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강의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려면?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필리 4,6)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으려면
하느님께서 이를 주시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알고 이를 갈망하며 계속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삶에 대한 간절한 원의가 일어나도록 하려면
하느님 의지 안의 삶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자기의 뜻에서 완전히 이탈하고 자기의 뜻이 무화되어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습관화 될 때 선물로 주어집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모든 것을 성모님을 통하여 성삼위의 뜻에 봉헌해야합니다.
제1일 하느님의 뜻을 주고 싶어 하시는 하느님
“그는 불신으로 하느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 더욱 굳세어져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로마 4,20-21)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 뜻 안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느님의 뜻을 간절히 주고 싶어 하십니다.
하느님의 의지를 받아 신적인 삶을 살 무리들이 나타나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선물로 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나 당신의 뜻을 소유하도록 기다리고 계십니다.
1.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심
4-146,2 딸아,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요구할 때에는
그들 안에 당연히 필요한 성향을 불어넣어 그들 자신의 본성을 변화시키면서
내가 원하는 바를 원하게끔 한다.
9-32,7 나는 내 뜻을 기묘하게 내밀면서 사람들이 이를 소유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고 가장 소중한 것이니 말이다.
다른 모든 것은, 설령 더없이 거룩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만큼 내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런즉 영혼이 내 뜻 안에서 살게 될 때야말로 내가 승리감을 만끽할 때이다.
이것이 하늘과 땅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이기 때문이다.
11-11,11 딸아, 나 자신의 뜻에서 내가 얻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누군가가 내 뜻에 관해 말하는 소리만 들어도 기쁨이 북받쳐서
천국의 모든 주민을 불러 잔치를 열게 할 정도이다.
11-125,5 오! 네가 내 뜻 안으로 들어오기를 얼마나 큰 열망으로 기다리고 있는지!
그것은 내가 네 안에서 모든 이의 보속과 배상을 찾아 얻기 위함이다.
11-127,2 딸아, 내 사랑은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이 많아지기를 억누를 길 없도록 열망하고 있다.
이 영혼들이야말로 내가 머무는 처소인 까닭이다.
3 물론 나의 사랑은 모든 이에게 선을 베풀고자 하지만,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은혜를 부어 줄 수가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처소들을, 곧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을 계속 찾아다닌다.
4 그들 안에는 나로 하여금 은총을 쏟아 붓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
그들을 통하여 그들이 사는 지역과 주변 사람들도 이 은총에 참여하게 된다.
5 그러므로 그러한 영혼들의 수가 이 땅에 많아질수록
내 사랑이 더욱 큰 배출구를 찾아내게 되리니,
인류의 선익을 위하여 더욱 많은 은혜를 쏟아 붓게 될 것이다.”
2. 신적인 삶을 살 무리들이 나타날 미래
12-80,22 딸아, 내가 먼저 알려야 했던 것은
나의 인성이 외적으로 행한 일과 겪은 고난이었다.
영혼들을 준비시켜 내 신성이 내적으로 행한 바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피조물은 나의 일을 한꺼번에 다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나 자신을 계속해서 조금씩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23 그러면 나의 고리와 연결된 너의 고리에 다른 영혼들의 고리들도 이어질 터이니,
나는 나의 뜻 안에 살면서
피조물의 모든 행위를 다시 하게 될 영혼들의 무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홀로 나에 의해서만 행해진 채 보류되어 있었던 수많은 행위들의 영광을
피조물에게서도 받게 되리라는 말이다.
24 이들은 그 신분에 따라 동정녀, 사제, 평신도 등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서
더 이상 인간적인 방식으로 활동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뜻 안으로 들어옴으로써 온전히 신적인 방식으로 활동하리니,
그들의 행위는 모든 이를 위하여 불어나는 행위가 될 것이다.
25 나는 그리하여 인간적인 방식으로 집전되고 받거나,
혹은 불경스럽게, 혹은 사욕으로 더러워진 숱한 성사들 및
내게 영예가 되기보다는 불명예가 되는 숱한 선행들 대신,
신적인 성사들과 선행들의 영광을 피조물에게서 받을 것이다.
12-88,10 ‘너의 인간적인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신적인 것을 입어라.
나는 구두쇠가 아니니,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을 빼앗길세라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오히려 네가 전부 가지기를 바란다.
한없이 나를 사랑하여라.
나의 모든 사랑을 가져라. 가져가거라.
그리고 이 사랑을 너의 것으로 만들어라.
나의 능력, 나의 아름다움도 너의 것으로 만들어라.
네가 많이 가져갈수록 네 예수는 더욱 기뻐할 것이다.’
12-89,8 바로 나의 뜻이 네 안의 인간적인 요소를 파괴한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내 뜻의 무한성 안에 너 자신을 던져 넣을 일이다.
너에 대한 내 계획은 높고 고상하며 거룩한 것이다.
9 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도록, 인간적인 생명이 아니고 신적인 생명을 살도록
내가 너를 부르는 이 일에 비하면,
창조 사업이 저만큼 뒤처질 정도이다!
이는 내 사랑의 더욱 큰 분출인 까닭이다.
내 사랑이 피조물에 의해 속박되어 있으니,
더 이상 품고 있을 수 없어진 내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억수로 쏟아 붓는 것이다.
3. 하느님의 뜻을 줄 사람을 찾고 계신 하느님
13-19,4 내가 그렇다. 주고 싶은데 받을 사람이 없다.
그러니 사람들로 인해 쓰라린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슬퍼하는 것이다.
5 하지만, 너는 아느냐,
누가 나의 눈물을 마르게 하고 이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는지를?
그것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사랑과 자녀다운 신뢰로 내 부를 가지는 사람,
나의 식탁에서 먹고 내 옷을 입는 사람이다.
6 나는 그런 이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준다.
그들이야말로 내가 속마음을 털어놓는 이들이요, 내 품에 안겨 쉬게 하는 이들이다.
14-37,5 내 뜻은 스스로 소유한 것을 내어 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럴 기회를 줄 사람을 계속 찾고 있다.
이는 받을 채비가 되어 있는 사람,
즉, 자기 영혼 안에
나의 이 새로운 기쁨을 넣어 둘 작은 자리를 마련하는 사람을 말한다.
6 사람은 내 뜻을 실행함에 의해 내 의지의 문을 열고,
자기 자신의 의지를 비움에 의해
내 선들을 넣어 둘 작은 자리를 내게 마련해 주게 된다.
그리고 내 뜻 안으로 들어와 활동함에 따라 새로운 지복을 쏟아낼 기회를 내게 준다.
7 따라서 나는 내 영원한 의지 안에 들어와 활동할 영혼을 고대하고 있다.
나 자신으로부터 새로운 기쁨을 쏟아내기 위함이요,
내 뜻을 실행하는 이에게 언제나 무엇인가를 주는 하느님인 나를
― 아무리 퍼 주어도 말라 없어지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하느님인 나를 알리기 위함이다.
14-59,12 너는 또 내 뜻의 씨가 어디에 뿌려졌는지도 알고 싶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의 인성이다.
이 씨가 나의 인성 안에서 싹이 트고 세상에 태어났으며 자랐던 것이다.
그러기에 이 씨는 나의 상처들과 피 속에도 보인다.
13 이 씨는 또한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옮겨 심어지기를 원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나의 뜻을 소유하고 나는 그들의 뜻을 소유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창조 사업이 나의 인성뿐만 아니라
피조물 자신을 통하여 그것이 생겨났을 때와 같이 그 기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4.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도록 기다리심
8-12,3 하느님의 뜻은 사람이 하느님을 소유하게 한다.
한데 이 소유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는 순명이다.
16-18,18 그리하여 모든 것이 준비되고 행해졌다.
문을 열고 이 뜻을 인간에게 알려 소유하게 하는 일만 남아 있다.
17-14,13 딸아,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하늘의 복된 이들과 더할 수 없이 근접해서 사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은 내 뜻을 행하며
내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하늘이 땅에서 먼 것과 같이, 아들과 종, 왕과 신하 사이의 거리가 먼 것같이 말이다.
14 게다가 이는 이 통탄할 시대에 내가 주고자 하는 선물이다.
사람들이 단지 내 뜻을 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유하게 하려는 것이다.
17-30,16 그러한 것이 나의 뜻이다.
나의 뜻은 사람들 안에서 살기 위하여 하늘에서 온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주인으로 섬기기는 고사하고 낯선 가난뱅이로 있게 한다.
