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시간들5

{9권 25장} "나의 일차적인 사형 집행자는 사랑이었다

은가루리나 2017. 10. 26. 01:51


9-25



1909년 11월 25일



"나의 일차적인 사형 집행자는 사랑이었다"




1 평소와 다름없이 있으면서 동산에서 겪으신 예수님의 고뇌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그러자 복되신 예수님께서 잠시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영원한 사랑은 나의 내면 전체에 작용한 반면,

인간은 다만 내 인성의 외피에만 영향을 끼쳤을 뿐이다.

그러므로 내 고뇌의 시간 동안 -인간이 아니라 - 영원한 사랑이,

무한한 사랑, 헤아릴 수 없는 사랑, 숨어 있는 사랑이 

불타는 못으로 나를 꿰뚫고, 불타는 가시관을 내 머리에 씌우고, 

들끓는 쓸개즙을 마시게 하였다.

그리하여 내 인성은 

그 숱한 종류의 순교적 고통을 동시에 다 견딜 수 없어졌으므로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내었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이렇게 부르짖을 정도가 되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만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르 14,36)."  


3 이 말은 그러나 이후의 수난 과정 속에서 다시는 나온 적이 없었거니와,

수난 과정 전체에 결쳐 겪었던 모든 것을 나는 동산의 고뇌 속에서 전부 겪었고,

그것도 더욱 격렬하고 더욱 고통스럽고 더욱 내밀한 방식으로 겪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내 뼛속까지 깊이,

내 마음속 가장 깊은 데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여기까지 들어올 수 없었지만,

사랑은 모든 것에 도달할 수 있고 

그 무엇도 사랑에는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의 일차적인 사형 집행자는 사랑이었다.


4 이런 이유로 해서, 내 수난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사형 집행자로서 행동하고 있는 이들에게 

한 번도 비난의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그들보다 더 잔인하고 더 극성스러운 사형 집행자, 

사랑이라는 집행자가 내 안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외적인 집행자가 도달할 수 없는 곳,

즉 그들 손이 미치지 못하는 내 존재의 작은 부분에까지 

사랑은 그 작용을 계속하면서 

나의 어떤 것도 봐주지 않았던 것이다.



5 이는 모든 영혼들 안에도 일어나는 현상이니,

일차적인 작용은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사랑이 작용하여야 영혼을 사랑 자신으로 채우고 나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은 

다만 사랑이 영혼 내부에서 행한 작업의 분출에 불과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