음>을 걷고 계십니까?


"당신은 하느님을 쩡말로 싸랑하십니까?

하느님 때문에 맨날 눈물을 짜고 계십니까?

하느님 싸랑으로 가심이 뜨겁게 달아 오르십니까?


아하~~~ 그렇타고요?

기러믄 당신은 못난 하느님의 백썽, 평신도들에게

영성"을 말하고 가르칠 자격이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당신을 정말 존경합니다.


그러한 당신을 저는 만나고 싶고 당신과 대화를 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저를 지도해 주시기를 정말로 원합니다.

 

참으로 영성은,

"우리를 내신 하느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하여 받들고,

그분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고, 그분만을 사랑하며,

그분과 뜨거운 사랑을 서로 나누며 사는 것" 그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님을

널리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영성신학"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학문이 되어야지,

"하느님을 가르치는 학문의 가르침"이 오히려 "하느님에 대한 앎"을

방해하고 어렵게 해서는 절대로 아니 됨을

이 기회에 하느님을 가르치는 많은 교사들께 정말 크게 강조 하고 싶습니다.


내맡김의 영성은 "새로운 영성"이 아닙니다.| ■ 내맡김 영성 ■

moowee | 등급변경 | 조회 1155 |추천 0 | 2010.08.21. 17:16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살고 있는 사랑하는 하내영 여러분!


지금 당신은 <하느님 뜻 안의 삶 네 번째 걸음>을 걷고 계십니까?

걷고 계시는데, 아직은 당신의 자녀와 배우자와 당신의 재물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지는 못하신다고요?


아, 그렇다면 당신은 거룩한 내맡김 영성이라는 율법에 얽매여

그 율법의 노예로 살아가고 계신 것입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마태 22)


"사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이십니다.

믿는 이는 누구나 의로움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로마 10, 4)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