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위탁

51 p.253-259 제 3편 제 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2절 질병의 지역과 그 결과 ②

은가루리나 2018. 3. 21. 17:52


옴니아 등급변경▼ 조회 174 추천 0 2012.11.14. 05:58



p.253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4 장 육체(肉體) 및 정신(精神)의 

각가지 자연적 선(自然的 善)에 있어서의 위탁(委託) 제1절 


제 2 절  질병의 지연(遲延)과 그 결과 




끝으로,

「병이나 허약함으로 나는 무용지물(無用之物)로 돼 버렸다. 

나는 수도원의 무거운 짐이 되었다.

모든 수업(修業)을 규칙대로 준수할 수 없으므로,

형제들에게 악표양을 주고 있다」라고 어떤 이는 말할지 모른겠다.



확실히 착한 병자는, 

아직도 가능한 한 헌신적으로 노력하며,

불필요한 비용이 소요되지 않도록 유의하며,

소용이 없는 간호를 요구하지 않고,

까다로운, 돌보기 어려운 이가 되는 것을 피하려 한다.


또한 남에게서 받는 친절한 마음씨에 대해서는

감사와 온순함으로써 보답한다.


병든 자 안에서 보이는 것은 주의 모습이며,

또한 착한 병자는 주를 닮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항상 나아가고 싶다,


허다한 십자가가 가져오는 은혜를 잃지 않으려는 열망에서,

그는 간단없이 천주와 영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따라서 준수할 수 있는 회칙의 어느 것은 충실하게 지키고,

불가능하게 된 것은 

자아포기와 겸손, 기도와 거룩한 위탁에 의해서 이를 메운다.


그러한 병자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드라도,

주위의 사람들의 교훈도 축복도 되는 것이다. 



p.253


결국, 일시적 병이건, 긴 세월의 병이건,

그러한 십자가를 병자의 어깨에 짊어지게 하는 것은

병자 자신의 의지가 아니고, 온전히 천주의 의지다.


병자는 이 십자가의 가장 무거운 부분을 짊어지는 것이지만,

간호인, 장상 및 수도원 전체에 있어서도 일부분 짊어진다.


그러나 천주께서는 우리 형제들에게 희생을 요구하시고, 

의무를 부과시킴에 있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이용하실 권리가 없으시겠는가.


우리의 간호인은 천주의 은총의 도우심에 의해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섭리에 복종하며,

섭리에 의해서 제시되는 우리에게 대한 의무를 수행할 것을 알 것이다.




우리의 역활은 또한, 「젤뜨루다. 마리아」동정을 모방하는 것이다.


그는 교사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무용지물로 생각되는 것을 괴롭게 느끼고 있었지만,


그러나 겸손하게 천주의 의지를 수락하고,

또한 선을 행할 수 있는 세가지 커다란 수단,

즉 기도와 모범과 회칙의 완전한 준수가 자신에게 남겨져 있음을 생각하여

자신을 위안하고 있었다 (「현대의 한 신비자」5 )



p.254


착한 병자가 무용하다는 것은 외관상의 일 뿐이며,

실제로는 마음 여하로 가장 유용한 이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수도단체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무거운 노동에 견디는 팔도 아니며, 고상한 임무를 행하는 두뇌도 아니고, 

오직 유덕한 이며,

끊임없이 완덕에 진보하려고 갈망하고

참으로 관상(觀想)과 고행(苦行)의 정신을 지니고 있는

거룩한 영혼이기 때문이다.


병중에서도 건강한 때와 마찬가지로, 

다만 조금 다른 수단으로써 그렇게 노력하는 것은

천주의 은총에 의함과 아울러 오직 우리 자신에 의한다.


이렇게 하여 천주께서는 만족하시고,

또한 수도단체에도 불만족의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어느 형제가 우리를 다소 가혹하게 판단하는 일이 있어도

적어도 우리 편에서는 아무런 악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올바름을 드러내시는 날까지,

오해를 받는 굴욕도 겸손하게 참아야 할것이다.



p.255


엄격한 생활을 보낸 성「벨나도」는,

선천적으로 매우 유약한 체질이었는데.

자신의 체력을 돌보는 것보다 오히려 마음의 관대함에 따랐기 때문에,

거의 수도생활의 시초부터 병자가 되었고

그리고 생애를 마칠 때까지 건강하지 못했다.


