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화살기도)와 성모송

마리아 교의와 그 신심의 역사적 발전

은가루리나 2017. 3. 22. 15:28


제 1부 마리아 교의와 그 신심의 역사적 발전


1. 성서와 성모 마리아


  1.1 구약성서와 성모 마리아


시작하며

구약성서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라는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구약과 마리아를 연결하여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구약안에서 간절히 기대되고 있었던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안에서 메시아의 어머니가 함께 예언되는 구절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렴풋하게 마리아에 대해 암시되어 있지만 이 암시들의 완성은 신약을 통해 이루어진다. 


본론


1. 창세3,15-야휘스트계 문헌에 속하며 원복음

뱀으로 상징되는 악마와 ‘여자의 후손’으로 상징되는 메시아적 인물과의 대결로서 종말론적 전투가 암시되고 있다. 이 ‘여자의 후손’은 집합적 의미로서 성조, 성인들을 의미할 수 있으나 내용의 흐름은 악의 힘을 대표하는 단일 존재, 사탄과 대결하여 결정적으로 무너뜨리는 특정한 단일 인물을 지시한다. 이 흔적은 성서 원문을 희랍어로 번역하면서 중성 대명사를 남성단수 3인칭으로 번역한것에서 찾을 수 있다.

본문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보면 ‘여자’는 에와여야 하지만 단순히 기록이 아니라 일종의 신탁이라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예언적 자료로서 이 원복음은 메시아에 관한 것으로 ‘여자’는 누구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악마를 쳐 이긴 분이 예수그리스도라고 확신한다면 이 여인이 예수의 어머니임을 부인 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전승은 이여인을 성모마리아로 해석하고 ‘제2의 에와’, ‘새에와’라 일컫는다. (요한 묵시록12장과 많은 연관)


2. 이사7,14

이사7,14의 히브리 성서 본문은 ‘젊은 여인’의 ‘어린이 잉태’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 이 여인이 동정이냐 아니냐 또는 미혼이냐 기혼이냐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 칠십인역은 이 “젊은 여인”을 동정녀로 번역하는데, 이는 기원전 2세기 부터 유다교 내의 어떤 전통이 앞으로 일어나리라 고대되는 이 특이한 탄생을 동정녀 모친에게서 나오는 메시아의 탄생으로 이해했음을 뜻한다.

이 예언이 직접적으로 메시아와 그의 모친에 관한 예언이냐 간접적인 것이냐하는 논쟁이 있지만 계시가 역사안에서 점진적으로 펼쳐져 왔음을 존중하며 히즈키야 왕과 아비아 왕후의 예표들안에 감추어져 있는 구세주와 그 모친의 모습을 알아 볼 수 있다. 히즈키야 왕으로 말미암아 불완전하게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던 것이 그리스도의 동정잉태의 신비안에서 완전하게 결정적으로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사야 예언자체만으로 어렴풋했던 하느님의 계시(메시아의 동정잉태)가 마태오, 루가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3. 미가5,1-3

이신탁은 베들레헴의 산모에게서 이스라엘의 구세주가 태어날것임을 예언한 것으로서 신약성서 시대에 즉 유대교의 당국이나 일반 대중들에 의해서 명백히 메시아와 연관된 구절로 이해 되었다.


4. 미가4,1-14;스바3,14;즈가9,9;요엘2,21-27 : 시온의 딸과 새로운 백성의 탄생

바빌론 유배로부터 귀환한 후에 선포한 신탁으로서 ‘시온의 딸’은 다시 세워진 하느님의 백성을 일컫는 이름으로써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유배에서 돌아온 ‘남은자’들을 의미한다.

즈가9,9에서 오시는 왕은 메시아이며 그분을 자신안으로 영접하는 ‘시온의 딸’은 종말시대의 예루살렘이고 또 그녀는 그 성벽의 중앙에 모인 히브리인들과 이방인들 모두의 모친이 된다.


5. 마리아의 예형적 인물들⇒에와(인류의 어머니)-마리아(새 에와), 아브라함(신앙의 아버지)-마리아(신앙의 어머니)


끝마치며

구원역사의 서술이라 할 수 있는 성서는 구약과 신약을 분리하여 살펴 볼 수 없다. 구약성서에서 펼쳐지는 역사의 장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영감과 계시를 시대의 사상과 언어와 현실을 바탕으로 펼치며 이러한 예언은 메시아라는 인물 즉 예수 그리스도에게 와서 정점을 이룬다. 구약안에서 간절히 기대되고 있었던 메시아 예언들과 메시아의 어머니를 함께 바라본다는 것은 쉬운 것 같고 당연한 것 같지만 우리 각자의 믿음(가톨릭,개신교)따라 다르게 볼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하고 절대적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1.2. 신약성서와 성모 마리아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기에 성모 마리아에 대한 진술이 많지 않다. 그러나 몇몇 내용들을 통해 마리아의 인격, 성품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 초기 공동체때부터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로 불렸으며, 기도하는 사람, 예수를 믿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한 사람으로 이해되고 있다. 헬레니즘적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복음선포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하느님의 육화이다. 성모마리아의 예수 동정잉태는 하느님의 창조적 행위로서 기적적으로 아이를 잉태하는 구약의 여인들을 성찰하면서 이해 될 수 있다. 우리는 신약성서의 집필연대순으로 마리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바오로 서간들

서간 어디서도 ‘마리아’라는 이름이 언급되지 않으나 간접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복음 선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로서 ‘여인’ 언급은 그리스도의 육화를 위한 중요한 역할로 이해 될 수 있다.


1) 갈라4,4-5

예수 어머니에 대한 첫 번째 증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여인으로부터의 탄생’은 동정잉태의 암시로 이해하려는 학자들이 있다. 구약, 신약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인간적 조건을 드러내는 것으로 예수의 참된 인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말로 동정잉태를 의식했다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구절은 신약성서의 다른 문헌들에 의해 발전하게 되는 마리아 교리의 근원적인 씨앗이다.


2) 갈라1,9(τὸν ἀδελφον τού κυριου)

마르6,3 ἀδελφος 개념은 ‘같은 어머니의 아들’, 혈연의 형제를 정상적으로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약성서에 있어서 ἀδελφος는 때로는 혈연의 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를 지칭한 때도 있다.(마르3,34-35의 형제들은 종말론적인 가족의 일부로서의 제자들에게 적용된다) 구약성서 희랍말 번역은 ἀδελφος를 동족, 친척으로 사용한다.


2. 마르코 복음

마르코 복음을 ‘반 마리아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예수가 마리아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메시아라는 점이 강조되는 것이다. 메시아 비밀만이 아니라 마리아 비밀도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1) 마르3,31-35 : 누가 내 어머니인가?

마리아가 뚜렷하게 ‘예수의 어머니’로 불리고 있다. 예수의 관심은 혈연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과 뜻에 순종’이라는 종말론적 가족 관계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종말론적 가족’선언에는 ‘아버지’ 언급이 없는데 이는 깊은 의도가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인간인 아버지 없고 하느님 아버지 이외는 다른 아버지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마르코에게 있어 메시아 비밀은 부활을 통해 비로서 계시되는 것이기에, 부활 이전에는 가장 가까운 자들까지도 예수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마르3,34“보시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을”에서 핏줄로 맺어진 혈연관계가 중요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영적 관계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을 두고 하신 말씀으로 복음서에서 제자들에게 가족을 멀리할 것을 여러번 촉구 하셨다.


2) 마르6,1-6 : 예수의 어머니와 그의 형제들

세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가족들의 위상이다. 가족들은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로서 종말론적 가족과 대조를 이룬다. 둘째, 예수를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다른 복음서들과 비교하면 마태오는 목수의 아들이라 부르며 루가와 요한은 요셉의 아들이라 부른다. 마르코는 예수를 ‘목수’로 부르고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것에 대하여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다.(p49 각주 참고) 셋째, 예수의 형제들이 나오는데 이는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다. 이 문제에 대해서 교회는 해석의 원칙을 제시한다.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형제들을 결코 마리아의 자녀로 부르지 않고 있다. 예수의 형제들로 나타나는 네명중 야고보와 요셉은 다른 마리아의 아들로도 나타나고 있다. (p51.참고) 그리고 셈족언어에서 ‘형제’라는 용어는 넓은 의미로 사촌, 조카까지도 수용하고 있다.


3. 마태오 복음


1) 마태1,1-16 : 예수의 족보

루가3,23-38은 예수님부터 아담까지 77대(7*11)이고 마태오는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42대(14*3)이다. 두 족보는 객관적으로 조상들의 계보를 밝히기 보다는 주관적으로 예수의 정체를 밝힌다. 루가는 예수께서 아담의 후예이요 하느님의 후예임을 강조하고 마태오는 아브라함의 후예요, 다윗의 후예인 메시아임을 강조한다.

예수의 족보에 4명의 구약여인(다말, 라합, 룻, 바쎄아)이 등장하는데 죄인, 이방인이라는 공통점을 내세우나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닌, 매우 기이한 인연으로 아들들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윤리적 관점에서 불륜의 여인들이라 나무랄 수 있으나 다윗의 가계, 메시아의 가계가 끊어지려는 순간순간에 하느님께서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참여하고 계신다. 마리아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른 특이한 결혼관계 유지하고 있다. 요셉과 관계없이 예수 잉태 출산한 것이다.


2) 마태1,18-25 : 예수 탄생

예수가 마리아에게서 동정적으로 잉태되고 탄생된 사실을 명확히 한다. 이사야의 임마누엘로서 그 불투명했던 ‘알마’가 처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에서 예고되었던 메시아라는 사실과 더불어 마리아는 일찍이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루가 복음과 사도행전

마리아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해주는 사가는 루가이다. 동정녀와 관련된 신약성서의 152개 구절들 가운데 90개 가량이 이 복음사가 작품이다. 루가는 세상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하느님의 구원역사를 개진하고자 한다.

마리아의 모습을 예수의 어린시절과 마리아, 예수의 공생활과 마리아, 예수 부활 승천이후의 마리아로 나눌 수 있다.


1) 루가1,26-38 : 예수 탄생의 예고

이 부분은 마리아에 관한 황금자료이다. 가량 탁월한 마리아론의 장으로 볼 수 있다.

“은총이 가득하신분”→게오르그죌의 이야기 p.69 각주 참고.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탄생을 비교할 수 있는데 예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의 경우, 양친 나이와 임신 불가능 상태의 방해는 하느님의 개입으로 극복된다. 그런데 예수의 경우, 사람들은 하느님의 보다 큰 개입을 기대하고 있기에 이 기대는 처녀잉태로 채워진다.

루가의 탄생고지 메시지가 그리스도론적인 언어의 반영이며 ‘후-부활적’인 교회의 정식이다. 마리아에게 한 천사의 말이 교회가 부활후에 예수에 대해서 언급했던 사실과 세례이후 예수의 공적인 활동중에 예수에 대해서 언급했던 사실을 생생하게 그리고 인상깊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론은 예수가 어머니 뱃속에 잉태되는 순간까지 소급해 올라가는 것이다.

루가1,35은 예수가 성령의 내림으로 잉태된 하느님의 아들임을 나타낸다. 여기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도구였다고밖에 마리아에 대해 더 이상 알려 주지 않고 있다. 마리아에 대한 루가의 진정한 평가는 루가1,38의 내용에서만이 분명해진다.


2) 루가1,39-45 :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루가는 여기서 예수가 현존하는 마리아의 태중을 구약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계약궤’와 비교하고 있다.(p.77각주 참고)

루가1,35은 마리아에 대해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감싸다’(επισκιαξω)는 하느님의 영광의 구름이 사막에서 성막을 덮었을 경우(출애40,35)와 거룹과 계약의 궤를 덮었을 경우(출애25,20)에 사용하고 있다. 루가1,43에서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주님의 어머니께서 찾아~’이 말과 사무하 6,9에서 다윗은 야훼가 너무 두려워 ‘야훼의 궤가 나에게 어떻게 오실 수 있는가?’와 비교하여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연결지어 볼 수 있으나 ‘계약의 궤’표상을 확실하게 마리아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다.


3) 예수의 공적활동과 성모마리아

루가3-24장에서 ‘마리아’라는 말 언급되지 않는다. 예수의 유년시기 기사에서 마리아에 대해 지대한 관심보였는데 왜 여기서는 언급이 없을까하는 의문을 갖게된다. 하지만 루가의 일차적 관심은 인간 마리아가 아니고 제자도의 표상인 마리아임을 우리가 알 때 이해가 될 수 이는 것이다.


4) 사도1,12-14 : 예수 부활 승천이후의 성모 마리아

마르코, 마태오, 요한은 ‘십자가 증인’들에 대해서 여인들을 이야기 할 때 마리아가 등장한다. 그러나 루가에서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 승천후 사도1,14에 언급되어 나온다. 루가에게 만족스러운 것은 마리아가 성령강림때 형성될 교회의 초석이 되었던 사람들과 일치의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데 있다. 마리아는 이들과 함께 기도했고 이 기도로 인해 초대교회의 생명이 결정적으로 성장한다. 예수 잉태부터 교회의 탄생까지 함께하는 마리아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5. 요한복음

마리아에 관해서 가나의 혼인잔치와 십자가 사건에서 살펴 볼 수 있다.


