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부족한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또, 참으로 부족하기 짝이 없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 아버지처럼 완전한 삶"을 살 수 있는가,
그것이 정말 가능한 말이라도 되기나 하는 것인가?
답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말로 가능한 것이다, "내맡김"으로 말이다.
내가 잘나고 잘 살아서가 아니라
"하느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시는 것이다.
"내맡긴다"는 하나의 단순한 행위가 그것을 가능케 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내맡김"은 신비스러운 것이다,
아니 하느님이 해 주시는 것이니 "신비"이다.
도대체 내맡김이란 어떤 것이기에
우리 인간이 감히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그러한 삶을 살게하고,
하느님처럼 완전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인가?
우리가 이미 앞에서 "내맡김"이라는 말의 정확한 뜻을 알아보았지만,
"내맡김"이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 없이 완전히 100%를 몽땅 다
하느님께 아주 영원히 내맡겨 드리는 것이다.
왜, 자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다 하느님께 내맡겨 드려야 하는가?
나의 목숨이 누구의 것인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자녀와 배우자가 누구의 것인가?
내가 그동안 애써 모아 놓은 내 재산은 누구의 것인가?
자, 그러면 답이 다 나온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것은 누구의 것?
내 것?
바로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내 것"이라고 말하는 그 "내 것"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가장 좋은 표현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 뜻"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리 내가 애지중지 소중히 하던 것도
그것으로부터 내 뜻, 내 의지가 사라지게 되면
그것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도
그 사람에게서 내 뜻, 내 마음이 사라지면 이미 내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소중히 아끼던 물건도 마찬가지이다. 돈도 명예도.
나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기에,
나의 모든 것을 완전히 다 100%를 하느님께 내맡겨 드린다는 말은
곧 "내 뜻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린다"는 말과 동일한 말이다.
우리는 내 뜻, 내 의지, 내 자유의지를 하느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았다.
자유의지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라고 선물받은 자유의지로
내 욕심만 차리고 내 뜻대로만 살아옴으로 하느님께 큰 죄를 범하였다,
조상대대로 말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로, 인간의 노력만으로
하느님을 완전히 사랑하고 공경할 수 없음이 잘 증명된 것이다.
그래서 정말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려는 사람은
이제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다른말로 "하느님께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 뜻을 하느님께 온전히 내맡겨 드리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만이
비로소,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공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공경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인정하는 사람이며,
하느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섬기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며,
하느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태7,21 이하>에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리고 <마르3,31이하>의 "예수님의 참가족"이라는 소제목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참가족이 누구인가를 아주 명확히 알려주셨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성모님과 형제들이 찾아왔다는 소리를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바로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33절>고 반문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35절>라고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아주 정말로 냉정하고 엄중하며 확고한 말씀이다.
그만큼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요한4,34>에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밝히셨던 것이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라고.
"내맡김"이란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뜻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해 드리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맡겨 드리면,
자신의 부족함과 죄스러움마저도 하느님께서 온전히 다 받아주시어
나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 되어 즉, "무아(無我)"가 되는 것이며,
나의 모든 것이 온전히 다 하느님의 것이 되었기에,
또한 역으로 하느님의 모든 것이 곧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소위 "하느님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를 버려 무아(無我)가 되어 하느님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소유하는 수많은 방법 중에서
이렇게 내맡기는 것이 가장 뛰어난 방법이다.
道를 깨우치기 위해서
입산하여 수십년의 세월을 참선이니 면벽수도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을 관상하기 위해 세상을 끊고 봉쇄된 장소로 피신하여
평생을 무릎 썩히는 생고생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하느님의 것이 되고 하느님이 나의 것이 될때야 비로소
내가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 "굳은 결심"을 하고
그 굳은 결심을 미사를 통해 하느님께 봉헌해 드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사람의 모든 일은 "결심과 그에 따른 실행"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ME의 표어에도 "사랑하는 것은 '결심'이다."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자신이 마음을 먹고 그것을 실행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제가 "내맡김의 봉헌미사"를 거행할 때는
그 봉헌미사 전에,
미리 내맡김의 영성에 관한 교육을 2~3시간 시킨 후
그 내용을 받아들여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뜻을 하느님께 봉헌할 "굳은 결심"이 서게 된 사람은
"내맡김의 봉헌미사"에 미리 준비한 봉헌기도문을 낭독시킨 후
그 "굳은 결심"을 하느님께 봉헌해 드린다.
겉으로는 이 내맡김의 봉헌이 일반 봉헌생활의 서원식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이 봉헌은 정말 "맹세 수준의 아주 굳은 결심"을 봉헌하는 것이다.
저의 경험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저를 통해 "내맡김의 봉헌"에 참여하셨던 여러분들의 경험을 통해 살펴보면
그 굳은 결심의 봉헌의 은혜를
하느님께서 아무에게나 허락해 주시지 않음을 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하느님 사랑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져오셨던 분이나,
아니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려고 사명을 주시는 분이 아니면
그 봉헌의 은혜를 선물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내맡김의 봉헌을 하기 위하여 저를 찾아오셨던 분들도
하느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냥 빌길을 돌려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분이 봉헌미사로 내맡김의 봉헌을 하셨다 하더라도
그분이 100%의 완전한 봉헌을 하지 못하셨다면
수개월 안에 그 결과가 드러나게 된다.
