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신학

신비주의에 대한 오해

은가루리나 2017. 2. 20. 02:36




신비주의 개념의 등장

 

신비주의 개념은 어떻게 등장했을까?

신비주의 개념의 유래와 함께 이 단어를 둘러싼 오해에 대해 얘기해 보자. 신비주의가 크게 ‘신비 체험, 체험을 위한 수행, 신비 사상’의 셋으로 나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다룬 바 있다. 그리고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개념이 대단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며, 동시에 오해의 소지 역시 적지 않다는 것 역시 언급했다. 그런데 개념의 성립 역사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여러 가지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신비주의(mysticism)라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비종교’(mystery cult)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미스테리(mystery)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무오’(muo), 즉 ‘눈이나 입을 가리다’라는 단어에서 왔다. ‘무오’는 곧 비밀 엄수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비밀스러운 지식을 특징으로 하는 신비종교는 신중하게 입문자들을 골라 입문 의례를 행했으며, 입문자는 신비종교에서 배우게 되는 가르침이나 경험들을 외부인들에게 비밀로 지켜야만 했다. 실제로 비밀을 유지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의례를 비롯해 신비종교의 구체적인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는 오늘날에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종교는 인간 영혼에 신적인 혹은 초월적 차원이 깃들여 있으며, 의식의 변형 상태를 유도해 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된 내용으로 삼았다. 또 이러한 종교적 통찰이 인간 영혼의 ‘불멸성’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점도 두드러진다. 이처럼 신비종교는 죽음, 재생, 불멸성 획득을 근간으로 삼았다. 그러니 초기 기독교가 근동의 신비종교로 간주된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삼일 만에 부활했다는 이야기는 그리스 신비종교의 주인공들인 오르페우스(Orpheus)나 디오니소스(Dionysus)가 겪은 <죽음-하계로의 여행-부활을 통한 불멸성 획득> 과정과 매우 흡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신비종교는 인간 의식을 의도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술을 비롯한 여러 가지 향정신성 약물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통음(痛飮)과 난장에 가까운 집회로 이름 높았던 디오니소스 축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의 신비종교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등장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한다. 특히 4세기 로마 황제였던 줄리앙(Julian the Apostate, 331-363)은 확장일로에 있던 기독교에 맞서 고대의 신비종교를 부흥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요절로 이런 시도는 실패에 그치고, 그리스 철학과 더불어 신비종교는 돌이킬 수 없는 쇠퇴의 길을 밟게 된다. 이후 16세기까지는 ‘신비적(mystical)’, ‘신비주의자(mystic)’와 같은 형용사와 명사가 기독교, 유대교의 신비주의를 지칭하기 위해 간헐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서구의 주요 종교는 신비주의자들을 회의적인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신비주의자들의 폭발적인 영성은 찬탄과 더불어 전통적인 교리를 위협하는 의심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톨릭과 이슬람의 역사에서 탄압을 받았던 신비주의자들을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자신이 곧 신이라고 주장한 탓에 사형을 당했던 이슬람 신비주의자 알 할라지(Al-Hallaj, 858-922)나 이단으로 심판받아 십자가에서 화형을 당했던 마가리테 포르테(Marguerite Porete, ?-1310)가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오랜 침묵의 시간을 거친 후 신비주의는 17세기에 이르러 화려하게 부활한다. 이 시기 유럽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서양인들은 동양 종교를 접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신비주의라는 명사가 동서양 종교 전통의 공통성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즉, 신비주의가 서로 다른 종교 이면에 존재하는 핵심이라는 이른바 ‘보편주의적’ 관점이 나타났던 것이다

 

. 종교학이라는 학문을 새롭게 시작한 일군의 학자들을 필두로 서양의 지성인들과 유연한 태도를 지닌 종교인들이 이 입장을 취했다. 그들은 신비적 합일 체험이 궁극적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앎을 주며, 이 비범한 앎을 시공간 속에서 독특하게 해석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종교라 주장했다. 요컨대 신비주의는 영원불멸한 보편적 진리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입장이었다.