1) 요한2,1-12 : 가나의 혼인잔치

이 부분을 상징적으로 신학적으로 해석한다. 마리아는 예수가 기적적인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믿었고 또 행하리라는 것을 희망했다. 또 그 결과 기적이 마리아의 중재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본다. 우리는 여기서 가나의 혼인잔치와 시나이 계약 형식을 비교할 수 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가 예수와 하인들 사이를 중재했으며 이를 통해 포도주를 얻었다면 시나이 계약에서는 하느님과 백성들 사이를 모세가 중재했으며 율법을 선물로 받았다. 이 도식에서 예수가 하느님임을 암시하고 마리아의 위치까지 읽을 수 있다.

예수께서 어머니께 ‘여인’으로 부르는 호칭문제를 살펴보면 히브리, 희랍어에서 ‘어머니’를 ‘여인’으로 부르는 구절은 없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에서도 ‘여인’으로 부리고 있는데 이는 창세3,15에서 뱀의 머리를 짓밟는 ‘여인’과 요한 묵시록의12장의 ‘여인’과 관련이 있다. 교부들은 마리아를 에와와 대조해서 ‘새에와’, ‘제2의 에와’로 이해하게 되는 열쇠로 본다.

마리아는 하느님이 백성들에게 요구하기 전에 순종하도록 권고하는 적극적인 중재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가나의 기적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모께 중재기도를 청하는 가장 확실한 근거를 제공한다. (p.108 참고)


2) 요한19,25-27 : 십자가 사건

요한 복음만이 전해주고 있다. 마리아가 아들 예수의 수난에 참여하였음을 보여준다. 제자들과 마리아의 관계에서 마리아의 모친성은 혈연관계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관계에서 형성된다.


신약성서 마리아론의 종합적 결론

그리스도 인성의 근거로서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이심을 알 수 있고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랐기에 믿음으로도 예수의 어머니이시다.

마리아에 관한 신학은 성서로부터 시작된다. 성서에서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일과 결코 분리되거나 독립적으로 진술되고 있지 않다. 구약의 예언에서는 그늘져 있지만 메시아의 어머니로 암시되고 있다. 예수의 어린시절에는 그리스도와 일치되어 있다. 그의 보호자요 양육자이다. 또 마리아는 항상 구원 역사의 전망안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렇게 성서와 마리아에 대해 조규만 신부님의 책을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우리는 신약성서에 나타난 마리아의 모습을 우리 마음속에 그려 볼 수 있다.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해서 성서본문 텍스트만으로 충분히 살펴볼 수 없다. 본문 텍스트에 대한 수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함을 알 수 있었고 개신교에서 마리아는 처녀도 아니요 더욱이 동정으로 평생살지 않았다고 몇몇 구절들을 근거로 이야기 하고 있으나 그 주장 또한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것임을 그리고 우리 가톨릭의 주장도 마찬가지로 성서 본문만으로는 증명될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각자의 믿음으로 성서본문들을 되씹을 수 있고 소화해 낼 수 있어야 하며 성서기자들의 속뜻을, 신학을 유추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성모님을 하느님의 모친으로 우리의 어머니로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2. 교부시대와 성모 마리아


※. 교부 시대에 대한 전이해


  1. 교부란?

교부들은 사도들의 교회에 시대적으로 가장 가까운 목자이며 신학자로서 교회의 의식, 표현, 체험 등 그 모습을 갖추게 한 분들이다. 그들은 교회의 신앙유산을 물려받은 교회의 아들이지만, 또한 교회사에 있어 가장 중대한 순간에 교회를 탄생시킨 아버지라는 점에 있어 교부들의 공통된 가르침은 교회의 전통으로 존중되어 왔다.

교부들은 교회사 안에 특권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도들의 설교가 희랍, 라틴문화권에 침투하게 되자 인간적 사색과 추리를 필요로 하였고, 이것이 교부들의 연설이나 저술로 표현되었는데 여기서 신학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복음이 다른 사상체계와 접촉하면서 여러 가지 이설이 등장하게 되고, 이런 이설 앞에 교부들은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신앙의 유산을 보다 정확한 신앙의 표현으로 그르침없이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교부들은 이러한 이설의 등장이라는 외적 위협 앞에 그 시대 용어로 신앙의 정확한 표현을 시도하여 교의의 창시자이며, 또한 당시 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신앙을 설명하기 위한 사색과 추리로서 신학의 창시자라 일컬어지게된 것이다. 신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삼위 일체론과 그리스도론의 교의는 교부들이 창안해낸 언어로서 오늘날까지도 표현되고 있다.

사도들의 설교로 구성된 복음은 전 인류 역사 안에 존재하고 선포되어야 하는 것으로, 교부들의 사명은 그 시대 문화와 언어로 복음을 표현하고 설명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교부들의 전통에는 그 시대의 문화의 영향, 그 시대 수사학적 논법, 감각세계와 현상세계라는 플라톤 철학의 이원론적 사고방식 등이 지배하고 있었다. 2-3세기 교부들에게 있어 지배적인 호교론적 동기와 4-5세기 교부들에게 지배적인 이설에 대한 반박의 동기, 여기에도 그 시대성의 영향을 보아야 한다. 특히 교부들의 성서 해석은 그들나름의 수단으로 이해하고 설명했던 것인데, 오늘 우리의 성서 주석학이 지닌 지식으로 오류를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오히려 그들의 성서에 대한 열정과 성서의 정신을 실생활과 신학을 함에 있어 단절됨없이 연결짓고자 노력했던 정신을 높이 사야할 것이다. 그들이 말하고 저술한 모든 것은 이와 같이 사목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 안에 그리스도교인의 영성생활을 심기 위함이었고, 성서가 요구하는 그리스도교인의 영성을 올바르게 알아듣고 설명하고 가르치기 위함이라는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교부들의 역할은 신앙, 그리스도교인 생활, 전례, 영성등 모든 면에 걸쳐 교회사상 교회생활을 탄생시키는 창조적인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교회의 아버지이며, 또한 교회 안에서 배운 바를 교회 안에서 가르쳤다는 의미에서 교회의 아들들 이었다.   


  2. 사도 후시대의 그리스도교

사도 후시대는 계시의 사도시대가 끝나고 사도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후세대에 전달하는 특징을 지닌 기간으로서 사도시대의 교회와 초기 교회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성전시대의 출발점이 되었다. 사도 후시대의 그리스도교는 엄밀한 의미의 사도교회와 다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교회는 선교분야에 있어서 결정적 조치를 취하여 그리스 로마 세계의 모든 곳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러한 선교정책과 방법은 성공을 거두어 개종자들이 특히 로마 제국의 대도시에서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점차로 주위의 외교인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것은 제국 안에서 통치자와 국민들의 경계심과 이에 따른 오해, 더 나아가서는 반감으로 변하여 교회 박해의 형태로 나타났다.

여기서 교회는 외부로부터 가해오는 공격을 막아내면서 동시에 내적으로는 그 신원을 확정해야 할 필요를 절감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인 계시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해야만 했다. 이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정신적 성장을 촉진하였다. 이러한 성장은 사도 후시대의 저술가 그룹이 외교사상과 여기에 기원을 둔 이단1)과 투쟁을 벌이는 가운데 그리스도교의 정통적 신앙교리를 밝히게 된 것이다. 이 시대에 신학적으로 계시를 체계화하는 작업의 임무를 수행한 저술가 그룹은 시대순으로 보면 사도교부, 호교교부, 초대교부 등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사도 후시대는 연대적으로 각 시대를 주도한 교회 저술가들을 중심으로 볼 때 사도교부시대(100-150), 호교교부2)시대(150-200), 초대교부3)시대(200-300)로 세분될 수 있다.


2.1. 초기 교부들과 초기 작품들


 2.1.1.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초대 그리스도교가 유다 세계나 이교 세계와 벌였던 정신적 쟁론의 중심부에는 항상 그리스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이 마리아에 대해서 언급한 것도 이 여인이 그리스도와 맺은 관계 때문이었다. 그 예로 이냐시오가 에페소 교회에 보낸 서한을 고전적 증언으로 손꼽을 수 있겠다.(7,2) 여기서 이냐시오는 그리스도의 참 신성과 인성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가 참 인간임은 다른 근거와 함께 마리아로부터의 출생 증언을 통해서 시사하고, 그가 하느님임은 하느님으로부터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가지가 모두 인간적 부친을 명시하는 가운데 진술된 것이 아니라 동정녀의 잉태를 통하여 인과율적 관계로 맺어진 것이다.

이냐시오는 성서 시대 이후 마리아의 신적 모성과 동정성을 처음으로 언급한 교부이다. 이것을 이냐시오는 주님의 육화, 그분의 수난과 죽음과 더불어 믿지 않는 사람들, 특히 세상의 지배자인 악마들에게는 감추어져 있는 하느님의 세 가지 신비 중의 하나로 취급하였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후에 오리게네스, 바실리오 등 여러 교부들에게서 주장되고 있다.

이냐시오에 의하면,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것은 동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정성은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신앙의 차원이다. 이냐시오는 이러한 마리아의 진정한 모성과 동정성을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강조한다.

첫째, 하느님 아들의 육화의 보증이요 근거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보증이요 근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은 영지주의자들을 거슬러 나온 것이다. 둘째, 동정잉태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하는 유다인들을 거슬러 예수 신성의 보증이 되고 있다. 셋째, 하느님은 마리아의 모성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구원 계획에 따라 이루신 것이다. 넷째, 그리스도의 탄생은 유일무이한 사건이다.

이냐시오의 마리아론적 진술은 철저하게 그리스도론적 기능에 종속되어 있다.


 2.1.2. 외경, 야고보 복음

외경은 2세기경부터 예수의 기적활동을 주로 다루어 쓴 작품으로 황당무계한 내용들이 많고 역사적 근거나 신빙성이 희박하다. 그러나 외경은 성서를 밝혀 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오리게네스는 언급하고 있다. 실재로 외경을 통해서 우리는 마리아가 그 당시에도 공경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리아에 관한 비교적 많은 것을 언급하고 있는 외경으로 야고보 복음이 있다.

이 외경은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과 더불어 신적 모성에 대한 신앙을 간직하고 있다. 아버지 없이 태어난 예수의 탄생 이외에도 마리아가 동정 허원하게 된 배경, 예수의 형제들이 마리아의 자녀들이 아니라 요셉의 전처소생들이라는 설명, 마리아의 부모 이름등이 진술되고 있다.

 2.1.3. 유스티노

교부들은 성서를 관찰하면서부터 마리아상이 지닌 보다 넓고 주요한 면모의 명증성을 즉시 발견해내었다.  유스티노는 그리스도론적이고 구원론적 관점에서 마리아를 동정녀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에와와 대조하며, 마리아의 덕성을 높이 평가한 교부이다.

그는 동정마리아로부터의 예수의 탄생을 유일무이한 특별사건으로 보면서, 이를 이방인들의 신화적 동정 잉태나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가현적 혹은 통과적 잉태와 출산으로 이해하는 것을 배격한다. 그에게 있어서 동정 마리아로부터의 예수 탄생은 성조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실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마리아는 그리스도론적이며 구원론적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또한 유스티노는 마리아의 신적 모성과 동정으로서의 특별한 위치를 증언하기 위해 창세기 3,15의 에와 이야기를 인용하여, 에와와 마리아를 비교하고 대조하였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대조를 창세기 3,15에서 이끌어 낸 것인지, 로마 5,12 이하에서 이끌어 냈는지는 논란이 되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에와 - 마리아의 대조는 그 이후 교부들, 특히 리용의 이레네오에 의해 계속 발전된다. 이 대조는 마리아의 완전한 윤리적 덕성과 그의 중재 역할을 인식하는 데 큰 영향을 주고 있다.


 2.1.4. 리용의 이레네오

리용의 주교 이레네요는 유스티노의 에와-마리아 대조를 더욱 발전 시틴다. 그의 신학에서 이 견해는 그리스도론의 중심적 위치에 세워지고 있다. 창조에서부터 시작하여 구원에 이르기까지 역사안에서 펼쳐지는 하느님의 계획을 이레네오는 자신의 신학으로 정립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역사는 최초의 인간의 범죄로 인해 타락하여 회복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렇게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의 역사에 구원의 요소가 들어섰다. 즉 아담 대신에 그리스도가 등장하고, 원죄의 나무 대신에 십자가의 나무가 심어졌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회복의 순간, 그 정점에 새로운 에와로서의 마리아가 등장한다. 첫째 에와는 순명하지 않았으나 새로운 에와인 마리아는 순종했다. 그리고 두 여인 모두가 각각 한 남자를 곁따랐으나 끝까지 동정녀로 머문 것은 마리아였다. 마리아는 천사에게 대답한 그녀의 말 속에 이미 진술된 대로(루가1,38),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따름으로써, 에와의 죄로 말미암아 엉클어진 매듭을 다시 풀어낼 수 있게 했다.

이레네오는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에와의 불순명의매듭은 이렇게 마리아의 순명을 통해서 풀어졌다. 에와가 자신의 불신앙을 통해서 얽어 맨 것을 동정녀 마리아가 자신의 신앙을 통해서 풀어낸 것이다.” 이 내용을 보면 에와를 통해선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해선 삶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레네오는 바울로가 그리스도를 일컬어 표현했던 ‘구원의 원인’을 마리아에게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로가 아담에게 적용했던 ‘죽음의 원인’을 에와에게 사용한다.

