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맡김의영성■

21.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드리려면? (5) ■ 내맡김 영성 ■

은가루리나 2015. 9. 7. 14:42

1016-12-02

맞춤법 마처예함


2017-05-25


moowee 등급변경▼ 조회 1093 추천 1 2010.01.17. 20:49



21) 성가를  많이많이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그분께 찬미와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성가"를 통해서이다.


성가는 "입"으로만이 아니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즉, 자신의 전 존재를 다하여 하느님께 올려드리는 

기쁨에 찬 "환호"가 되어야 한다.


일상적인 평범한 기쁨과 즐거움이 아니라

참으로 "기뻐 날뛸" 정도의 "엄청난 기쁨의 환호"가 되어야 한다.


"성가"는 하느님의 은혜와 그분의 아름답고 훌륭하심을 높이 기리어 드러내 드리는

하느님에 대한 "찬미(讚美)", "찬송(讚頌)", 찬양(讚揚)"인 것이다.



이번 기회에 한 번 국어사전(민중서림)을 뒤져보자, 

찬미;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기리어 칭송함.

찬송; 하느님의 은혜를 기리고 찬양함.

찬양; 아름답고 훌륭함을 기리고 드러냄.


옥편을 한 번 뒤져보자,

찬미, 찬송, 찬양의 "찬(讚)은 "기릴 찬"이다.

"찬(讚)"은 말씀언(言) 변에, 조개패(貝)발에, 나아갈 신(先先)이 합쳐진 글자이다.

무엇보다 나아갈 "신(先先)" 字가 재미있다.

"먼저 선(先)"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합쳐진 글자이다.

"하느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모든 것에 가장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보다 앞서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우상숭배가 별게 아니라 

하느님보다 다른 것을 앞세우면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이다.



여기서 한가지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

우리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 주님을 찬미하고 찬송하고 찬양한다는 말,

"하느님을 찬미, 찬송, 찬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아무나 하느님을 찬미, 찬송, 찬양한다고 야그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찬미, 찬송, 찬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貝- 돈)을 지니고, 

하느님 앞에 나아가(先先-나아갈 신)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진실로 찬미, 찬송, 찬양한다고 말(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최선의 찬미, 찬송, 찬양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당신 스스로 우리 구원의 제물이 되어 주심에 감사드리는 "감사의 제사"인 

"미사성제"이다.


영육 간에 정성된 준비 없는 "미사참례"는 참으로 죄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하여튼, 보편적으로 

"찬미하다"라는 말을 라틴어로 "benedicere(축복~,찬미~,거룩~)"로 사용하며,

"찬송하다"라는 말을 "cantare(노래~,찬미~,찬송~)"로 사용하며,

"찬양하다"라는 말을 "laudare(찬양~,칭송~,찬미~)"로 사용하는데,

"찬미, 찬송, 찬양"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말이 바로 "jubilare"이다.


"jubilare"를 라틴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1. 소리쳐 부르다, 노래하다.

 2. 환희에 넘쳐 외치다, 환호하다, 기뻐 날뛰다."라고 적혀 있다.

영어로는 "jubilate(기뻐하다, 환호하다)"이다.


jubilare와 같은 뜻의 "exsultare(기뻐 날뛰다)"도 있다.


(시편 100,1) ;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을 올려라." (jubilate domino, omnis terra)

하느님께 진실된 "기쁨으로 찬양(환호)하는 것"이 바로 "성가"이다.



그러나 "찬양(성가)"은 아무나 하나? 

그렇지 않다. 찬양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시편 33,1)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올바로 살아가는 의로운 이들만이 

하느님을 합당하게 찬양(성가)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올바른 이들의 찬양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찬양을 기뻐 즐겨이 들어 받아들여 주신다.


"성 아오스딩"은 

"당신의 목소리와 당신의 입과 당신의 마음으로 노래 불러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에서 그분의 찬양이 울려 퍼지게 하여라.

노래하는 당신 자신이 노래 불려져야 하는 찬양 자체이다.

당신이 올바르게 살아간다면 당신 자신이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이다."라 했다.




참으로 성가(찬양-기쁨의 환호)는 "기도 중의 기도"이다.

자신이 하느님 앞에 올바른 이로서 합당한 찬양(성가)을 올려드린다면 말이다.


자신의 승용차 안을 거룩한 성가로 흘러넘치게 하시라!

자신의 집 안을 거룩한 성가로 흘러넘치게 하시라!

