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의 하느님 뜻 안의 놀라운 삶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1요한 2,6)
우리의 이상은 모든 면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사신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인들은 예수님을 본받기 위하여 늘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인들은 예수님께서 매순간 하느님의 뜻대로 사신 것처럼 살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과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의지를 받아 이 의지와 하나 되어 이 의지 안에 삶으로써 매 순간 하느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새로운 영성생활로 우리를 인도하고자 하십니다. 이는 자신의 뜻을 완전히 없이한 신적인 삶이며 하느님께 최상의 영광을 드리는 삶이고, 예수님의 삶과 비슷한 가치와 효과가 있는 삶이며 모든 성인을 능가하는 최고의 성덕을 닦을 수 있는 삶입니다.
제1일 개념 설명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테살 4,3)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18)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요한 6,40)
1. 하느님의 뜻이란?
하느님의 뜻(의지)은 하느님의 생명이며 하나이고 전능하고 우주적이고 영원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의 모든 것과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것의 기초이고 근원으로써 그분의 사랑과 무한한 속성들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의 가장 깊고 중요한 실재, 하느님의 본질적인 실체이고 하느님의 전능, 전지, 자비, 거룩함, 불변성, 무한성, 선성 등은 하느님의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은 그분의 의지이시며 그 뜻이 이루시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실재이고 하느님의 신비로운 생명과 업적과 사랑의 샘이며 원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에서 이를 아버지의 뜻이라고 부르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2. 하느님 뜻 안의 삶이란?
하느님 뜻 안의 삶이란 하느님의 의지를 받아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 삶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 이전에 누리던 삶이며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사신 삶입니다. 이 삶은 예수님의 의지를 받아 예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기에 예수님의 삶을 재현하는 삶입니다. 따라서 이는 새로운 성령강림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내 안에 재림한 삶이며 성모님의 티 없는 성심이 내 안에서 승리한 삶입니다.
하느님 뜻 안의 삶이란 예수님과 성모님처럼 완전히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여 사는 삶이고 예수님의 신성이 그분의 인성 안에서 하신 삶을 본받는 삶입니다. 하느님 뜻 안의 삶은 범죄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여 창조의 목적과 기쁨과 즐거움을 성삼위께 되돌려 드리는 삶입니다.
7-27,4 하느님의 뜻은 신적인 신비의 문을 여는 단 하나의 열쇠이다. 이러한 영혼은 ?하느님의 집?에서 한 가족과 같은 친교를 누리게 되므로 마치 그 자신이 집주인인 것처럼 다스리게 된다.
8-8,2 딸아, 네가 나의 뜻에 관해서 말할 때는 아주 조심해야 한다. 내 뜻은 무척 행복한 것이기에 우리 (성삼위)의 지복을 이루는 반면 인간의 뜻은 몹시 불행한 것이어서 이것이 혹시라도 우리의 뜻 안에 들어올 수 있다면 우리의 행복을 파괴하면서 우리와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뜻 안에는 메마름이나 유혹, 결함이나 불안이나 냉정한 마음 따위가 도무지 없다.
3 나의 뜻은 빛이요, 있을 수 있는 모든 풍미를 다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간의 뜻은 다만 암흑 한 방울에 불과할 뿐인데도 그 안에 역겨운 맛을 내는 것이 가득 차 있다.
8-34,12 성인은 아주 상냥한 어조로 ?내가 방금 한 말을 되풀이하거니와, 그대가 하느님의 뜻을 알기만 하면 언제라도 그 뜻대로 행할 각오로 있다면 - 그렇다면 그대의 그 처지가 바로 하느님의 뜻인 것이오.? 하셨다.
8-38,2 딸아, 모든 것을 이기는 것, 모든 것을 정복하는 것, 모든 것을 무너뜨려 평평하게 하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이다. 이 뜻이 그토록 강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무엇도 여기에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9-30,2 딸아, 나의 뜻은 사랑을 완성시킨다. 내 뜻이 사랑을 조절하여 더욱 거룩하고 완전한 것이 되도록 축소하기도 하고 확대하기도 하는 것이다.
11-36,4 다른 모든 것은 나의 부분들인 반면, 나의 뜻은 모든 것의 중심이고 생명이며 지배자이다. 나의 뜻이 내 수난을 지시하고 내 성심에 생명을 주며 십자가를 드높이 찬양했던 것이다.
5 이처럼 나의 뜻은 모든 것을 포괄하고, 모든 것을 사로잡고, 모든 것에 영향을 주기에 이를 능가하는 것은 도무지 없다.
11-36,6 따라서 내가 내 뜻에 대해 말해 준 사람 ?? 이 사람이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것을 넘어 가장 내 총애를 입은 사람이다.
11-63,1 예수님께서 내게 해 주신 말씀을 고해 사제에게 전하였다. 즉, 하느님의 뜻은 영혼의 중심이고, 이 중심은 영혼 깊은 곳에 있으며, 이것이 태양처럼 빛살을 퍼뜨리면서 정신에는 빛을 주고, 활동에는 거룩함을, 발걸음에는 힘을, 마음에는 생기를, 말과 다른 모든 것에는 능력을 준다는 것을.
2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뜻인 이 중심은 언제든지 우리의 처분을 따르려고 우리 안에 있는 한편, 우리의 전후좌우 및 모든 곳에 항상 있으며, 천국에서도 우리의 중심이 되어 단 한 순간도 우리를 홀로 두거나 떠나는 일이 없다는 것 등이었다.
6 나의 뜻이 언제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최상권을 가지고 있다.
11-64,12 나의 뜻이 전부다.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 속성들은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내 뜻의 단순한 현동(現動)일 따름이다.
13 그러므로 정의, 선성, 지혜, 굳셈과 같은 속성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나의 뜻이 이들을 선행하고 동반하면서 움직일 태세로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속성들은 나의 뜻에서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는다.
11-86,14 딸아, 우리의 뜻은 서로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일치해 있다. 이 뜻의 일치가 바로 성삼위의 모든 완전성을 이룬다. 우리가 한뜻으로 있기 때문에 이 균일성에서 거룩함과 지혜와 아름다움의 균일성, 능력과 사랑 및 우리 존재의 다른 모든 것의 균일성이 나오는 것이다.
15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서로서로 반영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우리를 완전히 행복하게 할 정도로 크다.
12-78,17 딸아, 나의 뜻은 빛이기에 이 뜻 안에 사는 사람은 빛이 된다. 빛이 되므로 나의 지극히 순수한 빛 안으로 쉽게 들어오고, 열쇠를 가지고 있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꺼내 가진다.
12-98,9 아, 딸아, 홀로 나의 뜻만이 참행복을 가져올 뿐이다. 나의 뜻만이 영혼 안에 모든 선을 넣어 주고, 그 영혼을 에워싸고 스스로 화관이 되어 그를 참행복의 여왕으로 세운다. 이런 영혼들만이 내 옥좌의 여왕들이 되리니, 나의 뜻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12-143,2 딸아, 단지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마디에만도 창조 능력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창조하고 변화시키며 태우는 능력과 영혼 안에 빛과 사랑과 거룩함의 새로운 강물이 흘러들게 하는 능력이 있다. 창조 능력은 오로지 ‘피앗’ 안에만 있는 것이다.
14-4,13 내 신성도 그러하다. 내 의지가 지배적인 역할을 하고, 다른 모든 속성들은 내 뜻이 원하는 바를 따르려고 완전한 조화 속에 자리하고 있다. 지혜, 능력, 지식, 선성 등등이 일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14-11,8 너는, 내 뜻이 만물을 지배하고, 어디든지 있고, 만인을 지탱하고, 하늘과 땅과 심지어 마귀들에게도 알려져 있으므로, 내 뜻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도무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3-11,18 내 뜻은 또 황홀케 하는 능력이 있다. 이 감미로운 경지에 들어선 영혼은 그 자리에 붙박인 채 움쩍도 하지 않게 된다.
19 내 뜻은 또 발삼 같은 방향성 공기를 지니고 있다. 이를 호흡하는 사람은 평화의 공기, 성덕의 공기, 신적 조화의 공기, 행복의 공기, 빛의 공기가 자기 내부로 들어와 모든 것을 정화시키는 것을 느끼고, 사랑의 공기가 모든 것을 불태우는 것과 능력의 공기가 모든 것을 정복하는 것을 느낀다. 이 공기가, 나쁘고 병적이며 치명적인 인간 의지에 의해 발생된 모든 악에 천상적 향기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문: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사랑’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답: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 사랑의 생명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하느님 뜻의 양식입니다. 생명은 양식 없이 유지될 수 없고, 양식은 먹여 기를 생명이 없고서는 무용지물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뜻은 빛이고, 하느님의 사랑은 열입니다. 그 둘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빛과 열이 한 쌍을 이루는 듯 보이지만, 빛이 먼저 태어나고 그 다음에 열이 발생하여, 열이 빛의 딸이 됩니다. 하느님의 뜻이 일차적인 현동이라면, 하느님의 사랑은 하느님의 뜻과 분리할 수 없는 맏이, 하느님의 뜻이 미리 택하여 총애하는 딸입니다.
3.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것과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것의 차이
수덕생활을 열심히 하는 이들이 그동안 살아온 삶의 방식인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삶과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그 차이점에 대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 살았던 루이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첫째,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것’에 대하여.
12-18,11 나의 변변찮은 소견에 의하면 이는 형편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무슨 일속에서건 자신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보며, 머리카락 하나도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으면 빠지지 않을 정도로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며 안배하시는 하느님 뜻의 신적 질서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12 내 생각에 그런 사람은 착한 아들과 같다. 아버지가 원하면 어디든지 가고 무슨 고통이든지 받는 아들이다. 그는 부유하건 가난하건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아버지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13 어딘가에 가서 어떤 일을 하라는 지시를 받든지 아니면 지시해 달라고 청하든지, 다만 아버지가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참 가다 보면 간단히 뭔가를 먹을 필요를 느끼고, 쉬기 위해서 걸음을 멈추며, 식사를 하거나 사람들을 대하기도 한다.
14 그러므로 아버지가 원하기 때문에 가고 있지만, 그 자신의 뜻에서 오는 것이 많아지고, 여러 가지를 자기 혼자서 행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몇 날이고 몇 달이고 아버지의 뜻이 지시하는 명세 사항을 받지 못한 채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홀로 모든 일을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12-18,15 따라서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사람이 하느님의 뜻에 그 자신의 뜻을 섞어 넣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착한 아들이긴 하지만, 그 자신 안에 완전히 새겨진 아버지의 생각과 말과 생명을 모든 것 속에서 지닐 수는 없다는 것이다.
