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맡김의영성■

내맡김의 영성은 "새로운 영성"이 아닙니다. ■ 내맡김 영성 ■

은가루리나 2016. 1. 8. 00:13


■ 내맡김 영성 ■

내맡김의 영성은 "새로운 영성"이 아닙니다.

10.08.21



moowee 등급변경▼ 조회 1154  추천 0  2010.08.21. 17:16




어떤 분께서는 제가 전하는 "내맡김의 영성"이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영성"이라고 생각하거나 말씀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분명히 "내맡김의 영성"은 제가 그렇게 이름을 지어서 그렇지,

결코 어디서 새로 생겨나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영성"이 전혀 아닙니다.


더나아가서 어떤 분은 

"루이사 피카레타의 하느님 뜻 영성"을 흉내내서 만든 새로운 영성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영성, "내맡김의 영성"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긴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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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엔 

지금 이곳 지리산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하던 초기엔 

제가 살아가고 있는 생활을 그 어떤 "영성생활"로 이해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산으로 들어온 목적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니고,

단지 저의 병든 몸도 고치고, 병든 영혼도 고쳐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나가는 그런 생활을 해 보고자 한 것이 

바로 그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후, 

서울대교구 사제휴양원 원장직을 맡게 되면서부터는

이곳에 휴양하러 오시거나 개인피정하러 오시는 신부님들을 

돌보아 드리는 일이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소명이리고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것도 하나의 "소명"이지만 

주님께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명"을 저에게 주셨음을 알게 된 것은 

불과 2년 전의 일입니다.



제가 처음 이곳에 들어오기 전,

저는 저의 영육은 모두 망가진 상태였고,

그래서 저는 지리산의 어떤 조그만 절에서 

30일 단식기도(15일씩 단식과 보식)를 하면서 큰 깨우침을 얻게 되었고,

그후 저는 

저의 모든 것을 완전히 버릴 것을 아주 굳게 결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저의 모든 것을 완전히 버릴 것"을 결심했다고 생각했는데,

"버린다"는 표현은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임을,

그 "버린다"는 말보다 "맡긴다"는 말이 

더 우리에게 더 알맞고 정확한 표현임을

한참 나중에서야 비로소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佛子들이 "버린다, 내려 놓는다"라고 쓰는 표현은,

하느님에 대한 존재를 부정하는 그분들의 입장에선 

無와 空, 어느곳에도 다 버릴 수 있겠지만,

그래서 그분들에겐 "버리거나 내려 놓는다"는 표현이 

참으로 알맞는 용어가 될 수 있지만,

하느님을 신앙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맞지 않는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은 

그 모두가 사실은 자기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지식으로가 아니라 

몸으로 깨닫는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의 주인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자기 맘대로 "아무데나 버리거나 내려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버려도 하느님깨 버리고, 내려 놓아도 하느님께 내려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버릴 곳도, 내려 놓을 곳도  

모두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버리다, 내려 놓다"라는 말보다 

버리고 내려 놓는 곳의 주인이 하느님이시기에 

"하느님께 맡겨 드리다"는 말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정말 엄청난 영적충격을 던져 주었던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이라는 책과  "거룩한 위탁"이라는 책을 통하여

그때 비로소 

"내맡김의 영성"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靈性"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과연 "영성"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저는 과거엔 

"영성"이라는 단어와 전혀 관계 없는 생활을 해오던 사람 중의 "대표"였습니다.


영성이라는 말은 

영성신학을 공부한 영성신학자가 쓰는 말인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영성"이라는 말이 저에게는 늘 참으로 부담스럽고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과거에 제가 읽었던 영성책자도 

모두 "강론 준비"를 위한 하나의 자료수집 과정 이었지

저의 영적 성숙을 위한 그 어떤 무엇도 아니었습니다.


그러하던 제가 "내맡김의 영성"이니 "무슨 영성"이니,

영성생활이 어쩌구 저쩌구 떠들고 다니는 지금의 저의 모습이

참으로 제 자신 스스로도 믿겨지지 않는 "웃기는 짜장면"입니다.

(크크윽~~~ 쩡말 욱껴 죽껬씸더~~~ 흐흐흐흐~~ 어! 이모티콘이?)