이레네요는 그리스도론만이 아니라 구원론적 의미에서도 마리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그의 신학 ‘원천에로의 회복’을 정립하고 있다. 그가 마리아를 두고 부르는 ‘에와의 변호자’, ‘구원의 원인’, ‘그리스도의 동반자’라는 명칭은, ‘동정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와 함께 ‘공동 구속자’, ‘공동 중재자’ 등의 칭호가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2.2. 3세기부터 니체아 공의회까지

온갖 이단과 이설에 대항해서 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진리를 옹호하는 가운데 신학을 발전시켰다. 중심 문제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였다. 교부들은 동정녀로부터 태어나신 예수가 참인간이며 참 하느님이심을 입증하려 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론을 발전시켜 나가는 가운데 마리아에 대한 신학도 함께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마리아의 동정성과 함께 ‘출산 후의 동정’ ‘출산 중의 동정’ 그리고 ‘예수의 형제들’이 논쟁의 주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2.2.1.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클레멘스는 하느님의 말씀이 실제로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었다는 이유에서 마리아에게 ‘주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아울러 출산 중에도 동정이었으며,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야고보 복음을 근거로 성서의 ‘예수의 형제’라는 표현을 ‘이복형제’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클레멘스는 동정이며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신비를 교회 신비의 전형으로 삼고 있다. 동정녀-어머니라는 마리아의 모습에서 동정녀-교회라는 도식을 이끌어 내고 있다. 교회는 이단과 열교로 말미암아 변질될 수 없다는 점에서 마리아처럼 동정녀이며, 교회는 또한 하느님의 말씀과 진리들을 교회의 자녀들에게 공급하기 때문에 마리아처럼 어머니라는 사실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2.2.2. 테르툴리아노

‘라틴 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테르툴리아노는 카르타고의 외교인인 상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문학, 수사학, 법학을 연구하였고 법률가로 활동하였다. 그는193년에 신앙을 위해 고문과 사형에 직면하여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용기를 목격하고 감명을 받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윤리적으로 광신적 엄격파인 몬타누스 이단에 가담하여 202년 교회를 떠났다.

테르툴리아노 역시 다른 교부들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동정 마리아로 부터의 잉태와 탄생을 증언하고 있으며, 에와-마리아라는 대립 구도를 발견할 수 있다. 영지주의자들을 거슬러 테르툴리아노는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보증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테르툴리아노는 성서의 ‘여인’이라는 표현이 ‘동정녀’를 표현하는 표현이 아니라 일반적인 여인을 뜻하는 단어이며, 더 나아가 가브리엘 천사가 말했듯이 모든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된 여인임을 뜻한다는 점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마리아의 동정은 단지 출산 이전의 기간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교부들이 예수 탄생의 비정상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예수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위험에 처하여 가현설 주장자들에게 악용될 소지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2.3. 로마의 히폴리토

히폴리토는 영지주의자들의 세 가지 오류에 대항해야 했는데 이것은 육화의 신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진술하는 마리아네 관한 언급들은 항상 그리스도론과 관련되어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 아들의 육화와 인간 구원의 신비에 있어서 본질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히폴리토는 마리아를 교회와 밀접하게 연결시켰다. 교회가 로고스를 낳는 한,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불릴 수 있다.


 2.2.4. 오리게네스

오리게네스는 마리아에게 주저 없이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초기 교부들은 아무런 주저함 없이 이 용어를 마리아에게 사용하곤 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는 두 존재가 아니라 단 한 존재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또한 오리게네스는 예수의 탄생이 다른 사람의 탄생과는 다르며 하나의 징표가 되야한다고 주장하며, ‘임마누엘’이신 그분이 하나의 징표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처녀’로부터의 탄생이 더욱 적합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대한 증거로 루가복음의 족보를 인용하여 다른 사람들은 남자로부터 여성을 “통해서”(dia) 태어났다고 표현되지만, 그리스도는 마리아“로부터”(ex) 태어났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오리게네스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영적 인간으로, 그리스도의 완벽한 제자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모범으로서의 동정적 삶으로 말미암아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모친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리아를 모범삼아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부의 뜻을 낳으면 바로 그리스도의 모친이다. 라고 말함으로써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마리아를 모범 삼아 하느님의 말씀을 출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설명은 마리아의 모성이 그의 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말해 준다.

또한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모든 사람이 구원된다는 구원의 보편적 가치와 의미에서 마리아 역시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된다는 교의적 관점에서 마리아의 의심과 불신앙4)을 말하고 있다. 마리아는 처음부터 완벽한 믿음과 성덕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완전한 성덕에 도달했고 이런 점에서 더욱 우리들의 모범이시다.


지금까지 교부들과 교부들의 저작속에 나타난 마리아에 대한 진술들을 다루어 보았다. 이 작업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마리아에 대한 모든 진술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 하는 물음에 연관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그리스도론이 발전되는 과정속에서 마리아론 역시 발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교부들은 복음에 충실한 해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의 사목적 필요에 의하여 신학이 발전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방민족들의 사상들과 여러 이단 교설들에 의해 교회의 생존의 위협을 느끼던 당시 시대상황속에서 교부들은 교회의 전통과 진리를 수호하고 신자들을 보호하며, 바른 영성생활로 이끌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새롭게 교회의 신앙과 진리를 신경이나 교의의 형식으로 정형화해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필요가 교부들의 저작을 낳았고 마리아에 대한 신학을 발전시켰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교부들의 삶이 그들의 신학과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는데 주의 하면서 우리가 하는 신학 또한 우리의 삶과 유리되어 고착되어서는 안될 것임을 명심하며 살아야 겠다.


※ 니체아 공의에서 에페소 공의회 전까지

위격적 결합이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은 수많은 교부들의 수많은 논쟁들의 결실이다. 하나의 위격(Persona) 안에 두 본성이 일치를 이룬다는 교의 정식이 나오기까지 교회 안에서는 수많은 논쟁자들이 있어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귀양을 가게되었고, 단죄되었다. 위격적 결합은 칼체돈 공의회에 가서야 얻어진 결실이다.(451년) 우리는 그 이전 시기인 니체아 공의회와 에페소 공의회 시기까지 일개된 여러 가지 그리스도론적 논쟁들로 말미암은 마리아에 대한 호칭과 그의 덕성에 대한 표현들을 살펴볼 것이다.

이 시기에는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과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는 호칭과 마리아의 완벽한 성덕에 대한 서술이 개진된다. 그리고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까지는 아니더라도(안치라의 테오도토를 제외하고는) 완전한 무죄함에 대한 발언도 눈에 띈다.


2.3. 니체아 공의회(325년)에서 에페소 공의회(431년) 전까지

4-5세기는 교부들의 황금시대로 불린다. 이 시기에는 마리아의 많은 덕목들이 동정성을 비롯해서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마리아를 ‘영원한 동정녀’라는 칭호로 부르고 있었으며, 성모 마리아의 발현이 언급되기도 한다. 그리고 동방교회에서는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널리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리아를 ‘온전히 거룩한 분’으로 부르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이 시기에는 영지주의와 마니케이즘을 거슬러 마리아의 진정한 모성을 강조함으로써 예수의 인성을 주장하고,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박해가 끝남으로써 박해 시개의 중요한 그리스도교적 덕목이었던 순교가 새로운 덕목, 즉 동정성이 극기적 삶의 새로운 덕목으로 부상하였다.


2.3.1 아타나시오(Athanasius, †373)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Thoetokos),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셨다.


아리우스는 예수를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간 본질을 가진 존재라고 하였다. 이것을 예수의 신성을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한 니체아 공의회는 이를 단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공의회의 결정사항을 보편화시키는데 힘을 기울인 교부가 바로 아타나시오이다.

아타나시오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였기에 그의 어머니 마리아의 모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된다.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신 마리아는 언제나 변함없이 ‘하느님의 어머니’여야 한다.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가현적 육체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로부터, 그 방식은 자연의 규범을 벗어나지만,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얻으셨다고 강조한다. 그에게 있어 동정 잉태의 기적은 아기 예수의 신성을 드러내는 분명한 표징이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맡긴 사실을 제시하며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주장한다. 이것은 모든 신자들이 본받아야 할 덕성이다. 또한 마리아의 완벽한 덕성 안에서 무죄함을 보고 있으나, 아직 원죄 없는 잉태는 논의되지 않는다.


2.3.2. 시리아의 에프렘(Ephraem of Syria, †373)

 부제 에프렘은 많은 시적 작품을 남기고 있다. 그에게 마리아는 모든 존재 가운데 가장 놀랄 만큼 아름다운 피조물이다. 또한 신적 모성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신비다. 에프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교회를 보고 있다. 마리아와 교회 모두 복음의 첫째 결실이며 주님의 축복으로 기뿜이 충만하다. 더욱이 교회와 더불어 어머니 마리아도 제자 요한에게 맡겨졌다.

낙원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마리아는 에와의 역할을 역으로 수행해야만 했다. 구원에 있어서 마리아의 역할은 셰올에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잉태함으로써 우리를 위해 천국이 되었다. 에프렘에게는 마리아에 관한 모든 신비가 신앙의 어려움이 아니라 찬양해야 할 놀라움으로 바뀌고 있다.


2.3.3. 예루살렘의 칠릴로(Cyrillus Hierosolymitanus, †386/7)

예루살렘의 주교 치릴로는 예비자 교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 교리서에서 마리아론적 가치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마리아를 육화와 관련하여 다루고 있다. 이 육화의 신비 사건에서 동정녀 마리아는 성령과의 공동 협력이라는 차원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마리아는 수도관 역할이 아니라, 육화하신 분이 실제로 살을 받고 양육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이사 7,14의 임마누엘 예언도 아하즈 왕의 아들 히즈키야에 관한 예언이 아니라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

그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는 칭호를 단 한 번 사용하는 조심성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마리아로부터 남성의 중재 없이 하느님의 아들이 태어났으므로 이제 여성은 한 남성의 파트너가 아니라 하느님 자신의 파트너가 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2.3.4. 디디모(Didymus Alexandrinus, †389)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영광스럽고 공경되는 마리아는 아무와도 결혼하지 않았으며, 다른 누구의 어머니가 되지도 않았다. 단지 그분은 아기 예수를 낳은 후 영원히 손상되지 않은 동정녀로 남아 있다.


장님이었고 평신도였던 디디모는 알렉산드리아의 전통적인 마리아 신심을 따른다. 오리게네스나 클레멘스를 따라서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로 부르고 있다. 마리아의 동정성은 모든 덕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며 신적인 것이다. 이제 그분의 이름은 동정녀, 거룩한 동정녀, 평생 동정녀이시다.

니체아 공의회 이후 그리스도교 신심은 마리아를 말할 때 어머니로 존경하는 의미에서 항상 ‘하느님의 어머니’ 혹은 ‘동정녀’로 호칭한다.


2.3.5.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오(Epiphanius of Salamis, †403)

Laodicea의 Apolinaris는 신인 존재 단일성을 설명하며, 영혼과 육신의 비교를 이용한다.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 예수와 결합하여 단일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영혼의 자리에 하느님의 말씀, λοΥος가 위치하게 되어 인간의 영혼의 명백한 부인에로 이끄는 자신의 논거를 가지고 있다. 인간성이 신성에 귀속되게 되는 것이다. 그는 각 존재가 고유한 생의 원리를 작는 두 존재는 하나의 살아있는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예수가 영혼과 인간의 자유를 갖는다면, 우리의 구원은 약한 발 위에 서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으로서 유한한 구원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신성 혹은 인성을 부인하게 되면 그와 관련된 마리아 모성의 신적 특성인 마리아의 동정성이나 실제적 인성을 부인하게 된다. 이와 유사하게 ‘마리아 반대자’들은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부인하였고, ‘성모 흠숭자’들은 성모 마리아를 마치 여신처럼 모셨다. 에피파니오는 이 두 가지 이단들과 대항하여 마리아를 변호한 교부이다.

그는 마리아의 죽음에 관해 언급하였다. 결론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이사야의 예언처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이 그분에게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며, 평생 동정성을 주장한다. 그는 성모 신심을 강조하지만, 마리아가 여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하느님 흠숭과 혼동하는 것을 경계한다.


2.3.6. 카파도치아의 교부들: 바실리오, 니싸의 그레고리오,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와 이코니아의 안필로키오


2.3.6.1. 바실리오

“그의 첫 아들을 낳을 때가지 그(남자)를 모랐다” 이말은 마리아가 성령의 중재로 주님의 탄생을 위해 온전히 순결함을 보존한 다음 정상적인 결혼의 관계를 거절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교회의 이론에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동정성은 육화에 봉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그 육화가 이루어진 다음 육화의 신비와 그 이론에 어떤 영향을 주는 데 필요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사람들(신자들)은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어느 한 순간 동정이기를 멈추셨다’라는 말을 듣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한 증언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그는 마리아의 태중을 하느님의 육화의 작업소로 정의한다.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가 하느님이라는 사실로 인하여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인 육화의 신비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바실리오는 ‘신자들의 신앙감’(Sen년 fidelium)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처음으로 ‘신자들의 신앙감’을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입증하는 하나의 원리로 도입하고 있다. 또한 그는 마리아의 완벽한 영적 생활을 가르치고 있지만, 마리아의 신앙에 관해서는 오리게네스처럼 시므온의 예언대로 성자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신앙의 어둠을 겪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앙의 어둠이라는 여정을 극복하고 하느님께 이르는 그의 삶은 모든 신앙인들의 최고의 모범이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불신앙까지도 구원하셔야 한다는 그리스도론적 입장에 근거한다.