16 사실, 가고, 돌아오고, 사람들을 따르며 만나고 하다 보면, 사랑은 이미 깨어진다. 사랑은 지속적인 결합에 의해서만 성장하고, 그러면 결코 깨어지지 않기 때문인데, 아버지의 뜻이라는 전류와 아들의 뜻이라는 전류가 지속적인 소통 상태에 있지 않으니,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틈틈이 아들이 자기 자신의 뜻을 행하는 데에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17 하지만 나는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것이 성덕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 둘째,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하여.
12-18,19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산다는 것은 사람이 하느님의 뜻과 불가분적 관계를 맺고 아무것도 혼자서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의지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20 그런 사람은 앞서의 아들과는 달리 자기 혼자서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지시해 달라고 청하지 않을 뿐더러 지시를 받지도 않는다. 그저 “아버지께서 제가 이를 행하기를 원하신다면 함께 하십시다. 제가 가기를 원하신다면 아버지도 같이 가십시다.” 한다.
21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가 행하는 모든 것을 행한다. 아버지가 생각을 하고 있으면 아버지의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삼을 뿐 거기에다 하나의 생각도 보태지 않는다.
22 아버지가 보고, 말하고, 일하고, 걷고, 고난을 받으며 사랑하고 있으면, 아버지가 보는 것을 보고, 아버지의 말을 되풀이하고, 아버지의 손으로 일하고, 아버지의 발로 걷고, 아버지의 고난과 같은 고난을 받으며 아버지의 사랑으로 사랑한다.
23 그는 아버지의 밖이 아니라 아버지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반영이며 아버지의 완전한 판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다만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만 하는 아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점이다.
24 아버지의 뜻 안에서 살고 있는 아들의 경우, 아버지와 함께 있지 않는 아들을 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그와 함께 있지 않는 아버지를 볼 수도 없다. 이 아들은 외적으로만이 아니고 내적으로도 아버지와 함께 있다. 그의 내면 전체가 마치 아버지의 내면과 섞여 짜인 것처럼 되기에, 아버지 안에, 곧 하느님 안에 완전히 녹아든 상태가 되는 것이다.
25 오, 하느님의 뜻 안을 날아다니는 아들의 날래고도 고상한 비상이여! 하느님의 뜻은 무한하여 순간마다 모든 사람 내부를 순환하며 만물에 질서와 생명을 부여하신다. 영혼도 그 무한성 안을 돌아다니며 모든 사람에게로 날아가 도움과 사랑을 주는데, 예수님께서 친히 모든 사람을 도우며 사랑하시는 것과 같은 식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다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만 하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26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단독적인 행위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비록 거룩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무엇이 섞인 일에 대해서는 역겨움마저 느낀다.
27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 안에서는 모든 행위가, 극히 사소한 행위까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즉, 고상함과 광채와 신적 거룩함 및 신적 능력과 아름다움을 입고, 무수히 불어나며, 한 순간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28 그러나 모든 일을 다 하고 난 뒤 영혼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나의 만족은 다만, 하잘것없는 이 인간에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영광을 주시어 당신께서 행하신 바를 하게 하신 데에 있을 뿐입니다.”
29 따라서, 일을 잘했건 서툴게 했건, 또는 많이 했건 적게 했건, 원수가 그를 괴롭힐 수 없다. 예수님께서 다 하셨고 그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더할 수 없이 평화로운 사람이다. 아무런 불안도 겪지 않는다. 아무도 애착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신적인 사랑으로 사랑한다.
30 그런 이는 예수님의 삶을 재현하는 사람이요, 그분 음성의 발성 기관이며, 그분 심장의 고동이고, 그분 은총의 바다라고 할 수 있다.
31 나는 오직 여기에만 진정한 성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것은 성덕의 환영(幻影), 망령 내지 유령일 것이다.
32 하느님의 뜻 안에서는 덕행들이 신적 질서 속에 자리를 잡는다. 반면에 그것이 이 뜻을 벗어나 인간적 질서 속에 있게 되면 자만과 허영과 격정의 지배를 받게 된다.
33 오, 얼마나 많은 선행이, 잦은 성사 참여들이 하느님 대전에 개탄할 만한 보속거리가 되는지! 그것은 그런 행위들에 하느님의 의지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런 결실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34 하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진정한 성덕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되면, 오,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질 정도가 될 것이다!
4.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것과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의 차이
루이사의 글들 안에서는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것과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 사이의 차이는 매우 분명하며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것의 우월성을 분명히 합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것은 역시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포함하고 동반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될 수 있지만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것은 이 구원을 성취할 뿐만 아니라 창조주와의 가장 완전한 닮음과 일치를 가능한 한 많이 이 지상에서 달성할 수 있습니다.
17-14,2 딸아, 그들은 이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다스리는 것인 반면,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먼저 것은 소유하는 신분이고, 나중 것은 내 명령을 받고 그것을 실행하는 신분이다.
3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내 뜻을 영혼 자신의 것인 양 소유하여 그것을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다. 내 뜻을 행하는 것은 이 뜻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느님의 뜻으로 여기는 것이니 내키는 대로 처리할 수 없다.
4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하나의 뜻으로, 곧 하느님의 뜻만으로 사는 것이다. 지극히 거룩하고 지극히 순수하며 지극히 평화로운 하나의 뜻만이 다스리는 것이니, 갈등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일체가 평화일 따름이다. 이 지고한 뜻 앞에서 인간의 격정은 떨며 달아나려고 한다. 그러나 감히 걸음을 내디디지도 맞서지도 못한다. 하늘과 땅이 이 거룩한 뜻 앞에서 떠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7 한편 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두 가지 뜻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뜻을 행하도록 명령을 내리면 자기 자신의 뜻의 무게를 감지하게 되고, 이것이 갈등을 일으킨다. 비록 내 뜻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할지라도 그 자신의 반역적인 본성과 격정과 경향의 무게를 느끼는 것이다.
8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드높은 완덕의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며 계속 압박하는 그들 자신의 뜻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로마 7,24 - 역주) 하고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에 빠진 몸에서’라는 말의 의미는 ‘내가 하고자 하는 선을 죽음에 부치기를 원하는 나의 이 뜻에서’인 것이다.
9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아들로서 사는 것이고, 내 뜻을 행하는 것은 종으로서 사는 것이다. 먼저 것은 아버지의 것이 모두 아들의 것(루가 15,31 참조 - 역주)인 경우이지만, 종은 아들보다 더 많은 희생을 치르기 마련이다. 어차피 더 고달프고 더 천한 일들을 하고 추위와 더위를 겪으며 발로 걸어 다녀야 한다.
1. 문: 성삼위 세 분은 오로지 하나의 뜻을 공유하고 계십니까?
답: 그렇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확실한 사실입니다. 사실, 이 점이야말로 성삼위의 지고하고 탁월한 속성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께서 하나의 공통적인 생명, 하나의 공통적인 뜻을 소유하심으로 말미암아, 무한한 평화와 정온(靜穩)과 조화 속에서, 상호적인 기쁨과 다시없는 즐거움과 지복 속에서 그분들의 영원한 삶을 사시는 것입니다. 만일 한 위격이 나머지 두 위격과 따로 떨어져 자신만의 뜻을 가지고 있다면 삼위일체이실 수 없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내적 폭발이 일어나서, 한 분 하느님 안의 삼위의 일체를 불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그럴 경우, 아무것도, 곧 하느님도 피조물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유념할 점은 성삼위께서 각자 따로 자신의 뜻을 소유한다면 도저히 행복하실 수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뜻을 공유해야 하고, 이는 천상 모든 주민들에게도 해당되는 점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의 뜻 하나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천상에 행복이 없을 것입니다. 지상 교회의 황금기에도 이와 같은 모양으로 평화로운 행복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그 때에는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다스리시리니, 사람들끼리, 또한 하느님과 그분의 피조물이 온통 한뜻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문: 성화 은총과 하느님의 뜻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답: 그 차이는 태양에서 나오는 빛과 태양 자체와의 차이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성화 은총의 창조되지 않은 원천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하늘에서와 같이 소유한다는 것은 모든 은총의 원천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성화 은총은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니 이 은총을 받는 것은 매우 큰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는 것은 가장 큰 은총입니다. 은총을 ‘신비적인 생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하느님의 뜻은 ‘실제적인 생명’입니다.
3. 문: 성령과 성의(聖意)는 어떤 점에서 서로 다릅니까?
답: 이는 필자도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더 잘 이해하게 되기를 빌고 있는, 대단히 중대한 질문입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점은 이것입니다. 즉, 성령은 한 위격이지만 성의 곧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은 위격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은 ‘성삼위의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것은 성삼위께서 공유하시는 생명이며 생명의 원리일 뿐더러 그분들이 거처하시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각 위격의 신성이 이 거룩하신 뜻의 ‘분위기’ 속에 잠겨 계시는 것입니다.
성삼위께서는 이 거룩하신 뜻의 능력과 생명을 써서 각 위의 역할을 완수하십니다. 거룩하신 뜻에 의하여, 성부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을 영원토록 낳으시면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보존하십니다. 거룩하신 뜻에 의하여, 성자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드님께 나타내 보이시며 건네주신 모든 것을 영원토록 아버지께 되돌려드리시면서 인류를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께서 서로 드러내며 나누시는 ‘거룩하신 사랑의 위격화’인 성령께서는, 거룩하신 뜻에 의하여 피조물을, (그 중에서도 인간과 천사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하느님의 본질이며 주된 원리로 간주할 수 있는 거룩하신 뜻(will)은 성부께 속하는 것 같습니다. 이 거룩하신 뜻에서 영원토록 솟아나는 사랑의 작용(Volition)은 성령께 속하는 것 같습니다.
4. 문: 우리가 행하고 있거나 하려고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답: 이에 대한 답은 아무래도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다 음 점들을 참작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십계명 및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른,
십계명에 포함되는 모든 것.
2) 교회의 계율.
3) 성서와 성전에 담겨 있는 윤리적 가르침과 의무.
4) 수도회나 일반 장상의 합법적이고 정당한 명령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 및 국법 내지 민법에 대한 순종.
5) 생활 신분 고유의 의무에 대한 충실한 이행.
6) 기도의 힘에 의지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충고를 구함.
7) 하느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그들의 모범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주변 상황과 사건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알아둘 것.
8) 행동하기 전에 깊이 생각하면서 이렇게 자문해 볼 것.
무엇이 하느님을 더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일까? 이것일까,
저것일까?
9) 평화 속에 머물러 있을 것. 하느님은 평화의 하느님이시
니, 이렇게 자문해 볼 것.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보다
다른 어떤 것을 해야 한다면,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렇게 할 것인가? 정말 그렇다면 하고 있는 활동을 멈추
고 양심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온전히 평화로운 마음으로 현재의 일을 계속할 것.