 

동시에 신비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진 유물론적 세계관에 맞서는 유일한 대항마로 부각되기도 했다. 과학 발달과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자리 잡은 유물론적 세계관은 형이상학적이며 종교적 세계관을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이들을 압살하려 시도했다. 일군의 사람들은 유물론적 세계관에 반발해 인간 종교성의 뿌리를 개인적 체험에 기초한 신비주의에서 발견하고자 했다. 특히 개인의 종교 체험을 강조하는 신비주의는 당시 힘을 얻어가던 개인주의의 강조와도 일맥상통했기에 더욱 호응을 얻었다. 참된 종교성을 교리, 경전, 의례가 아닌 개인의 종교적 감정과 체험에서 찾았던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 1768-1834)나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가 이 입장을 취했던 대표적인 사상가들이다. 

 

최근 일부 학자들은 20세기 전반기에 큰 인기를 끌었던 보편주의적 태도에 반발해 보편주의자들이 동일성을 찾겠다는 의욕에 경도된 나머지, 종교 전통이 가진 독특성과 차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들에 따르면 궁극적 실재의 체험이라는 것이 입증하기도 어렵거니와, 이 체험들을 상호 비교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러 종교 전통은 궁극적 실재에 대해 이미 엄연히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공(空), 도(道), 신(神), 천(天) 등 각 종교가 주장하는 궁극적 차원이 같다고 어찌 단언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게다가 서구라는 유신론적 배경에서 성립된 신비주의 개념을 문화적 맥락이 다른 동양에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무리일 뿐만 아니라, 자칫 비서구 사회에 대한 지적 폭력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비주의 개념을 둘러싼 오해들

이처럼 신비주의 개념이 성립된 역사를 되짚어 본 이유는 그 과정이 곧바로 이 단어를 둘러싼 여러 오해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오해들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비밀주의와의 혼동 : ‘무오’라는 어원이 의미하듯 그리스의 신비종교와 그 뒤를 이은 여러 종교의 신비주의 전통은 의식 변형을 유발하는 수행법을 비롯해 체험을 통해 얻게 되는 통찰들을 비밀로 유지할 것을 엄격하게 요구했다. 그러니 이런 노력이 당연히 비밀주의와 연관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본래 신비주의가 강조하는 비밀 엄수의 의무는 신비적 통찰을 과장하거나 신비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비주의의 여러 내용이 체험자 개인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보호틀을 확보한다는 의미를 강하게 띤 것이었다. 즉, 윤리적이며 지성적인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이 신비주의에 접할 때 생길 수 있는 여러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밀주의는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 전통이 입문자를 가정을 가진 불혹이 넘는 남성에서 찾았다는 것은 신비주의 전통의 조심성을 잘 보여준다. 그 점에서 연예인들의 대중 매체 기피를 신비주의로 일컫는 것은 우리나라 매스컴이 신비주의와 비밀주의를 혼동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단 혹은 나쁜 종교라는 오해 :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비종교가 쇠퇴하자, 서구 종교사에서 신비주의 역시 주변부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후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를 비롯한 많은 신비주의자들은 이단의 경계를 넘나들게 되었다. 특히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은 인간이 사후가 아닌 육체를 가진 동안에도 신과 하나가 됨으로써 신성을 체득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기독교가 사후에 가게 되는 ‘천국’을 종교 생활의 주된 목표로 제시했다면, 신비주의자들은 살아서 경험하는 내면의 천국 혹은 신과 하나 됨이라는 신비적 합일 상태를 종교 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았던 것이다.

 

아울러 일부 신비주의자들은 예수를 인류의 구원자가 아닌 마치 깨달음을 얻은 붓다와 같은 모든 인간이 지향해야 하는 바람직한 패러다임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런 주장은 예수가 갖는 구원자로서의 신성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교리와 상충하기 쉬웠다. 게다가 동서양의 교류가 본격화된 이후에는 유신론적 서구 전통이 동양 종교의 자력적 경향을 폄하하기 위해 신비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했다.