17 그렇다고 해서 나의 뜻이 영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나를 외인으로 취급해도 나는 그들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서
나의 선과 은총과 성덕을 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9-48,9 아, 딸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또 주려는 원의도 있건만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언제나 고통이요, 가벼워질 가망이 없는 부담이다.
그러니 내 뜻 안에서 움직일 태세로 있는 영혼을 보면,
내가 얼마나 각별히 마음 쓰며 그 영혼 곁에 있는지 모른다!
23-11,11 지금도 나의 사랑은 천지창조 때와 마찬가지로 뜨겁게 흘러넘치고 있다.
그래서 내 뜻의 나라가 피조물 가운데서 그 생명을 지니도록 결정하였다.
찬란한 광채에 싸여 나타나서,
더할 수 없는 관대함으로, 사람들의 공로를 보지 않고
다시 한 번 이 뜻의 나라를 그들에게 주고자 하는 것이다.
23 오, 나의 뜻아, 너는 얼마나 사랑스럽고 장하며 힘이 있는지!
너의 아름다움은 하늘을 매료하고 온 천상 궁궐을 사로잡는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
모두가 행복해하며 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24 오, 모든 것을 황홀케 하는 너의 그 매혹적인 아름다움으로
부디 땅도 황홀케 하려무나.
그 감미로운 매력으로 모든 피조물을 매혹하여 모두의 뜻이 하나가 되고,
성덕도 하나, 생명도 하나,
너의 ‘피앗’도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나가 되게 하려무나.
36-15,3 그러니 이를 일컬어
나의 뜻이 피조물에게 주는 사랑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뜻이 그 자신을 내어 주는 증여자가 되어,
이 뜻의 유산으로 살아가도록 사람들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얼마나 간절히 애원하며 매혹하고 사랑하며 부르는지,
연민 어린 감동을 느끼지 않거나
이처럼 큰 선을 받고 싶은 욕구를 느끼지 않는 것은
마음이 돌같이 굳은 이들뿐이다.
36-32,22 하지만 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자유로이 소유하도록 열려 있다.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거절하지 않는다.
배은망덕하게도 내 뜻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배척하는 사람만이
자발적으로 이것이 박탈된 상태로 살 뿐이다.
우리 성삼위에게 가장 큰 고통을 끼치면서 말이다.
(1925년에 루이사에게 주신 말씀)
“나를 보아라.
나의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나의 고통과 발걸음 하나하나가,
그리고 내가 행한 모든 일들이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너희에게 내 거룩한 뜻을 주기를 원한다.
나의 죽음마저 너희 안에 내 뜻의 생명이 다시 태어나게 하기를 원한다.
누가 이렇듯 아버지다운 사랑이 가득한 나의 방문을 받아들이지 않고
나를 거부하며 쫓아낼 마음이 들겠느냐?
너희가 나를 기쁘게 맞아들인다면,
자녀들 가운데 있는 아버지로서 내가 함께 머물러 있겠다.
그러면 우리는 더없이 큰 일치 안에서 오직 한 뜻으로 함께 살게 될 터이다.
오, 내 사랑하는 자녀들이 나를 에워싸고 모여,
바로 나 자신의 뜻으로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것이 너무나도 간절한 바람이기 때문에,
나는 얼마나 많이 탄식하고 혼절할 정도로 부르짖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또 왕으로서 백성들 가운데서 살기 위하여 와 있다.
이 왕은 그러나
너희에게서 세금을 징수하거나 부담스러운 짐을 지우려고 온 것이 아니다.
아니고말고!
나는 너희의 뜻과 비참과 나약과 모든 악을 내게 달라고 하려고 온 것이다.
너희를 괴롭히고 불행하게 하며 불안에 떨게 하는 모든 것을
내 사랑 안에 숨겨 모조리 태워 없애는 것 - 이것이 내 주권의 실제이다.
자비롭고 평화스럽고 너그러운 왕인 나는
내 극진한 사랑과 부요함과 행복 및 내 평화와 지극히 순수한 기쁨으로
너희를 충만하게 하면서
나의 뜻을 너희의 뜻과 맞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5. 우리가 이렇게까지 고상하고도 높은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까?
첫째,
우리는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러한 신성한 삶에 참여하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믿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콘치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성인들만 골라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처럼 너희들도 완전하게 되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들 모두에게 이 말을 한 것이다.
아무런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이 다 자신들을 성화해야 한다.”
둘째,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완성된 시기”, 전례가 없는 하느님 자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지상의 그리스도의 대리자께서
성모님의 티 없으신 성심의 승리와 평화의 시기가 “박두”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신다.
게다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성 바오로의 편지, 5장 20절은
우리에게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더욱 충만히” 내린다고 보장해 준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시대의 전례 없는 악이
전례 없는 성령님의 쏟아져 내리심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확신 할 수 있다.
1. 문: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이 삶은
위대한 성인들의 성덕도 능가하는 성덕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어떻게 정말일 수 있겠습니까?
답: 하느님의 뜻은 매우 심오합니다.
그분 뜻의 신비를 누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언젠가 큰 성인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 하느님의 뜻 선물은 받을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간절히 주시고 싶어하시고,
우리 어머니 마리아께서도 당신 자녀들이 이를 소유하기를 열망하시니 말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이유입니다.
이 선물을 아담과 하와는 아주 쉽게 소유했습니다.
그 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되찾아 주시려고 그 많은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이리도 위대하신 증여자께서 주시는 선물을 인간이 어떻게 업신여길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지엄하신 그분께 큰 모욕이 되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우리는 그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거나 하려고 생각하는 어떤 행위를 통해서도 그럴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대관절 존재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누가 인생을 살 자격이 있습니까?
누가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누가 영성체로 하느님을 받아 모시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것을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명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분께서 당신 뜻대로 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만일 누군가가 그분의 선물을 받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받게 될 것입니다.
2. 문: 아담과 하와가 그 비할 데 없는 선물을 받을 만한 어떤 일을 했습니까?
답: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창조는 성삼위의 결정의 결과였고,
그것은 말하자면
그분들 밖으로 분출하는 ‘거룩한 사랑’을 받아들일 그릇들을 가지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그릇들은 그 거룩한 사랑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과 성삼위와 같은 뜻으로
그 사랑을 그분들께 돌려드릴 능력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존재할 만해서 존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성도 자유 의지도 하느님의 모상이 되는 것도 천국도 또 다른 무엇도,
특히 하느님의 뜻이라는 선물도, 받을 만해서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존재하기를 원하셨고,
그래서 그들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으려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 묵상과 실천 >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간절히 주고 싶으셔서 줄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것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시도록 청합니다.
제2일 하느님의 뜻을 열망하며 계속 간청함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요한 5,14)
하느님 뜻의 영성은 교회와 세상 안에서
어떤 신분이나 어떤 직업을 가지고 일하든지, 어떤 연령층에 있든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영성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의지에 일치하여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를
하느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영성은 단순히 모든 피조물과 온 교회의 생활에
하느님 뜻의 빛과 사랑의 풍요로움을 촉진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사명과 부르심을 가장 완전한 방법으로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 안에 살기로 결심하고
하느님의 뜻을 열망하며 지속적으로 간청합시다.
1. 하느님의 뜻을 갈망함.
6-14,3 이 유출은 영혼의 갈망으로 인해 이루어진다.
영혼이 나를 갈망하기 시작하면 그 즉시 내가 그 영혼 안에 잉태된다.
이 갈망이 커질수록 나도 그 안에서 더욱더 자라난다.
이것이 내면을 전부 채워 마침내 넘쳐흐를 정도가 되면,
그때에는 내가 그 사람 안에 전적으로 다시 태어난다.
즉, 그의 정신 안에, 그의 입과 작업과 발걸음 안에 다시 태어난다.
7-3,4 오, 딸아, 좀 생각해 보아라,
"하느님의 뜻"이라는 오직 한마디 안에
얼마나 평화롭고 은혜로운 분위기가 스며 있는지를!
그런 환경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만 해도 영혼은 벌써 변화를 느끼게 된다.
신적인 분위기에 감싸여서
그 자신의 인간적인 본성을 잃고 하느님과 같이 변화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1-47,1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그 아름다운 말씀들을 생각하고 있노라니,
그 말씀들이 나타내는 진실성이 한층 더 박진감 있게 영혼 속에 흘러들어,
예수님의 뜻대로
완전히 그분의 것이 되는 은총을 받고 싶은 열망이 북받치고 있었다.
5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라면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교만한 사람이라면 겸손하고 온유하고 사랑 깊고 순종적인 사람이 된다.