10) 우리는 가끔 윤리적으로 볼 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둘 또는 그 이상의 행위 가운데서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할 때가 있습니다. 예컨대, 무엇인가 음
식이 먹고 싶어진다고 합시다. 그래서 냉장고의 문을 엽니
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과일을 먹을까, 치즈를
한 쪽 먹을까? 그 대답으로 그 중 한 가지를 고르겠지요.
무엇을 먹건 예수님은 상관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평화의
하느님이시기에 공연히 들었다 놓았다 하며 영혼이 어수선
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결정한대로 하기를 원하시
고, 이 행위뿐 아니라 모든 행위를 사려 깊게 하느님 뜻
안에서 하기를 원하실 뿐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치즈 조각
을 먹는 행위를 ? 만약 그렇게 하기로 택했다면 ? 하느님
의 뜻이 우리 안에서 행해 주시기를 청하고, 같은 하느님
의 뜻이 우리의 이 행위와 함께 하시면서 그 뜻의 음식으
로 우리를 길러 주시기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11) 복녀 디나 벨랑제는, 본능적인 첫 충동은 보통 그릇된 행
동으로 이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잠시 숙고
할 시간을 가지면서 은총의 충동을 따르려고 노력했습니다.
12) 우리가 존중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교의 금욕과 극기의 원
칙입니다. 가장 완전한 극기의 형태는 자기 자신의 뜻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13) 이상의 참작 사항들은, 자신의 인간적인 뜻을 하느님의
뜻에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건, 자신의 뜻을 희생 제물로
바치고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여 이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다스리게 해 드리는 사람이건, 대체로 누구에게나 적용될
것입니다.
< 묵상과 실천 >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것과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의 차이점과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에 대하여 묵상합니다.
제2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한
최상의 삶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마르 12,29-31)
하느님 뜻 안의 삶은 우리가 제일 먼저 지켜야 하는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실천하는 최상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사람이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사람들 안에서 완전한 기쁨과 안식과 위안을 발견을 발견하고 창조사업과 구원상업과 성화사업이 갚음을 받는 것을 느끼십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이들은 모든 이들을 대신하여 하느님께 보속과 사랑을 드리고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하여 사는 이들입니다.
1.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영혼은 하느님의 안식, 낙원
7-27,2 나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은 이 거룩한 뜻이 그 영혼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해 주기 때문에 쉴 수 있다. 또한, 나는 그를 위하여 일하면서 나의 가장 좋은 안식을 거기에서 발견한다. 하느님의 뜻이 그 영혼의 안식이요, 그 영혼 안에 있는 하느님의 안식이기도 한 것이다.
3 그리고 그 영혼은 내 뜻 안에 있는 동안 줄곧 나의 입에 바짝 달라붙어 하느님의 생명을 받아 마시며 이것을 그 자신의 지속적인 양식으로 삼는다. 하느님의 뜻은 땅에 사는 영혼에게 낙원이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영혼은 땅에 있는 하느님의 낙원을 이룬다.
2. 모든 사람을 대신한 사랑을 드리는 삶
11-94,6 내 뜻 안에서는 모든 것이 나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변화된다.
11-101,8 그러므로, 딸아, 네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나를 사랑하고자 하고, 나의 뜻 안에서 사랑하고자 하면, 너의 사랑이 나의 뜻 안으로 흘러들 것이다.
9 그런데 나의 뜻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고 있기에, 너의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하늘에서, 내 주위와 내 안에서, 또 땅에서 거듭거듭 내 귀에 들릴 것이고 그 소리가 어디서든지 증가할 것이다. 나의 뜻이 불어나게 할 수 있는 만큼 많은 행위로 불어날 터이니 말이다.
10 그러므로 그것이 나로 하여금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흐뭇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 피조물은 끝이 있는 유한한 존재이지만 나의 뜻은 끝없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11-129,2 딸아, 나는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에 의해서만 창조 사업과 구원 사업 및 성화 사업이 갚음을 받는 듯 느낀다. 그리고 그는 피조물이 마땅히 찬미해야 할 방식으로 나를 찬미한다.
12-29,4 피조물이 자기로서 하는 행위는 작고 한정된 것이지만 그 행위가 내 뜻 안으로 들어오면 무한한 것이 되어 모든 이를 감싸고 모두에게 빛과 열을 주며 모두 위에 군림하고 피조물의 다른 모든 행위들을 지배하는 지상권을 ― 모든 이에 대한 권리를 얻게 된다.
5 그러므로 그런 영혼은 통치하고 지배하며 정복한다. 그의 행위는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내 뜻 안에서 행해지면서 놀라운 변화를 겪는 것이거니와 이는 천사들마저 이해할 허락을 받지 못한 것이다.
6 홀로 나만이 내 뜻 안에서 행해진 이 행위들의 가치를 정확히 잴 수 있을 뿐이다. 이들이야말로 내 영광의 승리이고 내 사랑의 배출이며 구원 사업의 완성이니, 내가 창조 사업 자체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12-125,15 내 뜻 안에서의 삶은 자기 자신의 삶 없이, 사사로운 생각 없이 사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삶을 다 포함한다. 이 점에 유의하고, 두려워하지 마라.
12-159,2 딸아, 나는 내 뜻 안에서 기도하고 사랑하며 보속하고 내게 입 맞추며 경배하는 영혼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기도하고 사랑하며 보속 등을 하는 것처럼 느낀다.
3 왜냐하면 나의 뜻은 만물과 만인을 내 의지 안에 전부 포괄하고 있기에 그 영혼이 모든 이의 입맞춤과 사랑과 경배를 내게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영혼 안에서 모든 영혼들을 보면서 이들에게 주었을 모든 입맞춤과 사랑을 그에게 준다.
3. 각각의 피조물에 대해 하느님께 공경과 사랑, 흠숭과 영광 드리는 삶
14-17,8 게다가 그분께서는 이 거룩한 영광을 인간뿐 아니라 다른 모든 조물들에게서도 받으셔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조물은 인간을 끊임없이 사랑하게 하려고 창조되었고, 따라서 인간은 마땅히 그 각각의 조물에 대해 하느님께 공경과 사랑을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9 그렇다면 누가 이를 보상하겠느냐? 누가 만물을 창조한 ‘피앗’을 자기 것으로 삼고, 그의 창조주께 대한 공경과 흠숭과 거룩한 영광이 만물 위로 퍼져 나가게 하겠느냐? 바로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10 이 사람이 하는 말은 거의가 저 ‘전능한 피앗’을 내포하고 있다. ‘영원한 피앗’의 반향이 그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거룩한 피앗’ 안에 메아리치며 퍼져 나가고, 나는 듯 달려간다. 그러면서 개개의 피조물 위에 또 하나의 ‘피앗’ 인장을 찍어, 자기의 창조주께 그분께서 원하시는 공경과 사랑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11 내가 지상에 있는 동안 행한 것이 바로 이 일이니, 모든 것에 대해 내 거룩하신 아버지께 모든 피조물을 대신한 보상을 바치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이 일이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에 의해 행해지기를 원하며 고대하고 있다.
14 그러므로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내 목소리의 반향이요, 내 삶을 반복하는 사람이며, 내 창조 사업의 완전한 영광이다. 이 사람을 내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어떻게 다른 모든 피조물에게 줄 모든 것과 만물 위에 으뜸가는 권한을 그에게 주지 않을 수 있겠느냐?
4. 창조사업의 목적과 기쁨, 즐거움을 성삼위께 되돌려 드리는 삶
13-12,4 너는 알아야 한다. 네가 내 뜻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일하고 사랑하는 등등의 행위를 함에 따라, 네가 행하는 그 생각과 말과 일과 사랑의 수와 같은 수의 자녀들을 내 뜻에 낳아 준다는 것을.
5 이 자녀들이 내 뜻 안에서 무한히 불어나 온 하늘과 땅을 두루 다니면서 하늘에는 새로운 기쁨 및 새로운 영광과 만족을 가져오고, 땅에는 새로운 은총을 가져다준다.
16-45,9 아! 너는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고 있다. 그것은 창조의 목적인 순수한 기쁨을, 내가 사람을 창조한 까닭인 티 없는 즐거움을 내게 되돌려 주는 것을 뜻한다.
10 그것은 거의 창조 당초부터 배반적인 인간의 뜻이 내게 끼친 쓰디씀을 지워 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인간의 뜻을 하느님의 뜻과 끊임없이 바꾸는 것을 뜻한다. 영혼이 그 자신의 뜻을 꺼리며 나의 뜻으로 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의 뜻은 끊임없이 그를 기쁨과 사랑과 무한한 선들로 채워 준다.
14 그러니 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바로 창조 사업의 목적과 기쁨과 즐거움을 우리 성삼위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다.
5. 모든 피조물에게 가장 큰 선익을 주는 삶
10-45,2 딸아, 나의 뜻은 태양이다. 이런 이유로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도 태양이 된다. 게다가 나는 이 태양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면서 모두에게 유익한 은총과 은혜를 쏟아 부어 준다. 소수의 영혼 속에 있는 이 내 뜻의 태양이 없다면 땅이 나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 되기에 땅과 하늘 사이의 통교를 단절시킬 것이다.
3 그러니 내 뜻을 온전히 이루며 사는 영혼은 세상 속에 있는 태양이다. 자연계의 태양과 다른 점은, 이 태양은 빛과 물적 선으로 혜택을 주는 반면, 영혼에 내재하는 내 뜻의 태양은 영적 은총과 현세적 은총을 다 얻어 내어 영혼들에게 빛을 준다는 점이다.
11-89,9 내 뜻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내 인성의 모든 열매를 소유한 이들이다. 내 인성은 한계가 있으나 내 뜻은 한계가 없으니, 내 인성이 안팎으로 내 뜻 안에 잠겨 살았기 때문이다.
10 그러니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은 내 인성과 가장 근접해 있다. 내 인성을 자기 것으로 삼고 ?? 왜냐하면 내가 내 인성을 그들에게 주니까 ?? 이를 옷 입듯 입은 채 또 다른 나처럼 하느님 앞에 나가 하느님의 정의를 무력하게 하면서 타락한 피조물의 죄를 용서하는 문서를 얻어 낼 수 있는 것이다.
11 그런 이들은 내 뜻 안에서 살기에 내 안에서 산다. 그런데 나는 모든 사람들 안에 있다. 그러므로 그들 역시 모든 사람들 안에서 모두의 선익을 위해서 산다.
12-145,8 그러므로 영혼이 나의 뜻을 그 자신의 것으로 삼으면, 모든 것을 행하고,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보속하고 사랑하며, 모든 사람이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그 모두에게 각각으로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이다.
