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시간들16

{14권 2장} 내가 옷 벗김을 당한 것은 인간에게 은총의 옷을 다시 입혀 주기 위함이었다.

은가루리나 2016. 9. 25. 00:01


14-2



1922년 2월 9일



모진 고문으로 끔찍해진 예수님의 몸은 죄 지은 인간의 모습이다.

그지없는 자비를 거부하는 인간의 배은망덕으로 인한 주님의 고통.




1 평상시와 같이 지내면서 「수난의 시간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채찍질을 당하시는 고통의 신비 속의 예수님을 동반하는 시간에 이르자,

그분께서 살이 온통 헤어진 모습으로 나셨다.


2 그분의 몸은 옷만 벗겨진 것이 아니라 살도 벗겨져 있어서,

하나 하나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뼈가 드러나고 있었다.

보기에 처참하다 못해 무시무시하시까지 한 모습에,

두려움과 경악과 존경과 사랑이 동시에 가슴을 치는 것이었다.


3 나는 이 가슴 아픈 광경 앞에서 말을 잃었다.

예수님의 고통을 덜어 드리기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분을 뵙자 갑작스런 죽음의 엄습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그지없이 인자하신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4 "사랑하는 딸아,

네가 내 고통을 깊이 알 수 있도록 나를 잘 보아라.

이 몸은 죄를 지은 인간의 참모습이다.

죄는 인간에게서 내 은총의 옷을 벗긴다.

내가 이렇게 옷 벗김을 당한 것은 

인간에게 은총의 옷을 다시 입혀 주기 위함이었다.


5 죄는 인간을 흉하게 변형시킨다.

내 손에서 나온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인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역겹고 혐오스러운, 가장 추한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6 나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이었지만,

인간에게 본래의 아름다움을 돌려주기 위해

내 인성이 가장 추한 모양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를 보아라.

얼마나 지긋지긋한 모습이냐!

채찍질에 의해 살가죽이 뜯겨 나가서,

나 자신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7 죄는 아름다움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세포조직이 덩어리로 썩어 괴사(壞死)하는 깊은 상처를 내기도 한다.

이 상처가 가장 내적인 부위까지 침식해 들어가면서 

인간의 생기를 소진시킨다.

그러므로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은 해골처럼 메마르고 죽은 작업이 된다.

그것은 또한 인간에게서 본연의 고결함과 이성의 빛을 빼앗아 

눈이 멀게 한다.


8 나는 인간의 그 깊은 상처를 채워 주려고

내 살점이 조각조각 뜯겨 나가게 하였다.

나 자신을 온통 하나의 상처 덩어리가 되게 하고

피를 강물처럼 쏟아냄으로써,

인간 영혼 안에 생기가 흘러들게 하였다. 

다시금 인간에게 생명을 돌려주기 위함이었다.


9 오, 내가 만약 생명의 샘인 내 뜻을 내 안에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수난이 시작될 무렵 이미 죽었을 것이다.

내 인성은 고통을 당할 때마다 죽었지만

내 뜻이 생명으로 바꾸어 주곤 했기 때문이다.


10 나의 고통과 피, 조각조각 떨어져 나간 살점들은 

언제나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생명을 받지 않으려고 내 피를 거부하고, 

상처가 움푹 파인 상태로 있으려고 내 살점을 짓밣는다.

오, 이 배은망덕이 내게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는지?"



11 그러고 나서 그분은 내 팔에 몸을 던지시며 울음을 터뜨리셨다.

나는 그분을 가슴에 붙여 안았지만

그분은 더 크게 소리 내어 우셨다.

예수님께서 통곡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다면 무슨 고통이라도 받을 수 있을 듯한 마음이었다.


12 나는 그래서 따뜻한 동정심을 표현하며 

그분의 상처들에 입 맞추고 눈물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위로를 받으신 듯 이 말씀을 덧붙이셨다.


13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아느냐?

나는 아들을 매우 사랑하는 아버지처럼 행동한다.

이 아들은 장님인데다 흉하게 생겼고 다리를 저는 불구자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그를 미치도록 사랑한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느냐?

자기의 눈을 뽑고, 다리를 자르고, 살점을 뜯어낸다.

이 모든 것을 이들에게 주면서 말한다.


14 '얘야, 

네가 앞을 볼 수 있고 똑바로 걸으며 아름다운 모습이 된 것을 볼 수만 있다면,

나는 장님에다가 절름발이로, 

추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있는 게 더 행복할 거다.'


15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의 눈으로 보고 

자기의 다리로 걸으며 자기의 아름다움으로 덮여 있는 것을 보면,

오, 정말 행복해할 것이다.!


16 그러나 이들이 배은망덕하게도 

아버지가 준 눈과 다리와 살갗을 냅다 집어 던지고

제 흉한 모습대로 있는 것에 만족한다면,

아버지는 얼마나 참담한 심경이 되겠느냐!

내가 바로 그러하다.

모든 것을 돌봐 주었건만,

인간은 배은망덕하게도 내 가장 큰 비통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