하느님은 쩡말로, 쩡말로 "욱끼시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웃기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미, 다른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하느님께서 저에게 알려주신 당신의 모습은 지금까지,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시고, 오묘하시고, 놀라우시고, 위대하시고,

희한하시고, 웃기시는 모습"을  저에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저를 알고 있는 친구 신부들을 비롯한 모든 신자분들 앞에

정말로 "욱끼는 짜장면"입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원래 저는 친구들을 잘 웃깁니다.

웃겨 왔습니다, 여러모로 말입니다.




웃기는 제가 느낀 "영성"에 대해 한 말씸 올려 드린다면,

"영성"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냥 "하느님을 싸랑하믄서 살믄 되는 거"라는 것입니다.


"영성! 영썽! 영썽!"을 아무리 떠들고 외쳐대도

영성을 살지 못하믄 영썽이 "썽"을 내고 

오히려 싸람들을 잡아 먹으려 대들게 될 것입니다.


영성을 외치는 분들께 이 기회에 부탁 한 번 드려 보겠씸더!

"싸람들에게 "영성"을 제발 너무 어렵게 알려 드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영성은 기냥 살믄 되는 것입니다.

어케?

아까 말씸드린 대로 "하느님을 쩡말로 뜨겁게 싸랑하도록 하게" 하여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살 쑤 있또록 하믄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을 쩡말로 싸랑하십니까?

하느님 때문에 맨날 눈물을 짜고 계십니까?

하느님 싸랑으로 가심이 뜨겁게 달아 오르십니까?

아하~~~ 그렇타고요?

기러믄 당신은 

못난 하느님의 백썽, 평신도들에게 '영성"을 말하고 가르칠 자격이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당신을 정말 존경합니다.

그러한 당신을 저는 만나고 싶고 당신과 대화를 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저를 지도해 주시기를 정말로 원합니다.




참으로 영성은,

"우리를 내신 하느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하여 받들고,

그분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고,

그분만을 사랑하며,

그분과 뜨거운 사랑을 서로 나누며 사는 것" 

그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님을 널리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영성신학"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학문이 되어야지,

"하느님을 가르치는 학문의 가르침"이 

오히려 "하느님에 대한 앎"을 방해하고 어렵게 해서는 절대로 아니 됨을

이 기회에 

하느님을 가르치는 많은 교사들께 정말 크게 강조 하고 싶습니다.


영성을 가르치는 교사가 "영성을 사는 것"이  

곧 "가르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교사가 사는 삶이 곧 "神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성신학을 공부해 보지도 못한 

- 제 기억에 신학교에서 배운 기억이 없으면 안 배운 것이고,

사실 교과과정에도 빠져 있었으며, 

구약과정도 리포트로 대체한 신학교 교육과정 이수한 - 무식한 신부가 

용감해서 마구 떠들어 대고 있음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을 알고 배우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더 알고 배우려 신학교나 신학원을 찾는 분들이 적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을 더 알고 배우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느님을 더 알게 되고 배울 수 있는 하느님이라면,

그런 하느님은 믿을 필요가 없는 하느님입니다.

공부해야 알 수 있는 그런 하느님은 이미 하느님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지식"의 하느님이 아니시고  분명 "사랑"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인간의 "대가리"로 얻을 수 있는 하는님이 절대 아닙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뜨거운 가슴"으로 느껴야 얻어지는 그런 하느님이십니다. 

사람이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듯이 

하느님은 뜨겁게 사랑할 때 얻어지는 하느님이십니다.

적어도 저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제가 유아세례 후 오십여년을 살아오면서 얻은 지금까지 

최후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결론입니다.


당신의 결론은 어떠하시다고요?

당신의 그 결론으로 하느님을 얻으셨으면 그 결론을 대중께 알려 드려야 합니다.

물론 저에게도 알려 주시고요.  

자신이 얻으신 하느님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靈性神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제가 얻게된 하느님!

하느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내맡김"입니다.

저는 "내맡김"을 했고 "내맡김의 삶"을 살기에  

"내맡김의 영성"을 떠들고 있는 것입니다.


"내맡김의 영성"은 절대로 "새로운 영성"이 아닙니다.

제가 만들어 낸 영성도 아니요, 어디서 만들어진 영성을 각색한 영성도 아니요,

내맡김의 영성은 "모든 영성의 원조"입니다.


