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머튼

Re:35회 종교간 대화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2 / 칼 라너

은가루리나 2020. 4. 26. 00:56


토마스 머튼Re:35회 종교간 대화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2 / 칼 라너
위무위추천 0조회 4220.04.25 23:16댓글 3



“20세기 최대의 신학자” 칼 라너 신부

공의회사상 신학적으로 체계화
약 1천5백여 저서·논문집 펴내
노이펠트 신부“모든 저술은 기도와 영성생활에 근거?

18세에 예수회 입회-32년서품


발행일1984-04-29 [제1403호, 2면]




제2차「바티깐」공의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금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 한 사람였던 칼 라너 신부가 지난 3월 20일 오스트리아「인스부르크」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함으로써 가톨릭은 물론 전세계 교회는 큰 슬픔에 잠겼다. 차제에 본보는 예수회 소속 칼 라너 신부의 생애와 업적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註>

칼 라너 신부는 1904년 3월 5일 독일「프라이부르크」에서 중학교 라띤어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4명의 형제와 2명의 자매를 가진 칼 라너 신부는 어린시절 장난기가 심하고 성적이 매우 좋지못해 한때 그의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게 할 것이라고 겁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10대에 들어서면서 칼 라너 신부는 학업에 몰두해 학급에서 상위권에 올랐다.

1922년 오스트리아「펠트키르히」에 있는 예수회 수련원에 들어간 칼 라너 신부는 10년 후 사제로서 품됐다.

1934년 수도 원장의 권유로 칼 라너 신부는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프라이버그 대학교로 보내졌으며 그곳에서 마르틴 호네커 교수의 지도를 받게되었다.

그후 1936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로 옮겨간 칼 라너 신부는 2차세계대전중 강의와 함께「비엔나」대교구에서 사목을 담당하기도 했다.

종전후「뭔헨」그처에서 신학을 강의한 칼 라너 신부는 1948년 인스부르크대학교로 되돌아 갔으며 그후 6년이 지난 다음「뭔헨」대학의 교수가 됐다.

1967년 뮌스터대학교 교수로 임명된 칼 라너 신부는 1971년 건강상 이유로 은퇴하기까지 그대학에서 강의를 계속했다.

또 칼 라너 신부는 교리신앙성성의 일원으로 1969년 바오로 6세가 설립한 국제신학위원회 당연직위원으로 임명됐다.

교도권에 이의를 제기한 한스 큉 신부에 맞서 1971년 교황의 무류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옹호한 칼 라너 신부는 1981년 예수회임시총장에 교황개인사절을 임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공개서한에서 명한 18명의 서독예수회원중 한사람이기도 했다.

서독「쾰른」의 요셈 프링즈 추기경은 칼 라너 신부를『금세기 최대의 신학자』라고 칭찬한 사람중 한명이며 이전에 칼 라너 신부의 조수였던 칼 노이펠트 신부도『칼 라너 신부는 평신도의 전례참여 등 2차「바티깐」공의회의 주요사상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한 신학자』라고 말했다.

현재「로마」그레고리아대학교에서 은총론을 강의하고있는 45세의 노이펠트 신부는 『어떤 점에선 칼 라너 신부가 신학적으로 2차「바티깐」공의회를 준비해왔다』고 지적하고『그는 전례 학자들이 전례에 관한 공의회 문헌에 나타난 평신도의 전례참여 등의 사상을 구체화할수 있도록 신학적인 고찰방법을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칼 라너 신부는 교황 23세에 의해 2차「바티깐」공의회 준비위원으로 임명됐다.

오늘날 바티깐 신앙교리성성으로 불리는 바티깐기구가 칼 라너 신부에게 바티깐의 허락없이 저서를 발간하지 못하도록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요한 23세는 칼 라너 신부에 깊은 호의를 갖고 있었다고 노이펠트 신부는 밝혔다.

한편 칼 라너 신부는 1962~1965년 제2차「바티깐」공의회 기간동안 서독「쾰른」의 요셉 프링즈 추기경의 개인신학자로 일했다.

『칼 라너 신부는 악의를 품지않는 친절한 성직자였으며 자신의 저서발간에 경고를 내린바있는 교황청기구의장인 알프레도 오타비아노 추기경에게 한편의 논문을 증정하기도 했던 인물』이라고 노이펠트 신부는 전했다.

또 노이펠트 신부는 라너 신부와 현교황이 된 카롤 보이티야 주교는 공의회기간 동안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가 됐었다고 밝히고『그후 요한 바오로 2세는 라너 신부를 개인적으로「크라코바」로 초청했다』고 덧붙였다.

칼 라너 신부가 저술한 저서와 논문집 목록의 제목은 4천여 종에 달하나 그숫자에는 번역판·재판도 포함돼있어 실제로 직접 펴낸 책과 논문의 수는 1천내지 1천5백여 권으로 추정된다고 노이펠트 신부는 밝혔다.

교회에 대한 칼 라너 신부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자신의 개인적 영성안에 존재한다고 말한 노이펠트 신부는『라너 신부가 쓴 모든 저술물들은 그의 기도와 영성생활안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