다시 곧 "옛 생활"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100%의 굳은 결심을 봉헌한 분이라면
하느님께서는 그 굳은 결심의 봉헌을 온전히 받아주셨다는 증거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예복"을 입혀 주신다.
한 번 입혀진 하느님 뜻의 예복은 이 세상 끝까지 영원히 벗겨지지 않는다.
저는 그것을 확신한다.
하느님 뜻의 예복은 어느누구라도 다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수도자, 성직자만이 아니라 오히려 세속을 살아가는 평신도들이
하느님 뜻의 예복을 입기가 더 쉬운 것이다.
왜냐하면 평신도들이 더 "철부지"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덜 교만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때부터 그토록 부족하던 한 인간인 그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온전히 받아 주시어
그 사람을 당신의 것으로 삼으시고
그 사람의 삶에 오셔서 그 사람의 삶을 이끌어 주신다,
아니 살아주신다.
그리고 그 사람의 부족함을
"하나하나, 나날이 조금씩, 때로는 엄청" 채워주시고 정화시켜 주시고 이끌어 주신다.
하느님께 내맡긴 사람들은
하느님의 이끄심 속에 계속되는 놀라움을 체험하게 되며,
그럼으로 더욱 하느님을 찬미하며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게 된다.
내맡김은 참으로 신비 그 자체의 생활이다.
가녀린 한 여인이
천하를 소유하고 다스리는 한 남자, 왕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면
온 천하를 소유하게 되는 것과 결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을 소유하는 길은 참으로 많을 것이다.
평생을 열심히 미사참례, 묵주기도, 단식, 극기, 절제, 봉사, 선행등을 베풀며.
그러나,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겨 하느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내맡김"은
하느님을 소유하는 모든 방법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확실하고, 가장 완전하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쉽고, 가장 빠르고, 가장 진실 되고, 가장 단순하며,
하느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방법"이다.
여러분이 참으로 사랑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여러분에게
다른 어떤 일들이나 선물들로 여러분의 기분을 좋게 해 주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그 사람이
"저도 당신을 정말로 사랑하니 저의 모든 일생을 당신께 다 내맡겨 드리겠어요"
하는것이 좋을까요?
여러분의 자녀나 남편이 봉급을 탔는데,
"엄마, 또는 여보! 내가 봉급을 타서 선물을 하나 샀는데 잘 사용하세요"
하는 게 좋으실지,
아니면 봉급을 통째로 다 내맡겨 드리는 것이 더 좋으실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 내 뜻을 하느님께 다 내맡겨 드리고
오직 당신의 뜻대로 살아갈 것을 우리에게 가장 바라고 원하신다.
구약의 역사가 바로 그 사실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구약성경의 이야기는
온통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든 것을 당신이 다 해주시겠다는 내용이다.
"내가 너희의 모든 것을 다 해줄테니, 너희는 나만 사랑하고 공경하라"라는.
에집트 노예생활로부터의 탈출도 가나안 점령을 위한 전쟁도
모두모두 하느님이 직접다 나서서 해 주시는 내용이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주신다고 해도
고집센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만 한다.
한마디로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고 "인간의 뜻"대로 살아온 역사가 구약의 역사다.
인간의 뜻의 말로는 결국 영원한 멸망인 죽음뿐이다.
수많은 예언자를 보내어
인간의 뜻을 벗어 던지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 것을 권고했지만,
그럼에도 도무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
마지막으로 보내 주신 분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며,
마침내 하느님의 모든 가르침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
"하느님의 뜻에 내맡긴 십자가의 예수님"이시다.
聖父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에 따라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당신의 모든 가르침에 종결을 선언한 것이다.
너희는 나를 따라라!
내가 너희에게 보여준 그대로
너희는 나를 따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라!"
십자가는 하느님의 뜻에 대한 "내맡김의 완전한 표상"인 것이다.
"내맡김"이야말로 내가 예수님처럼 "내 뜻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진실로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부족한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박으면,
우리의 모든 삶을 당신의 뜻대로 이끌어 주신다.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가장 뛰어난 방법이 "내맡김"이다.
하느님께 내맡기면, "하느님의 뜻"대로 살게 된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평소에도 "하느님 뜻대로 살라"고 자주 말하는데
"하느님의 뜻"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느님의 뜻이란 무엇인가를 아시는 분이 계시면 손들어 보시기 바란다.
하느님의 뜻이란 다른 무엇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이란 <1테살 4,3 >의 말씀에 나와 있는대로이다.
"하느님의 뜻은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거룩한 사람", 즉 聖人이 되는 것, 그것 한가지뿐이다.
왜, 하느님은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을 그토록 바라시는가?
거룩해지지 않으면 도저히 하느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완전한 거룩함 자체이신 분이시라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티끌 한 점의 더러움이라도 결코 묻어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묻어 있는 티끌을 정화시키는 곳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연옥이며,
그 연옥에서 티끌을 정화한 후에라야 비로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히브12,14>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연옥의 정화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엄청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한다.
그 고통스런 연옥을 거쳐서는 아니 되겠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에 이어 베드로 사도도 <1베드1,15>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우리가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히 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그것이 한계가 있는 것이며,
그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는 것"이며,
그것을 다른 말로 쉽게
"하느님께 귀의(歸依)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부처님께 귀의 하라(나무아미타불)"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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