요컨대, 가난하던 사람이 부자가 되고,
모든 덕행이 끝없이 높은 성벽을 이루며 그를 에워싼다.
이와 같이, 하느님 안에 잠겨 그 자신의 한계를 잃는 대신에
하느님 뜻의 무한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13-4,10 여기에 나의 ‘피앗’이 너의 생명이 되는 것,
그리하여 네가 나의 뜻만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이 없는 이유가 있다.
내가 네 생명의 중심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2. 하느님의 뜻 안에 살기로 결심함
12-115,2 딸아, 영혼이 나의 의지 안에 들어와 이 안에서 살기로 결심하면
곧바로 모든 의심과 공포가 그를 떠난다.
5 그러므로 내 뜻 안에서의 삶이 가져오는 수많은 선 가운데 하나는 확신 상태이다.
그리고 나의 소유인 모든 것을 자기 소유로 삼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소유한 것을 두려워할 수 있겠느냐?
6 공포, 의심, 지옥은 따라서 길을 잃고,
그 영혼 안에 들어갈 문도 방법도 열쇠도 찾아내지 못한다.
7 더욱이 영혼은 하느님의 의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자아를 벗어 버리기에
내가 왕족의 의상과 함께 나를 옷 입혀 준다.
이 의상이 그녀가 나의 딸임을 보증하며 찍어 주는 인장인 것이다.
12-143,4 또한 영혼이 나의 뜻을 행하겠다는 생각만 해도
위로와 힘을 얻고 변화를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내 뜻을 행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영혼을 모든 선을 얻는 길에 자리하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3.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주시는 사람
2-43,2 나는 일체를 소유하고 있으므로
내게 신뢰를 두고 있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줄 수 있다.
3-25,7 이와 같이 영혼이 신뢰를 가지고 있으면
그가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틀림없이 얻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영혼에게 내 팔을 묶어 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허락하고,
내 마음 안으로 더 깊이 들어오게 하며,
내게 청하는 것을 스스로 가져가게 한다.
10-45,4 딸아, 그런즉 무엇보다도 내 뜻을 소중히 여겨라.
지극히 거룩한 일 속에서건 바로 나의 부재 속에서건,
내 뜻이 너의 생명, 너의 전부가 되기 바란다.
18-18,13 이 선물은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이를 허비하지 않을 사람,
자기 자신의 목숨보다 더 존중하고 더 사랑할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더욱이, 그런 사람은 나의 뜻이라는 이 선물이
일체를 지배하는 최고권을 가지게 하려고 제 목숨마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고,
목숨 자체보다 이를 더 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이 선물에 비하면 자신의 목숨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14 그러므로 나는 우선,
영혼이 결코 자신의 뜻을 행하지 않고 나의 뜻을 행하기를 참으로 원하는지,
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무슨 희생이든지 다 치를 각오가 되어 있는지,
자기가 행하는 모든 일 속에서 언제나 내 뜻을 선물로 달라고 청하는지,
아니면 빌려달라고 청하기라도 하는지를 보고자 한다.
15 그리하여, 내 뜻을 빌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보일 때,
그때라야 나는 내 뜻을 선물로 준다.
왜냐하면, 거듭해서 청하고 또 청하다 보면
그 영혼 안에 이 천상적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16 그리고 이 신적 음식을 빌려서 먹고사는 것에 익숙해짐에 따라
그 자신의 뜻에 대한 맛을 잃게 된다.
미각이 고상해져서 자기의 자아라는 천한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17 그러므로 그 영혼은
자기가 그토록 동경하고 열망하며 사랑해 온 선물을 소유하게 된 자신을 보면서
그 선물의 생명으로 살아갈 것이고,
이를 사랑하며 이에 합당한 존경을 바칠 것이다.
19-59,16 그러므로 내 뜻의 나라를 땅에 다시 세우려면,
이 나라가 보류된 채 공중에 떠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이 무한한 선을 얻으려고 행한 행위들 위에
내 뜻의 나라가 내려와서 건설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1945.1.15 루이사의 편지 - 가엾은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으시는지,
얼마나 많이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시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삶을 선물로 주시기를 그분께 간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4. 새롭고도 거룩한 영성으로 들어가는 단계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려면
성 막시밀리안 콜베가 말한 “성령님과 성모님의 시대”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충만하게 주시려 한다는 것을 믿는 신앙을
우리에게 주시라고
성모님께 제일 먼저 청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전보다 더 훨씬 밀접하게 그분의 하느님으로서의 삶에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바로 “‘새롭고도 거룩한’ 영성”을 사는 삶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첫째 단계이다.
둘째 단계는 성모님과 성령님께
우리를 예수님의 성심에 일치시켜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성부님을 사랑하시듯이 성부님을 사랑하게 되기 위해서이다.
만약 우리가 복녀 디나나 가경자 콘치타처럼 이 기도를 항구하게 계속하면,
성령님께서는
성부님의 뜻이 시간 속에, 그리고 영원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의 원천이시라는 것을
알아보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
예수님의 하느님으로서의 삶에 완전히 참여하기 위한 셋째 단계는
우리 자신을 비우고
우리의 인간적인 뜻의 자립적인 사용과
성령님의 활동을 통하여 우리 영혼 안에 하느님의 뜻이 다스리심과를 교환하는 것이다.
이 교환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단순한 기도가 전부이며,
이 기도는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신 성모님의 중재를 통해서 바치면 된다.
“성부님, 예수님 안에 알려진 당신의 뜻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마리아를 통해서 제 안에서 다스리시게 해 주소서.”
그러나, 이 기도가 성실한 기도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확실하게 고해성사를 통해서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는 그 어떤 생각도 말도 행동도 온 마음으로 다 끊어버려야 한다.
하느님의 뜻은
교회의 가르침, 정당한 시민 법, 또는 우리 생활상의 신분에서 오는 의무로 알 수 있다.
성녀 파우스티나도 이와 똑같이 사랑으로 하느님의 뜻을 의식하고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하느님의 뜻으로 양식을 삼았다.
이것이 나의 음식이다.
내게 필요한 말은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 한 마디이다.
나는 하느님 아버지의 거룩한 뜻을 계속 곰곰이 생각한다.
이 뜻만이 나의 모든 것이며, 나는 이 뜻으로 살고, 이 뜻으로 죽는다.
그리고 이 뜻은 하느님의 거룩한 뜻이다.
이것이 나의 매일의 양식이다.
나의 온 영혼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열심히 듣는다.”
이십세기에 살았던 이 모범적인 영혼들은
사랑으로 항상 하느님의 뜻에 집중함으로서,
예수님의 내적 생활에 완전히 동참하는 첫 단계를 밟았다.
1. 문: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습니까? 누가 그것을 받을 수 있습니까?
답: 우리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또 하느님께서 그것을 주시기를 열망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에는 우리 천상 어머니 마리아를 통하여,
깊은 겸손과 성실한 태도로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뜻을 하느님께 바치면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과 교환해 주시기를 간청해야 합니다.
상호 위탁으로 간주될 수 있는 여기에서
지고하신 뜻이, 곧 거룩하신 뜻이 다스리시면서 자유롭게 활동하시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하신 뜻에 대하여 알아듣게 하신 사람은
아마도 그것을 선물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한 사람을 통하여 이 지식이 소개되게 하신 것은
하느님의 통상적인 방식이기도 합니다.
2. 문: 성인들은 성취했지만
하느님과 합일된 삶을 산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로 보입니다.
이보다 더 고상한 무엇에 도달하기를 어떻게 감히 바랄 수 있겠습니까?
답: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부터 그러했듯이,
성덕이 도달하기에 그토록 어려운 것이 된 것은 결코 하느님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누구든지 쉽게 성덕에 접근할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우리 원조들은 창조된 순간에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서도 최상의 성덕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인성에 영예의 관으로 씌워 주신 이 선물을 보존하는 것이
그들의 신성한 의무였고,
그러한 요구는 채우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나약하고 항구하지 못하며 무질서한 인간적인 뜻이
여러 세대에 걸쳐 길고도 통탄할 지배를 시작했다는 것
이것이 성덕에 도달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이 그처럼 어려운 일이 된 첫 번째 이유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이겼기 때문에 세상의 지배자가 되는 권한을 획득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아 가지고 있음을 확증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에
하느님의 뜻보다는 오히려 사탄의 뜻을 따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참하고 약하고 변덕스러운 우리네 뜻과 맞서 싸워야 할 뿐더러,
태초부터 거짓말쟁이고 살인자인 사탄,
곧 원수 두목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시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은 선물입니다!