대수도원장의 축성(祝聖)예절을 받기 위하여,

「샤롱」의 주교 앞에 나아갔을 적의 그의 모습은 쇠약할대로 쇠약해져,

죽음이 다가온 것 같이 보였다.


그는 순명에 의해서 어떤 서투른 의사의 손에 몸을 맡겼는데,

이 의사는 건장하고, 또한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까지도

쉬이 손을 대지 않을 것 같은 음식물을 취하게 하여,

그를 온전히 병자로 만들어 버렸다.


성인은 모든 것을 무관심으로써 맞이하여

만사를 마찬가지로 좋게만 간주하였다.


간신히 유동성 식물(流動性食物)을 넘길 정도로 좁아진 식도(食道),

극히 무기력한 위(胃), 몹시 상한 창자, 

이것이 그 세가지 고질이었다.


그 위에 때때로 다른 병으로도 고통을 받았다.

자주 그는 음식물을 그대로 토하였다.


그리고 위(胃) 안에 남은 소량의 음식물에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럭저럭 그것으로써 지탱되고 있었다.


그와 같이 그를 쇠약하게 한 이러한 많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는 엄격한 대재와 

극도의 수면감소(睡眠減少)와

가장 힘든 노동으로써 자기 육체를 짓부수었다. 


자신을 항상 초심자처럼 간주하여 

자기에는 수련자의 꼼꼼함과 

수도회의 엄격함과, 엄한 규율이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그래도 위가 감당할 만한 일정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그 때에도 희생과 청빈과의 정신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 


그는 항상 믿을 수 없는 용기로,

형제들과 더불어 성가대에도 노동에도 참가하였다.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적에는 

그 대신 땅을 파고 나무를 베며, 그것을 어깨로 짊어지고 운반하였다.


그리고, 힘에 부치게 되면, 

가장 천한 일을 택하여, 겸손으로써 피로와 바꿨다.  


부득이한 경우외에는 공동의 수업(修業)에 빠지는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부득이 빠져야 할 때도 있었다.


더구나 간신히 설 수 있게 되었을 적에도,

거의 시종 의자에 앉아만 있어, 극히 드물게 밖에 움직일 수 없었다.


이제는 할 수 없는 일 대신에, 

기도와 경건한 독서, 연구와 저술에 한층 전심하여 이것을 보충하고 

설교와 지도에 의해서 자기 수도자를 위하여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성교회가 그의 활동을 필요로 했을 적에는,

자신의 쇠약함도 잊고, 

허다한 여행의 피로에 개의치 않았으며

많은 사전을 조정하고, 여러번 설교를 하여 모든 것을 원만히 수행하였다.


그 후에는 더욱 몸의 고통을 받고

그러나 동시에 그렇게도 열애한 고행과 관상의 생활을

더욱  더 뜨겁게 그리며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한 생활은 참으로 끊임없이 연장되는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성인의 몸을 걱정하고,

수도자들은 좀 더 몸을 아낄 것을 간곡히 원했다.


그는 눈을 들어 피투성이가 되시어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을 우러러 보았다.


그리고 현덕(賢德)의 권고보다도 사랑의 교훈에 따라서

그들의 부드러운 효애에 넘치는 말을 멈추게 하고

더욱 더 쓴 잔을 맛보는 것이었다.


과연 병은 그가 그 수도단체,

그리고 온 성교회에 있어서까지 누구보다도 유용하고 완전한

『시또』회 수사가 되는 것을 방해했을 것인가.」

(「아란」,「슈발리」저「동 성인전」참조)



p.256


본회의 복자「알리스」(또는「아델라이드」)는 

온 생애를 통하여 

가장 혹심한 고뇌와 흉측한 나병을 참고 견디어야만 했다.


그 무서운 질환 때문에, 

그는 수녀원의 자매들로 부터 격리되었는데

그것을 더욱 끊임없는 묵상에 의한 천주와의 일치의 기회로 삼았다.


그는 그러한 고통스러운 경우에 있어,

천상정배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을 위하여 환희하고

구세주의 거룩한 상처를 관상하여 

지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기쁨과 위안을 경험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천상의 은총에 풍부하고 기적으로써 유명하게 된 그는

안수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나병자를 낫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탁월한 완덕에 이르렀는데,

그러나 주께서는 

더욱 그를 보다 높은 단계에까지 이르게 하시려고 바라셨다.


그러기 위하여 주께서는 무엇을 하셨겠는가.

즉 인내를 더하기 위한 은총과 함께, 

전보다 배가된 고통을 그에게 보내셨다.