13-11,5 내 뜻이 모든 곳에 있기에 내 뜻 안에서 행해지는 행위들도 모든 곳에, 곧 하늘과 땅에 흘러든다. 이 행위들은 과거 속으로 흘러든다. 내 뜻이 과거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속으로 흘러든다. 내 뜻이 그 활동을 조금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 속으로도 흘러든다. 내 뜻이 영원무궁토록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6 내 뜻 안의 행위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게다가 내 뜻은 언제나 새로운 만족을 내포하므로 이 행위들도 저 복된 이들에게 새로운 만족이 된다. 성인들이 내 뜻 안에서 행하지 않았던 행위들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행위들이 모든 피조물에게 새로운 은총이 되는 것이다.
< 묵상과 실천 >
하느님 뜻 안의 삶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한 최상의 삶임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들의 유익을 위해 하느님 뜻 안의 삶을 살고 싶다고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제3일 죄와 결점에서 해방된 삶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테살 4,3)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1요한 3,9)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1요한 5,18)
우리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면 죄와 결점에서 해방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비참과 악이 사라지고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인간적인 것을 없애고 신적 자질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면 우리의 소망대로 죽어서 연옥에 가지 않고 바로 천국에 들어갈 정도로 완전히 정화될 수 있습니다.
1. 하느님의 뜻 안에 살면 비참과 악이 사라지고 거룩해짐
3-93,3 영혼이 하느님을 위해서 살 때면, 마음이 흔들리거나 쓰라리거나 항구하지 못할 수가 있고 격정들의 무게를 느끼거나 세속적인 일에 말려들 수도 있다. 그러나 영혼이 하느님 안에서 살 때면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아니고말고! 그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7-27,6 오, 거룩하신 뜻이시여, 당신은 얼마나 경탄스럽고도 사랑스러우며 얼마나 매력적이고 아름다우신지요! 당신 안에 있으면 저의 모든 비참과 악이 사라지고 하느님의 모든 선으로 충만한 새로운 존재를 얻는 것 같습니다.
8-3,3 나의 뜻은 언제나 거룩하다. 그러므로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도 거룩해진다. 그는 내 뜻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즐기고 맛보며 또 생각한다. 설사 과거에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내 뜻이 담고 있는 아름다움과 거룩함과 무한한 은혜에 싸여 있으므로 과거의 추함을 잊어버리고 오직 현재만을 기억한다. 나의 뜻 밖으로 나가지 않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 뜻을 떠나면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에 죄와 비참한 것들을 기억하게 되는데 이는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4 그러니 내 뜻 안에는 죄나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깊이 마음에 새겨 두어라. 만일 그런 것들이 느껴진다면 아직 내 안에 확실히 안착하지 못하고 있어서 틈만 나면 빠져나간다는 것을 뜻한다.
8-8,4 영혼이 이미 내 뜻 안에 있다면, 그것은 그가 들어오기 전 내 뜻과 접촉한 순간에 내 뜻의 빛이 그 한 방울의 암흑을 녹여 없애고 내 뜻 안으로 들어오게 했음을 뜻한다. 또한 내 뜻의 열이 그의 냉정한 마음과 메마름을 없애고, 내 뜻의 신적 풍미가 그의 역겨운 맛을 없애고, 나의 행복이 그를 모든 불행에서 벗어나게 했음을 뜻한다.
2. 인간적인 것을 없애고 신적 자질로 살아감
9-32,2 딸아, 너는 나의 뜻 바깥으로 절대 나가지 말아라. 이 뜻은 영혼에게 새로운 세례와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니, 세례성사 자체보다 더 위대하다. 성사들 안에는 내 은총이 부분적으로 있는 반면에 나의 뜻 안에는 은총이 전체적으로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즉, 세례성사로 원죄는 없어져도 격정과 나약은 그대로 남지만, 나의 뜻 안에서는 영혼이 그 자신의 의지를 없앰으로써 격정과 나약과 인간적인 요소를 다 없애고 덕행과 힘 및 모든 신적 자질로 살아가는 것이다.
11-46,3 나의 뜻도 그렇다. 이는 영혼의 모르핀이어서 지성이며 자애심이며 자존심 따위 온갖 인간적인 것들을 잠재운다.
4 내 뜻의 이 모르핀은 불쾌감이나 모욕감이나 괴로움, 혹은 내적인 아픔마저 느끼지 못하게 하면서 영혼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그를 수면 상태에 놓아두기 때문이다.
5 하지만 이것으로 인해 영혼은 그 고통을 속속들이 다 겪은 것과 같은 결과와 공로를 입게 된다. 아니 훨씬 더 큰 결과와 공로 속에 있게 된다.
11-47,9 내 뜻 안으로 뛰어오른다면, 냉담이 불로, 곤궁이 부로, 나약이 힘으로, 우울이 기쁨으로 바뀐 것을 보게 될 것이다.
11-64,14 나의 뜻을 소유하는 사람은 전부를 소유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삶은 끝났다고 ?? 나약과 유혹과 격정과 비참은 끝났다고 말할 수도 있다.
15 내 뜻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모든 것이 권리를 잃게 되는데, 그것은 내 뜻이 모든 것을 지배하며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3. 연옥에 가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정화됨
11-67,26 딸아, 나의 뜻을 이루는 영혼은 절대로 연옥에 가지 않는다. 나의 뜻이 그의 모든 것을 정화하기 때문이다.
12-16,8 딸아, 가장 고귀하고 가장 숭고하며 가장 위대하고 영웅적인 행위는 나의 뜻을 행하고 나의 의지 안에서 움직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그래서 다른 어떤 것도 필적할 수 없는 이 행위에 나의 모든 사랑과 관대함을 장려하게 펼친다.
9 영혼이 이를 행하기로 결단을 내리면, 나는 그의 뜻과 나의 뜻이 만나 서로 안에 녹아들어 하나가 되는 동안, 내 의지 안에 그가 보존되는 영예를 주기 위하여, 그에게 더러운 점이 있으면 깨끗하게 한다.
10 또한 그가 본성적인 가시들로 뒤덮여 있으면 내가 그 가시들을 흩어 없애고, 그에게 죄라는 못들이 박혀 있으면 그것들을 부수어 가루로 만든다. 악한 것은 그 무엇도 내 뜻 안에 들어올 수 없는 까닭이다.
11 더구나 나의 모든 속성들을 옷처럼 입혀 그의 나약을 강함으로, 무지를 지혜로, 곤궁을 풍요로 바꾸어 준다. 기타 모든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한다.
12 사람이 나의 뜻 안에서 하지 않은 행위들 속에는 늘 그의 무엇인가가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의 뜻 안에서 행한 행위들 속에는 그 자신이 완전히 비어 있으니, 내가 나 자신으로 그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12-118,2 내 뜻을 행하며 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악의 샘이나 씨나 근원이 없다. 내 뜻이 거룩함의 샘, 모든 선의 씨, 불변적이고 불가침적인 영원한 근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3 그러므로 이 샘 안에 사는 사람은 거룩하고, 악이 더 이상 범접하지 못한다. 설사 무엇인가에 악이 나타나 보인다고 하더라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이 사람의 근원과 씨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 묵상과 실천 >
하느님 뜻 안의 삶은 죄와 결점에서 해방된 삶, 죽어도 연옥에 가지 않고 바로 천국에 갈 수 있는 삶임을 묵상하며 나에게도 그런 삶을 주시도록 청합니다.
제4일 모든 성인을 능가하는 성덕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레위 11,44)
하느님의 의지를 받아 그분의 뜻 안에 산다는 것은 모든 성인의 성덕을 능가하여 성덕의 절정에 이르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신적인 성덕을 지니고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이들은 천상의 복된 이들이 차지하는 만족과 영광을 모두 차지할 수 있습니다. 이성인들의 수는 많지 않으며 순교자들과 다른 성인들의 공로를 능가하는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고 산 루이사에게 모든 이들보다 높은, 심지어 사도들과 사제들보다도 높은 수위성을 부여하셨습니다.
1. 하느님 뜻 안의 삶은 모든 성인을 능가한 성덕의 절정
5-24,5 하지만 이 놀라운 일을 지속시키며 보존하는 것, 그 영혼을 늘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감싸 주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이다……. 불완전의 ?녹?을 모조리 없애 주어 그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지식을 얻게 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나의 뜻이다. 은총 안에 그를 불러 굳건히 자리잡게 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나의 뜻이다. 그런즉 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성덕의 절정이며 영혼 안에 끊임없이 은총이 자라게 하는 것이다.
7-3,2 딸아, 사람의 모든 덕행은 다양하면서도 확고한 높이의 성벽을 이룬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의 성벽은 너무나 높고 깊어서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이다. 이는 순금의 견고한 성벽이다. 하느님의 뜻 안에, 다시 말하자면 하느님 안에 있는 영혼이어서 하느님께서 친히 돌보시기 때문에 어떤 재난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3 하느님을 대적하고서는 도움이 될 어떤 힘도 없지만, 영혼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고 있으면 자기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분의 빛과 유사한 빛에 감싸여 있게 된다. 그리고 천국에서도 다른 성인들보다 한층 더 밝게 빛날 것이기에, 바로 그 성인들에게도 더욱 큰 영광을 입게 할 것이다.
11-11,2 딸아, 나의 뜻은 거룩함 중의 거룩함이다. 내 뜻을 행하는 영혼은, 얼마나 보잘것없고 무지하고 이름 없는 사람이건, 다른 모든 성인들을 능가한다. 비록 비범한 재능과 두드러진 말솜씨와 기적을 행한 성인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3 비하건대, 나의 뜻을 행하는 영혼들이 여왕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 여왕들 섬기는 종들과 같다.
4 나의 뜻을 행하는 영혼들은 겉보기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실제로 는 모든 일을 다 한다. 나의 뜻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하느님처럼 은밀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15-25,6 딸아, 너는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이 대수롭잖은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아니다. 이와 반대로 그것이야말로 모든 것이다. 모든 성덕들의 완성이요, 인간 자신과 그 자신의 격정과 주된 원수들에 대한 절대적 지배요,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완전한 승리다.
7 그러므로 사람이 이 초대에 응하면 내가 그로 하여금 다시는 그 자신의 뜻을 알고자 하는 마음 없이 내 뜻 안에서 살게 한다. 그러면 내가 그에게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없고, 그도 내게 더 이상 줄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 내 모든 열망이 채워지고 내 계획이 실현된 것이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그와 내가 함께 즐거워할 일뿐이다.
2. 복된 이들이 누리는 만족과 영광을 모두 차지할 신적인 성덕
11-23,2 딸아, 내 뜻을 행하는 영혼은 하나의 하늘이다. 그러나 이 하늘에는 태양도 별도 없다. 내가 바로 태양이요, 이를 아름답게 꾸미는 별들도 나 자신의 덕행들이기 때문이다.
