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건강법

사순 재의수요일/신앙의해, 사순 제1주일(2013, 02, 17)| ▣ 주일강론

은가루리나 2020. 2. 26. 13:58



< 신앙의 해, 사순 제1주일 > 2013, 02, 17


오늘은 신앙의 해, 사순 제1주일이다.
사순절의 시작인 지난 재의 수요일 미사는 오카다 대주교님의 주례로
세키구치 성당의 야마모토 신부님과 합동주례로 거행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매년 재의 수요일 미사를 그렇게 합동으로 봉헌하는 것을
정례화 하기로 저와 야마모토 신부님과 합의를 보았고 대주교님께서 승인하셨다.

올해부터는 평일에 재의 예절 미사에 참례할 수 없는 교우들을 위하여
사순 제1주일 미사에서도 재를 머리에 얹는 예절을 거행해 드리겠다.

사순절,,,,
우리 교회가 매년 교회 전례력으로 거의 50일에 가까운 긴 기간을
사순시기로 지내며,
사순시기 내내 미사에서는 사제의 제의 색깔을 비롯하여
기쁨과 환호의 노래인 대영광송을 노래 부르지 못하게 하며,

재의 수요일에는
지난해 성지주일에 축성했던 나무가지를 태운 재를 머리에 얹는 예절을 거행하며,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는 의무적으로 신자들에게 단식과 금육을 지키게 하며,
매주 (목)요일에는 에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며
교회 전례의 전반적인 분야를 그야말로 "우울버전" 으로 임하고 있다.


사순시기 첫날, 재의 수요일의 첫 독서의 내용은 우울함 그 자체다.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요엘2,12-18)."

이 말씀 한 구절이 사순시기란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회개하는 시기임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된다.

매일미사책 102 페이지에 있는 재의 수요일에 대한 글을 보면,
우리 신자들이 사순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잘 가르쳐주고 있다.

매일미사 102페이지 중간에
"예수 부활 대축일을 기쁘게 맞이하려면" 부터
여덟 째칸 "사랑의 나눔을 통해 완성되아야 한다" 까지 어느 분이 한 번
큰 소리로 잘 읽어 주시기 바란다.


그러나
저는, 사순시기를 보내는 목적이 지금 방금 읽은 대로
매일미사에서 말하는 그런 수준을 더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왜 단식하며 우리의 마음을 찢고 울고 슬퍼해야 하는가?
거기에는 다른 목적이 없다,
오직 주님께 돌아가기 위해서 이다!

왜? 주님께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주님 가까이 있는 사람은
사실 단식하며 가슴을 찢으며 울고 슬퍼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만일, 주님 가까이에 있다는 사람이 가슴을 찢고 울며 슬퍼하면
주님께서 매우 놀라신다,

아니 그렇겠는가?


내가 사랑한다고, 그리고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던 배우자, 자녀, 애인, 친구가
갑자기 나에게
"여보! 엄마! 자기! 친구! 나 정말 가슴이 아퍼, 정말 미칠 것같아!"
라고 말하며 자기가 너무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가슴을 치며 울며 슬퍼한다면
그 소리를 듣는 여러분의 마음은 과연 어떻겠는가~~~ ?

근데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랑하고,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다" 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는 척을 해왔다면
내가 그 말을 듣고 아무리 놀라워도,
그것은 오히려 너무 기뻐하고 감사할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나에게 "진실을 고백했기 때문" 이다.
거기서부터 "진실된 관계" 가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순시기를 지내는 차원이 모두 일률적이어야 하지 않음을 잘 알 수 있다.


사순절은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맞이하고 지내져야 할 것이다.

첫 번째 차원은 정말로 마음을 찢고 회개하여야 하는 차원,
두 번째 차원은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려는 차원으로 말이다.


이 두 차원은 어떻게 구분지어져야 하는가?
그것은 각자 자기 스스로의 '양심성찰'에 의해서 구분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나는 하느님 가까이 나아가려면 정말 멀었어, 나는 정말 죄인이야."
라고 양심성찰이 되어진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찢고 회개해야" 하는 시기이며,

또 다르게
"아직도 나는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 이제는 하느님을 정말 사랑해,
그리고 하느님께서도 부족한 나를 많이 사랑해 주셔." 라고
양심성찰 되어진 사람은
가슴까지 찢을 필요는 없이, 사순시기 동안에
"어떻게 해서 하느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해 드릴 수 있을까?" 하며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여 더욱 가까이 나아가려 노력하면 된다.

혹자는,
"니가 하느님을 사랑하는지, 또 하느님이 너를 사랑해 주시는지 어떻게 알아?
그거, 교만이 아니야!" 하고 야단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것 신경쓰지 마시라!
왠만한 멍충이가 아니면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그래도 어렴풋이 알 수는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이다, 하느님이 인간을 마드셨으니.
지금 말씀드린 것은 정말 중요한 말이다.

사실, 진정한 회개는 "우리의 노력" 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에 대한 사랑" 으로부터 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회개하려, 또 다른 이들을 회개를 시키려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아무리 찐한 새드무비를 보여주고,
관 속에 들여 보내는 체험을 시키고,
기가막힌 강사를 초청하여 무뎌진 감정을 건드려 회개를 유도하려 해도
그것은 잠시뿐!

"하느님을 사랑하게 끔" 만 이끌어 주면, 그만 땡이다.

나머지의 뒷 일,
가슴을 찢고 눈물 콧물 휴지통이 남아 있지 못할 정도의 진실한 회개는
그분이 책임져 주시고,
그것이 바로 그분의 "몫" 인 것이다.

사순절에 우리 교회가 많은 신자들을 회개의 삶으로 이끌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는가?

사순절, 대림절에 강사를 초청하여 특강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마치 교회가 무신 소굴로 변하기나 할 것처럼
이 본당 저 본당, 부자 본당 가난한 본당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강사 초빙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좋은 강사, 즉 신자들을 감명시킬 이름 있는 강사는 1년 전에 미리 예약해야,
그리고 강사비 또한 만만치 않다.
큰 본당에선 이미 1년치 특강과 그 강사가 이미 잘 마련되어 있다.
그 강사를 잘 유치하는 사목위원은 유능한 신자가 된다.

그러나, 정말 진정한 회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 에서만 나오는 것!
그것이 "올바른 순서이고 순리" 임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신앙의 해, 사순절에 맞이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나는 회개해야 하는가?
그러면 마음을 찢고 울며 슬퍼하며 지내시라!

부족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가?
그러면 하느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그분의 이끄심에 리듬을 타고 더욱 이끌려드리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