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섭내

옮긴이의 글

은가루리나 2016. 4. 22. 18:00


   이 책의 저자인 코사드의 요한 베드로 (Jean-Pierre de Caussade)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엽에 걸쳐 살았던 

프랑스가 낳은 최고가는 영성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진리를 깊이 꿰뚫어볼 줄 알았고  진리를 사랑했으며,

이러한 진리를 깊은 확신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전파하는데  온갖 심혈을 기울였다.

참된 진리에 관한 그의 확신은  이 책자에서 심오한 영성의 필치로 구사되고 있다.


   당시 프랑스는 새로운 철학 사조인 합리론(Rationalismus)이 한창 무르익는 때였다.

그리스도교 영성도  이러한 철학적 사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발전하였는데,

특히 교회는  합리론이 안고 있는 약점이었던 이원론(二元論)을 발판으로 

육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멀리하며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그 어느 때보다도 무리없이 극구 강조할 수 있었다.

 

   근대 철학의 사조라 할 수 있는 데카르트(R. Descartes)가 

인간 의식과 물질세계라는 이중 구조의 합리론에 빠져들게 되었을 때 

문제는 매우 심각헸다.

다시 말해 전통적으로 말해지던  

영혼과 육체의 합일체라는 인간 구조는 의심에 처해질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성지상주의(二性至上主義)는  인간 의식만을 강조하고 육체는 물질처럼 간주하여 

이 두 가지의 상호작용이 은연중에 거부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상적인 인간으로서의 참된 인간상은  

육체가 없는 의식 일변도의 계몽 인간이 전부였다.

합리주의가 그 정점에 다다랐을 때 

말브랑슈(N.Malebranche)와 같은 

신앙 제일주의(Fideismus)를 부르짖는 기회원인론(Occasionalism)자들은  이 점을 감안, 

신앙의 관점에서 더욱 극대화시켜  인간의 모든 것,

즉 인간의 주체성이나  심지어 인간 행위 자체까지도 거부하는 가운데

신중심주의(神中心主義)의 사고를 전개하기에 이른다.


   이 책의 저자인 코사드의 베드로 역시  이러한 사상적 영항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은 

마치 로크의 경험론에  버클리(G Berkeley)가 종교적 색채를 가미한 것과도 비슷하다.

그렇기에 

기회원인론을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사상으로 취급하거나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또 그럴수도 없거니와  

당시 사상적 흐름 자체가  제반 여건상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필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는 이러한 사상적 맥락 하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 성 프란치스꼬 살레시오, 성녀 소화데레사와 같은

위대한 성인 성녀들이 배출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들 성인들은

오히려 이러한 사상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주어진 생을 거룩한 삶으로 승화시켜 나갔다.

이들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근대 사상이라는 새로운 토양에 씨 뿌리고 자라나게 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어들였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당대의 성인들은 

합리론과 계몽주의적 사고 일색인 유럽을 토착화의 무대로 삼아 

로운 영성을 계발하여  심화시켜 나갔던 것이다.

바로 코사드의 요한 베드로의 가르침 안에는 이들 영성의 종합이라 할 수 있는 

하느님의 섭리와 그분에게로의 위탁 정신이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코사드의 요한 베드로는 

만사를 하느님의 눈길로 바라보고  매순간을 현존의 성사라고까지 칭할 만큼 

하느님은 충만한 은총으로 인간의 삶을 부요케 해주신다고 확신한다.

그는 세상일에만 애착심을 갖고 일상사를 꾸려나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인간중심의 사고를 벗어나  하느님이 이끄시는 본래적인 삶의 모형(模型)을 제시하고 

그것을 삶의 목표로 삼을 것을 줄기차게 권고한다.

감히 하느님 중심주의자라고 일컬을 수 있는 그는  매사에 

우리가 어떤 눈길로 사람들과 사물들 그리고 사건들을 바라보고 마주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새로운 차원에서 가르쳐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