그것은 받을 만하거나 획득하거나 끌어들일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그 무엇입니다.
그것이
이제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받을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 선물이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원래의 질서로 사물을 되돌려 놓을 것입니다.
지극히 완전하신 하느님의 뜻이 다시금 다스리게 되실 것이고,
정해진 때가 오면,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일찍,
원수 두목은 지옥에 갇혀 다시는 우리를 괴롭힐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천상이 지상에까지 확장되어
마침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 묵상과 실천 >
교재의 내용 중에 마음에 깊이 들어온 말씀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겠다고 결심하고 그 은혜를 주시도록 간청합니다.
제3일 하느님 뜻 안의 삶에 대한 지식을 추구함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은총과 그분에 대한 앎을
더욱 키워 나아가십시오.” (2베드 3,18)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뜻에 대한 지식이 알려지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주시기에 앞서서
하느님의 뜻에 대한 지식을 먼저 주십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대해 알고 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으려면
하느님 뜻의 생활에 대한 지식을 추구해야 합니다.
1. 하느님 뜻 안의 삶이 알려지길 바라시는 하느님
12-100,14 아! 모든 사람이 내 뜻 안에서의 삶이 얼마나 큰 선인지를 깨닫는다면
이 삶을 살려고 서로 경쟁하련마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를 깨닫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적어서,
대체로 내 안에서 살기보다는 그들 자신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14-42,7 우리의 사랑은
우리 배에서 우리 뜻을 쏟아내어 피조물 안에 맡기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랑은 그것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곧 우리의 뜻을 알아보고 그 진가를 인정하는 사람을 찾고 있다.
우리의 뜻이 우리 안에 낳는 것을 그 사람 안에서도 낳기 위함이다.
8 내가 은총과 내 뜻에 대한 지식을 수많이 주고 있는 이유는,
내 뜻의 거룩함이 영혼 안에 자리하기 전에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사랑과 존경을 받기를 요구하고,
그 영혼 안에 내 뜻의 모든 힘과 능력을 펼칠 수 있기를 요구하며,
내 뜻이 우리 자신의 은총들이 이루는 행렬에 둘러싸이기를 요구하는 까닭이다.
14-43,9 그러나 내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성덕과 이것이 내포하는 효과와 가치
내 창조적인 손이
사람을 나와 닮은 모습으로 그리기 위한 이 마지막 붓질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10 이런 이유로
나는 내가 너에게 말해 온 모든 것이 널리 알려지기를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 네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의 뜻을 억제하고 나를 삼키려 드는 불꽃을 내 안에 가두며
나로 하여금
창조된 만물이 내게 빚져 있는 완전한 영광의 반환을 지연시키게 하는 셈이 된다.
14-59,8 따라서
내 뜻 안에서 사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애타게 바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모든 행위가 내 뜻 안에 펼쳐져 나에게 안식을 줄 침상을 이루지 않는다면,
내가 창조와 구원 사업을 다 이루었다는 말을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15-16,11 딸아, 나의 뜻에 관해서 이제껏 많이 말해 왔지만,
내 영원한 지혜가 네게 단지 그 지식만을 주기 위하여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다.
'아니고말고!
오히려 나의 뜻 안에서 사는 법과 이 뜻 안에 있는 재산을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네가 이 뜻 안에서 걷는다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12 나의 인성은 모든 일을 다 했고, 모든 것을 차지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형제인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 주기 위해서였다.
이와 같이 나는 숱한 세기를 기다렸고, 그러는 사이에 숱한 세대가 지나갔다.
13 지금도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으니,
사람 편에서 그 자신이 생겨난 원천인 내 뜻의 날개를 타고 내게로 돌아와야 한다.
15-41,17 너는 알아야 한다.
내 뜻의 이 실현은
하느님께서 역사해 오신 가장 큰 사업들 가운데 하나일 정도로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그러기에 나는 내 뜻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한다.
이 뜻의 위대성과 그것이 지닌 무한한 선들을
사람들이 사랑하고 존중하며 갈망하게 하기 위함이다.
15-42,16 나는 그 영혼에게, 곧 너에게,
나의 뜻과 이 뜻이 내포하는 선익과 효과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뜻을 온 인류에게 선물로 주기 위함이다.
2. 선물에 대한 지식을 먼저 주시는 주님
18-18,21 따라서
내가 내 뜻을 선물로 주고자 하는 사람에게 선물보다 앞세우는 것은
선물에 대한 지식이다.
지식이 미리 길을 닦는다.
지식이 내가 주고자 하는 선물에 대한 계약이 되는 것이다.
22 그리고
내가 지식을 많이 줄수록 영혼은 이 선물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더 커진다.
그래서 이 글의 저자인 하느님께 이제부터 그 선물이 그의 것이 된다는 것,
즉 그 자신이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는 사실을 확정 짓는
최종 서명을 해 달라고 간청하기도 한다.
23 나의 뜻에 대한 지식이야말로
내가 이 시대에 이 뜻을 선물로 주기를 원한다는 표징이다.
34 그러니 너는 주의를 집중하고,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이 너의 전부가 되게 하여라.
너의 기원인 창조주의 무릎에서 결코 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19-48,3 아들아, 너에게 맡긴 사명은 중대한 것이니 많은 빛을 줄 필요가 있다.
내가 알려 준 것을 네가 명확하게 이해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들은 그 자체로 매우 분명한 것이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드러내는 정도에 따라 효과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4 사실 나의 뜻에 관한 지식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이다.
이 빛은 어리둥절하도록 인간 지성의 눈을 부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력을 강화하고 조명하는 힘으로서,
또 영혼 깊은 곳에
그의 기원과 인간이 창조된 목적 및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질서를 투영하는 힘으로서
이해와 사랑을 받게 될 빛이다.
5 그리고 ‘지고한 뜻’에 대한 나의 말과 표현과 지식은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만큼 많은 붓질이 되어,
영혼을 창조주와 닮은 모습으로 돌아오게 한다.
내가 나의 뜻에 대하여 말해 온 모든 것은 바로 그 길을 준비하기 위함이요,
군대를 이룩하고 뽑힌 사람들을 모으며 왕궁을 준비하고
내 뜻의 나라를 세울 땅을 마련하여
이 나라를 지배하며 통치하기 위함이다.
19-57,4 딸아, 내가 내 뜻에 관해 지금껏 말해 온 모든 것은 너에게 준 선물이다.
사람은 지식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바로 그 지식에 포함된 선을 소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식이 너를 불행하게 할 것이다.
그 선을 알면서도 소유하지 못하는 것이 언제나 마음에 걸릴 테니 말이다.
5 게다가 나는 일을 어중간하게 할 줄 모른다.
철두철미 완벽하게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먼저 영혼을 준비시키고 그 능력을 키운 다음,
지식과 지식에 포함된 선을 함께 준다.
6 내 뜻에 관한 지식은 신적인 것이기에
영혼의 본성에 하느님의 신성과 비슷한 성격이 부여된다.
그러니 영혼은 명령을 기다리지 않는다.
딸 이상으로,
아버지의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원하시는 바를 행하는 것을
영예로 여기는 것이다.
3. 하느님의 뜻에 대한 지식의 역할
23-11,12 단, 사람들이 이(하느님 뜻의 나라)를 알고
그 선들에 대해서도 알기를 바라고 있다.
앎으로써
거룩함과 빛과 행복의 이 나라를 열망하며 소유하고 싶어 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나라를 배척한 것이 하나의 뜻이었던 것과 같이,
이 나라를 부르고 갈망하면서
사람들 가운데로 다시 와서 다스리시기를 촉구하는 것도
또 다른 하나의 뜻일 수 있는 것이다.
13 여기에 내 뜻의 나라에 대한 지식의 필요성이 있다.
어떤 선이라도 그것을 알지 못하면 원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이 바로 내 나라를 알릴 전달자요 선구자인 셈이다.
14 이제 나의 ‘피앗’에 대한 지식이
때로는 태양같이, 때로는 천둥같이,
때로는 번갯불같이, 때로는 드센 바람같이 나타나서,
배운 사람이나 무지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까지도 주목하게 되리니,
그것이 벼락같이 그들의 마음을 치고,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그들을 때려눕힐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지식을 얻게 된 은혜 안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기 위함이다.
15 이는 세상의 참된 쇄신을 이룰 지식이니,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정복하기 위해서 온갖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때로는 화해의 중재자 같은 태도로,
사람들이 과거를 다 잊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것만을 기억하도록
입맞춤을 주고받게 하고, 때로는 승리를 확신하는 전사와 같이,
이 지식을 알려고 오는 이들을 확실히 정복할 것이다.
