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도의가치와효과-카를로스

이 기도의 가치와 효과 및 예수님의 약속 ⑬ - 카를로스 신부님 강의록에서 (2010.9.8) {13권 22,2-8}

은가루리나 2017. 1. 30. 00:33


2015.06.05. 17:11


  다시 22장의 한 부분을 읽겠습니다.


2 “딸아,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나눌 때 

나는 다만 그 제자들 하고만 같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온 인류 가족에 둘러싸여 있었다. 

내가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있었고 

그 모든 피조물들을 내가 한 사람 한 사람 다 알고 있었고 

그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구절은 

예수님이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식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사신 것이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사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머리라는 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것도 생각해야 됩니다. 


  하느님이시고 모든 피조물의 첫째이시며 머리이시고 그리고 주님이신 예수님, 

온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티 없으신 분이시고,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예수님의 신비를 설명하는데 넉넉하지가 않습니다. 

나의 인간적인 체험은 예수님을 설명하기에 부족합니다. 


  내 인간적인 경험만 가지고는 예수님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론을 공부할 때, 예수님을 설명할 때 

흔히 우리의 조그만 인간 경험을 가지고 예수님을 설명하는 것은 

예수님을 조그만 인간으로 축소시켜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성모님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모님은 그냥 보통 여자가 아닙니다.

 

  성모님은 여자 중의 여자, 그러니까 아주 특별한 여자, 

영어에 The 정관사 같은 완전한 여자입니다.

최대로 가능한 정도로 완전히 완전한 분입니다.

죄가 없고 마음과 정신과 의지에서 절대적으로 순결하시고, 

그래서 우리가 그분을 이해하려면, 

너무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비유로써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이 비유도 우리의 빈약한 경험으로만 비유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신비를 다 이해하려면 

우리가 인간적인 능력으로 상상하는 것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는 상상이 안 되기 때문에 

그분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열어보여 주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먼저 그분께서 우리에게 열어보여 주셔야지 좀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읽었던 이 짧은 문장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 

우리가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알아볼 수 있게끔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주시면서, 예를 들면 최후 만찬 때,

"모든 세대의 온 인류가 최후 만찬 때 나와 함께 있었다. 내 앞에 있었다." 라고 하십니다. 


  그 모든 인류가 최후만찬 때 당신과 함께 있었는데, 

예수님이 "내가 그들을 하나하나 다 알고 있었고 이름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 그 이름으로 불렀다." 고 하십니다.

예수님 자신을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 이름으로 불렀다고 하십니다.

 

  지금 성사를 세우시는 그 순간이 아니라 마지막 만찬 순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있고 양고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3 “구운 어린양을 잘라 내 사도들에게 주면서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각각으로 주었다. 

피를 뽑아내고 구워 토막을 낸 그 어린양은 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 생명의 상징이었다. 

내가 만인에 대한 사랑으로 결국 어떻게 될지를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4 나는 또한 

내 수난을 상징하는 그 어린양을 모든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으로 내주고자 하였다. 

내가 행하고 말하고 겪은 모든 것이 

내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위한 음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제 양고기를 제자들에게 다 나누어 주셨는데, 

그것은 실제로 당신 자신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각 사람들이 먹을 음식으로 변하게 했는데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것을 제자들에게 준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할 때에는, 

사랑은 하느님이 먼저 사랑하신 겁니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하나씩 다 주시면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겁니다. 

당신 사랑으로 

양고기를 당신 자신으로 변화시켜서 주신 겁니다. 

그분의 모든 삶이 음식으로 변했습니다.


 

5 “내가 왜 모든 사람을 불러 그것을 주었는지 그 까닭을 알겠느냐? 

왜냐하면 나도 그들에게서 음식을 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과 일과 말을, 곧 그들의 모든 것을 내 음식으로 받고 싶었던 것이다.”

                                                       

 

  사랑은 사랑으로만 갚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 예수님을 음식으로 바꾸어 주었다면

사랑이 우리를 또 예수님을 위한 음식으로 바꿔줘야 합니다.

그래서 루이사가 즉시 주님께 물어보았습니다.

 


6 “제 사랑이시여, 

저희의 일이 어떻게 주님을 위한 음식이 될 수 있습니까?” 하고 내가 묻자, 

예수님은 이렇게 답해 주셨다.

 

7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내 뜻이 살 힘을 주는 모든 것으로 산다. 

빵이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내가 그렇게 되도록 원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이 원하셔서 빵이 인간에게 영양분을 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8 피조물의 모든 일도 그의 뜻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나를 위한 음식이 되게 하겠다는 뜻으로 일하면 

그 결과 내 음식이 되는 것이다. 

내게 사랑을 주고자 하는 뜻으로 일하면 사랑이 되고, 

보속하고자 하면 보속이 된다. 

마찬가지로 나를 모욕하려는 뜻으로 일하면 

그 일이 내게 상처를 주거나 심지어 나를 죽이기까지 하는 칼이 된다.” 



  내 심장 박동이 뛸 때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면, 

그 심장 박동이 예수님께 드리는 사랑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