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시간 (오전 9시-10시)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자, 이 사람이오." 사형 선고를 받으시다.
● ● ● 성찰과 실천
61 오전 아홉 시에서 열 시까지,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은 웃음거리 왕 취급을 당하시고,
일찍이 들어본 적 없는 모욕과 고난을 겪으신다.
여기에서 특히 교만이라는 죄를 보속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 우리는 교만에 빠지는 것을 피하는가?
우리의 선행을 하느님께로 돌리는가?
자기를 남보다 못하게 여기는가?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은총에 자리를 내주기 위하여 다른 모든 생각을 비우는가?
62 흔히 우리는 정신이 다른 생각으로 가득해서 은총에 자리를 내주지 못하곤 한다.
그리하여 온전히 하느님으로 차 있지 않게 되기에,
악마에게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힐 틈을 준다.
우리 자신이 악마의 유혹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이 하느님으로 충만해 있을 때에는
악마가 다가와도 유혹을 불어넣을 자리를 찾아낼 수 없어서 당황하며 달아나고 만다.
63 사실 거룩한 생각들은
악마와 맞서는 데 있어서 너무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설령 악마가 우리에게 접근하려고 들더라도,
그 거룩한 생각들이 그만큼 많은 수의 칼이 되어 그자를 찌르며 멀리 몰아내는 것이다.
64 그러니
그 원수가 우리의 정신을 괴롭히며 유혹한다고 불평하는 것은 틀린 생각이다.
문제는 우리가 깨어 경계하지 않는 데에 있는 것이니,
이것이 원수로 하여금 공격을 개시하게 한다.
원수는 우리의 정신 속을 염탐하는 스파이 같은 자여서,
작은 틈이라도 보이면 습격하기 때문이다.
65 그렇게 되면
우리가 거룩한 생각으로 예수님을 위로하면서 가시들을 뽑아내기는커녕,
배은망덕하게도 가시들을 그분 머리에 박아 넣어 한층 더 큰 고통을 끼치게 된다.
이리하여 은총은 말짱 헛것이 되고,
따라서 은총의 거룩한 영감을 우리의 정신 속에 실현시킬 수 없게 된다.
66 그런데 우리는 그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르기 일쑤다.
즉, 유혹들이 부담으로 느껴질 때면
그것을
예수님 사랑의 불로 살라버려야 할 짐 꾸러미로 여기고 그분께로 가져가는 대신,
근심하고 슬퍼하면서 그 유혹들 자체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67 그 결과 나쁜 생각들이 우리의 정신을 사로잡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온 존재에도 스며든 것 같은 형국이 된다.
그러나 그런 난국에서 벗어나려면, 거의 예수님의 기적과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68 예수님께서는 그런 가시들을 통하여 우리를 보신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아, 그렇다, 얘야, 내게 붙어 있기를 원하지 않는 것은 너희 자신이다.
너희가 빨리 내게 왔다면,
내가 너희를 도와
원수가 너희 생각 속에 불어넣은 그 성가신 유혹들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었을 것이고,
나로 하여금 너희가 돌아오기를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69 나는 이처럼 날카로운 가시들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너희의 도움을 청했지만
그 기다림은 헛일이었다.
너희가 원수가 가져다 준 일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오! 너희가 즉시 내 품안으로 들어온다면 유혹을 훨씬 덜 탈 것이고,
원수도 너희가 아니라 내가 무섭기 때문에 너희에게서 당장 떠나갈 것이다"
● ● ●
70 제 예수님,
당신의 가시들이 제 생각들을 당신의 정신 속에 박아 넣어,
원수의 온갖 유혹을 가로막게 해 주십시오.
● ● ●
71 예수님께서 우리의 정신과 마음으로 당신 자신을 느끼게 해 주실 때,
우리는 그 영감에 따라 움직이는가, 아니면 무시해 버리는가?
예수님은 웃음거리 왕 취급을 받으셨다.
우리는 - 우리는 거룩한 모든 것을 존중하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대하듯 그 모든 것에 합당한 경의를 표하는가?
● ● ●
72 가시관을 쓰신 제 예수님,
저로 하여금 당신의 가시관 고통을 느끼게 하시어,
이 고통을 통해 당신께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계시는지 실감하게 해 주시고,
당신을 제 온 존재의 임금님으로 받들어 모시게 해 주십시오.
● ● ●
73 유다인들 앞에 모습을 내보이게 되신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과 은혜를 많이도 받은 그들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으신다.
74 사랑이 충만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죽음울 받아들이신다.
우리는 무슨 고통이나 다 받아들임으로써
예수님께서 모욕도 고통도 받으시지 않게 하려는 태세로 있는가?
우리가 우리의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고통을 받으시지 않게 해 드릴 수가 없다.
75 그분은 당신의 인성으로 무한한 고통을 당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분의 삶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고통과 우리 자신의 고통을 맞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76 예수님은
당신 성심에서 떨어져 나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보시며 고통스러워하신다.
우리는 그런 예수님께 어떻게 연민의 정을 표현하는가?
그분께서 겪으시는 모든 것에서 그분을 풀어 드리기 위하여
그분의 고통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삼는가?
77 유다인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고자 하였다.
그분께서 흉악범처럼 돌아가시어,
그분의 이름이 이 지상에서 사라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살아 계시게 하려고 힘쓰고 있는가?
78 우리는 우리의 행위와 표양과 발걸음으로 이 세상에 하느님의 자취를 남겨야 한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게 되고,
우리의 활동을 통하여 예수님의 생명이 거룩한 반향을 일으키며
세상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들리게 할 수 있다.
79 우리는 사랑하올 예수님을 온갖 모욕으로부터 풀어 드리기 위하여
우리의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로 있는가?
아니면 하느님께서 무척 사랑하신 민족인 유다인들을 본떠서
- 실은 우리들 자신의 영혼도 그들과 거의 같이 예수님의 사랑을 무척 많이 받고 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가?
● ● ●
80 사형 선고를 받으신 제 예수님,
이 선고가 당신께 대한 사랑으로 제가 받아들이는 저의 선고가 되게 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께 위로를 드리기 위하여 저 자신을 끊임없이 당신 안에 쏟아 붓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당신을 모셔가고,
누구에게든지 당신을 알리며, 모두에게 당신 생명을 주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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