16 그런가 하면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의 태도를 취하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이 내 거룩한 뜻에 대한 지식에 굴복하면서,
‘당신이 이겼습니다. 우리는 이제 당신 나라의 전리품이 되었습니다.’
할 때가 되어야 비로소 간구하기를 그치는 사람 말이다.
때로는 왕으로서 다스리며 사랑을 고취하여
사람들이 이마를 숙이고 그 지배하에 들어오게 할 것이다.
36-38,7 지식은 생명과 빛을 가져오고 그것이 내포한 선도 가져온다.
알지 못하는 선을 소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마치
볼 눈이 없고, 이해할 지성이 없고,
활동할 손이 없고, 걸을 발이 없고,
사랑할 가슴이 없는 사람과 같다.
8 내 뜻에 대한 지식이 맨 먼저 하는 일은
사람에게 볼 눈을 주어 가련한 소경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니,
보고 알게 하여 지식이 사람에게 주고자 하는 선과 생명을 갈망하게 한다.
지식 스스로 행위자요 관찰자가 되어 그 자신의 생명을 사람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 묵상과 실천 >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뜻에 대한 지식이 중요함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하느님의 뜻 영성교육을 통해
하느님의 뜻에 대한 지식을 주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4일 자기의 뜻을 버림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려면 먼저
자신의 뜻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것이고
하느님의 뜻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자기의 뜻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죽고
자신의 인간적인 뜻을 버리는 희생, 자신의 뜻에 생기를 주지 않는 희생을 할 때
하느님의 뜻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1. 자신의 인간적인 뜻을 버림
1-11,7 네가 너 자신 안에서 가장 먼저 없애야 하는 것은 너의 뜻이다.
네 안에 있는 그것은 선을 제외한 모든 것을 탐하므로 없애야 하는 것이다.
그런즉 내 앞에 너의 뜻을 온전히 희생 제물로 바쳐야
너의 뜻과 나의 뜻이 하나가 될 수 있다.
2-23,7 딸아, 내가 한 영혼에게서 주의하여 보는 것은
그가 자신의 뜻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야
나의 뜻이 그 영혼을 옷 입히고 거룩하게 하며 온전히 나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
9-17,2 딸아, 영혼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짜내야 한다.
사실 영혼은 스펀지와 같다.
자기를 짜내면 하느님에 젖게 된다.
하느님에 젖게 되면 내적으로 하느님의 생명을 느끼게 되고,
따라서 덕행에 대한 사랑과 거룩한 경향을 느끼게 된다.
자기를 이기고 하느님 안에 변모되어 있음을 실감하는 것이다.
12-152,1 딸아, 나의 뜻은 어디든지 있으므로,
이 뜻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고유한) 길이나 문이나 열쇠란 것이 없다.
나의 뜻이 어디든지,
그러니까 사람의 발밑이건 오른쪽이건 왼쪽이건 머리 위건
어디든지 다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2 여기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단지 그 자신의 뜻이라는 작은 돌을 치우기만 하면 된다.
이 돌은 설사 나의 뜻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생판 남남 같아서,
내 뜻에 참여할 수 없고 내 뜻의 효과를 누릴 수도 없다.
사실,
해변의 암석이 바닷물의 흐름을 가로막아 다른 데로 흘러가지 못하게 하듯이,
이 돌도 내 뜻의 흐름을 막는 것이다.
3 그러나 영혼이 자기의 뜻이라는 그 작은 돌만 제거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내 안으로 흘러들고 나도 그 영혼 안으로 흘러든다.
그리하여 그는 나의 모든 선들을,
곧 힘과 빛과 도움 따위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누릴 수 있게 된다.
4 이런 이유로, (여기에 이르는 특별한) 길이나 문이나 열쇠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영혼이 이를 원하기만 하면 일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니,
나의 뜻이 모든 일을 맡아 하며 영혼에게 부족한 점을 전부 채워 주고,
그로 하여금 내 뜻의 무한한 영역 속을 이리저리 거닐게 하는 것이다.
14-38,2 딸아, 그건 의아하게 여길 일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뜻을 완전히 비우지 않은 사람은
내 뜻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얻지 못하기 마련이다.
3 사람의 뜻은 내 뜻과 그의 뜻 사이에 구름이 끼게 하고,
이것이 내 뜻이 지닌 가치와 효과를 아는 데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일지라도 이것이 빛이 아니라는 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14-43,6 내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성덕에는 길이나 문이나 열쇠나 방이 없다.
그것은 만물에게 두루 퍼져 있으니,
누구든지 숨을 쉬기 위하여 마셔야 하고 또 마실 수 있는 공기와 같다.
7 즉, 이를 원하고 자신의 인간적인 뜻을 버리기만 한다면
하느님의 의지가 영혼이 호흡하는 공기가 되어 영혼에게 생명을 주고,
이 의지의 생명의 효과와 가치를 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이처럼 거룩한 삶의 방식을 ― 피조물이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을,
사람들이 어떻게 좋아하며 원할 수 있겠느냐?
15 너의 뜻을 없애 버리면 내 ‘피앗’이 모든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2. 하느님의 뜻 안에서 내 뜻의 죽음, 무화
1-6,4 무엇보다도 먼저 주신 많은 말씀은
대체로 내 마음 속을 정화해야 할 필요성과 나 자신의 무화(無化)에 관한 것으로서
이는 거룩한 겸손의 덕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2-28,5 그러므로 이와 같이 하느님 안에 있는 영혼은
(다른 무엇을) 보거나 탐색하거나 말하는 법 없이 하느님과 함께 걸을 뿐이다.
요컨대, 마치 죽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허무를 깊이 알고 있어서
혼자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하느님 말씀의 끌어당기는 힘에 이끌려 무조건 따라가기 때문이다.
11-24,2 네 자리에, 곧 너의 허무 속에 머물러 있어라.
그래야 모든 것이 네 안에서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
3 하지만 너는 내 뜻 안에서 완전히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통에도 덕행에도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죽어야 하는 것이다.
4 내 뜻이 영혼의 무덤이 되어야 한다.
무덤 속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완전히 사라질 정도로 소멸하고,
바로 이 소멸을 통하여 그것이 새롭고도 더욱 아름다운 생명으로 되살아난다.
5 이와 마찬가지로,
무덤 속에 묻히듯 내 뜻 안에 묻힌 영혼도
그의 고통과 덕행과 영적 선들에 대해서 죽은 후
모든 것 속에서 하느님의 생명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8 나의 뜻은 사랑이요, 사랑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에게는 나의 뜻이 무덤이 되어야 하고,
사랑이 네가 이 묘소에서 나갈 기대를 품지 않도록
너를 가두고 봉인하는 자물쇠가 되어야 한다.
14-43,5 너의 뜻은 나의 뜻 앞에서 사라져야 한다.
3. 자기 뜻에 생기를 주지 않는 희생
17-14,6 그러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의 첫걸음은 무엇을 하는 것이겠느냐?
그것은 영혼 깊은 곳에 신적 질서를 확립하면서
나쁜 경향이나 격정이나 기호 따위 인간적인 것을 비우는 것이다.
17 그러니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보더라도 너는 이상하게 여길 것 없다.
이를 알아들으려면,
거룩한 일에서조차 자기의 뜻에는 생기를 불어넣지 않으려고 하는
최대의 희생을 치를 각오가 서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 뜻의 소유를 실감할 것이고,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의 의미를 손으로 직접 만져 보는 느낌이 들 것이다.
17-30,8 영혼이 자기의 뜻에 생기를 주는 행위를 하나도 하지 않고
그것을 아예 제쳐놓으면,
그때에는 내 뜻이 그 영혼의 주인으로 행동한다.
그 안에 군림하여 명령을 내리며 다스린다.
내 뜻이 마치 자기 자신의 집에 있는 것처럼,
즉,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집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9 그러므로 나는 내 소유가 된 그 집에서 주인으로 행동하며
내 것을 자유로이 관리하고 배치한다.
나의 집인 이상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안에 놓을 수 있고,
집을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피조물이 내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영예와 영광을 받게 된다.
10 이와 반대로
자신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주인으로 행동하며 관리하고 명령하기에,
내 뜻은 가련한 외인처럼 푸대접을 받고 때로는 멸시를 당하기도 한다.
11 내 것을 갖다 놓으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것은,
인간 자신의 뜻이 나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거룩한 일에서조차 이 뜻이 우두머리 행세를 하려고 들기에
내 것은 아무것도 둘 수 없는 것이다.