2.3.6.2. 니싸의 그레고리오

그분 자신은 오염되지 않으시고, 오히려 오염된 것들도 깨끗하게 하신다고 소리 높여 설교하고, 증언하다면, 우리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그는 아리아니즘, 아폴리나리즘과 대항해야 했다. 아폴리나리스의 주장에 대해 위격적 결합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 속에 마리아의 참되고 실제적인 모성을 언급하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이 마리아의 태중 안에 실제로 육화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다고 하였고, 마리아의 동정성은 놀라운 기적이며, 이 동정성을 모세의 가시덤불에 비유한다. 그리고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루가 복음의 구절을 마리아의 동정 허원으로 해석하면서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주장한다.

그는 많은 구약의 구절들을 마리아에게 적용한다. 모세의 가시덤불, 에제 44,1의 닫혀진 문, 출애굽기의 경작하지 않은 땅에서 얻게 된 만나 등이 동정성의 신비에 적용된다. 그리고 마리아를 부활로 넘어가는 ‘기쁨의 뿌리’라고 말한다.


2.3.6.3.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

만일 복되신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이시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신성으로부터 분리된다. 만일 누군가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운하를 건너가듯이 단지 마리아를 거쳐 지나간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또 그분이 마리아 안에서 남성의 중재 없이 신적인 방법으로, 잉태의 법을 따라 인간적인 방법으로 양육되었다는 것을 부인한다면 무신론자들과 다름없다.


‘하느님의 어머니’를 진정한 신앙의 한 기준으로 내세우고 있다. 신적 모성은 육화하신 말씀과 인간 구원의 신비에 관한 교회 이론의 중심축이다. 육화의 신비 안에서 하느님과 마리아 사이에 놀라운 상호 교환을 보고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그의 온전한 동정성을 선물로 봉헌하고, 하느님은 당신의 특별한 사건을 수행하기 위해 마리아를 미리 정화하시고, 그 사명을 마지막까지 인간적으로 수행할 능력을 위해 개입하셨다. 교회가 1854년 원죄 없는 마리아의 잉태의 교리를 선포하기 이전에 그레고리오는 앞서서 마리아의 선-정화 이론을 언급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그레고리오는 당시 교회 공동체에서 마리아에게 특별한 도움을 청하는 기도가 드려지고 있었고 그것이 일반적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2.3.6.4. 이코니아의 안필로키오

그는 대 바실리오와 마찬가지로 거룩한 동정녀 역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비극 앞에서 신앙의 어두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주님의 어머니이신 것 자체로 충분하다.


2.3.7. 요한 금구(Ioannes Chrysostomus, †407)

요한 금구는 안티오키아 학파에 속한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는 만큼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사용한다. 그에 비해서 안티오키아 학파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마리아에게 좀처럼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리아가 인간적으로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서슴지 않고 언급하고 있다. 시므온의 칼의 예언을 근거로 신앙의 어둠을 겪었음을 이야기한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마리아의 강한 요구는 순전히 인간적인 감정의 한 모습이라고 해설한다. 그러면서 구원의 경륜에 있어서 마리아의 역할에 대해 찬양한다. 또한 마리아의 동정적 모성은 절대적인 신비로 간주하며, 이것은 다만 신앙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을 옹호하며 “때까지”(마태 1,25)라는 표현은 단지 예수가 잉태하기 이전의 사실을 확증하는 의미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변론한다.

구약에서 마리아를 상징하는 예표로 에덴 동산을 든다.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풍성하게 온갖 싹이 자라난 에덴의 처녀림은 바로 마리아를 미리 상징해 준다고 설명한다.


2.3.8. 힐라리오(Hilarius, †367)

초기 라틴 교부의 한 사람으로서 힐라리오는 구원 역사 안에서 마리아의 역할의 중요함을 깨닫고 있었다. 출산 이후 요셉이 마리아를 부인으로 맞이하고 있지만, 이는 육체적 결합이 없는 단지 법적인 개념으로서의 부인이었음을 강조한다. 성덕에 관해서는 시므온의 예언을 상기하며 성덕의 결함을 드러내는 듯하다.


2.3.9. 암브로시오(Ambrosius, †397)

그는 두 가지 위험한 대중적 사상과 겨루어야 했다. 아리아니즘과 ‘대-어머니’(Magna Mater)로 모시고 있는 퀴벨레(Kybele) 여신에 관한 이방인들의 경배 풍습이었다.

그로 인해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여 마리아는 하느님이신 예수를 낳았으므로 ‘하느님의 어머니’(Mater Dei)가 되신다. 이 용어는 당시 퀴벨레 여신을 섬기는 사람들 때문에 오해의 여지가 있었다. 마리아의 동정성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련하여 강조된다. 아울러 예수의 육체가 가현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단 마니케이즘에 대해서 사람의 아들로 불리는 것은 바로 참으로 인간이신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암브로시오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 ‘주님의 어머니’ ‘ 그리스도의 모친’이라는 칭호를 붙인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밀접히 결합되어 있다는 ‘속성의 교환’에 근거한다.

또한 마리아는 육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동정이었으며, 따라서 성덕이 완벽했음을 강조한다. 천사의 예고 때부터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순종과 함게 그 깊은 신앙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성덕을 바탕으로 마리아의 무죄함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마리아를 완벽한 영인으로 강조하면서도 마리아의 공경과 하느님의 흠숭을 엄격하게 구별한다.

암브로시오는 처음으로 마리아를 교회의 예형이료 모범으로 내세우고 있다. 교회 역시 동정성과 모성을 함께 지녔다.


2.3.10. 예로니모(Hieronymus, †419)

그는 아리아니즘의 추종자인 앨비디오를 반박하며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앨비디오는 마리아가 출산 후에는 요셉과 부부생활을 했고 “예수의 형제들”(마르 3,31-35)은 그들의 자녀라고 주장하였다.

예로니모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옹호하며, 동정의 신비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에 비유된다. 문이 잠겨 있는데도 주님이 들어가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외경 야고보 복음도 거부한다. 요셉마저도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동정 생활을 하였으며, 그런 이유로 ‘주님의 아버지’로 불릴 수 있었다고 항변한다.


2.3.11.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430)

정신 안에서의 어머니는 우리의 머리가 아니다. 우리들의 머리는 구세주 자신이다. 그러나 그 여인은 그 지체들인 우리들으 어머니이다. 그 여인은, 육체에 있어서 그리고 그 머리 자신의 어머니이시다.


루가 복음의 탄생 예고에서 나타나는 마리아의 질문을 마리아의 동정 서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리아 자신의 신앙은 마리아의 순결한 동정보다 더 중요하다. 마리아가 육체적으로 에수를 잉태한 것보다 신앙을 잉태한 것이 더 값지고 복된 이유가 된다. 예수의 잉태 역시 그의 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의 동정성이나 완벽한 성덕에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마리아 역시 교회의 한 구성원이다. 마리아를 교회의 전형이요, 모범으로 내세우지만, 교회를 마리아보다 상위에 두고 있다. 마리아는 교회의 한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라는 사실보다도 그리스도의 추종자라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였다. 특히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봉헌한 적극적인 협조자로서 마리아의, 전폭적인 하느님께의 순종(fiat)을 극찬한다. 그 신앙이 그분의 모성보다도 더욱 중요하고 참으로 행복의 이유가 된다.

마리아의 미래의 운명은 그를 알고 선택하신 하느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하느님의 마리아 선택은 당신의 헤아릴 수 없는 계획에 따라 마리아를 창조하셨고 선택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육화와 더불어 마리아의 동정 잉태, 동정 모성, 무죄한 성덕 모두가 하느님이 예정하고 선택한 하나의 신비로 이해하고 있다.


2.4. 에페소 공의회(431년) 시기

네스토리우스 주교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합일을 지칭하는 중재자의 모습을 본다. 그래서 마리아에 대한 칭호도 천주의 모친보다는 그리스도의 모친(Christotokos)이라는 명칭을 선호한다. 이것은 예수의 신성보다는 인성에 더 중점을 두는 안티오키아 학파의 성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인 칠리로는 네스토리우스를 예수 안에서 보통 인간을 보고 있는 하나의 새로운 사모사타의 바울로로 낙인찍게 된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는 칠릴로가 신인의 단일성을 표현하기 위해 아폴리나리우스로부터 유래하는 본성적 합일의 정식을 이용하고 있다고 응수한다.

결과는 에페소 공의회에서 났다. 하느님의 모친이라는 칭호를 선택한 것이다.

네스토리우스와 치릴로는 모두 신인의 단일성, 이와 함께 존재의 단일성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는 안티오키아의 전통에 따라 합일이 신적, 그러나 전적으로 은총이며, 예수의 인간적 자유 속에서 말씀에 대한 예수의 자발적 애착을 포괄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동적인 개념에 비해 치릴로는 본성적 일치를 말하며, 육화의 은총성격을 부인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정적인 개념의 본성적 일치를 말하고 있다.

문제는 네스토리우스가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구별하고 인간적인 것을 하느님의 아들에게가 아니라, 다만 합성된 주체인 그리스도에게만 진술하려 했던 방식이 치릴로의 눈에는 하느님 자신의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신성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2.4.1.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빛을 가져다주시는 분이며 정결한 그릇, 꺼질 수 없는 등불, 당신에게서 정의의 태양이 태어나셨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 편에서 수행하시는 구원 사건의 도구가 되신다. 그런 뜻에서 치릴로는 마리아를 구원의 중재자로 묘사한다.


2.4.2. 콘스탄티노플의 프로클로

저 위에서는 어머님이 안 계시고, 이 아래서는 지상의 아버님이 안 계십니다.

이미 그 시기에 마리아에게 중재 기도가 드려지고, 마리아에 대한 종교적 신심이 덩당한 것으로 인정되었고 권장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2.4.3. 안치라의 테오도토

당신 태중의 열매는 가을철의 결실이 아니라 불멸의 싹입니다. 자연이 선사한 추수가 아니라 하느님의 씨앗으로 개화된 꽃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광채이십니다. 아무도 구 뒤를 이을 수 없는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당신께 인사드립니다.

테오도토는 하느님의 신비, 그분 말씀의 육화에 자신의 신학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분은 비록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태어나시지만, 하느님의 영원하신 아드님이신 본질이 상실되지는 않는다. 때문에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른다.

원죄로부터의 면제, 그 이후의 윤리적 삶, 특별한 은총의 충만함은 하느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은 특권으로 간주된다. 테오도토는 마리아의 순결함이 육화로 말미암은 것임을 강조한다. 특히 천사가 건넨 인사 ‘살베’(chaire)에 주목하고 마리아를 ‘죄 없으신 어머니’라고 칭송한다. 동정 출산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비유하며, 요셉은 마리아 동정의 보호자요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한다.

마리아에게 주어진 이러한 하느님의 선물에 대해서 우리는 단지 그분을 찬양하고 감탄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처럼 테오도토는 마리아의 동정성과 성덕을 하느님의 신비로 해석하고 있다.


2.4.4. 첼리오 세둘리오

당신은 당신의 복된 태중에 동정의 영예로부터 분리되지 않는 모성의 기쁨을 지니고 계십니다.

에페소 공의회와 칼체돈 공의회 사이 암브로시오 전례 안에 예수 탄생 예고 축일 미사가 생겼고, 또 로마 미사 경문에 복되신 동정녀의 기념 미사가 설정되었다. 첼리오 세둘리오는 부활절 시에서 그리스도에게 적용된 어린 양이라는 성서의 상징적 이미지를 성모 마리아에게 적용한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전해진 천사의 메시지는 예언자들이 예언한 구원이 실현된다는 기쁜 소식이라고 하였다.


2.4.5. 베드로 크리솔로고

그는 ‘하느님의 모친’이라는 칭호를 옹호하며 라틴어로 번역되는 ‘Mater Dei' 또는 ’Dei Genitrix'라는 용어 대신에 ‘주님의 어머니’ 또는 ‘여주인’이라는 뜻을 지닌 ‘Domina'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의 영광을 받은 복되신 분으로서 모든 복된 자들의 여왕이시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모성은 유일무이한 것이고 그분의 동정성은 하느님의 권능에 의한 기적이다.

그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배우자’로 부른다. 하느님과의 결혼은 그분의 영원한 선택에 근거한다. 여기서 아가 4,12을 인용한다. “나의 신부는 닫혀진 정원, 봉해진 샘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신심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항상 그분의 아들 때문에 찬양되고 있다.


2.4.6. 대 레오

에우티케오는 위격적 결합이라는 새로운 술어를 거스려 저항한다. 그는 “우리 주께서 결합 이전에는 두 본성이나 결합 후에는 하나의 본성임을 고백한다.”고 말한다. 결합 이후의 하나의 본성이라는 것은 인성이 신성에 흡수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대해 레오 교황은 그에게서 하나의 새로운 가현설을 본다고 지적한다. 신인에게서 인간 본성을 부인하고 우리와의 동일 본질을 거부하는 자는 그분의 출생 죽음과 부활의 실재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마리아의 모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보증이 되고 있다.

또한 레오 교황은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과 신적 모성, 완전한 무죄함을 언급한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보존된 특권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교부로서 루스페의 주교 훌젠씨오는 아우구스티노의 이론을 따라서 마리아 역시 원죄로부터 면제될 수 없는 사실을 주장한다. 인간이 원죄를 물려받는 부부 행위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마리아의 순결함을 강조한다.