성 「발나바」축일에는,

그에게 죽음이 다가온 것처럼 생각되었는데,

그날 주께서는 그에게 앞으로 더 일년의 생명을 주시리라는 것과

그 동안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천상정배의 영광을 위해

전보다도 더욱 견디기 어려운 병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그래서 

그의 두 눈은 뭉그러지고, 두 손은 오그라지며,

머리와 사지(四肢)의 살갖은 종창으로 뒤덮이고,

거기에서 부패한 피와 고름이 끊임없이 흘려 나왔다.


그는 이 흉칙한 고뇌를 이듬해의 성「발나바」 축일까지,

그 지극히 깨끗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포옹 안에 맡길 때까지

변함 없는 인내로써 감수하였다.(시또회 「성무일과」6월12일)



p.257


본회의 회칙 밑에, 「헬프다」에 있어,

그 수련장(修練長) 및 벗이었던 성녀「메히딜다」와 함께 피어난 

성녀「젤뜨루다」는, 매우 나약한 몸이었다.


그는 때로 병 때문에 꽤 오랫 동안 병상을 떠 날수 없었다.


빈번한 불면(不眠), 열심한 기도와 황홀상태 때문에,

온전히 힘을 잃을 정도의 피로를 느꼈다.


이렇게 하여 때로는 성무(聖務)에 참여할 수 없었으며,

또는 단지 의자에 앉아서도 참여할 수가 없었다.


대재는 그에게는 사순절까지도 금해 있었다.


밤 중에 또는 성무일과가 너무 길게 계속할 때에,

몸을 지탱하기 위하여 

무엇인가 먹을 것을 섭취할 수 있는 명까지도 받았다.


그는 그러한 여러 예외를 부득이 받은 것을 부끄럽게 여겨,

성가대에 있어서의 예식의 자세를 지키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며,

주어진 음식물을 거절하고 싶다고까지 생각하였다.


그래서 주께서는 그에게 모든 것을 당신 자신의 손으로부터 받아,

이러한 각가지 완화를 

영적 진보에 유익하게 하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의 오직 하나의 비통은 수녀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매들은 얼마나 깊은 애정으로써 그에게 봉사하였는가.


그는 끊임없는기도와 

온전히 초자연적인 권고와 우애(友愛)가 깃든 충고로써

이에 충분한 보답을 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병약함은 참으로 복된 것이었다.


왜냐 하면,

그런 것은 많은 선익 안에, 관상(觀想)에 있어

천주와 온전히 일치하는 틈을 그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그가 병이 아니었더라면,

그처럼 귀중하고, 깊은 감동을 주는 성녀의 저술은 

우리에게 남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러드」저 「성녀 젤뜨루다」전2장)



p.258


나는 더욱 많은 보기를 본회의 성인전에서 인용할 수 있으리라.


그런 것은 무엇이나,

질병은 우리의 길을 방해하는 장해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성덕에 이끄는 길임을 드러내리다.


착한 병자는 마음먹기에 따라 목적을 향하여 걷고, 달리며 날아가지만,

유감스럽게도 좋지못한 병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책임은 그들 자신의 용기와 복종과의 부족에만 돌려야 할 것이다.





끝으로 회복기에 관해서,

「샹. 쥬르」신부의 말을 인용하여 이 절을 맺기로 한다.



「회복기는 생애의 가장 위험한 때의 하나다.


왜냐 하면,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부득이 육체를 얼마간 만족시키고,

몸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보다 부드럽게 다루는 결과,

방종에 흐르며, 쉬이 유약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필요를 구실삼아 탐식과 미각(味覺)에 도취되고,

약하는 구실 밑에 무위도식(無爲徒食)을 일삼으며,

피로함을 겁내어 묵상과 신심업(信心業)을 소홀히 하고,

건강을 회복한다는 염려가 마치 무차별하게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말하는 자유를 주는 것처럼,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하여 무익한 담화, 유치한 오락에 시간을 보낸다.


그 위에 정신은 한가하므로 분심의 기회가 되는

많은 무익한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러한 모든 해악(害惡)은

스스로 충분히 경계하지 않는 자 위에 닥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의 인식과 사랑」3편24장3절)



p.259


여하튼 우리는 건강할 때와 마찬가지로,

회복기에 있어서도 항상 따라야 할 유일의 금언은,

성녀「젬마.갈가니」의 「첫째로 영혼, 다음에 육체」라는 「모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