자기 뜻의 지배를 받으려고 드는 그런 영혼 안에서
나는 얼마나 큰 불쾌감을 느끼는지 모른다!
4. 자기 뜻으로 사는 영혼의 불행한 삶
7-17,3 자기를 짜내지 않는 영혼은 그 자신에 젖은 채 있게 되고,
따라서 부패한 본성에 내포된 온갖 나쁜 결과 내지 온갖 악덕이,
즉 교만과 시기와 불순종과 불순결 등등이 비어져 나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11-65,2 딸아, 두 뜻이 대립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십자가가 된다.
나와 사람들 사이가 바로 그렇다.
그들의 뜻이 나의 뜻과 대립할 때면
나는 그들의 십자가가 되고 그들은 나의 십자가가 되는 것이다.
12-28,9 그러니 얼마나 훌륭한 것이건
내 뜻을 벗어난 행위들이 어떻게 내 마음에 들 수 있겠느냐?
그것은 항상 천박하고 인간적이며 유한한 행위들이다.
12-100,13 내 뜻 안에서 살지 않는 사람은 나의 전부를 포함하지 못하기에
나는 기껏해야 그 안에 거처할 뿐 거기에 내 옥좌를 세울 수는 없어진다.
12-118,6 오직 인간의 뜻만이 모든 악의 씨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니 이것이 어떤 선을 행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선은 악에 오염되어 있어서
이와 접촉하는 사람도 누구나 오염되는 해를 입는다.
15-22,16 이런 이유로 너에게,
‘끊임없이 나의 뜻 안으로 날아올라라.’ 하고 늘 말하곤 하는 것이다.
인간의 뜻 안에는 나약과 격정과 비참이 들어 있어서
나의 영원한 의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장막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죄들도 있다면,
이것이 하느님과 인간의 뜻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는 것이다.
17 그리고 나의 ‘피앗’(Fiat)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다스릴 수 없는 것은
바로 이것이 (곧 인간의 뜻이) 그것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15-37,8 과연 나의 뜻은 어디든지 있다.
그러나 영혼은 인간의 뜻이라는 그늘 때문에
그 강렬한 빛과 열을 느끼지 못하고 이 뜻이 지닌 모든 선도 감지하지 못한다.
11 딸아, 그런데
인간 자신의 뜻이라는 그늘은 얼마나 많은 악을 초래하는지 모른다.
그것은 영혼을 냉혹하게 하고, 무기력과 잠과 태만에 빠져들게 한다.
내 뜻 안에 사는 사람은 정반대의 상태가 되지만 말이다.
16-25,15 네가 보다시피,
인간의 모든 선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데 있고,
모든 악은 인간 자신의 뜻을 행하는 데 있는 것이다.
19-51,3 내 뜻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
그들 자신의 자리나 질서나 목적이 없어질 것이니,
아무 권리도 없이 창조된 세계 안에 쳐들어온 침입자가 될 것이고,
따라서 평화가 없을 뿐더러
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가 될 것이다.
9 오로지 인간만이 우리 창조 사업의 수치이다.
우리의 뜻을 외면한 채
다리를 하늘로 치켜 올리고 머리를 땅에 댄 자세로 다니기 때문이다.
얼마나 기막힌 무질서냐!
인간이 머리를 아래쪽에 두고 땅을 훑으며 돌아다니다니,
얼마나 역겨운 모습이냐!
온통 전도(顚倒)되어 변형되고 말았으니!
11 그런즉 인간이 그 자신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완전한 추락이며 인류 가족 전체의 무질서가 아닐 수 없다.
23-11,22 공기는 사람의 생명이어서 공기 없이는 살 수가 없지만,
좋은 공기와 나쁜 공기 사이에는 그처럼 큰 차이가 있다.
영혼의 공기도 마찬가지다.
나의 뜻이라는 공기는 창조주의 태 안에서 나온 것이기에,
생명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거룩하고 아름답고 튼튼하게 보존하지만,
인간의 뜻이라는 치명적인 공기는
가련한 인간을 흉하게 변모시키고 그 자신의 기원에서 추락하게 하므로,
인간이 동정심을 일으킬 정도로 병약하고 허약하게 되는 것이다.
36-32,21 내 뜻 없이 사는 영혼이
내게 얼마나 큰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지 네가 안다면!
그것은 내 창조 사업 중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만물을 참으로 아름답고 조화롭게 창조한 내가,
인간의 배은망덕으로 말미암아,
가장 아름답게 지은 피조물이 가난하고 허약하며 상처투성이고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한 모습이 된 것을 보아야 하다니!
문: 앞의 질문에 대한 답변 중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아무것도 아님”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 인간은 살과 피와 마음과 영혼과 능력 등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답: 성 바오로는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누가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나 되는 듯이 생각한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갈라 6,3).”
하느님만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유일한 존재이십니다.
자존적인 존재이신 그분에게는 시작이나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새번역 탈출 3,14 - 역주).” 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그분 밖에서 존재할 수 없고,
원하시기만 하면 어떤 피조물이라도 그 존재를 즉각 거두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들 자신으로서는 전혀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과,
하느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면 단 한 순간도 존재를 연장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람의 됨됨이나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죄를 제외하고는 무엇이든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많은 성인들이 그들 자신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닌 자라고 겸손하게 고백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그들 중 일부에게
과연 너는 아무것도 아닌 자라고 종종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 묵상과 실천 >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내 뜻대로 살았는지,
나의 뜻을 버리지 못함으로써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 묵상합니다.
그리고 내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대로 생활할 결심을 하고 실천합니다.
제5일 나의 뜻을 봉헌함(맡김)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창세 22,2)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 19-공동번역)
"주님, 저를 받으소서.
저의 모든 자유와 저의 기억과 지력과 모든 의지와
제게 있는 것과 제가 소유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소서.
당신이 제게 이 모든 것을 주셨나이다.
주님, 그 모든 것을 당신께 도로 드리나이다.
모든 것이 다 당신의 것이오니 온전히 당신의 의향대로 그것들을 처리하소서.
제게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이것이 제게 족하나이다.?(성 이냐시오)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려면 자신의 뜻을 봉헌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뜻을 당신께 봉헌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면서
우리의 뜻, 마음, 자신을 봉헌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격정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점점 정화시켜 주시며
당신의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1. 봉헌을 원하시는 주님
1-5,4 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네 말은 맞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테니까,
너는 그저 네 뜻(의지)을 내게 주기만 하면 된다.
내게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1-20,18 죽은 사람처럼 잠자코 너 자신을 내 팔에 맡겨 보아라.
1-69,5 얘야, 너의 마음을 내게 다오. 그것은 나의 소유이다.
네 마음을 내게 주고자 한다면, 설사 사랑이 없는 냉정한 마음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보답으로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그리고 나 자신도 주겠다.
그 마음을 내 마음의 열기로 뜨겁게 타오르게 하여
네 안에 있는 세속적인 애착을 모조리 살라버리게 해 주겠다.
3-28,3 딸아, 작은 자들만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루도록 그들 자신을 맡긴다.
인간적인 기준에서 작은 자들이 아니라 신적인 기준에서 작은 자들 말이다.
4-128,1 딸아, 하느님을 온전히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분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바쳐야 한다.
8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의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8-1,3 딸아,
가장 아름답고 내 마음에 드는 행위는 내 뜻 안에 자신을 내맡기는 행위이다.
그것도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을 기억할 정도로 맡기는 행위 말이다.
자신의 죄에 대한 통회도 훌륭하고 기특한 행위이긴 하지만
그것이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기억을) 없애지는 못한다.
8-42,2 딸아, 나는 붓을 찾고 있다.
이 붓은 곧 너의 의지인데 이것으로
내가 네 마음 안에 나의 모습을 그려 넣으려는 것이다.
사실, 네가 네 의지를 나에게 주지 않으면
나는 붓이 없어서 네 안에 나 자신을 마음대로 그려 넣을 수 없다.
11-12,2 딸아, 사람들은,
중요한 것은
오직 자기를 온전히 나에게 주고
모든 것 속에서 늘 내 뜻을 행하는 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11-36,8 그러기에 나는 내 뜻 안에서 너의 전부를 원한다.
네가 나의 모든 선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11-48,7 네가 더 이상 너 자신을 느끼지 않도록 내 안에 맡기기 바란다.
나도 너를 너로 알아보지 않고 다만 네 안에 있는 나 자신만을 보게 되도록 말이다.
16-23,37 그러니 나의 뜻 안에 자기를 온전히 맡기고 이 뜻을 너의 것으로 삼아라.
