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기도

제 3 편 제13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계속) 제 2 절 각가지의 공포(1)

은가루리나 2016. 3. 16. 07:55


제 2 절    각가지 공포 (1)


우리는 먼저 평화를 얻는 권리는 선의의 정도에 의해서 정해진다는 것, 

그리고 깊은 평화를 간직하려면 

자기의 의지를 완전히 천주의 의지에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자.

의지가 완전히 복종해 있을 때라도, 

우리는 아직 미래의 위험에 대해서 보호돼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도와 경계에 의한 예방의 방법을 갖추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관대하고 현명한 영혼에 대해서다.

그들에게 있어 평화를 맛본다는 것은 

아무리 정당한 일이라도 

허다한 공포가 그들에게 닥쳐, 그 평화를 교란시키려고 위협하리라.

그런 영혼에게 안심을 주기 위하여 「그루」신부의 말에서 시작하자.



(1) 

천주께서 참으로 당신에게 오기를 바라는 영혼을 불안에 빠지게 하는 일은 결코 없으시다.

천주께서는 영혼을 경고하시고 가혹하게 징계하시지만, 

그러나 결코 마음을 혼란시키지 않으신다.

영혼은 자기 죄과를 반성하고, 통회하여 개과하지만, 이 때 조금도 평화를 잃지 않는다.

만일 영혼이 불안에 떨어진다면, 

이 불안은 항상 자기 자신이거나 또는 악마에게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은 그것에서 구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수행하여야 한다.



(2)

막연하게 별로 이렇다한 것이 없는 생각이나 두려움은 

천주에게서 온 것도 양심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상상에서 온 것이다.

이를테면, 

어느 때 고백에서 모든 것을 고명하지 않았다든지 

적절히 표현할 수 없었다든지, 

참된 통회심이 없었다든지, 

성체를 영하는데 알맞는 준비가 돼있지 않다든지, 

그 밖에도 우리를 피로시키고 괴롭히는 다른 막연한 공포가 우리 위에 닥쳐 온다.

이런 모든 것은 천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천주께서 영혼에게 무엇인가 비난을 주실 적에는, 

그 대상은 항상 명백하고, 정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 말한 것과 같은 불안이 일어날지라도, 

구태어 개의(介意)치 말고, 

용감하게 그것을 극복하여야 한다.(「내적 영혼의 안내」영혼의 평화 참조)

마음의 명백한 확실한 가책을 느낄 때에는 이것과 전연 다르다.

「드.고사드」신부의 저서 가운데, 

우리는 각가지 공포에 관해서 매우 유익한 지도를 발견할 수 있다.(「위탁」2편 특히 6장 참조)

여기에는 그 전부를 실을 수 없으므로 다만 그 주요한 것만을 인용한다.


우선 사람에 대한 공포가 있다.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들은 천주께서 바라시거나 혹은 허락하시는 이외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며, 

또한 천주께서 

그 신비적인 계획을 성취하시는데 유익한 것으로 살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두려움을 침묵시키고, 만사에 관해서 천주의 섭리에 맡기자.


천주께서 많은 은밀한, 그리고 그르칠 수 없는 수단을 가지고 계시다.

천주께서는 자기 종들이 거세게 타오르는 불가마 안에 있어 

그들로 하여금 뜨거움을 느끼지 않게 하시고, 

물 위를 걸으신 정도로 유력하심과 동시에 우리를 외관상 가장 상반되는 수단으로써 

당신이 목표로 하시는 목적에 인도하실 수 있으시다.

우리는 보다 효애에 충만된 위탁으로써 자신을 맡기는 만큼, 

섭리의 완전한 자부(慈父)로서의 보호를 보다 깊이 느끼는 것이다.」(「위탁」2편 5장.18)


다음에 악마와, 악마가 모든 방면에 있어 

우리안에, 우리 주위에 끊임없이 쳐 놓는 함정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천주께서는, 경계하고, 기도하는 영혼과 함께 계시며, 

그리고 그 힘은 지옥 전체의 그것보다도 무한히 탁월하지 않으신가.

그리고 이 공포심이 잘 억제될 때, 

그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있어 함정을 피하게 하는 하나의 은총이 된다.


만일 우리는, 
겸손한 두려움에 천주께 대한 커다란 신뢰를 덧붙인다면, 
어떤 종류의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사소한 싸움에 있어, 
천주께서 우리의 보다 커다란 이익을 위하여 허락하시는 사소한 패배를 제외하고는 
항상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이 패배의 덕택으로 
우리는 항상 천주의 어전에 있어 미소한 자, 겸손한 자로서 머물러 있으며, 
자신의 힘에 의뢰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허무한 이로 간주한다.
천주의 성의에 거스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지배되고 있는 동안은, 
중대한 죄를 결코 범하는 일이 없으리라.
이 두려움만이 우리를 안심시키리라.
왜냐 하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지탱하시는 같은 분의 손으로부터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우리가 두려움의 마음을 잃었을 때야말로 두려워 해야 한다.
즉, 모든 두려움, 소위 조촐하고 사랑의 마음에서의 두려움, 
바꿔 말하자면, 
사랑과 신뢰를 반드시 수반하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이 없는 온화하고 평화에 충만된 두려움까지도 잃은 것 같은 
모든 상태는 염려할 상태다. 」(「위탁」2편4장.13,18,22)



「천주를 사랑하는 영혼에 있어 성의에 거스르는 두려움보다 괴로운 일은 없고, 
정신이 사악(邪惡)한 생각에 충만되며, 
그리고 거의 자기 의사에 반하여 유혹의 혹심함에 끌려다니는 것을 느끼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없다.
그러나, 그대는 유혹의 필요에 관해서 
그리고 유혹과 싸워 낙심하지 않는 영혼에게 그것이 가져오는 귀중한 효과에 관해서, 
성신이 성서의 그토록 많은 개소에 있어 가르치신 것을 묵상한 적이 있는가.

유혹이 불가마에 비유되고, 
그안에서 진흙은 견고함을, 황금은 빛이 주어진다는 것, 
또한 유혹은 기쁨의 샘이 되는 은혜로서, 
천주의 우애(友愛)의 증거로서 
천주로부터의 지식을 얻는데 불가결한 교훈으로서 제시돼 있음을 모르는가.
만일 그대가 이런 위안이 많은 진리를 생각한다면, 어째서 비애에 잠길 것인가.

유혹이 직접 천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이익을 위하여 그것을 허락하시는 것은  항상 천주가 아니신가.
그리고, 
천주께서 증오하시고  또한 우리가 천주와 함께 증오해야 할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는 그 거룩하신 허락하심을 만사에 있어 흠숭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그대는 마음을 산란시키고, 고민에 잠기는 것을 힘써 피하라.
이 마음의 산란은 유혹 자체보다도 훨씬 두려워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위탁」2편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