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해, 본당 사목목표(그리스도왕 대축일) ▣ 주일강론
< 신앙의 해, 본당 사목목표 >
우리 교회사의 큰 획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을 맞이하여
현 교황님께서는 전 세계의 교회에 <신앙의 해>를 선포하셨다.
교황님께서 신앙의 해를 선포하신 목적은 우리 신앙인이 먼저
"새롭게 복음화" 됨으로써 세속주의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새롭게 선포하여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도록 함에
그 목적이 있음을 신앙의 해 개막미사 강론을 통하여 명확히 밝히셨다.
교황님께서는 강론을 통하여 "이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으면서
희망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 즉 "하느님께서 변화시켜 주신
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증언" 이 필요하며, 그것을 통하여 현대 세계라는
광야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하느님 은총에 마음을 열어 그들 앞에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와같은 신앙의 해의 선포 목적에 따라 전 세계 가톨릭 교회의 모든 교구와
본당에서는 신앙의 해 한 해를 각자 처해진 상황과 조건에 맞게 사목목표를
나름대로 설정하여 <새로운 복음화의 길>을 모색해 나가게 될 것이다.
저는 전 세계 속의 한 본당의 주임신부로서 매우 궁굼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전 세계의 모든 단체와 본당에서 수립될 신앙의 해의 사목목표가 말이다.
2010년도 교황청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가톨릭 교회의 모든 단체와 본당의
사목구가 455,000개인데 그 단체와 본당들 중에서 과연 어떤 단체와 본당이
교황님께서 언급하신 <새로운 복음화>를 이룩할 수 있는 그 사목목표를
수립해 내는가를 말이다.
제 생각에는 잘 모르긴 해도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전 세계의 어떤 단체 어떤 본당에서 새로운 복음화의 길을 제시하는
사목목표를 수립해 낸다 하더라도 그것을 엄밀히 분석해 보면 아마 그것은
결코 새로운 모습의 복음화 방법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번 신앙의 해의 우리 본당 사목목표를 수립하기 위하여
교황님의 신앙의 해 자의교서와 개막미사 강론과 서울대교구장님의 사목교서를
연구 분석하면서 저에게 가장 어렵게 다가온 말이 "새로운" 이라는 단어였다.
교황님의 신앙의 해 자의 교서와 개막미사 강론을 살펴보면
"새로운 열정, 새로운 탐구, 새로운 삶, 새로운 기준, 새로운 명령, 새로운 확신,
새로운 복음화" 등 "새로운" 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여러 차례 나타나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복음화라는 말에 "새로운" 이라는 표현을 붙여서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신 분은 전임 교황이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이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라틴 아메리카 복음전례 500주년이 되는
1983년 3월 9일 라틴 아메리카 주교정기 총회의 연설에서 "새 복음화는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표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언급하셨던 것이다.
이미 30년 전에 사용되었던 그 표현을 지금 교황님께서도 다시 사용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언제까지 "새로운 복음화" 를 외칠 것인가?
구약성경 코헬렛의 저자는 1장 9절 이하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었던 것이다." 라고 말이다.
지금 우리 교회의 어느 단체가 아무리 지금까지의 복음화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의 복음화의 길을 새로이 모색해냈다 하여도 그것은 코헬렛 저자의
말대로 그리 새로운 것이 못될 것이 거의 분명하다.
요즘 교회 매스컴을 살펴보면 지금 한국의 각 교구에서는 신앙의 해에 발맞추어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사목정책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내용들은
말씀드린 그대로 과거에 이미 여러 교회들에서 추진해 오던 내용의 반복들이다.
저는 이제 우리 교회가 더 이상 "새로운 방식의 새로운 복음화" 를 외칠 필요가
전혀 없는 가장 좋은 딱 한 가지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새로움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찾아얻는 일>이다.
하느님을 찾아얻어 하느님 안에 숨어드면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하느님을 찾아얻으면 더 이상 새로운 방법을 외치고 추구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이 저절로 새로워진다, 하느님이 직접 그렇게 해 주신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이란 별로 없을 것을 누구보다 교황님께서 잘 알고 계실텐데
그럼에도 교황님들께서는 왜 30년 전부터 <새로운 복음화>를 외치셨을까?
그 이유가 모두가 다 <하느님을 찾아얻으라>는 뜻에 있지 않을까?
저는 하느님을 찾아얻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제가 가르쳐 드리는 방법대로 하면 누구나 하느님을 찾아얻을 수 있다.
단, <하느님을 찾아얻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에 한 해서만 말이다.
지금 아직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저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하느님을 찾아얻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이 하느님을 찾아얻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명해 보일 수도 있다.
어떻게? 제가 달라졌고, 그들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저의 삶이, 그들의 삶이 새로워졌다는 것이다.
교황님이 개막미사 강론에서 언급하신 말씀 그대로,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변화된 새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변화시켜 주신 새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 증거이다.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변화된 새 삶은 일시적이며 반드시 한계가 있는
것이기에 교황님께서 굳이 <하느님께서 변화시켜 주신 새 삶>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이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한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변화시켜 주신 새 삶>은 항구하며 한계가 없이 영원하다.
삶이 날로 새로워지고 갈수록 신비스러워진다.
하느님이 변화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진실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님이 변화시켜 주신 새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자꾸 반복하여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 자신의 삶을 위탁하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분이 변화시켜 주신 새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분이 가장 좋아하시는 이름(호칭)은 무엇인가?
그분의 아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하느님 아버지>라는 호칭이다.
그분을 자꾸 <하느님 아버지>라고 반복하여 부르게 되면,
진짜 그분의 자녀(참자녀)가 된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대로 살게 된다.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바로 새 삶, <하느님께서 변화시켜 주신 새 삶>이다.
이제, 우리 동경한인성당의 신앙의 해 <본당 사목목표>가 정해졌다.
동경한인성당에 교적을 두고 있는 모든 신자는 신앙의 해 한 해 동안 모두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주님의 기도>나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맡기겠다는
<거룩한 내맡김의 화살기도>를 성가로 부르는 것이다.
단, <하느님께서 변화시켜 주신 새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교우>에
한 해서 말이다. 원하지 않는 분은 안 부르셔도 좋다, 자유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변화시켜 주신 새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분>은,
하루에도 틈만 나면 수시로 머리로, 마음으로 그리고 입으로 불러야 한다.
이것 단 한 가지가 신앙의 해 <동경한인성당의 사목목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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