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섭내

** 성령에 붙들리게 되면 ** 루이스-프랑소와 드 로산(Louise-Françoise de Rosen) 수녀님에게 보낸 편지(1735).

은가루리나 2016. 4. 30. 22:54


Re:하느님섭리에내맡김《서론》



** 성령에 붙들리게 되면 **

루이스-프랑소와 드 로산(Louise-Françoise de Rosen) 수녀님에게 보낸 편지(1735).




<여러 경지의 영혼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맡길 때>




나의 경애하는 수녀님,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우리가 내면의 영혼에 주의를 기울이고  영혼의 목소리에 따르고 있는 한

영혼은 절대로 잘못된 길로 인도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에고를 버리는 현명한 예방조치를 설명하기를 권합니다.

하느님께서 수녀님에게 이런 겸손을 주셨으므로  저는

“수녀님이 계속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하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수녀님의 편지를 숙독한 후에 수녀님을 위로하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저는 수녀님께서

“저는 말하고 쓰고 독서를 많이 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하신 말을 좋아합니다.

이는 성령께 붙들렸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한 훌륭한 영성 작가는 

이를 ‘일하지도 않고 일에 전념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과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되어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배려(happy disposition), 거룩한 여가(holy leisure), 거룩한 무위(無爲; holy idleness)입니다.




첫 째,  성령에 붙들리게 되면

수녀님은 깊은 믿음과  하느님의 맛과 느낌, 절망과 고통을 번갈아 경험하게 되며

이들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먼저  믿음은 가장 순진하게 만들고  가장 확실하게 이기심을 미워하게 만듭니다.

두 번째  더욱더 기쁨을 느끼게 하고 

거룩하지 않은 것은 맛들이지도 않고 느끼지도 않으려고 하며

페늘롱(François Fénelon)이 한 말처럼  하느님만 생각하려고 합니다.

세 번째  십자가를 지게 하여 고통스럽게 만드는데

그래도 이 고통이 셋 중 최고의 선물입니다.

고통을 통하여 내면을 깨끗하게 만들어

거룩하고 신성한 하느님의 뜻과  더 가까이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둘 째,  성령에 붙들리게 되면 

하느님의 선하심에 감사하게 되고

하느님의 선하심 속에서만 행동하게 되고  하느님과 같은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수녀님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수녀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지만  수녀님은 계속해서 일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게으르게 됩니다. 

그러나 수녀님의 영혼은 성령에 붙들려 조용히 행동하므로

성령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이런 느낌이 강할수록  행동할 필요성은 적어집니다.

수녀님이 표현한 대로  수녀님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세 번째,  성령에 붙들리게 되면 

고통과 괴로움을 겪더라도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 동안 안주(安住)하려고만 했지만

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순종하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려고만 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가르쳐주고  특히 가련한 N 수녀님에게 가르쳐주십시오.

정확히 말하면  

수녀님들은 이를 원하며 이렇게 행동해야만 거룩하게 되며  

모든 영적인 시련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를 실천하기만 하면  

마치 완전히 개조되고  변형된 것처럼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네 번째,  성령에 붙들리게 되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되며

확신을 갖고 실천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가장 거룩하고 확실한 일을 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제가 방금 말했던 <착한 수녀원>에 전해주기 바랍니다.



다섯 번째,  성령에 붙들리게 되면

수녀님이 저에게 말했던  감정과의 싸움에 이길 수 있는 은총과 빛을 얻게 됩니다.

이 은총에 감사하고 충실히 따르면  사소한 감정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떠오른 생각을 버리지 마십시오. 

겸손을 갖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여섯 번째,  성령에 붙들리게 되면

일상적인 잘못을 깨닫고 기분이 나빠져  예외 없이 성실히 그 잘못과 싸우려고 합니다.

이 순간부터 잘못을 싫어하게 되고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데에 장애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전력(全力)을 다하여 해야 할 일은 

이 잘못과 부족함의 숫자를 줄여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지가 박약하여  다시 잘못을 범하게 되면

용기를 갖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은 것처럼  다시 일어서서 하느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낮추고  아무 걱정하지 말고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겸손은 믿음의 부족을 채워주고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웃에게 사소한 잘못도 저질러도 안 됩니다.

