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맡김의영성■

꼬리 글 ■ 내맡김 영성 ■

은가루리나 2016. 1. 29. 01:08


2017-05-19 마처예함 맞춤법



moowee 등급변경▼ 조회  1729 추천 1 2011.06.01. 00:16




내맡김의 영성은 제가 만들어 낸 영성이 아닙니다.

그리고 과거엔 없었던 영성이 어느 날 새로 생겨난 영성이 아닙니다.


제가 "내맡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불과 몇 년 전까지 

저는 "내맡김"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저 스스로 사용해 본 적이 없었고

또 제 기억으로 그 단어가 쓰여진 책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내맡김의 영성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제가 몸에 병을 얻고 지리산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후 

약 3년이 지난 어느 날,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이라는 책을 읽어본 그다음의 일입니다.


그 책은 저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읽어본 책 중에서 그 책보다 더 제 영혼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던 책은 그때까지 없었습니다.


그 책 안에는 제가 지리산에 들어와 살면서 체험했던 영적인 체험들이

군데군데 자세히 적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 얼마 후 거기에 한가지 더하여

"거룩한 위탁"이라는 책이 제 손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 두 가지의 책,

즉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과 "거룩한 위탁" 이 함께 어울려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단어 

"하느님의 뜻" 과 "내맡김(委託)" 이라는

두 단어가 제 입술과 마음과 영혼에서 다시 탄생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이 두 단어는 영원히 저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두 가지의 책은 하느님이 저에게 선물해 주신 정말 거룩한 책이며

이 두 가지 책에서 "내맡김의 영성"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섭리, 하느님의 뜻은 참으로 오묘하십니다.

저같이 참으로 부족하고 죄스런 신부놈을 

당신의 그 거룩함으로 초대해 주시어

이 세상에서부터 당신의 나라를 사람들 안에 세우시려는 그 뜻이 말입니다.


저는 이 책에 적혀 있는 글들이 분명히 저의 글이 아님을 굳게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저 같은 죄스런 놈에게서 도저히 그런 글들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당신이 원하실 때에 저의 영혼을 열어 

당신의 지혜를 채워주시지 않으셨다면 

도저히 그러한 글들이 저에게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제가 저를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저는 이 글들을 책으로 출판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의 외부 강의가 늘어나고 

제가 운영하는 카페의 회원 수가 늘어나면서

계속되는 책의 출판요구가 있어 왔음에도 

저는 그 요구들을 계속 무시해 왔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같은 놈에 의해 만들어진 책이

이 글들의 실재 주인이신 하느님의 이름에 먹칠할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젠 그 생각마저도 

제가 사랑하고 흠숭하는 하느님의 뜻에 내맡기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글들을 책으로 내면서 마음이 쓰였던 한 부분은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의 글들에 기분 나빠하며 마음 상해할 분들을 위해

한편으론 

글을 부드럽게 또는 마음 상하지 않게 수정하려는 생각도 있었으나

나중엔 

그 생각마저도 하느님의 뜻에 내맡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신학박사도 아니고 성경학 박사도 아니며,

그저 어린 신학생 시절에 

철학과 신학 그리고 약간의 성경을 공부했던 무식한 신부이기에 

"무식하다면 용감하다"는 격언대로 글의 수정이 전혀 없이

그냥 맞춤법이나 띄어  등 

기본적인 저의 무식이 드러나지 않는 정도 내에서만

교정하는 수준으로 이 책을 출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그것마저도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으로 받아들이며,

앞으로 무식한 저에게 대드실 학식 높은 학자님들마저도

하느님의 놀라우신 뜻에 내맡겨 드리겠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서와 같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땅 위의 모든 사람들 안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지소서, 

아멘!"






꼬리 글



내맡김의 영성은 제가 만들어 낸 영성이 아닙니다.

그리고 과거엔 없었던 영성이 어느날 새로 생겨난 영성이 아닙니다.


제가 "내맡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불과 몇 년 전까지 

저는 "내맡김"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저 스스로 사용해 본 적이 없었고

또 제 기억으로 그 단어가 쓰여진 책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내맡김의 영성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제가 몸에 병을 얻고 지리산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후 약 3년이 지난 어느날,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이라는 책을 읽어본 그다음의 일입니다.


그 책은 저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읽어본 책 중에서 그 책보다 더 제 영혼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던 책은 그때까지 없었습니다.


그 책 안에는 제가 지리산에 들어와 살면서 체험했던 영적인 체험들이

군데군데 자세히 적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 얼마 후 거기에  한가지 더하여

"거룩한 위탁" 이라는 책이 제 손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 두 가지의 책,

즉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과 "거룩한 위탁" 이 함께 어울려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단어 "하느님의 뜻" 과 "내맡김(委託)" 이라는

두 단어가 제 입술과 마음과 영혼에서 다시 탄생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이 두 단어는 영원히 저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두 가지의 책은 하느님이 저에게 선물해 주신 정말 거룩한 책이며

이 두 가지 책에서 "내맡김의 영성"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섭리, 하느님의 뜻은 참으로 오묘하십니다.

저같이 참으로 부족하고 죄스런 신부놈을 당신의 그 거룩함으로 초대해 주시어

이 세상에서부터 당신의 나라를 사람들 안에 세우시려는 그 뜻이 말입니다.


저는 이 책에 적혀 있는 글들이 분명히 저의 글이 아님을 굳게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저같은 죄스런 놈에게서 도저히 그런 글들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당신이 원하실 때에 저의 영혼을 열어 당신의 지혜를

채워주시지 않으셨다면 도저히 그러한 글들이 저에게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제가 저를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저는 이 글들을 책으로 출판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의 외부 강의가 늘어나고 제가 운영하는 카페의 회원수가 늘어나면서

계속되는 책의 출판요구가 있어 왔음에도 저는 그 요구들을 계속 무시해 왔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같은 놈에 의해 만들어진 책이

이 글들의 실재 주인이신 하느님의 이름에 먹칠할 것같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젠 그 생각마저도 제가 사랑하고 흠숭하는 하느님의 뜻에 내맡기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글들을 책으로 내면서 마음이 쓰였던 한 부분은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의 글들에 기분 나빠하며 마음 상해할 분들을 위해

한편으론 글을 부드럽게 또는 마음 상하지 않게 수정하려는 생각도 있었으나

나중엔 그 생각마저도 하느님의 뜻에 내맡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신학박사도 아니고 성경학 박사도 아니며,

그저 어린 신학생 시절에 철학과 신학 그리고 약간의 성경을 공부했던

무식한 신부이기에 "무식하다면 용감하다"는 격언대로 글의 수정이 전혀 없이

그냥 맞춤법이나 띄어 쓰기 등 기본적인 저의 무식이 드러나지 않는 정도 내에서만

교정하는 수준으로 이 책을 출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그것마저도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으로 받아들이며,

앞으로 무식한 저에게 대드실 학식 높은 학자님들마저도

하느님의 놀라우신 뜻에 내맡겨 드리겠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서와 같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땅 위의 모든 사람들 안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지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