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성탄준비9일기도

2017_12_15 소리-무화_천상의 책_ 성탄 준비 9일기도 둘째 시간

은가루리나 2017. 12. 15. 21:00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1-3



둘째 시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 강생하신 '말씀'




1 그 뒤 나는 묵상을 통해서 

거룩하신 동정 어머니 마리아의 지순하신 태중에 살고 계신

사랑하올 예수님을 뵈러 갔다.


하늘도 싸안을 수 없을 만큼 크신 하느님께서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당신 자신을 이처럼 작게 낮추시어,

움직일 수도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모태 속에 갇혀 계시니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2 이 생각에 잠겨 있노라니 

갓 잉태되신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살라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때 마음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렸다.



3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해 왔는지 이제 알겠느냐?


부디, 네 마음속에 내 것이 아닌 것은 모조리 치워버리고,

나를 위한 작은 공간을 마련하여라.

그래야 내가 네 마음속에서 더 편히 움직이며 숨쉴 수 있다."




4 그러자 내 마음은 그분께 대한 사랑으로 녹아내리는 것 같았고, 

그래서 내 결점들을 용서해 달라고 청하였으며,

앞으로는 온전히 그분의 것이 되겠다고 약속하면서 뜨거운 눈물울 흘렸다.


그러나, 당황스럽지만 

사실대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은, 

날마다 그렇게 같은 약속을 되풀이하면서도 

같은 잘못을 저지르곤 하는 점이다.


이 때문에 나는 괴로워하면서 예수님께 부르짖었다.



5 "그렇습니다. 어지신 예수님, 

당신께서는 이 가련한 인간을 얼마나 다정하게 대해 주셨는지요!

그리고 지금도 여전하십니다!

부디 언제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8.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의 수준은? 

(2) '거룩한 내맡김' 으로 일단 한 발을 하느님의 뜻(거룩함)에 들여 놓은 것이다 ■ 내맡김 영성 ■ 



2009.12.21


'거룩한 내맡김'으로 일단 한 발을 하느님의 뜻에 들여 놓은 것이다. 



'하느님께 내맡김'으로 내맡긴 삶을 사는 것도

단지 '하느님 뜻대로 사는 삶의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 내맡긴 영혼은 아무리 평신도 왕초보라 하더라도

하느님 중심적인 삶을 살지 못했던 과거의 나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영적 수준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하느님께 일생을 봉헌한다고 서품을 받고 서원을 했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벗어 던지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성직자수도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월등히 높은 차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느님 앞에 신분이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느님 앞에 '누가 더 거룩한 사람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은 거룩한 영혼이다.
한 발을 완전히 하느님의 뜻 안에 담갔기 때문이다. 
비록 다른 한쪽 발을 가끔 '자기 뜻'에 담근다 하더라도 말이다.  


영혼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 뜻'에 발을 담그는 횟수도 

'나날이 조금씩 그러나 때로는 엄청' 줄어들게 된다.  

하느님이 그렇게 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에겐 절대로 '영적 후퇴'란 있을 수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오직 '영적 진보'만이 있을 뿐이다정말 놀랍다!




하느님은 '도깨비방망이'가 아니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내맡긴 영혼을 나날이 조금씩 
그러나 때로는 엄청나게 당신께로 이끌어 주신다. 
그리고 마침내는 유혹이나 악에도 빠지지 않게 해 주신다.


우리 교회 역사상 영적 진보를 이룬 

수많은 성인 성녀들의 삶과 비슷수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보아도 

아마 그렇게 많이는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그분들은 인내와 끈기를 잃지 않고 

자신 스스로의 엄청난 노력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셨지만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은 자신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을 하느님이 다 해 주신다.  


그러하기에 스스로 무엇을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자기가 없어졌는데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스스로 할 수 있단 말인가?  

또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당신이 알아서 다 해 주시는데 

무엇을 왜 한단 말인가?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은 

하느님께서 그 영혼 안에 직접 생각을 떨어뜨려 주시고

계획까지 세워 주시고,  

그 영혼은 오로지 그분의 도구로서,

그분의 계획에 따라 그분의 뜻대로 기쁘게 이끌려 드리기만 하면 된다.  


만일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100% 다 내맡겼다"는 영혼이

스스로 무엇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거짓 중의 최상거짓이다!  

그 사람은 100% 완전히 내맡겼던 것이 아니라 99%를 맡겼던 것이다.




내가 자꾸 완전히 100%를 내맡기라고 강조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나는  자신의 경험과 100% 완전히 내맡긴 다른 이의 경험을 통해

100% 내맡긴 이들의 내맡긴 후의 삶의 모습을 잘 알고 있다.


언젠가 봉헌미사로 자신을 내맡기기까지 했던 어떤 사람의 내맡긴 후의 모습은

다른 내맡긴 이들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처음엔 '설마설마했다가 나중에 '역시'를 경험한 적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을 통하여 저에게 아주 좋은 경험을 주셨던 것이다.  

그는 완전히 다 내맡겼던 것이 아니었다.  

1%도 아니고 2%나 부족했던 것이었다.  



만일 단 1%라도  것이내 의지가내 뜻이 남아 있다면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서 온전히 작용하실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하느님 뜻, 내 뜻! 통회하고, 죄짓고! 온탕, 냉탕! 왔다리, 갔다리! 
악순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하느님께 완전히 100% 내맡기면 

그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 번 내맡겨 보시면 제가 드린 말씀이 참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한 번 내맡겨 보시라니까요!" 



100% 완전히 내맡긴 영혼들은 그 외적인 모습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잘 생기고 못 생기고가 아니라 

얼굴이 편안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내적으로는 

'하느님께 대한 감사함'으로 수시로 뜨거운 눈물의 감사를 올리게 되며,  

'하느님에 대한 앎'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하느님의 말씀에 접근하게 되고

그래서 그 영혼의 입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감사와 찬미가 떠날 날이 없다.  


시간이 깊어질수록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그 영혼은 불타오르게 된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이끄심에 탄복을 하며

하느님의 신비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 신비 속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다.  

아니, 빠져 나오기가 도무지 싫은 것이다

다 하느님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없이 부족한 인간의 몸으로

이 현세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이다아직 완성되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