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2-88
1899년 10월 28일
"나는 누구고, 너는 누구냐?"
1 예수님께서 오늘 아침에는 빛에 싸여 오시어 나를 보셨는데,
마치 사방에서 나를 꿰뚫고 들어오시는 것 같아서
나는 완전히 무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누구고, 너는 누구냐?"
2 이 말씀이 내 골수에 까지 사무쳤다.
나는 무한한 것과 유한한 것,
모든 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 사이의 무한한 거리를 느껴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한층 더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의 사악함과 그들이 걸어온 질퍽한 진창길이었다.
내 영혼은 마치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그 더러운 진창 속에서,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구더기들과 다른 많은 것들과
그 징그러운 꿈틀거림들 속을 자맥질하고 있었다.
3 맙소사! 얼마나 흉측스러운 광경이던지!
내 영혼은 삼중으로 거룩하신 우리 하느님 면전에서 달아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이 두마디 말씀으로 나를 묶으셨다.
"너에 대한 내 사랑은 어떤 사랑이겠느냐?
그 반면에
나에 대한 너의 사랑은?"
4 그런데 첫 번째 말씀을 듣고서는
그분의 현존에 소스라치며 달아나고 싶었지만,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겠느냐?" 하신
두 번째 말씀과 더불어서는
그분의 사랑이 사방에서 나를 둘러 감고 친친 동여매며 빨아들이고 있어서
내 존재가 바로 그분 사랑의 산물임을 느꼈다.
만일 이 사랑이 그친다면 나의 삶도 그칠 것이다.
5 그러므로 나의 맥박과 지성과 모든 것이,
들이쉬고 내쉬는 숨에 이르기까지 그분 사랑의 재현인 것이었다.
나는 그분 안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이 내 온 존재를 사방에서 에워싸고 있기 때문에
그분으로 부터 도망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그 반면에 나의 사랑은 바다 속에 떨어진 물 한 방울이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같았다.
6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를 계속 써 내려가자면 아무래도 끝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모습을 감추셨는데,
어리둥절한 상태로 남아 있었던 나는
죄가 가득함을 느끼고
마음속으로 용서와 자비를 간청하였다.
좀 뒤에 나의 유일한 선이신 그분께서 다시 오셨을 때에,
나는 내 죄에 대한 쓰디쓴 아픔에 흠뻑 젖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7 "딸아, 한 영혼이 나를 모욕함으로써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확신하면,
이제 내 발을
눈물로 적시고 향유를 바르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던
마리아 막달레나의 역할을 하게 된다.
즉, 영혼이 자기가 범한 잘못들을 보기 시작할 때에
나의 상처들을 씻어 줄 준비를 하는 것이요,
그 잘못들을 보면서 괴로움과 아픔을 느낀다면
이것이 내 상처에 그윽한 향유를 발라 주는 것이다.
8 이 사실을 알고 나면 그는 보속하기를 원하고,
과거의 배은망덕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속에
지극히 어지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태어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사랑을 증명하려고 한다.
이것이 머리카락이니,
그 수효만큼 많은 황금 사슬 되어 그 자신을 내 사랑에 묶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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