현대문명(오디오, mp3, 휴대폰 등)도 최대한 이용하시라!


흘러넘치는 그 성가를 타고 "하느님의 사랑"이 나에게 다가오시리라! 

나를 휘감아 나도 모르게 "하느님 뜻 안으로" 나를 인도하시리라!





하느님 찬미는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 ♣ 聖靈쇄신운동 ♣


moowee|등급변경▼|조회 219|추천 0|2018.09.24. 12:51



하느님 찬미는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 . 발행 [517호]




교회 안의 여러 신심운동 중에 성령쇄신운동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호응과 
반대가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신심운동이라 여기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말해야 
할 경우도 없지 않다. 요즈음은 상당히 안정되고 있어 20여년 전과 비교해볼 때 
별로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에는 우리 교회가  구세주 강생 
2000년 대희년 준비로 ‘성령의 해’를  지내면서 사방에서 세미나가 개최되고 
기도모임이 일어나 성황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신심운동에서는 여러 가지를 강조하지만 그 중의 하나는 ‘하느님 찬미’다. 
성가를 부르면 기도를 두 배로 하는 것이라는 신심에 따라 세미나나 기도 모임 
에서는 성가를 많이 부르는 편이다. 이 기도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지루할 정도 
로 성가를 많이 부른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찬미가 너무 강하게 나와 인간의 언 
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 심령으로 기도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찬미기도’의 효과 그리고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마귀 들린 사람들 
을 위해 기도하여 구마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 사람들의 체험에 의하면 성가 
를 부르면서 하느님을 오랫동안 찬미하면 구마기도를 특별히 하지 않아도 악령 
이 나가는 경우들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빛나 
게 하는 찬미의 기도는 악한 영들을 추방하는 도구도 되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 
찬미는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 악한 영들이 찬미 소리에  놀라 도망간다면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악한 생각도 정화되지 않겠는가? 

   하느님을 자주 찬미하는 신심 깊은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마음이 맑고 순수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자연적으로 내 마음도 맑아지는 
듯하여 기분이 좋아진다. 찬미의 기도 중에 시편으로 기도하는 것은  교회의 아 
름다운 전통이다. 사제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신심 깊은 신자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 바치는 시간경 기도(성무일도)는 대부분 시편으로 되어  있다. 시편 중의 많 
은 부분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다. 

   시에 대한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공자도 시경 300수의 내용을 한마디 
로 요약할 때 그것은 마음에 사악한  생각이 없다는 구절, 즉 사무사(思無邪)라 
고 하였다. 시경 300여편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있으나 이 경전의  전체적 성격 
을 포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구절은 인간의 순수한 마음을 나타낸 바 
로 그 구절이 아닌가 생각된다. 

   비그리스도교 경전에도 인간교화 내지는 윤리적 효율성의 의미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내용이 있다면, 하물며 하느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의 시편이 
야말로 그 의미가 얼마나 깊고 풍부하겠는가? 

   또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소서”라는 기도를 하게 되면 자연적으 
로 우리를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하지 못하게 유혹하는 온갖 장애물을 우리에게 
서 멀리해 주시도록 청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고자 열망하는 사람들의 소망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이  청원은 우리 
자신이 거룩하게 되도록 비는  기도도 되므로 우리를  위한 축복의 기도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이 기도문에 나오는  하느님의 나라 또는 왕국은 장 
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역이나 통치를 말한다. 

   주 예수님의 오심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왔으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느님의 통치하심이 우리가 사는 곳곳에 두루 미치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성경을 읽어보면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는 확실히 온다고 가르쳤다.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온다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이사야는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 
되는 그 날에는 늑대와 새끼 양이 어울리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젖먹 
이가 살모사의 굴에서 장난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아름다운 미래를 예언하였고 
예레미야는 이웃이나 동기끼리 서로 해치거나 싸우는 일이 없는 시대가 온다고 
하였으며 묵시록은 주리는 날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세상을 보자. 이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도 많고 좋은 일들도  많이 일어나 
지만 악한 일들도 수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하느님의 주권이 세상 곳곳에 미 
쳐야 하는데 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온갖  불의·부정·착취·폭 
력·가난·굶주림·폭음·폭식·질병·미움 등은 하느님의 주권이 침해받는 현 
상들이며 그분의 나라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느님의 영역은 분명히 우 
리의 현실 속에 드러나야 하므로 우리는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전달수 신부】안동교구 다인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