 

-비합리주의, 반-이성주의라는 오해 : 유물론적 세계관은 입증 가능성을 진리의 가장 중요한 판별 기준으로 제시하는 탓에 형이상학 혹은 종교적 세계관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다시 말해 종교적 주장은 실증적으로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객관적 진리로 받아들이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궁극적 실재를 비롯해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을 강조하는 신비주의는 비합리적이거나 비이성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서양 철학을 시작한 피타고라스를 위시해, 플라톤, 플로티노스(Plotinus, 204-270)와 같은 철학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신비주의적이었는가를 고려해 본다면, 서구의 합리주의 전통을 신비주의에 반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은 곤란하다. 오히려 신비주의는 인간의 종교적 직관, 엑스터시 능력, 합리적 사색 능력 모두를 포괄하려는 시도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실제로 종교사에서 두각을 나타낸 신비주의자들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루미(Rumi, 1207-1273)와 같이 시적 감수성이 풍부한 신비주의자에서부터 플로티노스와 같은 철학적인 신비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

럼을 보여준다. 요컨대 유물론 특히 자연과학의 실증주의적 합리성만을 인간 합리성의 전체라 간주하는 것은 성급하다.

 

-초자연주의와의 혼동 : 신비주의는 무엇보다 초자연주의와 혼동되기 쉽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신비주의는 분명 물질적 차원을 넘어선 초자연적 차원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하지만 신비주의를 곧바로 초자연적 차원에 대한 믿음 체계라 간주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신비주의는 비물질적 차원이 드러나는 여러 계기들뿐만 아니라, ‘보이는 차원 vs 보이지 않는 차원’, ‘신 vs 인간’, ‘자연 vs 초자연’ 등과 같은 일체의 이원적 대립쌍을 초월하는 궁극적 실재의 체험을 그 핵심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계시, 채널링(channeling), 접신(possession), 샤머니즘, 유체이탈, 임사체험, 초능력, 기적, UFO 등과 같은 현상을 곧바로 신비주의라 일컫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신비주의가 궁극적 합일 체험을 정점으로 상술한 이원적인 경험들을 포괄할 수 있지만, 그 최종 지향점으로 이원성을 소거시키는 합일 체험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는다면 신비주의라 보기 어렵다. 그 점에서 샤머니즘을 비롯해 신과 인간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거리를 설정하는 종교는 신비주의가 아니다.

 

-서양 중심주의라는 비난 : 신비주의 개념에 대한 동양적 편견 역시 존재한다. 이 개념이 애초에 서양의 유신론적 배경에서 비롯된 탓에 동양의 종교성을 제대로 포착하기 힘들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 견해 역시 나름 타당성을 갖지만, 이러한 주장 이면에 내재한 동양 종교의 우월성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유신론적 종교가 동양의 무신론적 종교보다 우월하다는 서구의 주장을 쉽사리 수용하기 힘들지만, 반대로 무신론적 동양 종교가 유신론적 종교보다 우위라는 입장 역시 입증하기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신비주의라는 개념이 서양에서 유래한 것은 맞지만, 동서양에는 초월적 체험을 목표로 삼는 종교가 분명히 있는데다, 이런 흐름을 신비주의라 지칭하는 것이 곧바로 동양 종교를 폄하하는 태도라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동서양 종교의 독특성을 간과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놓치기 힘든 유사성에 주목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더구나 동서양의 교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진 오늘날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신비주의가 애초부터 비교를 위해 등장한 개념이며, 실상 ‘신비주의’라는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개념을 동양 종교를 폄하하는 개념으로 간주하는 것은 성급하다.








도대체 신비주의자들은 누구인가?

