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목정

환영합니다. 마.목.정

은가루리나 2017. 5. 8. 22:34


moowee 등급변경▼ 조회 324 추천 0  2010.09.21. 08:43



"음을 다하고 네 숨을 다하고 네 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마태22,37)



이 '마목정'에 초대받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 마목정은 "내맡김의 봉헌"에 참여하신 분들이 함께 어울려

영적인 대화를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초대받은 여러분 중에는 "내맡김의 봉헌"에 

아직 참여하지 않으신 분까지도 포함시켜드렸습니다.


어떤 분은 댓글을 올리지 못하셨어도 카페 방문에 충실하셨고,

또, 어떤 분은 마목정에 들어오고 싶으신 원의가 아주 강하시기에

머지않아 언젠가는 "내맡김의 봉헌"에 참여하게 되실 것이라는 기대로

미리 마목정에 초대를 해 드린 것입니다.


지금, 마목정에 초대받지 못하신 사실에

"차별 대우"를 받으신 느낌을 갖고 계신 하덧사도 계시나,

어쩌면 그 차별은 어느 곳에서나 필요한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신학교나 수도원에서도 성직자와 수도자의 양성에 있어서

영성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인성적인 차원에서도 일부러 차별을 두어

한 개인의 전인적(靈肉) 성숙을 위해 교육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차별은 한 사람에 대한 부정적 차별이 아니라, 긍정적 차별이며

사실은 "차별"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인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된 존재"가 아니라 "되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되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고 

"시간이 곧 과정"인 것입니다.

시간이 없이는 즉 과정이 없이는 "되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되어지는 과정을 "교육"이라고도 합니다.

교육은 차별을 통한 "평등"입니다.

평등은 인류의 공동선입니다.


따라서, 

차별은 "비인간적인 차별"이 아니라 "인간적인 차별"입니다.

"비인간적인 차별"은 "죄악"입니다.

"인간적인 차별"은 "善을 지향"하는 차별이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차별은 "비인간화"된 인간을 "인간화"된 인간으로 개조시킵니다.

그래서 차별이 필요한 것입니다.

차별은 교육이요, 교육은 시간이 필요하며 시간이 곧 과정인 것입니다.

차별에 의해서만, 교육에 의해서만, 시간에 의한 과정을 통해서만

한 존재가 존재의 완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목정은 영적 성숙을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앞으로 우리 중에 엄청난 영적 성숙을 경험하는 영혼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소위 "7궁방 수준"의 영혼이 등장하게 된다면,

그 영혼과 갓 세례받은 이와의 영적 대화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1코린13,11)


아이와 어른과의 관계는 "차별"이 아닙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장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이 바로 "교육"인 것입니다.

교육없는 과정은 "닭장 속의 닭"과 다를 바가 전혀 없습니다.

닭장 속의 닭의 미래란 무엇입니까?


차별 없는 성장은 "죽은 성장"입니다.

교육 없는 성장이란 무엇입니까?

교육 없이 올바른 성직자로, 수도자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목정을 사랑하고 많이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마목정은 하느님 은총의 그늘 아래 있는 정자입니다.


마목정에서 우리 모든 내맡긴 영혼이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쟁취합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12,30)


하느님께서는 마목정에서 나누는 우리의 대화를

우리와 함께 즐겨 들어주시고 또 훈수도 두어 주실 겁니다.





moowee 등급변경▼ 조회 315|추천 0  2010.09.21. 08:43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마태22,37)



이 '마목정'에 초대받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 마목정은 "내맡김의 봉헌"에 참여하신 분들이 함께 어울려

영적인 대화를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초대받은 여러분 중에는

"내맡김의 봉헌"에 아직 참여하지 않으신 분까지도 포함시켜드렸습니다.


어떤 분은 댓글을 올리지 못하셨어도 카페 방문에 충실하셨고,

또, 어떤 분은 마목정에 들어오고 싶으신 원의가 아주 강하시기에

머지않아 언젠가는 "내맡김의 봉헌"에 참여하게 되실 것이라는 기대로

미리 마목정에 초대를 해 드린 것입니다.


지금, 마목정에 초대받지 못하신 사실에

"차별 대우"를 받으신 느낌을 갖고 계신 하덧사도 계시나,

어쩌면 그 차별은 어느 곳에서나 필요한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신학교나 수도원에서도 성직자와 수도자의 양성에 있어서

영성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인성적인 차원에서도 일부러 차별을 두어

한 개인의 전인적(靈肉) 성숙을 위해 교육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차별은 한 사람에 대한 부정적 차별이 아니라, 긍정적 차별이며

사실은 "차별"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인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된 존재"가 아니라 "되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되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고 

"시간이 곧 과정"인 것입니다.

시간이 없이는 즉 과정이 없이는 "되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되어지는 과정을 "교육"이라고도 합니다.