3 이 하늘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매혹되는데 나는 더욱 그렇다. 나 자신이 그 중심에서 태양으로 자리하면서 새로운 빛과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은총을 화살처럼 끊임없이 쏘고 있기 때문이다.
4 태양이 빛날 때면, 다시 말해 내가 영혼을 나의 은사들로 채우고 어루만져 주면서 나 자신을 나타내 보일 때면, 이 하늘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11-67,17 나의 뜻 안에 있는 단 한 순간이, 네가 평생토록 할 수 있는 모든 선행보다 더 값진 것이니 말이다.
11-129,3 그런 이들은 내 어좌의 보석들이 될 것이고, 하늘의 복된 이들 이 제각기 누리는 만족과 영광을 전부 그들 자신 안에 지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왕들처럼 내 어좌를 에워쌀 것이고, 모든 복된 이들은 그들을 에워쌀 것이다.
12-26,12 오, 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의 아름다움이여! 내가 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앞으로 올 세대에는 어떤 외관을 한 덕행이건 다른 모든 성덕들은 사라지게 하고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성덕만이 다시 나타나게 할 작정이다. 이는 지금도 앞으로도 인간적인 성덕이 아니고 신적인 성덕인 까닭이다.
13 그들의 성덕이 얼마나 태양같이 고결한지 과거 세대 성인들의 성덕 중에서 가장 훌륭한 별들도 무색하게 될 정도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땅을 정화하려고 한다. 현재의 땅은 이토록 놀라운 성덕에 맞갖지 않기 때문이다.
12-92,7 그러니 내 뜻 밖에서 백 년을 사는 것보다 내 뜻 안에서 산 지 하루 만에 더욱 거룩한 영혼이 된다고 해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3. 하느님 뜻 안의 삶을 살 성인들은 많지 않음
12-98,12 그런데 부활은 내 구원 사업의 가장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것은 빛나는 태양 이상으로 내 인성을 영광스럽게 하면서 나의 가장 작은 행위들마저 찬란하고 경이로운 광채로 빛나게 하여, 하늘과 땅이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14 그래서 나의 부활은 내 뜻 안에서 성화를 이룰 영혼들의 상징이다. 지난 세월의 성인들은 내 인성을 상징한다. 그들도 (내 뜻에) 맡기고 살았지만 내 뜻 안에서의 지속적인 행위 능력을 소유했던 것은 아니다.
15 그들에게는 그러므로 내 부활의 태양이 각인되지 않았고, 부활 전까지의 내 인성의 업적만 각인되었다. 따라서 그들의 수는 많아서 거의 별들과 같이 내 인성의 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할 것이다.
16 그러나 내 뜻 안에서의 삶을 살 성인들은 부활한 내 인성을 상징하기에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숱한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어 죽기 전의 내 인성을 보았지만, 내 부활을 본 것은 내적 준비가 가장 잘된 소수의 믿는 이들뿐이었다.
18 그러니 내 부활은 당연히 내 뜻 안에서의 삶을 살 성인들을 상징한다. 영혼이 내 뜻 안에서 행하는 각각의 행위와 말과 발걸음 등이 바로 그가 받게 되는 신적 부활이기 때문이다.
19 그것이 그가 받을 영광의 각인이거니와 그런 영혼은 자기를 벗어난다. 하느님의 신성 안으로 들어가 내 의지의 찬란한 태양 안에 숨어 있으면서 사랑하고 일하며 생각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그가 완전히 일으켜져서 바로 내 영광의 태양에 융화되어 내 부활한 인성을 상징한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 하지만 그렇게 하려는 내적 준비를 갖춘 사람은 극히 드물다. 왜냐하면 영혼들은 성덕에 있어서조차 그들 자신의 어떤 선을 원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내 뜻 안에서의 삶은 자기 자신의 것을 전연 지니지 않는, 곧 일체가 하느님의 것인 성덕이다.
21 영혼들이 이에 맞갖은 준비를 하려면 그들 자신의 선이라는 것도 벗어 버려야 하는데, 여기에 많은 희생이 요구되므로 그들의 수가 많지 않기 마련이다.
13-36,25 많은 영혼들이 영성체를 하며 성체 기적에 참여하는 것은 희생을 덜해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뜻이 그들 안에서 사는 기적이 일어나게 하려면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므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럴 각오로 있는 것이다.
4. 순교자들과 성인들의 공로를 능가하는 삶
12-145,9 대체 누가 그런 정도에까지 도달할 수 있겠느냐? 어떤 덕행도 용맹도, 심지어 순교까지도 나의 뜻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이 ― 모든 것이 나의 뜻 안에서 수행되는 활동보다 아득히 뒤처지는 것이다.
13-6,7 완전히 내 뜻 안에서 살지 않는 사람은 이 태양들에게서 빛과 열과 생산력과 생명을 받는 꽃이나 나무 따위 초목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 이들은 이 아래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바람과 서리와 폭풍우를 맞으며 번식하기도 하고 감소하기도 한다.
8 이와 반대로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태양처럼 모든 것을 뛰어넘고, 모든 것을 이기며 정복한다.
13-38,10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구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성덕 위에 솟아오를 성덕이며, 창조주의 거룩함의 날인을 지닐 성덕이다. 그러므로 완전히 신적인 이 성덕을 위한 준비로 보다 작은 성덕들이 사자(使者)와 전령(傳令)의 행렬처럼 먼저 와야 했던 것이다.
12 내 뜻에서 나온 이 성덕은 내가 인간을 창조한 목적을 이루게 하여 내게 완전한 영광을 돌려줄 성덕이고, 사람으로 하여금 내 뜻과 같은 보조로 창조주께 돌아오게 할 성덕이다.
13 이 일은 땅에서도 영혼 안에 내 나라를 세우는 일이기에 크나큰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왕국을 소유할 작정인 임금처럼 행동한다. 임금은 먼저 가지 않는다. 우선 궁전을 마련하게 한 다음 군사들을 보낸다. 왕국을 정비하고 백성을 준비시켜 임금의 통치를 받게 하기 위함이다. 그다음에 화려한 의장대와 대신들을 앞세우고 마침내 임금이 도착한다. 이것이 임금에 대한 예우다.
14 나도 그렇게 하였다. 내 궁전부터 마련하게 했으니 그 궁전은 다름아닌 교회다. 백성에게 나를 알리기 위해 보낸 군사들은 성인들이었다. 그런 다음 기적의 씨를 흩뿌리는 성인들이 왔으니, 곧 내 가장 가까운 측근인 대신들이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임금으로 와서 통치할 것이기에, 내 첫 거처가 될 영혼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 안에 내 뜻의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즉 너는 내가 다스릴 수 있게 완전한 자유를 다오.
13-53,8 자기 자신의 공로를 세우고 싶어 하는 것은 종이나 노예의 근성이다. 아들이나 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것이 다 자녀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네가 얻을 수 있는 공로는 그 전부를 합쳐도 내 뜻 안에서 하는 행위 하나에 비할 것이 못 된다.
14-65,13 나는 우선 성인들을 길러야 했다. 할 수 있는 한 완전하게 나를 닮아 내 인성의 복사판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이미 이루었다.
14 이제 내 자애는 이를 넘어 더욱 넘치는 사랑을 주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내 인성 안으로 들어와 내 인성의 영혼이 하느님 뜻 안에서 행한 것을 본으로 삼아 그대로 행하기 바란다.
15 앞의 성인들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 안에 한정된 채 내 구원 사업에 협력하여 영혼들을 구원하고 법을 가르치며 죄를 몰아내는 일을 하였다. 그 다음 사람들은 그 한계를 뛰어넘어 내 인성의 영혼이 하느님 뜻 안에서 행했던 바를 그대로 본뜨게 될 것이다.
16 이들은 모든 세기와 모든 피조물을 싸안고 모든 사람 위에 솟아올라 창조 사업의 권리를 회복하리니, 나의 권리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권리도 회복하여 만물을 원초적 기원에로, 창조 사업의 목적에로 데려올 것이다.
14-71,12 아, 딸아, 사람은 자기가 아는 한도만큼만 빛과 은총과 다양성과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것을 아직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13 물론 항상 내 뜻을 실행한 성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성인들은 자기네가 아는 한도만큼만 내 뜻을 소유하였다. 그들이 알고 있었던 것은, 내 뜻을 행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행위이고 나를 가장 영예롭게 하며 그들의 성화를 가져오는 행위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그런 지향으로 내 뜻을 행했고, 그것이 가진 전부였다.
14 과연 내 뜻이 없는 성덕이란 없다. 어떤 선도 어떤 성덕도, 큰 것이건 작은 것이건, 내 뜻 없이는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15 내 뜻은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같다. 도무지 변하지 않는다. 너는 이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내 뜻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에 따라 자신이 지닌 다양한 특색과 효과와 가치를 알린다. 게다가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다양한 특색과 효과와 가치를 영혼에게 준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 것들을 알리겠느냐?
17-27,11 잘 들어라, 딸아,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그 공로에 있어서 순교마저 능가하는 것이다. 순교는 육신을 죽이지만,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손이 그의 의지를 죽이고 거룩한 순교의 고결함을 주신다.
12 그러기에 영혼이 내 뜻 안에서 살기로 결심할 때마다 나의 의지가 그의 인간적 의지를 죽일 타격을 마련하여 고결한 순교가 이루어지게 한다. 사실, 인간의 뜻과 하느님의 뜻은 함께 제휴할 수 없는 것이니 전자가 후자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뜻은 하느님 뜻의 능력에 눌려 소멸된 상태로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13 따라서 네가 나의 의지 안에서 살기로 작정할 때마다 너의 뜻을 바치는 순교를 치를 각오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보아라, 내 뜻 안에 녹아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항구하게 내 지고한 뜻의 순교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데도 네가 그것을 하찮은 일로, 대수롭지 않은 무엇으로 여길 수 있겠느냐?”
1. 문: 성 프란치스코, 성 도미니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과 다른 위대한 성인들은 어떠했습니까? 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십니다(갈라 2,20 참조 - 역주).”라고 한 성 바오로는요? 그리고 우리 주님과 “마음을 주고받은” 저 성인들은 어떠했습니까?
답: 이 모든 성인들은 땅에서와 같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완전하게 그분의 뜻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땅에는 성화 내지 하느님과의 결합 곧 하느님의 뜻과 인간 뜻의 결합에 여러 단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순종, 의탁, 일치, 합일과 같은 단계입니다. 그러나 하늘에는 이보다 한층 더 위대한 것이 있으니 바로 ‘소유’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그의 저서들로 볼 때, 성덕과 하느님 뜻과의 결합에 있어서 그의 시대에 땅에서 이룰 수 있었던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는, 영원 속에, 곧 하늘에는 월등 더 높고 더 좋은 어떤 것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월등 더 높고 더 좋은 것이, 하느님의 세 번째 피앗의 시대에 하느님의 뜻이라는 선물과 함께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하느님의 뜻’이 처음과 같이 또다시 다스리시게 될 것입니다.
