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머튼

Re:35회 종교간 대화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2 / 한스 큉

은가루리나 2020. 4. 26.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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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무위추천 0조회 3920.04.25 23:31댓글 3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66.신학·철학자편 (12)한스 큉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 역설
“종교 대화 없이 종교 평화 없고

종교 평화 없이 세계 평화 없어”


발행일2005-09-04 [제2465호]



1979년 12월 오스트리아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스위스 출신 독일 튀빙엔의 신학자 한스 큉(1928~)은 바티칸으로부터 가톨릭 교수 자격(missio canonica)을 박탈당했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가톨릭 신학자 이지만 개신교 신자인 바르트와 틸리히 영향을 받았고 그러면서도 가톨릭적 입장을 견지했던 한스 큉은 이 일로 말미암아 바티칸과 갈등의 절정을 맞았다. 미디어들은 그를 일러 「가톨릭의 거대한 획일 체제에 도전하는 현대의 마틴 루터」라고 불렀다.

「종교 대화 없이 종교 평화 없으며 종교 평화 없이 세계 평화 없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긴 한스 큉. 그를 세상이 주목하는 이유에 대해 한 신학자는 『바티칸이 제재한 일련의 사태 때문이 아니라 그의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하면서도 변증적으로 다변화된 현대 사회의 제 문제에 답변하고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점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 신학자는 한스 큉을 일러 「20세기 신학에서 하나의 독특한 현상」으로 칭하면서 『현대의 어떤 신학자의 저작도 그렇게 많이 출판되고 번역되지 못했고, 또 교회의 교도권과 논쟁을 통해 국제적으로 그렇게 많이 공개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그렇게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신학적 탐구와 사고를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우리 시대에 중요하다고 간주된 모든 신학적 주제들이 큉에 의해 포착되고 다루어졌다는 것이다.

한스 큉은 1928년 스위스 주르제에서 태어났다. 로마 교황청 설립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 과정을 이수하고 (1948~1955) 1954년 사제품을 받았다.

파리 소르본느 대학과 가톨릭 대학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1955~1957)한 한스 큉은 이후 스위스 루체른 궁정교회에서 보좌신부를 역임하고 1960년 독일 튀빙엔 대학교에서 기초신학 교수로 강단에 서기 시작했다.

1962년에는 교황 요한 23세로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신학 전문위원으로 지명됐고 1963년부터는 튀빙엔 대학교 가톨릭 신학대학의 교의 신학 및 교회일치 신학을 맡았다.

1964년 동대학 부설로 새로 설립된 교회일치신학 연구소 소장직을 겸임했던 그는 이후 1979년 그의 저서에서 야기된 교황 무류권 논쟁으로 인해 교황청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이후에는 교회일치 신학 연구소 소장직만을 보유하면서 세계 종교 문제에 대한 연구에 전념했다.

또 구미와 아시아의 가톨릭 및 프로테스탄트의 여러 대학에서 초청 교수로 활약하면서 신학과 교회일치 운동에 관한 각종 정기 간행물의 편집자 또는 편집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교회론, 그리스도론, 신론, 종말론 등 신학적 주제에 대한 수많은 저서들을 남긴 것과 함께 가톨릭 교수 자격을 박탈당한 뒤에는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물음을 던지며 연구의 지평을 넓혀왔다.

「종교와 문학」 「그리스도교와 여성」 「세계의 여러 종교」 등이 대표적 사례인데 그런 한편 최근에는 자신의 저서 「Projekt Weltethos」를 통해 예고한 것 처럼 아브라함에 뿌리를 둔 세계 주요 종교,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면서 종교간 대화와 이해 문제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스 큉의 신학적 주장은 한마디로 「그리스도 중심주의」(Christozentrik)로 말할 수 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철두철미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논하는 신학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신앙의 독특함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학이 인간과 세계의 상황을 중요시하더라도 그것이 신학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관점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무엇보다 항상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이며 원천인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하고 있는 이같은 그의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은 복음이 선포되는 지역의 각 상황들 안에 머무르고 있는 모든 지역 교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 중심주의와 더불어 교회라는 틀을 넘어서 현대 세계와 폭넓게 대화하려 노력한 점 또한 전문가들이 매우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그의 신학적 요소다.

앞서 예를 든 것처럼 그는 복잡다단한 사회 속에서 주요 종교들과의 대화를 계속적으로 시도하는 등 점점 더 다원화되고 세분화되는 현 시대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독특성인 예수 그리스도에 중심을 두면서 타종교나 다른 이념들에 대해 최대한 개방성을 유지하려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대화를 추구하는 모습은 작금의 시대 상황에서 또 앞으로의 세계 흐름을 예견해 볼 때 우리에게 중요한 잣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스 큉의 이같은 측면은 교황 무류권 문제로 논쟁을 치렀던 칼 라너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나는 큉의 여러 입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그리고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였고 나름대로 항변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한스 큉의 긍정적 의미와 자유주의적이고 대중적이며 회의적인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그리스도교를 전해주려는 그의 성실한 노력을 존중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칼 라너는 동료 신학자들과 함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교도권과 큉의 단절을 그대로 방치해 두지 말고 대화를 재개해서 해결하도록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