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wee 등급변경▼ 조회 598 추천 0 2010.08.26. 00:11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하느님,
그분의 뜻이 오늘 이 강의 시간을 통하여,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다같이 "주님의 기도"를 바치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멘."
찬미 예수님!
방금 전에 소개받은 이해욱 프란치스코신부이다.
저는, 지금 서울대교구 사제휴양원의 원장신부로 일하고 있다.
(자세한 자기소개를 더 할 수 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 계신 서당들이 많은
지리산 청학동 근처의 해발 600m가 넘는 곳에 위치한 아주 아름다운 곳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자리에 들때까지 온통 하느님의 기운이 저를 감싸고,
그래서 하루종일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서울교구의 신부인 제가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곳에서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가?
그것은 "하느님의 크신 은총", 그외에 다른 이유가 전혀 없다.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느님의 많은 은총을 받아왔지만,
그 많은 은총 속에서 저의 일생일대의 가장 커다란 은총은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에 저를 찾아 주셨는데,
그 은총의 모습은 "병, 질병"의 모습을 취하고 저를 찾아 주셨다.
그 병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처럼 이렇게 살 수 없었을 것이 너무 분명하다.
저에게 있어서의 "병"은 참으로 "복된 병"이었다.
아오스딩 성인께서 하느님을 만나고 "오, 복된 죄(탓)여!"라고 외치셨는데,
저는 거기에 하나를 더해서 "오, 복된 병이여!"라고 외쳐 본다.
"오, 복된 죄와 복된 질병이여!"
병으로 찾아온 하느님의 은총이 얼마나 큰 은총이기에
제가 그렇게 외쳐대겠는가?
그 은총은
아마 이 세상에서 우리 인간이 받을 수 있는 하느님의 은총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은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 은총이 어느 것인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하느님 나라의 삶"이다.
저는 감히 여러분께,
제가 지금 이 세상에서 "천국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드린다.
모든 신앙인들의 궁극적인 최종목표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느님 나라, 소위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이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제 안에서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었다면,
이것보다 더 큰 하느님의 은총이 그 어디 있겠는가?
여러분께 드리는 저의 이 고백을 하느님 아버지께도 드리며,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미 저의 고백을 받아들여 주셨음을
저는 저의 삶을 통하여 계속 확인 받고 있다.
저는 오로지 저에게 작용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계속되는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그분께 다시 되돌려 드리는 삶을
살아갈 뿐이다.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이 바라는 인생의 최종목표는
다름아닌 "극락세계, 낙원, 천당, 하느님 나라"이다.
그런데 천국, 하느님 나라는
숨이 꼴깍하고 넘어가야 만나게 되는 그런 삶이 아니다.
여러 가지 많은 종교에서
"하느님 나라, 낙원, 극락"을 미끼로 하여
신도들로부터 많은 돈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또한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하느님 나라"는 사람들의 큰 관심사였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바리사이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루카17장 20절이하>에,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있다. 또는 저기있다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느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하며,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아야 한다.
예수님 말씀대로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부터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뒤로 미룬다면,
그것보다 "미련한 바보짓"은 아마 없을 것이다.
왜, 천국이 최종목표인 사람이 천국생활을 자꾸자꾸 뒤로 미루는가?
일본 속담에 "바보는 죽어야 고쳐질 수 있다"는 말이 있다는데,
하느님 나라, 천국의 삶을 자꾸 뒤로 미루는 바보는
죽어도 고쳐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고쳐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연옥의 정화 과정"일뿐이다.
"완전한 행복" 즉 천국, 극락에서의 영생을 얻기 전에
반드시 "정화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사상은 히브리인들만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이집트, 인도, 중국에도 있었다고 한다.
"이 세상에 그 어떤 누가 완전하게 살아간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가?"
"완전치 못한 삶을 살아간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연옥인데,
그 연옥이 어디 나혼자만 가는 곳인가?"
"연옥이 다른 많은 사람도 거쳐야 한다면 어디 나라고 못가는가?"라고
생각하는 분이 혹시 계시다면
지금 당장 이 시간부터라도 아예 그 생각을 없애버리시기 바란다.