2.4.7. 안티오키아의 세베로

한 인간이 당신을 향할 때, 오 하느님의 어머니요 동정녀시여, 당신 안에서 하나의 기적을 통하여 이루신 하느님의 신비를 향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처럼 도와주신 분의 위대함 때문에 찬양을 드립니다.


마리아의 동정적 모성은 하느님 친히 이루신 기적이다. 어머니 동정 마리아는 우리 구원을 위해 중재 역할을 하신다. 여기서는 ‘중재’가 성인들의 그것과 비교되고 있다. 그리스도와 비교되는 것은 아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무죄함과 관련하여 무죄하다. 우리는 삶 안에서 행동으로 본받을 것을 강조한다.

동시대 인물인 사룩의 야곱은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 제2의 천국, 자비의 어머니, 고통의 어머니라고 호칭한다. 또 마리아의 완벽한 무죄함을 주장한다. 자신의 노력과 하느님의 은총으로 완벽한 무죄함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당시 시리아에서는 문제가 의심의 여지가 없던 마리아의 육체의 승천에 대해서, 마리아가 올리브산에 묻혔으며, 그의 영혼은 천사들에 의해 천국으로 인도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마리아에 대한 고찰이 그리스도론적 고찰 안에서 파생되어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하여, 하느님의 아들의 육화를 설명하려는 교부들에게는 신종교인 그리스도교를 다른 이단 종교들과 구별되는 확실한 발판 위에 세우는 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의무였다. 하느님의 아들의 육화는 그 육화한 주체가 인간적인 측면과 신적인 측면 사이에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채로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갖고 있으면서 구약이 애타게 기다려온 메시아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설명되어야 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모친에 대해서도 실제 인간이면서 동시에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출산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여야 했다. 하느님의 아들의 잉태와 출산이기에, 그러므로 동정 잉태요 동정 출산이며, 더 나아가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신 그 어머니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다. 그러한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신 하느님의 어머니는 출산 후에도 동정녀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하느님의 구원 경륜 안에서 은총으로 말미암아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이시며 완전한 성덕을 갖추신 분이시고 교회의 예형이 되신다.


3. 중세기와 성모 마리아

일반적으로 5세기에서 15세기까지의 기간을 우리는 중세시대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중세기의 두드러진 특징은 마리아에 대하여 중요한 영향을 미친 제2차 니체아 공의회(787)와 후기에 가면서 많은 신학자들이 등장하였다는 점이다. 문화 속에서는 수직적인 것들은 표현하는 고딕양식이, 사상 면에서는 이성과 신앙을 하나로 조화시킨 시기이기도 하다.

교부시대를 거쳐오면서 마리아에 대한 신적 모성과 동정성에 대한 이야기는 정식 교의로 확정되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결정짓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마리아의 무죄성, 죽음과 승천에 관한 문제이다.

중세시대의 신학은 수도원중심과 스콜라학파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마리아에 대한 신학 또한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전하게된다. 이 시기에는 교부시대의 마리아에 대한 전례들이 마리아에 관한 연구들에 많은 영향을 주게된다.

중세시대는 크게 상반기와 후반기로 구분되어 살펴 볼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도 중세기를 둘로 구분하고 이 시대에 나타나는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들을 알아보기로 하겠다.


1. 중세 상반기의 신학자들과 성모 마리아

교부시대 이후에 마리아의 무죄성에 관한 이야기는 결코 단순하지가 않았다. 원죄에 관련된 문제들이 신학적으로 마리아의 원죄 없음을 주장하는 것을 쉽지가 않았다. 또한 성서나 교도권의 가르침이 없는 마리아의 죽음에 관한 것들도 논란이 많았다.


1.1. 베다(The Venerable Bede)

성모 마리아가 천사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사와 찬양을 받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또한 마리아의 겸손과 에와의 교만이라는 점에 초점을 둔다. 마리아와 교회 모두 동정이며 어머니시라는 것을 강조한다. 마리아가 예수를 출산한 것처럼, 교회는 성령으로 우리를 잉태하고 출사하였으며, 출산 후에도 동정중으로 머문다.

베다는 마리아의 죽음에 관하여 단순히 성서가 전해주는 것에만 근거를 두고 해설하고, 그분에게 중재기도를 드리고 있다. 한편 마리아를 통한 세례자 요한의 성화에 대하여도 이야기한다.


1.2. 암브로시오 아우트페르트(Ambrose Autpert)

마리아의 승천 축일, 봉헌 축일 등에 관한 많은 강론들을 남겼으며, 서방 교회의 마리아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마리아는 순교자들의 왕이신 분의 어머니이기에 순교자들의 축일보다 마리아의 축일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마리아가 그의 아들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였음을 이야기하며 그러한 성모 마리아에게 중재기도를 드릴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묵시록 12장을 해석하면서도 마리아를 교회와 연관시키며 마리아를 교회의 탁원한 구성원으로 보며, 교회와 분리 될 수 없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1.3. 제2차 니체아 공의회(787)

비잔틴 교회에서는 8-9세기에 성상이나 성화에 존경을 드리는 자들을 박해하였다. 그러나 787년에 열린 제2차 니체아 공의회에서는 성상파괴자들을 단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상에 대한 공경과 합법성을 인정하고 또한 마리아와 성인들의 성상과 성물에 드리는 공경을 인정하였다. 이는 성물에 공경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물이 지시하는 분에게 공경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1.4. 12세기 가지의 마리아에 관한 신심과 그 밖의 이론들

「테오필로의 전설」의 내용을 보면 마리아에 찬사가 열거되어있다. ‘간구하는 자들의 보호, 도움’, ‘고통에 시달리는 자들의 피난처’, ‘갇힌 이들의 해방’등. 무엇보다 Mediatrix(여성 중재자)라는 칭호는 주목할 만하다. 이 밖에도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마리아에 대한 칭호가 나온다. 이는 당시 유행하였던 「아베, 바다의 별」이란 찬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마리아의 무죄함에 관해 많은 관심과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파스카시오 라드베르트 이후 많은 학자들에 의해 마리아의 원죄로부터의 면제가 주장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리아의 승천에 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미 650년경부터 로마에서는 ‘잠드심-안식’이라는 이름으로 마리아의 축제가 거행된 것으로 보이고, 800년경에는 비록 외경적인 성격을 띠지만 위대한 교부들의 이름을 빌어 쓰여진 승천 전승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마리아를 ‘공동 구속자’로 표현하며 왕이신 당신의 아들 오른편에 않아 계신다고 해설하며(제오메터 요한), 아리아를 고통의 어머니-피에타-로 그려내기도 하며(메타프라스테스의 시므온), 마리아에 대한 전기가 쓰여지기도 하였다(에페파니오).

중세 초기 서방 교회의 마리아 이론은 동방, 특히 그리스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영향으로 마리아는 천상의 어떤 존재들보다 티없고, 에와로 말미암은 죽음의 저주를 없애는 분, 예수의 탄생으로 흠이 없으시며, 죽음으로 말미암은 육신의 분해로부터도 벗어나시는 분이다. 그리스도는 마리아를 천상에 살도록 부르시며, 천상에 오르신 마리아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신다.


2. 중세 후반기의 마리아 이론과 신심

중세 후반기에 이르러 마리아의 승천과 무죄한 잉태에 관한 논쟁이 활기를 띤다. 이 시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원죄를 면제받고 태어날 수 없기에 그 원죄가 정화되며,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인간이 구원되는 구원의 보편성에 마리아도 포함되는 것이다. 한편 둔스 스코투스는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주장하면서 마리아의 특권은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중재자로서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지닌다는 이론을 내세우게 되어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의 논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시기는 대중들의 마리아 신심이 많이 발전하였으나, 과장되고 잘못된 신심으로 발전하기까지도 한다.


2.1. 켄터베리의 안셀모(Anselm of Canterbury)

마리아의 모성과 하느님의 비교는 스콜라학파적인 귀결이다. 안셀모는 마리아의 동정 잉태와 원죄를 다루고 있다. 동정녀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그리스도 탄생 이전에 깨끗하여 졌으며, 그리스도가 당신은 순수함으로, 당신 어머니를 순수하게 정화하셨다고 말한다. 후에 마리아가 원죄로부터 면제되었다는 신념을 보인다.

안셀모는 개인적으로 마리아에 대한 깊은 신심을 보이고 있다. 마리아는 불쌍한 영혼들을 고쳐 줄 수 있는 힘과 자비를 지니고 있다고 믿었고, 그의 순수함은 죄인들의 불결함과 대조된다. 안셀모가 마리아께 드린 기도들은 대중적 기도가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직무와는 엄격하게 구별한다. 즉 그리스도는 세상의 심판관이시며, 마리아는 세상의 여성 중재자(Re-conciliatrix)이다(마리아의 중재성). 그의 영향은 영국의 마리아 대중 신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2.2. 12세기의 전례와 대중 신심

이 시기에 구원은 마리아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이 예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보다 빠르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가명-아우구스티노」문헌은 마리아 육체적 승천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아스티의 부르노는 마리아를 옥좌 뒤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분으로 묘사한다. 마리아의 중재 능력은 가나의 혼인잔치, 데오필로의 전설들 통해 효력 있는 것으로 강조되며, 이런 경향은 전례와 대중 신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에 Salve Regina, Alma Redemptoris Mater등의 찬미가와 기도들이 형성되었다. 이 시기에 묵주의 기도가 형성되었음과 ‘성모 호칭기도’도 ‘성인 호칭기도’로부터 분리된다. 이 기도는 ‘아카티스토스’의 영향을 받았다.


2.3. 베르나르도(Bernard of Clairvaux)

'마리아 박사'라는 칭호로 불리는 것에 비해 마리아에 대한 언급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강론의 내용은 마리아에 대한 압축이 많다. 그는 성서나 교부들의 전통을 따르면 아우구스티노의 원죄이론을 따른다. 즉 태어나기 전에 거룩해질 수 없고, 리비도가 있는 곳에 죄가 없을 수 없으며, 오직 주님만이 거룩하게 잉태되었기에 마리아는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도한 마리아의 승천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하늘에서 받아들여지고 거기서 중재역할을 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베르나르도의 마리아 신심에 대한 가르침은 마리아의 중재성이다. 그는 당시 봉건사회에 맞는 마리아 신심을 개발하였다.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종속성 또한 봉건 사회적 개념이다.


2.4. 대 알베르토(Albertus Magnus)

당시 마리아는 성부보다도 더 자비로운 분으로, 마리아는 십자가 아래서 함께 겪었던 고통으로 말미암아 거의 그리스도와 동격의 협조자로 강조되기까지 하였다. 이와는 달리 알베르토는 마리아는 ‘최고의 공경’을 받아야 하지만,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을 받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알베르토는 교회를 머리와 몸으로 구분하여 마리아는 몸에 속한 것으로 보고 구원을 받는 쪽으로 해석한다. 그는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거부하지만, 당신 모친의 태중에서 거룩하게 되었음을 믿는다. 또한 하늘에 올림을 받았으며, 마리아의 중재성을 인정한다. 그에게 마리아의 영광과 공경의 이유는 마리아 자신의 인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시며 그분이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마리아론이 그리스도론에 종속되어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2.5.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토마스 아퀴나스는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는 반대 하지만 어머니 안나의 태중에서 성화 되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될 필요성을 무효화하지는 않는다. 즉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마리아 또한 예외가 아닌 것이다. 물론 마리아의 무죄함은 인정하고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기에 그분의 권위는 무한하지만 하느님의 특권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강조하면서 또한 평생 동정성을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마리아의 중재성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존되어있기에 신중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 당시 마리아에 대한 많은 공상적이고 환상적인 것들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던 분위기에 관해 과묵한 태도와 입장을 가진다.


2.6. 보나벤투라(Bonaventure)

보나벤투라는 마리아의 잉태를 거부하고 있다. 마리아가 원죄와 상관이 없다면 인간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영예는 삭감된다고 말한다(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을 들어서). 또한 어머니의 영광은 그분의 아드님에게서 유래하는 것임을 인색해야 함을 강조한다.

마리아 공경은 상경의 예(上敬之禮:hyperdoilia)이지 흠숭(欽崇:latria)은 아니며, 마리아 흠숭을 하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설명한다. 즉, 마리아에 대한 올바른 공경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마리아에게 중재자라는 표현을 딱 한번 사용하면서, 마리아는 우리와 그리스도사이의 중재자이시고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우리사이의 중재자가 되시며 구원자는 오직 그리스도뿐임을 말한다.

은총의 충만을 “넉넉함(sufficiency)의 충만”, “풍족함(aboundance)의 충만”, “탁월함(excellence)의 충만”, “초월적 발산(super-effluence)의 충만”의 네 단계로 구분하면서 마지막 단계는 그리스도만이 가지는 은총이며, 세 번째 단계가 그리스도안에서 마리아에게 특권으로 베풀어지는 은총임을 말한다.

마리아 축일에 관한 강론에서 마리아에게는 세례의 은총이 필요하였으며(회개의 은총은 필요치 않음), 마리아의 중재와 모범을 따르는 일이 요구됨을 강조한다.

보나벤투라에게 있어서 모든 원천을 그리스도이시다.