2. 내 뜻, 내 마음을 봉헌함
1-26,7 주님께서 안식과 기쁨을 찾아내실 수 있도록 제 마음을 온전히 봉헌합니다.
불행히도 제 마음은 아직 악의 소굴 같지만,
주님의 은총이 효과적으로 이를 정화시켜 주시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이 될 태세로 있습니다.
1-69,13 예, 주님, 당신께 제 마음과 온 존재를 다 드리겠습니다.
망설임 없이 드리겠습니다.
단, 더 좋은 선물로 드리고 싶사오니,
먼저 저의 냉랭한 마음에서 당신 것이 아닌 것은 모조리 없애게 해 주십시오.
그러니 이 마음을 당신 마음과 닮게 하는 데 효과적인 은총을 주시고,
당신의 안전하고 영구적인 거처로 삼아 주십시오.
4-34,3 어지신 제 사랑이시여, 저의 뜻은 이제 제 것이 아니라 당신 것입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저는 더욱 기쁘겠습니다.
11-89,7 오! 하느님의 거룩한 뜻이시여, 저는 당신 안에 저를 집어넣습니다.
당신 안에 저를 맡기오며, 당신 안에서 쉽니다.
12-132,1 미사성제 중에 예수님과 함께 나 자신을 봉헌하였다.
나 역시 그분과 같이 축성을 받기 위해서였다.
3. 봉헌(맡김)을 통해 맺어지는 열매
1-23,3 나에 대한 신뢰와 맡김은 영혼을 빛나게 하고 다른 모든 격정들을 바로잡아 준다.
그러면 나는 내가 나누어 준 빛살에 이끌려 그 영혼을 차지하고,
그에게 나 자신의 형상을 부여한다.
나 자신의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4-26,6 (절망에 빠진 영혼에게)
인생에서 마주치는 그지없이 큰 슬픔에 가장 유익하고 효과적으로 듣는 약은
(하느님께 대한) 맡김입니다.
그대는 자포자기하여 이 약을 먹는 대신에 영혼을 죽일 독약을 먹고 있습니다.
그대는 모릅니까?
맡김이야말로 모든 병에 대한 최선의 치료제라는 것을?
또한, 그것이 우리를 고상하고 신성하게 만들며
우리 주님을 닮게 하는 중요한 것이라는 점과
쓰디쓴 것을 감미로운 것으로 바꾸는 능력이라는 점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일치해서 사셨던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바로 아버지 뜻의 연속이 아니었겠습니까?
맡김의 정신으로 지상 생활을 하는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그의 영혼과 의지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일치해 있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소중하고 더 바람직한 것이 달리 있을 수 있겠습니까?
7-5,2 내 딸아, 인간이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영예는
매사를 그분의 거룩하신 뜻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창조주께서
조물이 조물주께 대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당신 은총을 건네주신다.
8-1,4 나의 뜻 안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행위는
그 자신의 존재를 없애고 신적 존재를 되찾게 한다.
그러므로 그 영혼은 자신을 내게 맡기는 행위에 의하여
내가 피조물에게 요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면서
내게서 나갔던 것을 나 자신 안에서 되찾게 하는 셈이기에
내게 그만큼 더 큰 영예를 안겨 주는 것이다.
5 그리고 그로서는 영혼이 되찾아야 할 유일한 실재를,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되찾게 되고,
하느님을 되찾음으로써 하느님께서 소유하신 모든 선을 되찾게 된다.
6 하지만, 영혼이 완전히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물러 있을 때에만
비로소 하느님을 되찾게 된다.
나의 뜻 밖으로 나가 버리면
그 자신의 존재와 타락한 본성의 모든 악을 되찾을 따름이다.
11-67,16 딸아, 근심하지 마라.
그저 나의 뜻 안에 너 자신을 맡기고 머물러 있는 것에나 마음을 써라.
그러면 내가 너를 위하여 모든 일을 다 하겠다.
12-18,5 딸아, 너도 마찬가지다.
네가 내 뜻에 너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면
그 무엇에 대해서나 더는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12-42,3 게다가, 네가 내 안에서 나를 의지할수록
내가 더욱더 나 자신을 네 안에 쏟아 부을 것이다.
12-146,3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너의 의지를 내 뜻의 처분에 맡기기만 하면 내가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
4. 점점 커지는 하느님 뜻의 바다
13-27,2 내 뜻의 딸아, 너의 내면을 들여다보아라.
내 뜻의 끝없는 바다가 얼마나 고요하게 흘러들고 있느냐!
그러나 네가 나에게서 내 뜻에 대한 말을 자주 듣게 된 얼마 안 되는 기간에 걸쳐
이 바다가 네 안에 흘러들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3 그렇게 짧은 기간이 아니라 오랫동안, 오래 전부터 흘러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행동부터 먼저 하고 말은 그 다음에 하는 것이
나의 통상적인 방식인 까닭이다.
4 사실 너의 시작은 내 수난의 바다였다.
내 인성이라는 항만(港灣)을 통과하지 않는 성덕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인성의 항만에 머물러 있는 성인들이 있는 반면,
여기를 지나 더 멀리 나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때 나는 재빨리 내 뜻의 바다를 이입(移入)시킨다.
5 그러므로 네가 기꺼이 너의 뜻을 내게 맡길 마음이 되어 있음을 보자
나의 뜻이 네 안에서 살기 시작했으니
그 바다가 끊임없이 흘러들며 커지고 있었다.
네가 내 뜻 안에서 하나의 행위를 더할 때마다 그만큼 더 커진 것이다.
6 내가 이 점에 대해서는 너에게 별로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뜻은 연결되어 있어서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서로 통하고 있었으므로,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서로의 마음속을 알 수 있었다.
7 그러니 나는 네 안에서
성인들이 내게 주는 기쁨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천상적 기쁨을 느끼며 즐거워하였다.
내가 성인들의 행복이 되는 한편 성인들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데,
그들은 내 의지 안에 잠겨 있기에 내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8 하지만 나의 행복은 완전하지 않았다.
더 많은 내 자녀들이 이토록 큰 선을 공유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뜻에 관하여 놀라운 방법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네게 이야기한 그 많은 진실과 효과와 가치들의 수만큼 많은 물길을 바다로부터 열어
다른 이들에게도 유익이 되게 함으로써,
이 물길들이 온 땅에 풍부한 물을 공급하게 하려는 것이다.
문: 한 영혼이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무엇입니까?
답: 예수님께서 1928년 4월 30일에 복녀 디나 벨랑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와 나 자신 안에 소유하고 있는 영원하고 완전한 행복을 제 외하고,
나의 기쁨, 나의 행복을 이루는 것은,
내가 사랑으로 창조한 영혼들 안에 나 자신을 다시 낳는 것이다.
영혼이 나로 하여금 그 자신 안에 나를 재현하게 하면 할수록
나는 그 영혼 안에서 더욱더 행복과 안식을 느낀다.
한 영혼이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내가 그를 신성에까지 들어올리게 묵묵히 맡겨 주는 것이다.
그렇다, 내 작은 정배야,
나는 영혼을 나 자신으로 변화시키고 신화(神化)하며
신성 안에 온전히 흡수하는 것에서 엄청난 기쁨을 느낀다.”
[주: 복녀 디나 벨랑제는 새로운 성덕의 시대의 선구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1993년 3월 2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습니다.
예수 마리아 수녀원(RJM)에 입회한 그녀의 수도명은 ‘로마의 마더 체칠리아’였습니다.]
< 묵상과 실천 >
봉헌을 통한 변화를 묵상하고 제5강의 앞에 나오는 ‘자신의 영적 비참을 하느님의 뜻 안에 맡기는 기도’를 바칩니다.
제6일 성모님과 성령님께 의탁함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루카 1,35)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려면
자신의 뜻을 성모님을 통하여 성령님의 도움으로 봉헌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를 하느님 뜻 안의 삶으로 인도해주시는 성모님과 성령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먼저 맡겨야 합니다.
1. 예수님과 성모님께 봉헌
1-18,14 여기에 덧붙여,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께서는 내 안에 예수님을 향한 정겨운 사랑을 넣어 주셨다.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임을 알아듣게 해 주신 것이다.
21 나 역시 감사해 마지않으면서,
내게 바라시는 모든 것에 순종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예수님과 성모님께 나 자신을 봉헌하였다.
2-44,2 나 자신의 나라는 내 어머니의 마음 안에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마음은 조금도 어지럽혀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마음은 엄청난 고통을 당하셨으니, 고통의 칼에 찔리고 또 찔렸다.
