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신부님 글모음

靈感에 관련된 글 모음

은가루리나 2017. 10. 26. 22:19


배명순요안나55 등급변경▼ 조회 82  추천 0  2015.06.23. 06:41



영감의 중요도에 따라 달리해야 할 행동



하느님으로부터 온 영감이라 여겨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려면

또 한 가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영감의 대상이 무엇이며 얼마만큼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주님은 내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안토니오 성인을 본받아 사막으로 떠나라고 하실 수도 있고, 

이제까지 예를 든 것처럼 좀 더 작은 일들에 대한 영감을 주실 수도 있다.



물론 이미 말했듯이 어떤 영감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한 것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날엔가 피정 지도를 하던 일이 생각한다.

묵주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문득 참석한 사람들에게 그곳에 세워진 십자가에 경배를 드리도록 하고 싶다는 

내적 충동이 일었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 많은 시간이 드는 일이야.' 하며

이 충동에 따르기 전에 몹시 갈등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십자가 경배를 하게 되었는데 경배 도중에

척추에 큰 문제가 있던 사람이 치유되었다.



하느님께 대한 작디 작은 순종

때로 우리가 몇 년 동안 계획적으로 노력한 것보다 

훨씬 큰 영적 진보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 

작은 은총에 대한 충실이 더 큰 은총을 끌어들인다.



성령의 영감 가운에 많은 경우는 어떤 의미에서

너무 진지하게 대할 필요가 없는 것들도 있다.

흔히 그것은 어차피 해야 할 일을 완수하기 쉽도록

우리를 도와주는 내적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품고 있을 때 그를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미사 드릴 시간이 되었는데 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에 좀 더 매달리고 싶지만

모든 것을 중단하고 성당으로 가라는 내면의 소리가 나를 재촉한다.

이런 움직임은 좋은 충동임이 명백하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만일 우리가 성령의 움직임에 더 깊이 주의를 기울이고 순종한다면

성령께서는 우리를 더욱 부추기실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말을 들어보자.

"성령의 영감이 없다면 우리 영혼은 게으르고 둔하며 불모의 삶을 살 것이다.

그러나 신적 영감의 빛이 오면 우리는 활기찬 열기가 느껴지는 빛을 느낀다.

이 빛은 우리 판단력을 밝혀주고 의지를 일깨워 활기차게 하며

영원한 구원에 속하는 선을 바라고 행할 힘을 준다." <신애론> 8권.10장)



때로 성령의 충동은 

애덕활동, 봉사, 기도, 작은 희생, 겸손의 행위 등을 하도록 부추긴다.

이런 경우 영감 받은 일을 재빨리 평가해야 한다.

그 일이 합당해 보이는지, 의무를 이행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지,

그 일에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일에 마음이 기울 때 평화로운지를 살펴본 후 

이 모든 물음에 긍정적 답을 할 수 있다면

 영감을 실천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반대로 순종이 없을 경우 우리는 악마의 장남감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에게 권위를 지닌 다른 누군가에게 

순종하지 않은 채 영감을 서둘러 실현하려 할 때

악마는 우리를 속여 

차츰 "하느님 뜻과 아무 상관 없는 일들"을 하도록 이끈다.


어떤 행동을 따라야 할지 의심스러올 때는 어쨌든 

우리가 신뢰하는 한두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이 

개인적 숙고와 평가를 하느라

우리 자신 안에서 맴돌며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보다 더 낫다.




자크 필립의 <성령 안에 머물러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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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데레사49 등급변경▼ 조회 153  추천 0  2015.04.25. 08:29



영감의 중요성


하내영의 품격 = 하느님의 품격 = ? <영감의 중요성>



햇살은 빛과 열을 동시에 발산합니다.

영감은 천상의 빛이며 열로 충만합니다.

영감은 좋은 기회를 알아보고 

그 기회를 따르고자 하는 불타는 열망을 불어넣습니다.


영감이 없으면 우리 영혼은 얼어붙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빛인 영감은 우리 마음을 비추고 결단을 촉구합니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2,7)


이 영원하신 하느님이 우리 영혼 안에 영적 삶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

"생명을 주는 영"(1코린15,45) 이 되게 하셨습니다.



거룩한 영감에 끊임없이 마음을 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경건한 삶을 살며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온갖 생물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본능을 주셨듯이,

우리한테도 살고 일하고 영성 생활을 해나가는데 필요한 영감을 주십니다.


한 번에 한 가지씩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악마는 우리의 능력 이상으로 덤벼 들게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일을 하다 지쳐 아무것도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성 예로니모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시작이 아니라 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소화시킬 수 없을 만큼 과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현혹하는 영은 일을 하도록 부추기지만 

성령께서는 시작은 목적에 이른 수단임을 알려줍니다.



성 안셀모는 

나무를 자주 옮겨 심으면  

뿌리를 내리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계획에 관심을 두는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성은 시작이 아니라 끝까지 해냄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흐트러짐 없이 하느님의 영감에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두고 더 좋은 것을 찾다가 

좋은 것마저 잃고 더 좋은 것도 찾아내지 못합니다.


