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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일치를 향한 성체성사(성찬례)에 대한 이해

은가루리나 2017. 1. 7. 17:07



성체성사(성찬례)와 그리스도인의 삶에 나타난 오해와 편견들



1) 개신교 신자들의 성체성사(성찬례)에 대한 오해와 편견


프로테스탄트 신앙에 있어서 가톨릭교회와 상반된 대부분의 가르침은 

종교개혁 당시 의화논쟁을 둘러싼 

교회와 성사에 대한 다른 이해에서 출발했다. 

이미 중세의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 구원의 은총사건을 온전히 선포하기에 많은 장애를 안고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개신교와 천주교는 비록 교파간의 차이점은 있지만 

대체로 성찬례를 

모든 이를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봉헌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세우신 성사로서, 

그 분의 파스카 신비를 기억하는 기념제로 받아들이고, 

최후의 만찬을 

예수의 전 생애에 걸친 구원의 새로운 계약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점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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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체성사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믿음과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예수의 살과 피가 실재한다는 

가톨릭교회의 ‘실체변화’(개신교에서는 ‘화체설’)에 대한 믿음을 의심스런 눈으로 쳐다보며, 

이를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거나 영적인 의미로 이해한다.



-가톨릭이 미사를 그리스도의 희생을 ‘현재화’하는 제사로 강조하는 반면 


-개신교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루가 22, 19; 1고린 11, 25)“라고 하신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성찬례를 단순한 기념제로 이해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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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부분의 한국의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교회가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중심의 교회일치를 지향한다는 점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즉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통해 

개신교가 “성찬식에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고, 

이를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는 생명을 의미한다고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다리고?있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개신교가 결정적으로 

”성품성사의 결여로 성찬 신비 본연의 완전한 실체를 보존하지 못하였다라는 

가톨릭 교회관의 입장을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진리주장을 하고 있음에 실망을 느낀다.


더욱이 이러한 성찬례의 거행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제들만이 지닌 특권이라는 점은 

보편적 사제직을 강조하는 개신교 신자들에게 있어서 

성서에 근거하지 않는 교회의 권위이자 제도교회가 지닌 모순으로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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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성사와 관련된 

천주교 신자들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성체에 대한 잘못된 신심과 공경의 태도가 

그리스도의 구원사건과 무관하게 

성체 자체에 대한 미신이나 우상숭배로 비쳐질 수 있다고 보는 점이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한 구원의 완전한 중개성이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인간의 자기봉헌의 선업(善業)의 강조로 인해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점, 


또한 천주교 신자들이 

교회의 가르침과 전통을 성서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을 교회의 성사(성례전) 안에 가두려 한다는 점 등은 

개신교가 가톨릭에 대한 지닌 오해와 편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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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종교개혁 당시의 분열의 원인이 되었던 많은 교리적인 논쟁들은 

가톨릭교회가 쇄신을 부르짖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를 통해서 

개신교와의 일치적 관점들로 상당히 수정되었기 때문에 

공의회 이후 달라진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성체성사에 대한 이러한 오해를 풀고, 

미사의 가치에 대하여 올바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되리라 본다.




2) 천주교 신자들의 성체성사(성찬례)에 대한 오해와 편견


천주교 신앙생활의 중심에 미사성제, 특히 성체성사가 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교회분열 이후 가톨릭교회의 특성이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은총전달의 직접성’ 보다는 

교회를 통한 ‘성사성(聖事性 sacrament)’을 더 강조한 것은 

대결신학(Kontroverstheologie)의 발전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였지만, 


이 점이 

가톨릭 신자들로 하여금 성체성사에 대한 구원사적 의미를 통찰하기 보다는 

성체성사 자체에 대한 신심과 경외심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낳은 것도 사실이다.


과거 가톨릭교회는 실체변화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성체성사를 신앙의 신비로 규정하면서, 

성찬례가 지닌 포괄적인 구원사건의 지평 보다는 

성체성사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초월적 기적에 대한 경외심과 

성찬례에 대한 신자들의 수동적인 참여를 강조했었다. 


그 결과 오늘날 정신과 육체를 동일하게 이해하는 현대인의 통합적 사유와는 달리 

성체성사의 실체와 물리화학적 구조간의 모순을 느끼는 많은 신자들이 

성체성사에 대한 가르침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거나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소홀히 여기거나, 

성체를 단지 초자연적 기적의 사건으로만 해석하려는 유혹을 받고 있다.



이미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러한 성체에 대한 잘못된 공경의 태도로 

오늘날까지도 성체성사에 참여하고 있는 적지 않은 신자들이 

성체 앞에서 지나친 기복적 신앙태도를 보인다던지, 


성체를 받아 모시기 위한 준비로서의 고해성사의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영성체의 구원의 유익성을 성체를 모실 수 있는 자격에로 국한시키려는 면도 적지 않다. 



물론 이러한 사목적인 문제로 성찬례의 가치를 모호하게 만들거나 평가 절하해서는 안 되지만, 

오랫동안 

가톨릭신자들 역시 

개신교 신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성체성사에 대한 의혹을 충분히 풀어낼만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때로 신자들은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성사 안에 계시는 예수님’과 혼동하여 

성사적 형태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지나치게 공간적인 의미로 알아들어, 

예수님의 현존을 미사와 성체성사 안에 국한시키려는 유혹을 받고 있다.


더불어 가톨릭교회가 성찬례의 희생제사적 성격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미사의 은총효과를 구체적인 사람들의 공로로 돌리려는 유혹도 피할 수 없는 문제라고 본다. 


가령 신자들이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을 위해 미사지향을 드리고, 미사예물을 봉헌하는 행위들이 

자칫 성찬례의 성사적인 제사의 성격을 

한국인의 민속예식이나 민간신심적 차원에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여지가 있고, 

그 결과 미사성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회적인 희생의 은총을 현재화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자신을 봉헌하도록 요청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을 수 있다.



개신교가 성체성사의 미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말씀 중심의 교회로 성장해 나간 점은 

가톨릭교회가 성체성사를 강조하는 점과 맞물려 

서로의 차별성과 정체성을 강조해온 역사적 흐름이었다고 본다. 


-그 결과 가톨릭교회는 

미사성제 안에서 이루어지는 

말씀의 식탁(말씀의 전례)과  빵의 식탁(성찬의 전례)의 양면성에서 말씀의 요소가 

지나치게 위축되어버린 반면, 


-개신교는 

설교와 찬양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를 통해서 성찬례의 가시적 요소들을 상실한 것도 사실이다.

 

근래 가톨릭이 말씀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개신교가 신앙의 상징성과 성찬례를 통해 주님의 성찬을 기념하려는 움직임은 

교회일치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으리라 본다.




지난 5월 서울 성공회 대성당에서 있었던 일치포럼에서

성체성사에 대한 개신교와의 공동 발제에서

가톨릭측 발제자로 발표한 논문입니다.

 

부분적으로 수정해서 누리와 말씀 17호에 실린 바 있습니다.

 

10월 성체성사의 해를 마감하면서,

우리가 성체에 대해 지녀야할 태도와 신학적 관점들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 되면 좋겠네요.

 

 

에큐메니칼포럼 주제발표: 그리스도인의 삶과 성체성사(성찬례)



송용민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