교육은 차별을 통한 "평등"입니다.

평등은 인류의 공동선입니다.


따라서, 

차별은 "비인간적인 차별"이 아니라 "인간적인 차별"입니다.

"비인간적인 차별"은 "죄악"입니다.

"인간적인 차별"은 "善을 지향"하는 차별이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차별은 "비인간화"된 인간을 "인간화"된 인간으로 개조시킵니다.

그래서 차별이 필요한 것입니다.

차별은 교육이요, 교육은 시간이 필요하며 시간이 곧 과정인 것입니다.

차별에 의해서만, 교육에 의해서만, 시간에 의한 과정을 통해서만

한 존재가 존재의 완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목정은 영적 성숙을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앞으로 우리 중에 엄청난 영적 성숙을 경험하는 영혼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소위 "7궁방 수준"의 영혼이 등장하게 된다면,

그 영혼과 갓 세례받은 이와의 영적 대화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1코린13,11)


아이와 어른과의 관계는 "차별"이 아닙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장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이 바로 "교육"인 것입니다.

교육없는 과정은 "닭장 속의 닭"과 다를 바가 전혀 없습니다.

닭장 속의 닭의 미래란 무엇입니까?


차별 없는 성장은 "죽은 성장"입니다.

교육 없는 성장이란 무엇입니까?

교육 없이 올바른 성직자로, 수도자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목정을 사랑하고 많이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마목정은 하느님 은총의 그늘 아래 있는 정자입니다.


마목정에서 우리 모든 내맡긴 영혼이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쟁취합시다.


하느님께서는 마목정에서 나누는 우리의 대화를

우리와 함께 즐겨 들어주시고 또 훈수도 두어 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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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쟁이|▣ 보조교사방 




따라쟁이 오픈사전(네이버)    
      

1.무엇인가를 따라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

2.인터넷에서 문장의 형식은 유지하면서 특정단어만 바꿔서 댓글을 다는 사람들



제자1 (弟子)(네이버 국어사전)
  • 1.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거나 받은 사람.
  • 2.<기독교>예수의 가르침을 받아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



.......................................................................



아기는 태어나서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의 태중에서부터 엄마의 모든 것을 따라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로부터 태교(胎敎)를 중요시 해 왔습니다.


제가 '태교'라는 말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중학생 시절 저를 신학교에 보내주신 저의 아버지 신부님께로부터였습니다.


고인이되신 저의 아버지 신부님께서는 그 옛날 70년대 초반에

미사 끝나면 신자들에게 태교에 대한 짧은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중고등학생들에게는 '性교육'도 시켜주셨습니다.

당시엔 생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인간에 있어서 '교육'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아니, 모든 동물에 있어서의 교육은 곧 '생명보존'과 직결된 일입니다.


교육은 '반복'입니다, 몸에 밸 때까지.

반복은 '배움'입니다, 배움은 '따라하기'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잘 따라해야 배울 수 있고 배워야 남에게 배움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배우지 못한 부모는,

자녀에게 배움을 줄 수 없습니다, 불행의 시작입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배우고 또 배워도 죽을 때까지 다 못 배우지만

배우기를 멈춰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그러면,

못 배운 사람은 차라리 

'죽는 편'이 더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 세상의 지식에 대해.


세상의 지식에 대해 죽고,

'하느님의 지혜'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세상에 죽고 새로 태어나는 방법,

그것이 바로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자기를 죽이면,

완전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새삶을 통하여 '영원한 삶"을 살게 됩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으로 새삶을 살게 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 따라하기 >입니다.


이곳의 모든 화살기도를 따라하십시오, 죽도록 죽을 때까지.

이곳 선배들의 모든 댓글을 따라 하십시오, 앵무새처럼.


이곳을 다녀간 똑똑한 인간들은 '따라하기'를 싫어했습니다.

앵무새와 같이 "아멘, 아멘,,,," 하는 반복되는 말은

어른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고. ㅠㅠ


자신들의 아기에겐

'엄마 앞에서 짝짝궁'을, '도리도리'를, '엄마, 아빠'를

그토록 지겹게 되풀이 해 가르쳤건만. ㅠㅠ


내일 4월 23일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으로

< 새 인간 >으로 갈아입으실 30명의 하내영들께 드리는 말씀입니다.




<에페 4>

옛 생활과 새 생활

17그러므로 나는 주님 안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헛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다른 민족들처럼 살아가지 마십시오.
18그들 안에 자리 잡은 무지와 완고한 마음 때문에, 그들은 정신이 어두워져 있고 하느님의 생명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19감각이 없어진 그들은 자신을 방탕에 내맡겨 온갖 더러운 일을 탐욕스럽게 해 댑니다.
20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21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 관하여 듣고 또 가르침을 받았을 줄 압니다.
22곧 지난날의 생활 방식에 젖어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23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24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