성 바오로는 개종하기 전에 은총 상태 바깥에서, 즉 은총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상태로 살았습니다. 개종하여 세례를 받은 뒤 그는 새 사람이 되었고,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서 신비로운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 살면서 하느님과 함께 보편적 영역에 걸쳐 활동하며 자신의 활동을 무한대에 이르기까지 증식시켜 어디든지 뚫고 들어간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성 바오로는 이렇게 푸념했습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로마 7,24 - 역주)?”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로마 7,19 - 역주).”
예수님께서 끔찍이 아끼신 성인들 가운데에는, 예컨대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처럼, 우리 주님과 “마음을 주고받는” 은총을 입은 이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특별한 은총은 예수님과 같은 애정과 열망과 감정 등을 나누어 가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이라는 지고한 선물을 받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2. 문: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루어지게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마태 11,11; 루가 7,28 - 역주).”고 증언하셨고, 성서에 의하면 그는 태어나기 전 어머니 엘리사벳의 태중에서 벌써 성화되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답: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 관한 그 놀라운 증언을 (같은 구절에서) 이 말씀으로 끝맺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 더 크다.”
아담과 하와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하느님의 손에 의해 흙으로 빚어졌고,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창조된 순간부터 그들 안에 하늘나라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오래지않아 잃고 말았습니다. 교만과 불순종으로 하여 하느님을 만유 위에 사랑할 수 없어졌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셨던 당시에는 하늘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녀 안나에게서 태어나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단연 가장 위대한 분이시므로 물론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이셨습니다. 그것은 마리아께서 바로 ‘아버지 뜻의 나라’인 하늘나라를 소유하고 계셨고, 이 나라가 마리아 안에 군림해 계셨기 때문입니다.
3. 문: 천상의 복된 이들인 성인들이 지상에 있는 동안에는, 현재 하늘에서와 같이 그들의 활동을 활기 있게 하는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하느님께 합당한 모든 영광을 곧 하느님께서 받으시기로 작정하셨던 모든 영광을 다 드리지는 못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답: 예, 정말 그렇습니다. 하늘에는 완전한 사랑이 존재하므로 성인들은 하느님께서 받아 마땅한 영광을 전부 누리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지상에 하느님 뜻의 자녀들이 하루빨리 도착하게 되기를 하느님께 끊임없이 간청합니다. 이들이 하느님의 뜻 안으로 들어와서 성인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의 삶을 다시 살며 선행으로 보충함으로써 하느님의 생명과 영광을 가득 채우고, 죄로 인하여 저들의 생명 안에 생긴 빈틈들도 채울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첫 번째 피앗인 창조 명령을 발하시면서 모든 사람을 부르시어, 지상에서 살도록 정해진 기간 동안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 속에서 성삼위께 완전한 영광을 드리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는 모든 사람이 잉태된 순간부터 지상 삶을 마칠 때까지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와 활동으로 부단히 하느님 뜻의 생명을 살면서 하느님께 완전한 영광을 드리도록 예정되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4. 문: 성인들은 이제 하늘에서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고 있으니 하느님께서 받으시기로 작정하셨던 모든 영광을 드리면서 그들 자신의 삶을 완전히 다시 살 수 있을 터인데, 그러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답: 사람이 공로를 쌓을 수 있는 시간은 죽음과 더불어 끝납니다. 마찬가지로 지상 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가 하느님께 합당한 영광을 드리는 것도 죽음과 더불어 끝납니다. 하느님?인간 곧 신인(神人)이신 예수님은 지상 생활을 하시는 동안,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에 의하여, 신적 차원에서 모든 사람의 삶을 다시 사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이면서도 본성상 하느님이시기에, 일개 피조물이라고 하더라도 당신이 하셨던 것을 그대로 할 사람들을 소유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고자 하십니다. 세 번째 피앗의 시대에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하느님의 뜻이 주어지리니, 이로 말미암아 그들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바를 그대로 본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창조 사업의 원초적 목적이 성취될 것입니다.
< 묵상과 실천 >
하느님 뜻 안의 생활은 모든 성인을 능가하는 성덕에 오르고 천상의 복된 이들이 누리는 만족과 영광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삶임을 묵상합니다.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지만 사람들이 희생을 싫어하기에 소수만이 차지하는 삶임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나도 그 소수에 낄 수 있는 은총을 청한다.
제5일 하느님 뜻 안의 행위는 무한히 증가 함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창세 1,3)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창세 1,11)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의 뜻 안에서 하는 각 행위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가치를 지니며 영원히 남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창조력을 지니고 있기에 하느님 뜻 안의 행위는 무한히 불어나며 모든 이에게 영향을 줍니다.
1. 예수님과 함께 한 하느님 뜻 안의 행위는 영속됨
11-62,2 사랑하는 딸아, 영혼이 나의 뜻 안에서 나와 함께하는 모든 것, 곧 기도, 행동, 발걸음 등등은 나와 같은 특성, 같은 생명, 같은 가치를 얻는다.
3 내가 지상 생활 동안 행한 모든 것을 보아라. 그 기도와 고통과 행적이 이를 원하는 사람의 선익을 위해서 지금도 고스란히 수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4 나의 행위는 피조물의 행위와 다르다. 나는 내 안에 창조력을 지니고 있어서 내가 말하면 창조가 일어난다. 이는 어느 날 내가 말로 해를 창조한 것과 같다.
5 이 해는 또한 언제나 빛과 열이 가득하다. 마치 나로부터 계속적인 창조를 받고 있는 것처럼 언제나 줄어들 줄 모르는 빛과 열을 준다.
6 그러한 것이 내가 지상에서 행한 일이었다. 내 안에 창조 능력이 있어서 기도며 발걸음이며 내가 행한 일들과 흘린 피가, 해가 계속 빛을 주고 있는 것과 같이, 여전히 기도와 활동과 걸음을 옮기는 등의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7 그러므로 나의 기도는 계속되고 있다. 영혼들을 구하려고 뒤쫓아 다니는 나의 걸음도 여전히 늘 계속되고 있고, 여타 모든 것도 계속되고 있다.
8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의 행위와 성인들의 행위 사이에 어떤 큰 차이가 있겠느냐?
9 이제, 딸아, 들어 보아라,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일 ?? 아직까지 어떤 피조물도 깨닫지 못한 일이 있다.
10 이는 영혼이 나와 함께, 내 뜻 안에서 행하는 모든 것은, 나의 것임과 마찬가지로 그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11 나의 뜻과 결속하여 나와 함께하는 행위는 나와 똑같은 창조 능력에도 참여한다.
2. 하느님 뜻 안에서 한 행위는 주님과 모든 이에게 영향을 줌
11-64,9 내 딸아, 너는 정말 나를 사랑하고 싶으냐? 그러면 ‘예수님, 저는 당신 뜻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내 뜻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고 있으므로 너의 사랑이 어디서든지 나를 에워쌀 것이고, 너의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하늘 저 높은 데까지 또 땅 밑 저 심연의 밑바닥까지 울려 퍼질 것이다.
11 그런즉 네가 ‘당신을 흠숭합니다. 찬양합니다. 찬미합니다.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하고자 한다면 내 뜻과 일치하여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흠숭과 찬양과 찬미와 감사로 하늘과 땅을 채우게 된다. 내 뜻 안에서는 이것이 단순하고 쉬우면서도 어마어마한 결과를 내는 말이 되는 것이다.
11-101,2 딸아, 네가 모든 이의 입맞춤을 다 내게 주고 싶거든 나의 뜻 안에서 내게 입 맞추어라. 나의 뜻은 창조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하나의 행위를 원하는 수만큼 많은 행위로 증식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3 네가 이와 같이 하면, 모든 사람에게서 입맞춤을 받는 듯한 기쁨을 나에게 주고, 모든 사람을 데려와서 내게 입맞춤을 하게 한 것과 같은 공로를 얻게 될 것이다. 한편 모든 피조물도 그 마음의 준비에 따라서 이 입맞춤의 효력을 입게 될 것이다.
4 나의 뜻 안에서 행하는 행위는 하나의 행위라고 할지라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선을 내포한다.
11-130,7 “나의 뜻 안에서 행해지는 행위는 극히 단순한 행위이다. 그리고 단순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다.
8 태양의 빛도 그렇다. 단순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 그러나 태양은 하나일 뿐이다. 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단 하나의 행위는, 지극히 단순한 빛과도 같이, 모든 마음과 모든 일과 모든 사람 안에 퍼져 나간다. 그러나 행위는 하나일 뿐이다.
9 나 자신도 그렇다. 지극히 단순한 존재이기에 단 하나의 행위와도 같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포하는 행위이다. 발이 없어도 모든 이의 발걸음을 이루고, 눈이 없어도 모든 이의 눈과 빛이 된다.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지만 애써 힘들이지 않고 지치는 법 없이 그 모두에게 작용하는 행위를 준다.
10 그러므로 나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은 단순해지고, 나와 함께 모든 사람 안에서 그 자신을 불어나게 하여 모두에게 선을 가져다 준다.
11 오,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은 행위이건, 나의 뜻 안에서 행해지는 행위들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깨닫게 된다면 오죽 좋겠느냐! 그들은 단 하나의 행위도 그들에게서 빠져나가지 않게 할 것이다.
3. 하느님의 뜻 안의 행위는 무한하게 불어남
12-28,10 반면에 내 뜻 안에서 행해지는 행위들은 나의 뜻만큼이나 고상하고 신성하며 끝없고 무한하다. 그러한 행위들은 나의 행위들과 유사하므로 나는 나의 행위들과 같은 가치와 사랑과 능력을 부여한다.
11 또한 그것을 모든 사람 안에 불어나게 하고, 모든 세대와 시대를 통하여 확장시킨다. 사소한 행위라 하더라도 상관없다. 내 행위들이 반복되고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12-77,12 나의 의지는 이 뜻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무한하게 할 능력이 있고, 피조물의 행위를 영원한 행위로 드높이며 바꿀 능력이 있다. 사실 나의 뜻 안으로 들어오는 만물은 그 자체의 시작과 한계와 작음을 잃는 대신 영원하고 무한하며 무변한 성질을 획득하기에, 그들의 행위들도 내 뜻과 같은 성질이 되는 것이다.
