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8
1922년 4월 1일
주님 부재의 고통을 초래하는 요인들.
연옥 고통을 능가하는 고통에 대하여.
수난의 가장 굴욕적인 단계. 죄라는 광기.
1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로 인해 몹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모습을 보여 주신다고 해도 번쩍 지나가는 번갯불 같을 뿐이니,
얼마나 괴로운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2 내 생명, 내 전부이신 그분께서
다시는 돌아오시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암흑 속에 잠겨 있었다.
'아, 이제 모든 것이 끝장이다.
내가 어떻게 해야 그분을 다시 뵐 수 있을까?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까?
아무도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3 내가 그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었을 때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엾은 딸아, 내 가엾은 딸아.
너무나 큰 고통을 받고 있구나!
네 고통의 상태는 정화 중인 영혼들의 상태마저 능가한다.
4 이 영혼들이 나의 부재 속에 있는 것은 그들을 더럽힌 죄 때문이다.
죄가 나를 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어서
그들은 내 앞에 올 엄두도 내지 못한다.
나의 무한한 거룩함 앞에서는 아주 작은 흠도 내 현존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5 그러니 내 앞에 있도록 허락한다면
이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 지옥 고통을 능가하는 고통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
흠이 있는 상태로 내 앞에 있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들을 더 괴롭히지 않으려면 우선 깨끗이 정화되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내 앞에 오게 하는 것이다.
6 그러나 나와 내 뜻의 작은 딸 사이의 경우,
나 자신을 나타내 보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것은 나와 이 딸 사이에 가로놓인 내 정의다.
따라서 나를 보지 못하는 너의 고통은 다른 모든 고통을 능가한다.
7 가없은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너는 나와 똑같은 운명을 걸머지고 있다.
정의의 고통이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이 고통을 견디려면 신적인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 뜻 안에 사는 사람과 더불어서만 내가 이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8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늘 하던 대로 내가 곧 다시 오겠다.
너는 정의의 빛살이 피조물을 치게 잠자코 있어라.
내 정의도 갈 길을 가야 하는데다,
네가 그 전체를 감당할 수도 없다.
그런 다음 내가 전과 같이 너와 함께 있으마.
9 그렇다고 해서 너를 아주 떠나겠다는 말은 아니다.
네가 나 없이는 지낼 수 없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으니까
네 마음 깊은 곳에 머물러 있겠다.
우리 함께 간구하자꾸나."
10 그 후 나는 「수난의 시간들」을 따라갔다.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미친 사람처럼 옷 입힘을 당하시고
그런 취급을 받으시는 대목에 이르러,
내 정신이 이 신비 속을 헤매며 갈팡질팡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1 "딸아, 내 수난의 가장 굴욕적인 단계가 바로 이것이었다.
미친 사람처럼 옷 입힘을 당하고 그런 취급을 받은 것 말이다.
나는 그때 유다인들의 노리개 - 그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이는 내 무한한 지혜가 참아 견딘 최대의 굴욕이었다.
그럼에도 이 고통을 겪는 것이 하느님의 아들인 내게 필요한 일이었다.
12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광기에 빠져든다.
이보다 더한 광기는 있을 수 없으니,
왕의 신분에서 전락하여 그지없이 천한 격정들의 노예며 노리개가 된다.
격정들이 인간을 억압하면서 미친 사람보다 더 힘껏 묶어 진창 속으로 던져 넣고,
더럽기 짝이 없는 것들로 칠갑하는 것이다.
13 오, 정말이지 죄는 심각한 광증이다!
이 증세를 지니고도 지고하신 임금님 앞에 있을 수 있는 인간은 결코 없다.
나는 그래서 그 굴욕적인 고통을 참아 받고자 하였다.
14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 나 자신을 바쳐
인간의 광기가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음으로써
인간이 그것에서 벗어나도록 간구하기 위함이었다.
그 메아리가 내 귓전에 윙윙 울리면서
나를 고통과 멸시와 비웃음과 조롱 및 온갖 고문에 휩싸이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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