그럼에도 추호도 교란(攪亂)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2-77,4 딸아, 내가 우리 어머니에게 쏟아 부은 은총과 기쁨은 어찌나 많고 큰지,
그분께서는 은총에 의해서 본성상 나와 같은 분이 되셨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특히 그분에게는 죄라는 것이 전연 없었기에
나의 은총이 그분 안에서 거침없이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내 존재의 그 어떤 것도 그분께 드리지 않은 것이 없다.
5 그 순간 내게는 우리 여왕이신 어머니께서
단 하나의 점에서만 하느님과 다른 또 한 분의 하느님처럼 보였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본성상 하느님이시지만,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서는
은총의 성취로 말미암아 신성을 지니신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큰 놀라움에 잠겼겠는가!
나의 정신이 이 은총의 경이로운 기적을 보면서 온통 빨려드는 느낌이었다!
4-104,2 그래서 어머니 안에는
성삼위의 세 가지 특별한 권능인 능력과 지혜와 사랑이 풍성한 것이었다.
게다가, 성삼위 하느님께서 인류를 당신의 일부로,
곧 당신 자신에게서 나온 작은 조각으로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이 분신들이 당신 안으로 돌아오기를 애타게 갈망하시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여왕이신 어머니께서도 이를 공유하시며
뜨거운 사랑으로 인류를 사랑하시는 것이었다.
4-172,3 내 사랑아, 자애로우신 내 어머니께 가장 큰 기쁨과 위로가 되는 말은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Dominus Tecum)이다.
천사가 이 말을 하자마자
어머니께서는 거룩하신 분의 온 존재가 자기 자신에게 전해지는 것을 느끼셨다.
그리고 하느님의 능력에 감싸이는 것을 느끼셨으니,
이 하느님의 능력 앞에서 자신의 것은 흩어져 사라지고
(오직) 하느님의 능력(만)을 수중에 지니게 되셨던 것이다.
2.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도록 준비시키는 성모님
너희가 너희의 뜻을 나에게 준다면 모든 일을 내가 말한대로 행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나를 행복하게 해 줌과 동시에 너희도 행복하게 된다.
나는 나의 뜻이 너희 가운데서 다스리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면) 하늘과 땅이 너희에게 미소를 지을 것이고,
내 천상 엄마께서 확실히 너희의 어머니와 여왕님이 되실 것이다.
그분은 내 뜻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져올 크나큰 선익을 알고 계신다.
그래서 그분은 내 열망을 채우시며 내 눈물을 그치게 해 주시려고,
게다가 너희를 참 자녀들로 여기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뭇 백성들 가운데로 다니시면서 그들을 준비시키시어
내 뜻의 나라의 통치를 받아들이도록 하신다.
그분은 내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키셨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처럼 큰 선물을 받아들이도록 그들의 영혼을 준비시키는 일을 그분께,
그분의 어머니다운 사랑에 맡기고 있다. (1925년 말씀)
이제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원하며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이 뜻을 선사하고자 하십니다.
사람이 권리와 자기 뜻의 사용을 모두 하느님께 맡기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루이사)
3. 새롭고도 거룩한’ 성덕”은 성모님의 성덕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따르면,
하느님의 작업은 창조, 구원 그리고 성화의 세 가지입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352).
하늘에서부터, “성부의 품 안에서” 예수님은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모든 영혼들을 사랑으로 껴안으셨을 뿐만 아니라,
창조와 구원과 성화로 삼위일체의 모든 활동에도 참여하셨습니다.
복녀 디나, 가경자 콘치타,
그리고 하느님의 종 마르티네스 대주교와 같은 이들의 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무엇보다도
삼위일체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 당신과 함께 참여하자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은 또한 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도로
자신의 내적 삶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살았던 분으로서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지목하십니다!
지난 세기 동안에,
성령께서는 여러 모범인물들의 글, 특히 성 막시밀리안 콜베의 글을 통해서
성모 마리아의 내적 삶에 대해서 새롭게 알려주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자신을 온전히 성부의 뜻에 봉헌하여 맡겨드렸다고
콜베 성인은 말했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일생동안 완전히 그분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성령께서는 더 없이 명확하고 더 없이 친밀한 모양으로
티 없으신 분의 영혼 안에, 그분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사셨다.
성령께서는 마리아가 존재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마리아의 일생동안, 그리고 영원토록
항상 마리아 안에서 살면서 마리아가 열매를 맺게 해 주셨다.”
마리아 안에서 다스리는 성령에 대해서 성 막시밀리안이 통찰 한 것을 성찰하면서,
도미니코회의 신학자인 망토-보나미 신부 (Fr. Manteau -Bonamy)는 이렇게 썼습니다.
“성령은 그녀의 영이다.
성령이 자기 안에서 다스리기 때문에 자신의 인격에서 멀어지기는커녕,
마리아는 오히려 어떤 사람보다도 더 충만하게 완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었다.
우리 안에서 하느님이 행동하시면, 그 행동은 진정으로 우리의 행동이 된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특성이다.
자기 자신으로서의 티 없으신 마리아는 하느님이 아니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자신이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경우와는 다르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이요 생명을 주시는 분인’ 성령과의 신적인 공동작용 상태에서만 산다.”
성령과의 신적인 공동작용 상태에서,
창조와 구원의 모든 것에 있어서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성모님이 원하시듯이,
성모님은 성령의 모든 성화 작업에도 (물론 예수님과 함께) 참여하십니다.
이런 식으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모든 작업에
소위 자신의 사랑의 인장을 새겨 넣을 수 있으십니다.
망토-보나미 신부는 이렇게 썼습니다.
“아담의 비천한 딸인 마리아는
비록 수많은 인간의 세대가 지나간 다음에야 태어났지만,
그녀는 시간을 초월하여 이미 하느님의 마음속에, 성령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느님의 영원한 지금 속에서, 그녀는 영원히 존재한다.
그분은 자신 이전에, 그리고 자신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존재들을 품에 안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거룩한 일에 협조하면서,
우리의 지고하신 어머니로서 살고 또한 다스린다.
그래서 콜베 신부는 서슴없이
마리아를 ‘모든 것을 만든 장인인 지혜’ (지혜 7, 22)와 동일시한다.”
복녀 디나 벨랑제는
성모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영혼들을 위하여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구속공로를 봉헌함으로써,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완전히 참여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복녀 디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나의 복되신 어머님께 당신의 방식으로 하시도록 다 맡겨드린다.
그분은 우리 주님의 공로와 당신 자신의 공로로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보속하시고 또 완전하게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기대하시는 만큼
하늘에서 그분께 영광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복녀 디나는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서,
모든 것을 복되신 성모님께 “당신의 방식대로” 하시도록 맡겨 드림으로써,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들로부터 마땅히 받으셔야하는 영광을 하느님께 드렸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복녀 디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그리스도 신비체 전체를 “완전하게 하는”일에
성모님과 함께 참여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어머니로서 지상 생활 동안 예수님을 위하여 하셨던 모든 일을
하느님 뜻 안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하십니다.
4. 성령을 통해서 자신을 완전히 성부의 뜻에 맡기신 예수님
예수님이 성령의 활동을 통해서
자신을 성부의 뜻에 완전히 승복하여 내맡겨 드렸기 때문에,
성경은 예수님과 하느님 뜻 사이의 관계를 자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고 표현합니다.
루카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이사야 예언서 61장 1-2절의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기쁜 소식을 선포하게 하시니...”라는 말씀이
자신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니와 골고타를 거쳐 당신의 “떠남”을 향해 나아가시면서,
그분은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성령-빠라끌리도의 활동에 온전히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 성령께서
고통 속에서도 구원의 원천인 영원한 사랑이 나타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들이
당신 아버지 뜻의 통치를 부드럽고 감미롭게 받아들이게 하는 일에 있어서는
성령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경자 콘치타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내 영혼의 모든 움직임은
다 성령의 움직이심 아래에서 그 영감을 받아서 수행되어 왔다.
성령님이야말로 내 능력, 내 감각, 나의 의지를 모두 차지하시고,
성부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의 이 모든 것들을 지키시고 활기를 주신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내적 생활에 완전히 동참하기 (깊숙이 참여하기) 위해서
성령의 다스리심을 통해서
우리의 인간적인 의지(뜻)를 성부님의 뜻에 완전히 승복하여 맡겨드려야 합니다.
< 묵상과 실천 >
교재의 내용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나의 뜻과 모든 것을 성모님과 성령님께 맡기는 기도를 자유로이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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