("내맡김의 영성은 알파요 오메가 입니다."와

"< 斷想 > 23. 평생 딸랑 이거?"를 이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내맡김의 영성"은 

제가 이곳 지리산으로 들어와 5년에 가까운 생활 속에서

하느님께서 직접 저를 이끌어 주시어 당신을 깊이 체험케 해 주신

참으로 고귀한 저의 "체험"에 의해 나오게 된,

"저와 하느님과의 사랑 이야기"임을 알려 드립니다.


여러분도 저의 "그님과의 러브 스토리"를 잘 읽어 보시면,

여러분도 "그분과의 러브 스토리"를 써 나가실 수 있으실 겁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러브 스토리를 저처럼,

다른 분들에게 힘차게 그리고 훌륭히 전하실 수 있게 될 겁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전국을, 아니 전 세계를 돌아 다니며 

"내맡김의 영성"을 함께 퍼트릴 그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하느님께서 그것을 간절히 간절히 원하시고 계십니다.








지난 1년의 無爲行에 함께 해 주신 주님과 하덧사께 감사드립니다. ▣ 無爲行(일정) 




moowee 등급변경▼ 조회 598 추천 0 2010.12.19. 15:50



지난 한 해 동안 제 주제에 걸맞지 않게

여러 본당과 몇 수녀원을 돌아다니며 "내맡김의 영성"을 전하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주변도 없는, 강의의 경험도 없는 저를 그렇게 쓰고 계심에 말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강의 시간을 조절하려 했으나 간곡한 청을 거절하기가 어려워 허락해 드리다 보니,

연강이 있는 날은 목이 많이 쉬어서 말하기도 어려운 때가 여러 번 있기도 했고,


강의 시간에 맞게 강의를 준비했으나 경험 부족으로 강의 시간을 크게 지나쳤고,

매번 같은 내용의 강의였지만 어떤 본당에서는 매우 어두운 분위기로

강의 원고를 보는데도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본당에서는 강의 원고를 빠뜨린 적도 있었습니다.


 

거의 같은 내용의 강의인데도 

매 번의 강의 때마다 제가 느끼는 분위기가 다 다르게 느껴져 왔고, 

많은 사람 앞에 선다는 자체가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강의 시작 전, "주님, 이 이야기는 저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제 입을 열어 주시고 주관하시고 이끌어 주소서. 이 강의를 당신께 맡깁니다."하고

매 번 기도를 해도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길은 다 달랐습니다.



하여튼 주님께서 저와 같은 놈을 이렇게 당신의 도구로 써 주심에 감사드리며,

매 강의마다 화살기도로 저에게 힘을 실어 주셨던 하덧사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지난 한 해동안 철부지된 마음으로 저의 제안에 따라

"내맡김의 봉헌"에 참여해 주신 오백명이 넘는 많은 "내맡긴 영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내년 2011년에는 여러분 중에서도 

"내맡김의 영성"을 강의 할 내맡김의 영성의 "전도사"가 탄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맡김의 영성의 전도사는 다른 "신앙강사"와는 사뭇 다릅니다.


대부분의 신앙강사는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전하지만,

내맡김의 영성의 전도사는 "하느님"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전도사 자신이 "내맡김의 삶(영성)"으로 체험한 하느님은 이런 분이시니,

여러분도 내맡김의 영성(삶)을 사시면 저처럼 이렇게 하느님을 소유하고 되며,

여러분도 하느님의 뜻대로 정말 거룩하고 기쁘게 삶을 살아 가실 수 있습니다!"라고

하느님을 전함으로써,


여러분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그 말에 따라 내맡김의 삶을 사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 나머지는 주님이 친히 다 알아서 해 주십니다.



내맡김의 영성을 전하는 것은 곧, 사람들 안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구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내맡김의 영성의 전도사가 꼭 나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느 분이 내맡김의 영성의 첫 전도사가 되실까요?


그것도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하덧사님들, 감사합니다!










영성 내맡김의영성은새로운영성이아닙니다.avi





<거내영>은 특수 영성이 아닙니다




<“나는 바오로 편이다.”, “나는 아폴로 편이다.”, “나는 케파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 하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 > (1코린12-13)




영식 신부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5) 영성이란 무엇인가  근본적 영성’은 영성생활의 기본 



근본적 영성을 모르면 특수 영성의 좁은 틀에만 빠져 사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모든 영성을 통합하는 근본적 영성에는 오류가 없다. 