교만을 극복하고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일곱 번째,  무의식 중에 처음으로 갑자기 예전에 없던 열정이 생기면

은총의 도움으로 그 열정을 없애기 전에

교만과 열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를 지켜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감정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악마에게 마구 휘둘리게 되면서

악마가 심술을 부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는 실제로 느낄 수 있는 감정으로 자주 생기는데

모든 성인들은  겸손과  자기비하와  자기 증오로 이를 잠재우고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을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여덟 번째,  수녀님이 겪고 있는 시련과 유혹에 대하여 저에게 말했기에

저는 수녀님이 시련과 유혹을 받았을 때에는

성령께서수녀님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행동을 통제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련과 유혹이 기쁨을 주기는커녕  수녀님을 괴롭혔다면

아마 고통과 괴로움은 시련과 유혹의 해독제였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르고  하느님의 섭리에 따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삶으로써

생긴 의심, 지각 없는 판단, 질시, 시기 등의 고통은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됩니다.

수녀님은 이런 비난과 부당한 욕을 듣게 되어도 

하느님의 섭리의 뜻에 따라

하느님의 계획에 맞추어  흐트러짐 없이  수녀님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는 피조물의 혼란과 분주함 속에서도  하느님만 믿고 사는 참된 삶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외부의 일이 내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뿐더러

아첨이나 경멸도  수녀님이 누리고 있는 평화를 깨뜨리지 못합니다.

이런 삶이야 말로 진실한 내면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무관심이 없으면 

거룩하게 될 수가 없으며  역경(逆境)에 처하면 금방 무너지고 말게 됩니다.



아홉 번째,  수녀님의 생각에 따르도록 만드는 모든 환상(幻想)에 주의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 만족과 이웃에 대한 비난이 하찮게 보이지만

이러한 생각은  종교적인 순진함과 반대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며

내면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사실 겸손한 사람, 순진한 사람, 작은 사람과만 대화하는 성령의 도움 없이는

이런 삶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열 번째,  어떤 유혹에도 영향을 받지 않게 됩니다.

거의 느낄 수는 없지만  속이 깊어지거나 상냥하게 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이런 마음을 계속 유지 하십시오.

다른 어떤 행동보다도 하느님만 바라 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유혹이 끝난 후 경험하는 걱정과 의심은 

수녀님이 결코 버릴 수 없는 순진한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이러한 의심은 이기심으로부터 나오므로  경멸하고 몰아내야 합니다.

기도 시에 생기는 환상이나 거짓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 오류가 없는 법칙은 나무는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심(回心)하게 하고  삶을 바꾸게 하고  (惡)을 피하게 하고  

의무 기도를 하고  복음을 전하는 기도는  모두 훌륭한 기도입니다.

반면에 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기도는

설령 황홀함과 무아지경을 느끼고 기적을 보더라도  거짓기도이며 

나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길은  믿음과 자비와 겸손의 길이므로

이런 길을 걷는 것은 유익하지만 

이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모두 위험한 길입니다.

이 길이야 말로 가장 안전하며 

악을 없애주고  환상을 없애주며  스스로의 힘으로 물리칠 수 있게 해줍니다.


저는 진심으로 수녀님의 <착한 수녀원>에 인사 드립니다.

저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시어  내적인 영혼의 인도를 받게 하고

깨어 있어  

하느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겨드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에 만족하고

하느님께서 뺏어가시더라도 만족하고 

하느님께서 아무것도 남겨주시지 않더라도  만족하십시오.

그래야 하느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느님께 내맡겨야만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끊임없이 전하는 것보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없습니다.




토마스 머튼쉬어 가세요 / 무종교인의 재미있는 철학 이야기

위무위추천 0조회 88820.04.04 15:45댓글 99



[Re:하느님섭리에내맡김《서론》


 ** 성령에 붙들리게 되면 **

루이스-프랑소와 드 로산(Louise-Françoise de Rosen) 수녀님에게 보낸 편지(1735).



한 훌륭한 영성 작가는 
이를 ‘일하지도 않고 일에 전념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과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되어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배려(happy disposition),

거룩한 여가(holy leisure),

거룩한 무위(無爲; holy idleness)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