 

이런 숱한 오해에도 불구하고 신비주의라는 단어는 여전히 유효할까? 그런데 오히려 이런 오해는 이 개념을 더욱 생명력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즉,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여 온 오해와 논란이 도리어 신비주의의 힘이 아닐까.

 

무엇보다 신비주의라는 단어는 사용하는 사람의 세계관을 곧장 드러낸다. 그 점에서 신비주의는 우리를 비추어 보는 거울과 같다. 예컨대 신비주의를 비합리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유물론적 세계관을 신봉하는 사람일 것이다. 만약 신비주의를 이단 종교와 동일시하는 사람은 비신비주의적 종교 전통을 정통으로 여기는 사람이리라. 이런 판단이 가능한 이유는 신비주의 개념이 모든 오해의 가능성을 이미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는 차원과 보이지 않는 차원의 관계를 비롯해, 인간이 참된 본성이 무엇인지, 어떤 종류의 앎이 왜 비밀로 지켜져야 하는지,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존재의 궁극적 본성을 알아차릴 수 있는지에 이르기까지 신비주의는 이 모든 것들을 망라하고 있다.

 

그러니 신비주의라는 단어는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신비주의자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한다. 다시 말해 개념의 모호성은 신비주의자들의 목소리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해소될 수 있다. 실제로 종교사에서 신비주의라고 불리는 종교 전통은 존재한 적이 없었지만, 신비주의자들은 적지 않게 있었고, 신비주의자라는 단어가 신비주의보다 훨씬 오래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비주의자(mystic)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들은 무엇을 원했던 사람들인가? 신비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 혹은 존재의 궁극적 본성을 직접 체험하고자 시도했던 사람들이다. 각고의 수행 끝에 혹은 신의 은총에 힘입어 이원성이 사라진 합일의 체험을 경험했고, 그리고 그 체험을 공유하기 위해 영감에 찬 시어(詩語)를 비롯해 사변적인 철학 용어, 심지어 침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사소통의 방식을 실험했던 사람들이다.

 

그 점에서 신비주의자들은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타인들을 기피하거나 비밀을 가졌다고 자랑했던 사람들이 아니었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과 접촉하거나, 초자연적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삶의 주된 목적으로 삼았던 사람들도 아니었다. 혹은 자신이 믿었던 종교가 유일한 진리라 주장했던 사람들도 아니었고, 인간 합리성의 한계를 지적하기는 했어도 이성을 배척한 비합리주의자들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때때로 그들은 체험이 가르쳐 준 바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종교 전통으로부터 배척당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요컨대 신비주의자들은 궁극적 목표인 초월의 체험을 갖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 과정에서 찬탄과 오해를 함께 받았던 사람들이다. 

 

신비주의자들은 머나먼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존재한다. 또 신비주의자들은 공간을 초월해 존재한다. 그러니 신비주의자들을 갖지 않는 나라는 없다. 그리고 신비주의자들은 종교 안에서도 심지어 종교 밖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종교와 신비주의는 일치하는 개념이 아니다. 신비주의자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곧 궁극적 실재의 일부라고 말하면서 모든 이원적 분리의 관념을 허물어 버린다. 성별, 지식의 유무, 세속적 권력의 소유, 믿음 체계 등 여하한 구별과 차별을 철저하게 폐기시킨다. 그리고 가끔은 자신이 속한 종교 전통 자체도 소거시키기에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신비주의에 내포된 이러한 급진성은 다름 아닌 궁극적 실재와의 합일 체험에서 비롯된다. 신비적 합일 체험은 한편으로 ‘중심 없는 중심’으로 기능하는 탓에 무한한 해방의 근원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숱한 비난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신비주의는 자유와 해방의 씨앗이자, 동시에 불화와 불편함의 원천이다. 즉, 신비주의는 밝은 빛과 더불어 그에 비례한 어두움을 갖는다. 그러니 이 대목에서 신비주의가 인간들에게 극도의 조심스러움을 요구한다는 신비주의자들의 주장을 새삼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