2.7.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정밀함에 정평이 나있는 학자이다.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의 정당성을 옹호하기에 당시 신학자들로부터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는 그리스도의 보편성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거부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중재는 더 완전해 진다고 본다.

원죄의 개념을 피할 수 없는 사욕편정(邪慾偏情)의 개념이 아닌 결핍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원죄의 면제는 그리스도께 더 의존하는 은총이다.

“복되신 동정녀는 기도로써 중재하는 권위를 가진 것이지, 하느님께 명령하는 권위를 지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당시 과장된 신심을 지적한다.


3. 중세기 성모 마리아에 관한 이론과 신심의 종합적 요약

중세기 서방교회를 중심으로 마리아의 죄 없는 잉태와 승천, 중재능력과 권위가 논쟁의 주제였으며, 대로는 신심가들에 의해 온갖 상상을 통한 과장이 나오기도 하였다.

마리아에 대한 언급이 중세 상반기에는 주로 전례 안에서 강론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후반기에는 수도원 중심의 스콜라 학파에서 엄밀한 신학작업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한 스콜라 학파의 관건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보편성이었다. 하지만 후반기에 이런 스콜라 학파에 반대하여 둔스 스코투스는 마리아를 원죄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성을 더욱 확인해 주고 그리스도의 눙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점에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이런 마리아의 죄 없는 잉태에 관한 논쟁은 이후에 토마스 아퀴나스를 옹호하는 도미니코 회원들과 둔스 스코투스를 옹호하는 프란치스코 회원들간의 논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논쟁은 1854년 교의로 선포되기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논쟁과는 달리 사회적 분위기는 성모 공경이 대중적이었다. 이 무렵 「삼종기도」도 시작되었다. 또한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여러 작품들은 마리아에 대한 것들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당신의 신앙을 기적에 의존하는 신앙으로 치닫게 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여기서 마리아 숭배라는 비난과 공격이 시작된다.

중세시대는 마리아에 대한 언급이 무죄성-원죄 없이 잉태되었는가-에 관심이 쏠린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무죄성이 논란이 되면서도 대중들 사이에서는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더욱 강해졌다는 표현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어찌 보면 그 논쟁들 가운데 어느 쪽이 승리하였는가, 아니면 어느 학파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는가는 그 시대에 있어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세시대에서는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나 주장, 학설들이 후기에 많은 영향을 주고는 있지만, 당시의 사회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중세기를 정리하고 마감하면서 느끼는 것은 당시의 신심과 신앙에 대한 것들이 정립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하면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 그리고 실천한다는 것에 대한 연관성이라고 할 수 있는  마땅한 것을 찾아보지 못하였다.

끝으로 우리들의 마리아에 대한 신심에 있어서, 그리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서 어느 학자의 말을 되새기며 마칠까 한다.

“우리는 믿기 위해 알고, 알기 위해 믿는다”


4. 근대와 성모 마리아


4.1. 트리엔트 공의회 까지

100년 전쟁, 페스트, 아라비아의 침략과 더불어 14세기의 인본주의와 르네상스의 도래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교회의 변화인 신교의 탄생은 교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가장 큰 자극제가 되었으며 이리하여 중세의 영화를 누리던 교회내에서의 전체적인 국면에 새로운 변화를 초래하기에 이른다.


인본주의의 아버지인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는 처음엔 그 당시의 전통적인 마리아 신심을 그대로 따랐으나 성서와 교부들을 공부하고 당시 신자들의 신심생활에 접촉하면서 윤리적인 내용이 결여된 겉치레식의 신심을 공격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중심은 반드시 그리스도여야 하며 마리아는 철저하게 아들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종교걔혁자인 마틴 루터와 츠빙글리는 성서만으로(sola Scriptura)를 개혁의 기치로 내세워 성서적 증언이 충분치 않은 교리는 부정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마리아에 대하여서 만큼은 서로 다른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루터는 마리아의 완전한 동정성을 인정하고 은총으로 충만하신 분임을 강조한다. 또한 마리아 관련된 축일을 계속 지내기를 원하였고 마리아를 가톨릭보다는 아니지만 신앙의 모범으로써 내세우기 시작한다.

칼빈 또한 하느님의 위엄성과 영광에 집중되어 다른 모든 것들은 마리아를 포함하여 우상으로 간주하였으나 마리아의 신적 모성의 권위까지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그는 마리아의 동정을 인정하고 그 또한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마리아를 신심의 모범으로 내세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마틴루터의 노선을 따르는 츠빙글리는 그의 저서 『마리아에 관한 설교』를 통하여 마리아의 지속적 동정성과 그분의 가난과 낮추심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종교개혁자들의 조금씩 다른 마리아에 대한 관점속에서도 1530년 아욱스부룩의 신앙고백 12항과 샤말칼딕 조항에 의하여 마리아의 동정성을 인정되어지나 오직 그뿐 마리아는 그리스도 예수와 결코 견줄만한 분이 아닌 오직 신앙인들에게 최고의 신앙의 모범으로만 인식되어 진다.


종교개혁에 의해 가톨릭의 개혁을 촉구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원죄이론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마리아의 원죄에 대하여서는 그다지 특별한 점이 포함되지 않고 있다. 단지 성인의 공경에 있어 마리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뿐이다. 성모마리아 신심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비판에 대해 서서히 카톨릭내 신학자들의 반발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페터 카니시우스 ‘제2의 여왕’, 영원으로부터 예견되고 예정된 ‘하느님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의 유일무이한 권위를 강조한다. 루터와 칼빈이 마리아에 관한 교회의 전통적인 표현들을 자구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그리스도를 정의로 마리아를 자비의 차원에 놓고 이해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신심을 옹호하고 있다. 프란시스 수아레즈 는 그리스도론과 밀접한 관련속에서 마리아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둔스 스코투스의 노선을 따르면서 마리아가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되셨고, 그리스도가 태어나시는 순간부터 거룩하게 되셨으며, 원죄로부터 보호되었음을 주장한다. 또한 수아레즈는 마리아의 죽음과 사흘만의 부활 그리고 육체적인 승천을 주장하며 구원에 있어 당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주장을 한다. 수아레즈와 동시대 인물인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역시 그의 저서에서 개혁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그는 마리아와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같음을 주장하는 루터를 반박하며 마리아의 원죄로부터의 보호됨과 바다전체보다도 큰 하느님의 은총을 입으신 마리아를 들어 누구보다 하느님의 사랑과 호의를 받으시는 분임을 강조한다. 그분의 완벽한 삶과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그분에 대한 공경과 표현들은 적당한 것이다. 브린디시의 라우렌시오는 마리아에 대한 공경이 그리스도께 드리는 공경과 유사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개신교로부터 가톨릭은 마리아 훔숭의 이단이라는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풍조는 프랑스 학파로 불리는 베륄, 쟝 쟈크 올리에, 쟝 에드에 의해 계속되어 17세기 마리아론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마리아 신심과 이론에 대해 교회안에서 반발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파스칼은 그의 편지를 통해 간단한 행위로서 구원된다는 가르침은, 죄인은 회개해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이나 신약성서의 가르침과 위배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교회의 인가를 얻어 익명의 라틴어로 발간된 비덴휄트의 소책자는 그 내용에 상관없이 당시의 대중들로부터 성모신심을 공격하는 이단으로 공격받기에까지 이른다. 쟝 크라쎄는 동정녀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뜻이상을 원하지 않는다고 언급하고 있으며, 쟈크 베닉스 보쉬에는 스페인의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 마리 다그레다가 지은 외경과 환상이 뒤섞인 성모전기를 비판하면서 복되신 동정녀를 고장된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았다. 믈론 그는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와 육체의 승천을 인정하면서 전통적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였다. 그는 마리아에 대한 참된 신심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 안에서 마리아를 본받아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미신적인 마리아 신심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리뇽 드 몽포르는 18세기의 가장 뛰어난 성모 신심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마리아론의 기초는 중재자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하지 않고서는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없으며, 직접 하느님께 다가가지 않고 그분과 함께 하느님께 다가간다는 것은 그만큼 겸손한 것이기에 그만큼 완전하다는 것이다. 이는 성모 마리아의 중재자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으로써 더 나아가 성모송이나 묵주기도를 하지 않고 주님의 기도만을 하는 것을 이단이라 주장함으로써 많은 비판자들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는 결국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께 다가갈 수 없으며, 심지어 악마들은 하느님 자신보다도 마리아를 더 두려워한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전통적 가르침과 대중신심과의 갈등

서구는 근세의 유럽으로 전환되는 15세기를 중심으로 100여년을 전후하여 대혼란의 장을 열게 된다. 100년 전쟁 그리고 페스트의 발병(1347), 이슬람에 의한 콘스탄티노플의 함락(1453)과 루터의 종교개혁 상업의 형성으로 인한 신흥계급의 등장 그리고 극심한 생활고에서 이어지는 각종 농민들의 봉기는 이제 중세시대를 풍미하였던 봉건시대의 막을 내리는 시기에 이른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교회의 정치적인 쇠퇴와도 연결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14-15세기 근대적 신심의 도래 에라스무스의 인본주의, 르네상스시대의 시작 등은 결론적으로 교회의 가르침을 한층 더 무기력화 시킬 수 있는 것이었으며, 이에 교회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나름대로의 개혁을 통하여 이러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개최한 것이 바로 트리엔트공의회이다. 또한 극도로 심화된 성직매매와 특정 수도회에 대한 특전의 남용 등은 교회내의 분열을 초래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이러한 혼란과 교회내의 분위기에서 일반 대중들은 이러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자구책을 강구하게 됨으로써 15세기를 넘어서며 가톨릭내에서의 이단의 발생이 빈번해 지게 된다. 이러한 이단들은 주로 사적 계시를 받은 수도자들에 의해서 설립되고 대중들 사이에서 급격하게 퍼져나아가게 되며,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교회는 급기야 정치권과의 결탁속에서 사회적 통제를 쉽게 하고 신교의 확산속에서 위태로워 지는 가톨릭의 확산의 안정과 확산을 도모하기 위한 방안으로 마녀 재판을 실시하기에 이른다.


단일 종교만이 인정되는 사회속에서 그 사회의 혼란이 가중될시에 과연 종교는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서 과거 15세기 중엽의 가톨릭의 역할은 너무나도 미비하였으며, 오히려 일반 민중들의 교회에 대한 이해는 바로 위로자가 아닌 지배자와 한 통속인 약탈자이며 통치자로써 강경한 이미지만이 남아 있지 않았다. 각국의 농민 봉기에 수도회가 긴장하고 두려워하였다는 것은 얼마나 교회가 초대교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질되어 일반대중들에게 다가왔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제 대중들은 교회의 어떠한 가르침에도 동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들의 신심행위에 반하는 인물이라면 그가 정치권의 인물이건 교회내의 지도층이건 상관없이 비판을 가하고 대중들 스스로가 이단으로 그들을 간주하며 탄압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신심행위의 부정에 대한 반발으로서만이 아닌 교회내의 가르침이 전혀 대중들에게 먹혀들어가지 않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며, 이에대한 교회의 대응 또한 매우 무기력하다.

대중들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대내외적인 환경과 정치권과 교권의 약탈속에서 나름대로의 신앙을 해석하게 되고(여기에는 인본주의와 신교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겠다.) 마리아에 대한 신심또한 대중들에게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 신심행위가 나름대로 시대에 맞게 변질(발전?)되면서 이제 마리아는 그리스도와 버금가는 중재자로써 크게 존중되어 지며 심지어 그리스도와 버금가는 믿음의 대상으로써 성모마리아가 받아들여지게 된다.


14-15세기의 성모신심에 대해서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정체의 시기라 하고 싶다.

과거의 시대를 거치며 보다 진일보하던 마리아 신심은 14-15세기에 들어 교회의 가르침조차 외부적인 변화와 압력에 대처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발전되어지기보다는 기존의 전해 내려오던 교회내에서도 인정되어진 전통적인 마리아 신심을 고수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풀이되어지며 이로써 대중들의 마리아에 대한 신심행위는 크게 변질되어 질 수 있었으며, 이에 반하여 신교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조차 무시되어지는 마리아 신심의 부정에 대하여 교회는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만다.


4.2. 계몽주의 시대와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 선포

18세기 유럽은 인간 지성을 지나치게 과대 평가하였던 지성주의와 계몽주의 지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조는 교회 밖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성직자들 안에도 파고들어 왔다. 계몽주의자들에게 마리아 신심은 이성적 균형이 결여된 것이었다. 이 시기의 마리아론은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그러나 마리아 신심의 미신적 요소가 제거되는 것은 긍정적인 비판으로 볼 수 있으나 신심 자체가 전부 제거되는 일은 온당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가톨릭측에서는 마리아 신심의 엄청난 확대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로 사람들은 반 이성주의와 초자연적 신비주의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라는 교의가 선포되었다.


 4.2.1.「원죄 없으신 마리아 잉태」 교의 선포(1854년)

  프랑스 혁명과 더불어 이성주의의 강한 주장은 그 반대 경향을 불러일으켰다. 독일의 요셉 폰 괴레스는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역사에 관한 책을 썼다. 클레멘스 브렌타노는 안나 카타리네 에머리히의 계시를 책으로 발간하였다. 마리아 이론과 신심은 이러한 분위기에 자극을 받았다. 이러한 분위기에 잇단 마리아의 발현보도는 세계적인 마리아 신심의 르네상스를 불러일으켰다. 1830년 카타린 라브레는 동정성모로부터 받았다는 기이한 메달을 세계에 건네주었다. 그리고 1846년에는 라 살레에서, 또 1858년에는 루르드에서 성모발현이 있었다. 1854년 비오 9세는 ‘무죄한 잉태’의 신앙조항을 교의로 선포하였다.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하느님의 특별한 권위와 은총으로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가 잉태의 첫 순간에 원죄의 모든 오점으로부터 자유가 보존되었다는 것을 지지하는 교리는 하느님에 의해 계시되었다. 따라서 모든 신앙인들은 확고하고 신성하게 믿어야 한다.”