연옥형벌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섭고 고통스러운 것인지는
주님께서 이미 여러 사람들의 개인적인 환시나 체험을 통해서 알려 주셨다.
이미 오래전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연옥의 형벌이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가를 알려 주셨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루카16,24)
우리는 절대로 연옥에 가서는 안된다.
또, 연옥에 갈 필요도 없다.
그리고,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신이 낳은 자녀들을 절대로 연옥을 거치지 않도록 하는 부모가
진짜 부모이다.
자녀를 이 세상에서 출세시키고 아무리 잘 먹고 잘 살게 책임져 주었다하더라도,
이 세상 삶을 마친 다음에 영원히 불행한 삶을 살게 하면
그것은 정말 큰 잘못이다.
오히려 이 세상 끝난 후에도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게 해주는 부모가
진짜부모이다.
아픈 자녀를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찢어지는데,
연옥에서 엄청난 고통 속에 부르짖는 자녀를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자녀도 배우자도 모두모두 연옥을 거치게 해서는 절대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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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여러분 앞에서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연옥을 거치지 않고 '직천당'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리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사시게 하기 위함"이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사시게 되면 직천당은 당연한 결과이다.
"꿩 먹고 알 먹고"이다.
제가 지금부터 알려 드리는 방법대로 그대로만 따라서 하시면,
여러분 중에서 그 어떤 누구라도 단 한 분도 빠짐 없이 그렇게 되실 것을
정말 굳게 믿으시기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한가지 필요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제가 내세운 조건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내 걸어 놓으신 조건이다.
그 조건이 무엇인지 아는가?
<루카복음 10장 21절 이하>에 그 조건이 나와 있는데 한 번 들어 보기 바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는 말씀은
전 성경을 통털어 이 루카복음만이 성경에서 유일한 말씀이다.
누구나 자신이 가장 좋아 하는 것은 "즐겁게" 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말씀이
예수님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있다.
에수님의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인가?
"하느님의 선하신 뜻"은 "철부지들"에게만 드러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거룩한 뜻은
"자기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
즉 스스로를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란 반대로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선하신 뜻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교만"은 정말 우리 신앙인들의 가장 큰 적이다.
철부지는 겸손할 수밖에 없다.
철부지는 단순할 수밖에 없다.
철부지는 순수할 수밖에 없다.
철부지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철"이란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힘"이라 나와 있으며,
"철-부지(不知)"란
"철 없는 어린 아이"와 "철 없어 보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두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아무래도 전자가 타당할 것이다.
"철 없는 어린 아이"는 사리를 잘 분별할 능력이 없기에
반드시 누구의 도움이 필요하다.
누구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가?
말할 것도 없이 그를 제일 잘 아는 부모일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목숨까지라도 다 바쳐 보호해 줄 수 있는 부모라야 할 것이다.
하느님 앞의 인간이란 마치 부모 앞에 벌거벗겨진,
부모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똥싸개 젖먹이 아기"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똥싸개 젖먹이가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여기는 어른들"보다 더 철이 들었다.
똥싸개 젖먹이는 주는 젖은 다 받아 먹지만,
똑똑하다는 어른들은 하느님이 좋은 것 주셔도 믿지 못해 못 받아 먹는다.
하느님의 지혜 앞의 인간의 지혜는 참으로 보잘 것없는 "쓰레기"일뿐이다.
자신이 하느님 앞에 그렇게 무력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사람이 바로 "철부지"
인 것이다.
그렇게 영적인 철부지가 되지 않는 한
아무도 "거룩하신 하느님의 뜻"을 알아 들을 수 없고
또, 그래서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살 수 없는 것이다.
에수님께서는 <마태오복음 18장 3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고 말이다.
하느님의 뜻을 알아 듣고, 하느님 뜻대로 살아감으로써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살고,
그럼으로써 연옥을 거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의 말씀대로
오직 하느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영적인 "철부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겸손하고 단순하고 순수해야 한다.
"철부지"는 "하느님 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천국의 열쇠)"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하느님 앞에 "철부지"가 되기로 결심하신 분은,
마음으로 "천국의 열쇠"가 되기로 결심하신 분들은,
이제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을 "겸손하고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잘 들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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