13 그러니 너는 나의 뜻 안에서 큰 소리로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외쳐라. 그러면 내가 내 영원한 사랑의 선율을 들을 것이고, 창조되지 않은 사랑 안에 숨은 창조된 사랑을 느낄 것이다.
14 또한 내가 피조물에게서 영원하고 무한하고 무변한 사랑으로 사랑받는 것을 실감하리니, 이는 내게 합당한 사랑 ― 모든 이의 사랑을 내게 보상하며 또 보상할 수 있는 사랑일 것이다.
12-110,10 너는 어떻든 결코 내 뜻을 떠나지 마라. 내 의지는 영원하기에 내 뜻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도 영원하고 무한하며 끝없는 가치를 얻는다. 그것은 없어지는 법 없이 계속 증가하는 재산과 같다.
13-8,4 태양보다 더욱 그러한 것이 나의 뜻이다. 영혼이 내 뜻의 불타는 듯한 광선 안으로 들어오면 생명을 받는다. 그리고 그가 내 의지 안에서의 행위를 거듭하다 보면, 어떤 때는 나의 아름다움을 받고, 어떤 때는 나의 온유와 풍요한 생산성을, 어떤 때는 나의 선성과 성성(聖性)을 받는다.
5 그러므로 내 뜻의 광선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더 많은 신적 속성들을 받는다. 오, 얼마나 다양한 아름다움들을, 얼마나 생생한 빛깔들을, 얼마나 숱한 향기들을 획득하게 되는지!
6 만일 다른 사람들이 이러한 영혼들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이들이 그들의 지상 낙원을 이룰 것이다. 그 아름다움이 그토록 대단한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나의 반영이요, 나의 참모습이다.
4. 무한한 창조력을 지닌 하느님 뜻 안의 행위
13-13,2 딸아, 내 뜻의 딸아, 나는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나머지 내가 친히 보호자가 되어 그를 내 팔 안에 피신케 한다. 그리고 단 하나의 행위도 잃지 않도록 엄중히 지킨다. 그가 행하는 각각의 행위마다 그 안에 바로 나 자신의 생명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3 (나의) ‘피앗’은 만물을 낳았고, 만물은 이 ‘피앗’에서 계속적인 보존력을 받는다. 내가 내 ‘피앗’을 거두어 버리면 만물은 무로 돌아갈 것이다. 그것이 변함없이 본래대로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것은 나의 ‘피앗’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4 하지만 나는 또 다른 ‘피앗’을 거듭거듭 반복하지는 않았다. 내가 그렇게 했다면 각각 서로 다른 새 하늘들이, 새 태양들과 별들이 더 많이 나타났을 것이다.
5 반면에 영혼이 내 뜻 안에서 활동할 때에는 내가 ‘피앗’을 거듭거듭 발한다. 그러므로 새 하늘들이, 새 태양들과 별들이 늘어난다. 또한 영혼은 지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 하늘들은 사랑의 새 하늘들이요, 영광의, 빛의, 흠숭의, 지식의 새 하늘들이다.
6 이들이 얼마나 다양한 아름다움을 이루는지 나 자신이 황홀에 잠길 정도이고, 온 천국이, 성인들과 천사들이 그 영혼에게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이다. 그가 지닌 각양각색의 하늘들을 감탄하는 사이에 또 다른 새 하늘들이, 저마다 다른 것보다 더 아름다운 새 하늘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7 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나라가 내 뜻 안에서 사는 그 영혼 안에 그대로 반영됨을 보는 것이다.― 무한대로 불어나는 새로운 것들의 그 다양한 모습을.
8 그런즉 내가 어떻게 잠시라도 이 영혼을 지키지 않고 방심할 수 있겠느냐? 그의 행위는 단 하나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천지 만물 자체보다 더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냐? 사실 하늘이나 태양은 지성이 없으므로 그 자체의 가치는 없다. 모든 가치는 나의 것일 따름이다.
9 이와 반대로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은 지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의 뜻이 나의 뜻 안으로 흘러든다. 내 ‘피앗’의 능력이 그의 뜻을 원료로 써서 이 새 하늘들을 늘리는 것이다.
10 따라서 그는 내 뜻 안에서 활동함으로써 나에게 새 조물들을 빚어내는 즐거움을 안겨 준다. 그의 행위들이 내 뜻의 생명 및 내 의지의 놀라운 일들의 나타남이니, 곧 내 ‘피앗’의 새로운 반복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영혼을 내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13-40,1 딸아, 내 뜻 안에서 수행되는 행위는 단 하나의 행위라 할지라도 여간 대단한 것이 아니다! 보아라, 네가 만약 태양에게, ‘지평선 위로 떠오른 이래, 그대는 얼마나 많은 씨앗들이 맺히게 했으며, 그 씨앗들 중 얼마나 많은 씨앗들을 불렸나요?’ 하고 묻는다면, 태양도 다른 어느 피조물도, 아무리 지식이 많은 사람도, 그것이 맺게 하거나 증식시킨 씨앗의 수가 얼마인지 그 근삿값도 대지 못할 것이다.
2 그런데 내 뜻 안에서 수행되는 행위는 인간적인 씨앗이 아니라 신적인 씨앗을 무한대로 불어나게 하기에 태양을 뛰어넘는다. 오, 그 풍성한 생산력과 증식력이 태양보다 얼마나 월등한지!
3 그리하여 영적 세계 안에 쇄신이 일어나고, 그 조화로운 화음이 모든 이의 마음을 끌 정도로 아름답다. 내적으로 잘 준비된 이들은 이 화음을 들으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수많은 씨앗들처럼 효과가 천만 가지로 나타나는 것이다.
4 게다가 내 뜻 안에 수행되는 행위는 창조력도 지니고 있기에, 인간의 유한한 정신으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씨앗을 창조한다. 따라서 그러한 행위들은 창조력을 지닌 신적 씨앗들이서 태양 이상으로 풍성하게 씨앗이 맺히게 할 뿐더러 씨앗을 창조하여 무한대로 불어나게 하기도 한다.
14-36,4 사람은 자기가 소유한 것만 남에게 줄 수 있다. 아무리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소유한 것 이상을 줄 수는 없다. 한데 내 뜻은 무한성을 지니고 있어서 원하는 수만큼 행위를 불어나게 하는 능력이 있었고, 영원성을 지니고 있어서 창조된 당초와 마찬가지로 종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물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길이길이 존속하게 할 수 있었다.
5 이런 이유로 내 뜻의 능력은 내가 잉태된 첫 순간부터, 존재하게 될 모든 사람들과 같은 수의 잉태를 빚을 수 있었고, 내 말과 생각과 행위와 발걸음을 증가시켜 첫 사람에서부터 마지막 사람에 이르기까지 퍼져 나가게 할 수 있었다.
6 내 영원한 의지의 능력은 또한 내 피와 고통들도 끝없는 바다로 바꾸어 모든 사람이 이를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만일 이 지고한 뜻의 놀라운 능력이 없었다면, 나의 구원 사업은 개인적이고 제한적이어서 오직 몇몇 세대만을 위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7 그런데 내 뜻은 변함이 없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다. 더구나 나 자신이 지상에 왔기에,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뜻을 다시 묶게 되었다.
8 이 결속의 끈 밖으로 달아나지 않는 영혼에게는, 곧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며 이 뜻이 자신을 앞서고 동반하며 따라다니게 함으로써 자기의 행위를 내 의지 안에 포함시키는 영혼에게는, 나에게 일어난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9 보아라, 네가 네 생각과 말과 행위와 보속을, 또 네 작은 사랑을 내 뜻 안에 녹아들게 하고 있을 때면, 내가 그것들을 확대하며 증가시킨다. 그러면 그것이 사람들의 각 생각과 말과 행위 하나하나에 대한 해독제가 되고, 각각의 죄에 대한 보속이 되고, 하나하나의 사랑을 대신하는 사랑, 곧 내게 합당한 사랑이 된다.
15-25,1 “딸아, 나의 신성은 외부로 드러나는 사업을 하기 위해 활동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것을 원하기만 하면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이 곧 행하는 것이다. 얼마나 위대하고 훌륭한 사업이건 원하는 것만으로 밖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2 반면에 사람은 그것을 원하면서도 노력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런데, 내 뜻을 자기 것으로 삼고 마치 왕궁에서 살듯이 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피조물로서 수용할 수 있는 한도만큼, 내 신성과 같은 능력이 주어진다.
문: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이 당신 안에서 자유로이 활동하실 수 있게 해 드렸다는 것은, 그분의 모든 행위가, 외관상 전형적인 사람의 행위로 보이는 것까지도 죄다 신적인 행위였음을 의미합니까?
답: 그렇습니다. 그분의 모든 행위는, 눈의 깜박임 같은 극히 사소한 것도 온통 신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점이 예수님의 거룩함과 성인들의 성덕 사이의 차이를 설명해 줍니다. 인간 활동의 모든 존엄성은 그 활동을 유발하는 의지 곧 뜻에 뿌리박혀 있습니다. 성인들의 활동은 은총으로 강화된 인간적인 뜻에서 발생하지만, 은총으로 강화되었다고 해도 인간적인 뜻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마리아 안에서는 신적인 뜻이 그분들의 활동을 낳으십니다. 그러니 무한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 묵상과 실천 >
하느님의 뜻 안에서 행해진 행위는 영원히 지속되고 모든 이에게 영향을 주며 무한하게 불어나는 행위이고 창조력을 지닌 행위임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그런 신적인 행위를 하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제6일 하느님 뜻 안의 삶은 최상의 선물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요한 14,12)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사람은 예수님의 기질을 입고 생활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일을 하는 다른 그리스도가 됩니다. 따라서 다른 그리스도가 되는 하느님 뜻 안의 삶은 최상의 삶이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최대의 기적이고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성모님께서 받으신 하느님 뜻 안의 삶은 그분의 모든 특은들을, 심지어 원죄 없으신 잉태의 특은까지도 능가하는 은혜입니다.
1. 주님의 기질을 입음
11-5,7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자기의 기질을 잃고 나의 기질을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에게는 유쾌하고 매력적이며 고귀한 기질이, 이와 동시에 어린아이같이 단순한 기질이 보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모든 면에서 나와 비슷해 보이는 것이다.
8 뿐만 아니라, 원하는 만큼 또 필요한 만큼 자기의 기질을 지배하는 능력을 지닌다. 내 뜻 안에서 살고 있어서 내 능력에 동참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자기 자신도 소유하며, 상황에 따라서 또 대하는 사람에 따라서 내 기질을 입고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다.
11-72,5 그러므로 내가 온전히 나의 의지로 사는 영혼들을 찾아내면, 그들이 내 인성을 ?? 그 시간과 장소와 상황과 심지어 고통도 대신하게 된다. 나의 의지가 그들 안에 살아 있기에, 내가 내 인성을 썼던 것과 꼭 같은 모양으로 그들을 쓰기 때문이다.