특수 영성과 개인 영성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늘 근본적 영성에 비추어 나 자신을 쇄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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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wee 13.08.30. 12:31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특수 영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거룩한 위탁(내맡김)의 영성은 <하느님 신앙의 기본 영성>입니다.

그 시범을 보여준 인물이 구약의 <아브라함>이요,

신약을 연 <마리아님>이요, 새로운 약속의 주인공 <예수그리스도님>이십니다.




무위행이해욱 11.12.29. 09:48



내맡김의 삶(영성)은 새로운 영성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첫(옛) 영성" 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아브라함)가 지녀 온 최초의 영성입니다.


그러나 최초의 영성이면서도 "새로운 영성" 입니다.


왜냐하면 이 영성이 그동안 빛을 발하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이해욱프란치스코 15.10.26. 00:23



제가 기회가 닿는 대로 계속 

★내맡김★화살기도★끊임없는 기도★ 에 관계되는 글을 올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처음 접하거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질문이

거의 비슷한 질문인데,

지금까지 저나 여러분들이 들어온 다 같은 종류의 질문들일 것입니다.





내맡김의 영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1) 우리 신앙의 대상이신 하느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2) 따라서 우리의 모든 것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며,


3) 그래서 우리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나의 모든 것을 원하실 때 

그 모든 것을 내어 드릴 ★굳은 결심★을 하며,


4) 그 결심이 변질되지 않도록 ★끊임없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1) 굳은 결심(맹세 수준의)을 하느님께 봉헌해 드리고

- 거룩한(하느님께) 내맡김


2) 그 거룩한 내맡김(굳은 결심)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 끊임없이 기도(화살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를 말로만 하게 되면 힘이들고 지루해지기 쉽기에

그 끊임없는 기도(화살기도)로 만들어 노래(성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만들어진 화살기도 성가만이 아니라, 

"하느님께 위탁(내맡기는)하는 삶을 살겠노라"는 다른 화살기도를 

성가로 만들어 기도하여도 좋습니다




이렇게 올린 글들 

★내맡김 ★화살기도 ★끊임없는 기도★을 질문을 하는 분들에게 제시해 주시면,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 제가 만들어낸 영성이 아니며

또 어느날 갑자기 저에게 하늘에서 떨어뜨려 주신 영성이 아님을 알고

그래도 비교적 쉽게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 <이해>와 <받아들임>은 별개의 것이며,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분들(질문자)의 이해를 도와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맡김, 화살기도 아니, 끊임없는 화살기도에 대한 우리 교회의 기록과 자료들은

하내영들께서 강의록 아니, 

증언을 하게 될 때에도 모두가 반드시 필요한 <근본 자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근거를 제시할 땐 아마 잘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적을 것입니다.

그다음의 반론은 주님께 맡겨드리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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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맡김의 영성은 영성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내맡김 영성 ■



"내맡김의 영성"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최초 영성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뜻을 죽이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감으로써

아브라함이 하느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 뜻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김"으로

하느님 신앙에 대한 "원조"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브라함은 자기의 뜻을 하느님께 내맡김으로써, 

지 뜻대로 삶으로써 하느님께 죄를 범한 인류의 원조의 큰 실수를

하느님 앞에 대신 보상해 드리는 첫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 신약(새로운 약속의 시대)에 와서 최초의 참 신앙인이 누구입니까?

"성모님"이십니다.


왜 성모님을 신약의 첫 신앙인이라고 합니까?

새 시대로 접어들어 최초로 자신의 모든 것(일생)을

하느님의 뜻에 아주 철저하게 내맡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내맡기심"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성자 그리스도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게 되었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당신의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대로

이 세상을 살아가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며,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 뜻에 내맡기신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은 성부의 뜻에 당신을 내맡기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구약"이 닫히고, "새로운 약속(신약)"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 "성모님", "예수님"은  내맡김의 모델이십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바로 그분의 뜻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

내맡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 뜻대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내맡김의 영성"입니다.




내맡김의 영성은 "새로운 영성"이 아닙니다. ■ 내맡김 영성 ■



어떤 분께서는 제가 전하는 "내맡김의 영성"이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영성"이라고 생각하거나 말씀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분명히 "내맡김의 영성"은 제가 그렇게 이름을 지어서 그렇지,

결코 어디서 새로 생겨나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영성"이 전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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