더 큰 보화를 얻으려 하기 보다  

앞에 있는 작은 보화를 손에 넣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알지 못하는 미래를 위해 

지금 하는 일을 중단하라고 유혹하는 '영감'은 의심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영감에 따라 천상 사랑을 키우고 

걸맞은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악마는 다른 일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때로는 다른 일이 한결 멋져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궤도에서 벗어나면 

그 길이 가능하지 않음을 알게 되고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섭니다.

이렇게 완성에 이르는 길을 찾다가 결국 실패로 끝납니다.




경험이 없는 사냥개는 

다른 냄새가 날 때마다 새로운 사냥감을 쫓기 위해 무리에서 벗어납니다.

하지만 

노련한 사냥개는 처음 맡은 냄새를 끝까지 따라갑니다.


만일 그대가 그대 소명에 대한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찾는다면

사랑으로 성실하게 하십시오.

분별력과 투신으로 거룩한 목표를 이루십시오.




<하느님을 찾는 이들에게 -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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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기도(3) 2. 시나이 헤시카즘과 예수기도



정신이 예수기도로 정화되고 통합되었을 때 

우리의 생각들은 

평온한 바다 속에서 즐겁게 헤엄치는 돌고래처럼 예수기도 안에 잠긴다. 

그러면 그리스도와의 대화가 시작되어, 

그리스도가 내 안의 주인이 되고 내 마음에 그분의 뜻을 알려주신다


이러한 개념에 따르면, 

예수기도의 최종 목적은 

신비로운 침묵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 성령에 붙들리게 되면 **


루이스-프랑소와 드 로산(Louise-Françoise de Rosen) 

수녀님에게 보낸 편지(1735).



'성령에 붙들리게 되면'


한 훌륭한 영성 작가는 성령에 붙들리게 되면

이를 ‘일하지도 않고 일에 전념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과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되어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배려(happy disposition),

거룩한 여가(holy leisure),

거룩한 무위(無爲; holy idleness)입니다.





「수난의 시간들 제1시간」
거룩하신 어머니께 작별 인사를 하시다 <성찰과 실천>


22 예수님께서는 

수난이 시작되기 전에  축복을 청하기 위하여  당신 어머니께로 가신다.

그분은 이 행동으로 우리가 은총의 영감에 응하기 위해서  

내적 외적으로 어떻게 순종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신다.


23 때때로 

우리는 좋은 영감을 받고서도  실천에 옮길 각오를 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유혹이 따라붙는 자애심 때문이거나  인간적인 체면 때문이고,

혹은 우리 자신에게 거룩한 폭력을 휘두르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24 그러나 어떤 덕행의 수련에 대한 영감

어떤 유덕한 행위나 선행 실천, 또는 어떤 신심 실천에 대해  영감을 

밀어내는 것은 

주님을 밀어내는 것과 같은 행위이기에  

새로운 영감을 얻지 못하게 된다.


25 반면에 

거룩한 영감에 민첩하고 경건하고 지혜롭게 응하면,

더욱 큰 빛과 은총을 우리 자신에게로 끌어당기게 된다.



26 의심이 들 경우에는 

즉시 정당한 지향으로,  

기도라는 훌륭한 수단과  올곧고 노련한 조언에 의지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하면, 

선하신 하느님께서 영혼을 비추시어  건전한 영감에 따라 실행하게 하시고,

영혼의 더 큰 유익을 위하여  더 많은 영감을 주신다.






「수난의 시간들」제17시간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성찰과 실천>



62 흔히 우리는 

정신이 다른 생각으로 가득해서  은총에 자리를 내주지 못하곤 한다.


그리하여 온전히 하느님으로 차 있지 않게 되기에,

악마에게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힐 틈을 준다.

우리 자신이 악마의 유혹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이 하느님으로 충만해 있을 때에는 

악마가 다가와도 유혹을 불어넣을 자리를 찾아낼 수 없어서 

당황하며 달아나고 만다.



63 사실 거룩한 생각들은 

악마와 맞서는 데 있어서 너무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설령 악마가 우리에게 접근하려고 들더라도,

그 거룩한 생각들이 그만큼 많은 수의 칼이 되어 그자를 찌르며 멀리 몰아내는 것이다.



64 그러니 

그 원수가 우리의 정신을 괴롭히며 유혹한다고 불평하는 것은 틀린 생각이다.


문제는 우리가 깨어 경계하지 않는 데에 있는 것이니,

이것이 원수로 하여금 공격을 개시하게 한다.


원수는 우리의 정신 속을 염탐하는 스파이 같은 자여서,

작은 틈이라도 보이면 습격하기 때문이다. 



65 그렇게 되면 

우리가 거룩한 생각으로 예수님을 위로하면서 가시들을 뽑아내기는커녕,

배은망덕하게도 가시들을 그분 머리에 박아 넣어 한층 더 큰 고통을 끼치게 된다.


이리하여 은총은 말짱 헛것이 되고,

따라서 은총의 거룩한 영감을 우리의 정신 속에 실현시킬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