2.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것은 다른 그리스도가 되는 것
11-109,4 그런데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은 나의 이 상처를 자기 자신의 것인 양 생생하게 느낀다. 그래서 눈물을 쏟으며 기도하고, 가련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고통이건 다 겪고 싶어 함으로써 내 사랑의 상처가 사람들의 죄로 인해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한다.
5 아, 딸아, 이러한 눈물과 기도와 고통과 보속이 내 상처를 달래고, 빛나는 보석들처럼 숱하게 내 가슴에 몰려든다. 나는 이 보석들을 가슴에 지니고 있음을 자랑삼아 내 아버지께 보여 드린다. 아버지께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게 하기 위함이다.
6 그러므로 그런 영혼들과 나 사이에는 신적인 피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그들의 인간적인 피를 태워 없앤다. 또한 나의 상처와 생명에 참여하면 할수록 이 신적인 핏줄이 그들에게 더욱더 널리 퍼진다. 어찌나 널리 퍼지는지 이윽고 그들이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7 그러면 나는 아버지께, ‘저는 하늘에 있지만, 땅에도 다른 그리스도들이 있습니다. 저와 같은 상처로 아파하고 저와 같이 눈물 흘리며 고통 받고 기도하는 등등의 일을 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자비를 땅에 쏟아 부어야 합니다.’ 하고 거듭 말씀드린다.
8 아, 내 의지 안에 살면서 내 상처를 나누는 이 사람들만이 땅에서 나와 비슷하고, 하늘에서도 내 인성과 같은 영광을 나누며 나와 비슷하게 될 것이다.
11-130,2 딸아, 영혼이 나의 뜻 안에 있는 한, 그가 땅에서도 신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나는 영혼이 내 뜻 안으로 들어와서 이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내 인성이 내 뜻 안에서 행했던 바를 내 뜻 안에서 거듭하는 영혼들을 보는 것이 여간 기쁘지 않은 것이다.
3. 최상의 행위이며 최대의 기적인 하느님 뜻 안의 삶
11-66,7 나의 뜻은,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최상의 정점이다.
8 영혼이 이 뜻에 도달했을 때는 모든 것을 정복하여 모든 것을 이룬 것이다. 그에게는 이 높은 것들 위에서 살면서 이를 즐기고 나의 이 뜻을 더욱더 깊이 이해할 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12-132,7 내 뜻 안에서 수행되는 행위는 언제나 다른 모든 것을 능가하는 최상의 행위이다. 내 뜻 안에서 행해졌으므로 영원의 범주 안에 드는 행위이니, 이것이 으뜸가는 위치를 잡고 모든 인간적인 행위들을 뒤처지게 한 채 항상 맨 앞에서 달리기 때문이다.
8 그러한 행위들은 시간적으로 앞서건 뒤서건, 이 시대건 저 시대건, 혹은 행위자체가 크건 작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의 뜻 안에서 행해진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인간 행위들 가운데 항상 으뜸이고 그 모든 것 앞에서 달리기에 충분한 것이다.
13-4,5 딸아, 나의 전능이 행할 수 있는 최대의 기적은 영혼이 내 ‘피앗’ 안에서 사는 것이다. 너는 나의 뜻이, 거룩하고 무한하며 영원한 뜻이 일개 피조물 안으로 내려오는 것과 내가 나의 뜻과 그의 뜻을 결합함으로써 그를 내 안에 녹아들게 하여 그의 모든 행위의 ― 더없이 하찮은 행위까지도 ― 생명이 되는 것이 사소한 일이라 생각하느냐?
6 그러니 그의 심장 박동과 말과 생각과 활동과 숨이 그 안에 살아 계신 하느님의 것이 된다. 겉보기에 일개 피조물에 불과하지만 그는 자기 마음속에 하늘과 땅을 숨기고 있다. 내가 내 ‘피앗’보다 더 큰 은총과 더 놀라운 기적과 더 영웅적인 성덕을 줄 수 있겠느냐?
4. 하느님 뜻 안의 삶은 가장 위대한 선물
14-73,23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현세에서 충분히 행복하게 살다가 천국으로 옮아가 더욱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17-14,16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는 선물들 중에서 가장 큰 선물이다. 나의 선성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한층 더 크게 펼치기를 원한다. 그들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더 이상 줄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주었으므로 이제 나의 뜻을 선물로 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소유함으로써 자기네가 소유하게 된 위대한 선을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다.
18-18,11 딸아, 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과연 하나의 선물이다. 선물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선물을 소유하는 것이다.
12 이 선물은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순간마다 증가하는 화폐요, 꺼질 줄 모르는 빛이며, 지지 않는 태양이다. 그리고 영혼으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신적 질서 안에 정하신 자리, 곧 창조된 만물 안에서 왕이라는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게 한다.
23-11,1 하느님의 ‘피앗’ 안에 온전히 맡기고 있노라니 내 작은 마음이 이 피앗의 거룩함과 아름다움과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의 빛에 푹 잠겨 있는 느낌이었다.
2 하느님 자신을 매혹할 정도로 모든 선의 원천을 소유하는 것, 모든 기쁨의 한없이 넓은 바다를 소유하는 것, 다함없는 아름다움 곧 신적 아름다움의 모든 매력을 소유하는 것, 그리고 하느님의 의지가 영혼을 다스리시도록 하면서 이 의지 안에서 사는 것 ― 이는 모두 동일한 것이다.
3 ‘하느님의 뜻이시여, 당신은 얼마나 사랑스럽고 흠숭할 만하며 바람직하신지요! 저의 생명 이상이십니다. 당신의 다스리심은 빛의 통치이니, 저에게서 빛이 아닌 모든 것을 비우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성덕의 통치이니, 저를 변화시켜 성인들의 성덕이 아니라 창조주의 성덕 안에 있게 합니다. 그리고 행복과 기쁨의 통치이니, 모든 쓰라림과 근심과 고민거리를 저에게서 멀리 쫓아냅니다. 하지만 피조물이 어떻게 처신해야 그처럼 위대한 나라를 받을 자격을 갖출 수 있겠습니까?’
5. 새롭고도 거룩한 영성의 모범인물들
성령의 능력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다스리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강생의 순간부터 신인으로 (神人,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으로) 사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하느님이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삶을 시간과 공간 안에서 죄를 빼고는 우리와 똑 같은 인간으로 사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 주님은 또한 영원으로부터 “하느님 아버지의 품 안에서” (요한 1, 18) 사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 번, “새롭고도 거룩한” 영성의 모범이 되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당신 자신이 이 세상에서 그렇게 하셨고 그리고 영원토록 그렇게 하시는 것처럼, 이 영성의 모범인물들에게도 “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가경자 콘셉시온 카브레라 데 아르미다 (Conception Cabrera de Armida)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리 주님께서는 아르미다(Armica)에게 “신비스런 강생”의 은총을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이 지상에서 예수님이 사셨던 것같이 살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강생하게 하는 은총은... 은총 중에서도 가장 위대하고 가장 숭고한 것이다. 이 이상 더 숭고하고 위대한 일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은 하늘에서의 일치와 본질이 같은 본성의 일치이다. 다만 하늘에서는 신성(神性)을 가렸던 장막이 벗겨지는 것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신성이 절대로 나를 떠나는 일이 없으므로, 이 일치는 무(nothingness, 無)와 모든 것(all)의 가장 깊은 만남인 것이다. 똑 같은 것이다.”
대략 이십년 후에. 복녀 디나 벨랑제(Dina Bellanger)는 자기 수녀회의 장상의 명령에 순종해서 쓴 글에서 자신의 영적 상태를 비슷한 말로 묘사했습니다.
“나는 말하자면 영원한 방식으로, 그러니까 변하고 지나가는 이 세상의 방식으로가 아니고 변하지 않는 영구적인 방식으로 하느님 속으로 들어 올려진 것을 느꼈다. 그것은 내 영혼이 승복하고 위탁하여 자신을 포기할 수 없게 되었다거나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육체적 존재의 주위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은 계속 일어난다. 그렇지만, 내 영혼은 더 이상 그런 일들에 관여하지 않게 되었고, 예수님 친히 이 모든 사건들을 통제하고 조절하신다. 그분이 모든 것을 보시고, 다 돌보신다. 마치 이제는 내 영혼이 더 이상 내 몸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 같다.
삼위일체이신 나의 하느님께서 그렇게도 큰 사랑으로 내게 베푸시는 이 은총은 하느님의 삶에 참여하게 되는 내 삶을 미리 맛보는 것이다. 내가 미리 맛보는 것이라고 하는 이유는 내가 아직 육신으로는 이 지상에 있으면서도 하늘에 뽑혀 올라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삶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영원하신 하느님에게는 끝이라는 것이 없으며, 그분께는 모든 것이 현재라는 뜻에서 한 말이다. 그분께는 모든 것이 현재이고, 그분 자신도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모범인물들의 삶과 글을 보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영원하신 성부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성부의 뜻과 하나로 일치하는 데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콘치타(Conchita)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안에서는 행위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뜻의 단 한 가지 행위를 영원토록 행하신다. 그분 뜻의 단 한 가지 행위는 일치의 영원한 순간에, 즉 오직 단 한 순간에 모든 시간과 영원, 그리고 모든 인간과 모든 것들을 다 감싸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단 한 순간은 언제나 현재와 과거와 미래로 존재하고 또 언제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반영한다... 너는 이 본질적인 일치 안에서, 이 유일하신 하느님 안에서 살아야 한다. 단 하나의 사랑이신 그분 안으로, 단 하나인 그분의 뜻 안으로 너의 영적 삶을 모두 가져와서 그분 안에서 그분과의 일치 안에서 살아야 한다. 뜻들의 일치의 중심점이 바로 일치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모범인물들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영원의 차원에서 살도록 모든 영혼들을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이 영원의 차원이야말로 그분께서 강생하신 순간부터 골고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온 생애를 살았던 그 차원인 것입니다
문: 하느님의 뜻 안에서 행해지는 행위는 얼마나 위대한 것입니까?
답: 하느님의 뜻 안에서 행해지는 행위는 하늘과 땅보다도 더 위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복된 사람이 하느님의 뜻으로 하여금 자신 안에서 자유롭게 이루시게 한, 하느님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만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행해지는 행위의 가치와 그 면적이 어느 정도인지를 아실 따름입니다.
< 묵상과 실천 >
하느님 뜻 안의 삶은 나를 다른 그리스도가 되게 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최대의 기적이며 가장 위대한 선물임을 묵상한다. 그리고 부당한 나지만 그 선물을 받고 싶다고 주님께 말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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