  이 교의는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하느님 자신을 위해 어머니로 준비하셨고 인간 혹은 천사를 막론하고 그 어느 창조물에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선물을 주셨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원죄 없는 잉태’는 하느님 모친으로서의 권위에 가장 잘 연결되어 있다. 가톨릭 교회는 일찍부터 승인되었던 이 교리를 보다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이 교의는 마리아가 존재하는 첫 순간부터 원죄와 그 과실에 빠져들지 않았음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확신이 교회 안에서 하나의 명백한 진리로 인정되기까지엔 오랜 시기가 필요했음을 보았다. 그 이유는 인류의 일반적인 죄악성에 예외를 둠으로써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성이 손상되는 난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죄성과 구원 필요성이 절대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모친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에 완전히 참여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참여란 하느님의 구원, 즉 은총과 하느님 공동체 안에 들어서는 것이다. 마리아가 교회의 원형으로서 그리스도께 완전히 참여하고 있다면 은총 또한 완전히 소유하고 있는 것이 된다. 마리아는 은총이 가득한 분이다(루가 1,28). 그런데 이처럼 ‘은총을 입는다는 것’은 구체적 역사 안에서 항상 구원을 뜻한다. 마리아도 사실상 우리가 원죄라고 하는 과실의 관련성에 연루되어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힘으로 이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는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에 힘입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원이 한 인간이 존재하는 첫 순간부터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생애의 특정한 순간에 생기는 것인지는 근본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아니다. 여하간 우리는 마리아가 다른 모든 인간들과 같이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인간이었다는 것을 고수해야 한다.

  죄의 본질은 하느님의 의지보다 자신의 의지를 앞세우는 것이며 인간의 성성이란 그 반대로 자기 자신의 의지를 하느님의 의지와 온전히 부합시키는 것이다. 마리아를 하느님의 모친으로 간택한 것은 이 은총이 자유롭고 스스로 책임을 지며, 온전히 인격적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전제한다. 은총의 수용자가 하느님의 원의와 일치하려는 완전하면서도 망설임이 없는 자세를 갖추었을 때에만 은총의 수용이 가능한 것이다.

  이 원죄 없는 잉태의 교리는 ‘한 분이고 유일한 중재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론의 핵심에서부터 나온 한 신앙 조항’이며 교회론적 조항이기도 하다. 신경에서 고백하는 교회의 거룩함은 모든 신자들의 원형이되기도 한 마리아 안에서 완전히 실현된다. 이 모든 일 뒤에는 더 이상 파고들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거룩한 모든 것의 최종 근거인 것이다.


4.2.2. ‘원죄 없으신 마리아 잉태’ 교의 선포에 따란 교회 내외 반응


1) 동방교회의 반응

  6세기 동방교회에서 성모성탄 축일이 9월8일에 거행되고, 7-8세기에 이르러 성모 성탄 전 9개월 전에 안나의 잉태 축일이 12월 9일에 거행되었고 9세기에 이태리 남부로 들어와 11세기에 영국으로 전해졌다. 그 후에 영국 내에서는 이 축일이 거행되고 급기야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의 의미로 축일이 거행되었다. 마리아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찬반론의 신학논쟁 끝에 급기야 교도권의 간섭으로 이 축일이 신자들의 신앙감을 근거로 하고 스코투스와 그를 따른 프란치스코 학파의 주장을 수용하여, 교황의 특수 교도권에 의해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가 정의되고 선포되었다.

  실제에 있어서 동방 교회에서는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교의로 정하여 널리 공포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교부들의 가르침들을 종합하여 볼 때에, 이미 이 문제는 문제시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서방 교회가 새삼스럽게 이 교의를 정의하여 선포하였다는 것은 실제에 있어서는 동방교회의 신앙과 전승을 그대로 본 딴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으며, 새로운 것인양 말하는 것은 동방 교회에는 냉담하거나 또는 동방교회 전례 거행을 그대로 모방하면서 별도로 정의하여 선포한다는 인상을 주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인상을 주었다 하더라도, 동․서방 교회가 일치된 신앙교의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구약시대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불임녀들의 기적적인 잉태 개념에서 발전되어, 하느님의 특전으로 잉태라는 개념의 변화와 더불어 원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앙이 교회의 전승 안에서 결실을 맺은 것이라 할 수 있다.


2) 프로테스탄트의 반응

  교황 비오 9세는 ‘원죄 없으신 마리아 잉태’ 교의를 교황의 특수 교도권에 의거 정의 선포하였을 뿐 아니라 그 후에 제1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하여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권을 공포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연의 결정들은 교황의 수위권을 반대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에서 더욱이 반대의 입장을 세울 뿐 아니라, 성서로만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성서적 기반이 확고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리스도의 단일하고 유일한 중재를 주장하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 가톨릭 교회가 마리아를 등장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위치를 축소시킬 위험을 초래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가 인간 완성이라는 신학적 인간학의 목적과 결과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에 있어서 마리아께 공경을 드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단일 중재성을 축소시키거나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와의 직접 결합을 도와 주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3) 가톨릭 교회의 반응

  오랜 세기동안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에 대한 찬반 신학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교도권의 판정 선포는 이 교의 정의 선포를 청원하는 이들에게는 승리의 기쁨과 환희에 휩싸이게 하였고, 유죄의 보편성과 구원의 보편성에 대한 교리를 주장하며, 선행구속론까지 이르지 못하게 이 교리를 반대하던 이들에게는 교도권의 판정에 승복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아직도 그 의미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여 부분적으로나마 반대의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러한 반대는 서서히 없어지게 되었다.


4.3 마리아의 승천 교의 선포까지 성모 신심과 이론


4.3.1. 19세기와 20세기의 성모 발현

  성모의 발현은 ‘신앙의 유산’에 속하지는 않는다. 교회의 승인은 단지 그 발현이 신앙과 윤리적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이 없고 신심을 위해 충분한 징후들이 있다는 교회의 판단일 뿐이다. 비록 승인하였다 하더라도 거기에 동의하는 일이 의무는 아니다. 따라서 어떤 발현이나 사적 계시에 관해서 믿거나 거부하는 것은 가톨릭 신자 각 개인들의 양심에 남겨진 일이다.


4.3.2. 옥스퍼드 운동

  마리아 신심의 재생은 가톨릭 교회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특히 영국의 옥스퍼드 운동이 큰 역할을 하였다. 이 운동에는 요한 케블(John Keble), 퍼시(E.B.Pusey), 뉴먼(John Henry Newman)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1832년 뉴먼은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13년 전에 이미 ‘탄생 예고’의 설교에서 마리아의 초월적인 순수함을 찬양하였다.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3년 전에 그는 하느님의 흠숭과는 비교될 수 없지만 마리아의 공적 예배와 신심을 인정하였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다음 그는 영국 교회의 신자들에게도 마리아의 신심이 그 이론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가 마리아를 하느님의 모친이라고 내세우는 주장은 철저하게 그리스도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4.3.3. 19-20세기 교황들의 가르침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10월(Octobri Mense)’에서 마리아를 통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은총이 내리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그리스도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구세주이시지만, 우리는 그분을 엄정한 심판자처럼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에게 어머니로 주신 사랑스러운 마리아에게 간다.

  교황 비오 10세는 회칙 ‘그날에(Ad diem illum)’에서 마리아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결합되기 위해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마리아를 통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안내자로서, 선생으로서 마리아보다 더 유능한 사람은 없다고 강조한다.

  20세기 교황들의 회칙 중 많은 부분이 마리아 은총의 중재와 공동 구속에 집중되고 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를 가져오는 중재는, 중재자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과 성부의 활동을 요청할 뿐 아니라 중재자의 중재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인류의 활동도 아울러 요청한다는 데 있다. 마리아는 대표적으로 하느님께 ‘예’를 발함으로써 이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로써 본질적으로는 아니더라도 통합적으로 구속자를 위하여 함께 일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리아는 중재자이며, 공동 구속자라고 지칭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쉽사리 오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구속자’와 ‘중보자’라는 명칭은 완전한 의미로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해당된다. 그러므로 이 의미를 약화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은 회피해야 할 것이다. 마리아를 완전히 그리스도와 동등하게 내세우면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마리아를 으뜸이신 그리스도 다음가는 으뜸이라고 과장해서 말하거나, 특정한 은총으로 서술하는데 이르게 되면 이러한 자세는 성서의 뒷받침을 받을 수 없다. 물론 마리아가 인류를 대표한다는 기본사상을 마리아를 통해서 올바로 숙고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마리아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되었으며, 구원의 성사로써 세계에 파견된 인류의 원형이며 예형이다.


4.3.4. 마리아의 승천 교의(1950)

  교황 비오 12세는 아마 비오 9세를 예외로 하면 교황들 가운데 가장 마리아 신심을 널리 전파한 교황일 것이다. 그는 1944년 회칙 「그리스도의 신비체」마지막 부분에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에 계신지는 규명하지는 않았지만 하늘에 계신 성모의 다스림에 이 세상을 봉헌하였다. 이것은 1950년 희년의 모든 성인의 날을 맞아 사도적 헌장「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에서 교의로 선언되었다.

  1950년 11월 1일,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원죄 없으신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는 지상 생애의 여정이 끝난 다음 그 영혼과 육신이 천상의 영광 안에 받아들여졌다.”

  교회는 무염시태 교리와 같이 이 승천 교리도 매우 뒤늦게서야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6세기 이전까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전통도 없었고, 후대에 와서 마리아의 승천 문제가 논쟁되기 시작하였다. 사실 ‘마리아의 승천’이란 부정확할 뿐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전에는 이 축일을 ‘마리아의 몽소승천’이라 하였다. 이러한 명칭으로 인해 마리아의 현양이 그리스도의 현양과 구별된다. 마리아의 현양은 순전히 하느님 은총의 덕이다. 흔히 마리아에게는 올림을 ‘받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마저도 피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의 내용은 신화론적 사고에 입각한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다는 혐의를 받기 쉽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모친이라는 힘 때문에 완전히 거룩한 인간이 되었다. 마리아는 자기 안에서 하느님의 목표를 이룬 인간이다. 하느님의 목표란 곧 인간의 구원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와 하느님과의 일치이다. 이 일치가 지상에서는 은총 가운데 이루어지고 지상 생애가 끝난 다음에는 하느님 직관의 복된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친이라는 사실로부터 그녀의 천상적 현양이라는 종말론적 충만이 결정되는 것은 내적 논리에 부응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와 승천 교의를 살펴보았다. 언급된 두 가지 교의에서 보여주듯이 교의 발전에는 교회 안에서 실천적인 면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신심과 전례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다시 말해서 교의의 범위에서 교도권이 정의를 내릴 경우 이성적으로 모두 다 설명해 낼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기도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때에 따라서는 이성적․학문적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요소가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때론 신자들의 믿음에 대한 감각이 교의의 발전에 중대한 원인이 됨을 꼭 기억해 두어야겠다.


5.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마리아론 ‘교회헌장’ 8장을 중심으로


5.1.『교회헌장』제8장의 역사적 배경


5.1.1 전이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의 20차례의 공의회(세계공의회)에서는 마리아에 대한 이해가 그리스도론에 대한 언급 가운데 부수적으로 딸려왔다고 볼 수 있다. 특별히 에페소공의회(431년 3차)에서 정식된 신적 모성의 교의선포와 제2차 니체아 공의회(787년 7차)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성모님과 성인들의 신상 공경이 합법화 된 것을 제외하고는 649년 성 마르띠노 1세가 라떼라노에서 소집한 공의회에서 마리아의 동정성이 옹호되었고, 1854년 비오 9세에 의해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교의가 그리고 1950년 비오 12세에 의해 마리아의 몽소승천에 대한 교의가 공포되었다. 즉 지금까지의 공의회 내에서는 마리아에 대한 명시적인 입장은 그다지 크게 표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시대의 교황인 비오 9세부터 현재 요한 바오로 2세에 이르기까지 마리아에 대한 찬란하고도 풍요로운 가르침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마리아에 대한 성좌의 통상 교도권과 적절한 지도는 현대적 마리아론에 대한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고, 공의회 사업의 영역 안의 마리아론을 위한 바탕을 이루고 왔다.


5.1.2 교회헌장 제8장의 준비단계와 공희회 작업


(1) 준비작업(1959. 6 - 1962. 10)

요한 23세는 공의회를 소집하면서 세계 각처에 공의회에서 다룰 주제에 대한 의견서를 요청하였고, 그 결과 약 2000여 건의 청원내용 가운데 마리아에 대한 건이 600여 건이 있었다. 그 중에서 300여 건이 은총을 중재하는 마리아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 300여 건은 마리아에 관련된 교리와 공경에 대한 것으로 나타난다.

