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_맡김

{12권 18장} 무위신부님의 댓글 말씀 ①

은가루리나 2015. 11. 4. 22:53


12.06.10. 23:03


오늘 이 글은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매우 위로가 되는 말씀이며,

또한, 

"내맡김의 영성"과 "하느님 뜻 영성"의 큰 차이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말씀이기에 

이사 피카레타의 이 글이 앞으로 시간이 허럭될 때마다 단락단락 

이 글에 대한 저의 해설이 계속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저의 해설은 지금까지 제가 체험한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과 루이사 피카레타의 영성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드러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는 속담으로

하느님에 대한 영성의 저 밑에 있는 영성생활의 초보자의 견해임을 전제함



먼저 저는 하느님께서 왜 이 글을 새 하내영들께 바치고 싶은 마음을 허락하셨는지요?

오늘 저는 미사 후 사제관에 돌아와

- 언젠가부터 마음 속에 있던 루이사 피카레타의 이글을 해설해 드리고 싶었던 -

이 글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었습니다.


눈 대중으로 저의 타자 실력(?)으로는 글이 좀 길지만은 이렇게 길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한 번에 이렇게 긴 글을 올린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저의 마음 속엔 

얼마 후이면 새로 태어날 하내영들과 선배 하내영들에게 까지도 이 글을 통하여 

"내맡김의 영성" 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더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12.06.11. 12:44


자아~ 지금부터 <시간이 나는 대로>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먼저 루이사 피카레타의 위의 글에서 빨간 숫자 2~9의 글은 

예수님이 루이사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며,

그 나머지의 모든 글은 모두 루이사가 예수님께 대신 써달라고 부탁드리면서 

루이사가 쓴 루이사의 글입니다.


제가 이 글을 "하느님 뜻 영성 세미나(이범주 신부님의)" 에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알았었는데,

이 글을 직접 읽다 보니 

예수님이 직접하신 말씀과 루이사의 글로 나누어지게 되는 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의 글을 구분지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2~9까지의 예수님의 말씀은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느님이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아버지이신 성부의 뜻에 맡기고 사신 것과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죄" 의 차이 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셨지만 "죄가 없으신 분" 이셨고,

우리는 인간이기에 "죄에 속한 존재" 라는 사실입니다.


무죄하신 분이 무죄하신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시는 것과

유죄한 존재가 무죄하신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것과는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입니다.


저는 루이사가 이 사실을 배제하고, 

아니면 생각을 못하고 위의 글을 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죄하신 분이 무죄하신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시는 것은 곧,

그 삶 자체가 "하느님 뜻 안에 사는 것" 이 될 수밖에 없지만,

유죄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것은 

처음부터는 그것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뜻에 내맡기는 것(봉헌 서약)" 이 아니겠습니까?


이범주 신부님께서도 세미나 후에 봉헌 예식을 하시는데,

그 봉헌 예식과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 예식" 은 많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범주 신부님의 봉헌 예식은 "하느님 뜻 안에서만 살기로",

다시 말해, 하느님의 뜻을 전혀 벗어나지 않기로 서약을 하는 것이고,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 서약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로 서약하는 것입니다.



이 둘의 차이점은 

한 가지는 전혀 죄에서 벗어나기(하느님 뜻 안에 사는 것)를 서약하는 것이며,

또 한 가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김으로 

죄마저도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 살아가겠다는 서약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면, 

지금 당장의 내가 죄없는(무죄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내맡겼기에 하느님께서 점점 죄에서 멀어지게 이끌어 주십니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이 점에 우리가 얼마나 큰 위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확신합니다.

부족하고 허물이 많고 죄스런 인간이라도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100%의 결심으로 하느님께 내맡겨드린 사람들은 

이 세상 마치기 전의 어느 순간에는 정말로 당신처럼 

무죄한 상태로 만들어 주실 것임을 말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집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

루이사를 소개한 책자에서 

그녀는 수십 년의 세월을 "산 송장" 처럼 사신 분이라고 소개한 사실입니다.


그녀는 성체외에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으며,

그녀는 잠자리에 잠이 들면 

아침에 영적지도 신부님이 미사를 드리기 위하여일으켜 세워주기 전까지는 

거의 죽은 상태의 몸으로 수십 년을 살아가신 분입니다. 

아니 평생을 그렇게 사신 분입니다.

그러하신 분과 세상의 죄 속에서 부딪끼며 살아가야 하는 보통 신자들과 

비교하는 것은 無理일 것입니다.



저는 한 인간이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루이사를 통하여 

죄를 벗어난 삶을 살게 해 주신 그 높은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남습니다.


그것은 

그녀를 통하여 하느님께 내맡긴 삶을 사는 사람도 하느님의 뜻에 더욱 충실하게 되면,

언젠가 루이사처럼 무죄한 삶을 살게 해 주신다는 확신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입니다.


루이사의 말처럼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착한 아들" 이다.

그 착한 아들이 내맡김의 길에 접어들어서 

처음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을 가르키는지 몰라 때로는 서성거리고 주춤거릴 수도 있고 

그래서 죄에 떨어지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처음엔 하느님의 뜻에 자기의 뜻을 섞을 수 있는 일이 빈번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교류와 소통을 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부족하지만 굳은 결심을 100% 내맡겨드렸는데 하느님이 그것을 그냥 놔두시겠는가?

만일 하느님과의 교류와 소통이 끊긴다면 

하느님과 내맡긴 영혼, 둘 중의 하나가 문제인 것이다.

하느님 편에서 문제가 있을 수는 없는 일이고,

분명히 인간 편에서 문제가 있를 것인데 저는 그것을 늘 말씀드리지만,

봉헌시의 결심이 100%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교류와 소통이 끊기지 않게 하는 가잘 탁월한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겠다는 "화살기도" 이다.

이 화살기도가 있기에 절대로 하느님과의 소통이 끊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루이사의 17번의 글 그대로,

처음엔 많이 부족하지만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것은

성덕으로 나아가는 가장 탁월한 탄탄 大路인 것이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처음부터 "하느님 뜻 안에서" 만 살 수는 없으며, 

단 번에 그것을 바라는 것조차도 저는 "교만" 이라고 믿는다.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은 자신의 부족과 죄 속에서도 

전혀 서두름 없이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

나날이 조금씩조금씩, 하나하나, 때로는 엄청나게 이끌어 주시는대로 살아갈 뿐이다.

그것 자체로만 해도 너무 행복할 뿐이다.


<시간이 되면 또 이어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