처음에 마리아에 대한 주제는 ‘교회에 관하여(De Ecclesia)’ 주제 안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 제목은 ‘교회와 동정녀 마리아에 대하여’ 였다. 그 후로 기초안과 제목의 몇 차례에 걸친 수정이 있었고, 1962년 신학위원회는 ‘하느님의 어머니시며 인류의 어머니인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에 관하여’라는 주제로 ‘교회에 관한 문헌’ 스케마에서 따로 독립시키키로 결정하였다.


(2) 공의회 제1회기(1962. 10-12)

이 회기 동안 신학위원회는 ‘교회에 관하여’를 논하기 전에 마리아에 대한 스케마를 다루어 회기 전에 선포될 수 있기를 희망하였지만 그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회기의 막바지에 이르러 공의회 교부들은 마리아에 대한 스케마를 ‘교회에 관하여’ 문헌 안에 포함시키는가? 에 대한 가부간의 결정을 요청받았다. 그리고 1963년 교황 요한 23세는 본문은 그대로 둔 채 제목만 ‘교회의 어머니인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하여’라고 변경하라 명하였다. 그 후 시간을 두며 교부들은 심사를 계속하게 되었다.


(3) 공의회 제2기(1963. 9. 29 - 12. 4)

공의회 교부들 중 한 편은 두 주제간의 교리적인 관련성을 두고, 이를 재일치운동의 동기로 삼기 위해 마리아를 ‘교회에 관하여’라는 문헌에 포함시키기를 원했다. 하지만 다른 그룹들은 그 두 주제를 함께 논하는 것은 동정녀의 영예를 감소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독립적으로 남아있기를 주장했다. 투표결과(투표수 2,193(과반수 1, 097) ;찬성 1,114 ;반대 1, 074 ;무효5) 다시 마리아에 관한 주제는 교회에 관한 계획안에 포함시키기로 결정되었다. 1963년 12월 4일 폐막된 제2회기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고, 바오로 6세는 회기폐막연설에서 세 가지 점을 지적하여 당부하였다. 첫째 마리아의 교리를 ‘교회에 관한’문헌에 통합할 것이고, 둘째 교회 안에서 마리아의 독자적인 탁월성을 명확하게 하는 것, 셋째 마리아의 사명을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다루어줄 것 그리고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불리우길 희망한다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1963년과 1964년 공의회 휴회기간 동안 새로운 문헌작업을 통해서 1964년 3월 최종 수정작업을 마치고 ‘교회에 관한’ 문헌에 마리아 스케마를 삽입한 후에 공의회 교부들에게 송부되었다. 이 때 부여된 제목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의 천주의 모친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에 관하여’ 였다.


(4) 공의회 제3기(1964. 9. 16 - 11. 21)

교리위원회는 이 회기에 『교회헌장』제8장 최종 개정판의 공의회 승인을 위해 제출하였고, 두 번에 걸친 표결에서 대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그리고 1964년 11월 20일 ‘교회에 관하여’ 문헌에 대한 최종 투표가 있었고, 그 결과는 2,145명이 투표에 찬성 2,134명, 반대 10명, 기권 1명으로 통과되었고, 다음날인 성모자헌 축일에 바오로 6세는 교회와 관련된 두 가지 교령인「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동방교회에 관한 교령」과 함께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을 공포하였고. 폐막연설에서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 호칭하였다(비록 ‘교회의 어머니’라는 칭호가 제8장의 부분을 이루고 있지 않을 지라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의로 간주될 수 있다는 입장이 있다. 또한 이는 교회의 최고 교권에 의한 가르침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5.2. 『교회헌장』제8장의 구조와 내용

『교회헌장』제8장의 내용을 살펴봄에 있어 우선 그 위치가 『교회헌장』의 마지막이라는 사실과, 제8장의 제목 “그리스도와 교회 신비 안에서의 천주의 모친 복되신 동저 마리아에 관하여” 을 주목할 수 있다. 이는 제8장이 『교회헌장』의 전체의 종합이며 결론임을 생각하게 하고, 제목에서와 알 수 있음 같이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고 마리아’라는 세 주제가 서로 연결되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예감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교회헌장』제8장은 머리말과 맺음말 사이에 세 가지 주요 문제를 다루며 18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섯 가지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5.2.1. 서론(52-54항)

머리말 부분으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 마리아와 밀접한 관계성과 사명을 바라보면서 아직도 남아 있는 마리아에 대한 연구과제와, 그러한 연구들에 대한 여백과 개방성을 표명하고 있다.


5.2.2. 구세사 안에서의 마리아의 역할(55-59항)

공의회는 “신구약 성서와 존귀한 성전은 구원 계획에 있어서 구세주의 모친이 맡으신 역할을 점차로 보다 명백히 드러내어 우리 눈앞에 제시해 주고 있다”(55항)의 표현과 같이 구세사 안에서의 마리아의 역할을 가르침에 있어서 성서와 성전을 근간으로 주제를 고찰한다. 즉 구세주의 모친이며 속량주의 동반자인 마리아가 그리스도에 의해 주도된 구원역사 전반에 걸쳐 그분과 함께 점진적으로 이루어 나가는 완전한 일치를 묘사하고 있으며, 이는 성서와 교부들의 참고 자료들을 바탕으로 제시되며,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관계에 대한 가장 최근의 연구 결실을 요약해주고 있다.


5.2.3. 복되신 동정녀와 교회(60-63항)

우선 마리아가 하느님이신 구세주의 모친이라는 사실로 교회와 마리아의 관계를 시작한다. 여기서 마리아는 중재자로의 마리아와 교회의 전형으로서의 마리아로 이해되고 있다. 즉 교부들의 가르침과 여러 회칙들을 인용하며 그리스도가 최우선의 중재자이심을 전제로 하며,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관계성 안에서 그분을 우리의 중재자, 변호자. 협조자로 부르고 있다. 또한 교회와의 관계에 있어서 마리아와 교회가 갖는 공통점 즉 성령으로 자녀를 낳고 불사의 생명을 주는 어머니 역할 등을 바라보며, 교회는 마리아가 취했던 태도를 구현함으로 자신의 사명에 도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5.2.4. 교회 내의 마리아 공경(66-67항)

마리아 공경에 대해 천주 흠숭과의 구별을 다시 한번 지적하면서 상극을 피한 올바른 마리아 신심에 대해 역설한다. 그리고 오늘날 갈라진 형제들과 일치를 도모하려는 사목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에서 전통적으로 이루어왔던 전례적 공경을 충분히 촉구하며, 오해의 가능성을 피하는 현명한 처신을 요구한다.


5.2.5. 맺음말(68-69)

마리아의 종말적 역할을 제시하며 미래에 완성된 교회의 모상으로 나타낸다. 물론 절대적인 종말론적 희망의 표지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두고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마리아는 교회의 희망의 표지로 나타난다. 그리고 끝으로 갈라진 형제, 특히 동방교회의 마리아에 대한 사랑과 공경에 기뻐하며,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 더 나아가 모든 인류의 일치를 위해 마리아에게 기도하기를 호소한다.


5.3.『교회헌장』제8장의 신학적 해석 기준과 전망


5.3.1. 신학적 해석의 척도


(1) 성서적 기준

교회가 읽고 해석한 성서를 토대로 마리아론을 정립시킨다. 이는 성서의 임의적 해석을 피하고 교부들의 성서해설과 현대 성서연구의 여러 가지 업적들을 받아들여 성서 전체를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이해함을 전제한다.


(2) 인간학적 기준

마리아에게서 인간적인 고유한 요소들을 강조하면서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 전개되는 구원의 단순한 객체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주체라는 점을 강조한다(즉 마리아의 특권보다는 피조물로서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대한 인간적 협력에 대한 모범을 나타낸다).


(3) 교회일치적 기준

공의회 개최의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인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며, 이러한 점에서 가장되게 꾸며진 마리아 신심의 위해적 요소를 경계하고 있다.


(4) 사목적 기준

이는 공의회의 기본 목표와도 상응하는 기준으로 마리아를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신학문제로 남겨놓지 않고 이해되고 사랑하며 존경하고 본받는 인격체로서 바라본다.


5.3.2. 신학적 전망의 척도

인간의 역사를 (인간에 대한)하느님 구원의 역사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며, 이 구세사 속에서 마리아의 특별한 위치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구원신비에서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와 구원의 성사인 교회의 역할을 바라보면서, 공의회는 마리아를 그리스도와의 긴밀한 관계속에서 묘사하고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성사인 교회와의 친숙한 관계 속에서 고찰한다. 즉 마리아를 그분이 지닌 특권이 아닌 구원의 역사 안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 속에서 다루면서 마리아를 이해하고 있다.


5.4.『교회헌장』제8장의 교리적 종합


5.4.1. 마리아와 그리스도

공의회는 천주성자의 삶과 구원행위의 전반적 과정 안에서 모친이 구세주와 맺고 있는 항구적이며 완전한 일치를 제시하려 한다.


(1) 구세주의 모친

이는 이미 에페소 공의회에서부터 성대하게 교의로 선포되어 온 바이다.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생물학적-생식적 측면에 한정되지 않고, 그녀의 근본 사명에 의해 설정되는 역사적-구원적 측면에까지 이른다. 즉 단순히 마리아와 천주성자와의 모자 관계만이 아니라 구세주의 구원사업 안에서 한 피조물과 세상의 구세주 사이에 이루어지는 협력과 지속적 관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2) 구세주의 동반자

공의회는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혈연에서 비롯된 관계만으로 그치지 않고, 

비록 자신도 피조물로서 구원의 대상이긴 하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특별한 은총으로 죄물듬을 벗어나 구세주의 동반자로서 

그리스도 곁에서 신앙과 순종과 고통 그리고 희망과 사랑으로서 봉사하고 협력한다. 

이러한 점에서 과거에는 마리아에 대한 ‘공동구속자’로 표현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회일치 영역이나 사목적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마찰을 피하기 위해 

마리아를 구세주의 헌신적인 ‘동반자’로 부르고 있다.


(3) 주님의 종

마리아는 천사에 대한 응답에서 또 「마리아의 노래」중에서 ‘주님의 종’으로 자처했고, 이 칭호에는 마리아의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과 봉사의 자세가 나타나 있다. 즉 마리아가 몸과 마음을 다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투신하는 순종적인 삶을 살고, 자유로운 동의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음을 시사한다.


5.4.2. 마리아와 교회


(1) 교회를 위한 모성적 역할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낳고 기르신 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협력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모친이 되신 것과 같이 교회가 탄생하는데 있어서 사랑으로 협력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다. 이 모성적 역할은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촉진시키고 용이하게 해주는 것이며, 오늘날까지 끊임없는 중재기도와 힘든 삶의 여정 속에서 나타나는 모성적 배려와 갈라져 있는 그리스도교 교파들이 한 교회로 일치되도록 지향하는 기도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2) 동정 모성의 원형

동정 모성은 마리아와 교회를 결부시키는 기본 신비이다. 즉 마리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의 몸으로 말씀을 태중에 잉태했고 출산했으며, 교회는 세례의 물 안에서 신앙의 선포 안에서 말씀을 모시고 또 성령의 활동에 힘입어 신비로운 방식으로 말씀을 낳는다. 이런 점에서 마리아와 교회는 같은 공통 사명 속에서 친숙한 유대를 맺게 된다.


(3) 교회를 위한 덕행의 모범

마리아가 지상의 짧은 기간동안 성취한 신앙의 여정에서 보여준 사랑과 순종적인 삶은 하느님 나라를 자기 안에 실현해야하는 교회의 역사적 도정을 위한 중요한 모범이 된다.


(4) 종말론적 교회의 모상

마리아는 천상의 영광으로 들어 높여짐으로 장차 종말론적 교회의 영광스러운 시작을 예형적으로 나타낸다. 이 때문에 마리아는 위험과 난관을 겪으면서 여전히 순례의 여정 중인 교회에 새로운 희망과 위로의 확실한 표징이 된다.


5.4.3. 마리아 신심과 공경

공의회는 마리아와 교회의 관계 규명은 물론 교회가 어떤 방식으로 마리아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1) 마리아 공경의 바탕과 그 목표

교회 내의 마리아 공경은 3세기(Sub tuum praesidium; “천주의 성모님, 당신께 의탁하오니”)경부터 나타났고, 

에페소 공의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교회 내의 마리아 공경의 토대는 마리아의 신적 모성, 그리스도와의 친밀함, 그분의 성덕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마리아 공경은 성인공경에 비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느님 흠숭을 그 목표로 삼고 있으며, 

하느님 흠숭에 대한 종속적 균형 안에 발전한다.


(2) 성모 신심의 특징과 그 형식

마리아 신심을 표현하는 네 가지 특징은 사랑, 공경, 중재기도와 본받기이다. 


첫째로 마리아 심신은 마리아의 신적 모성과 모범적 덕행 외에도 애정으로부터도 생겨나며, 

마리아는 이 사랑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교회에 알려준다. 


둘째 마리아에 대한 공경은 그분의 품위와 성덕 그리고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삶 때문이며, 

이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촉진시킨다. 


셋째 그분께 드리는 전구의 기도는 

교회가 현실적 혹은 영적인 궁핍 속에서 마리아의 도움을  확신하며, 

그분을 전구자, 중재자, 협력자로 여기며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리아 신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본받기이다. 

즉 마리아의  삶과 성덕을 본받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분명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일치를 이룰 수 있다

마라아 신심의 여러 형식에 대해서 공의회는 전례적 예배 안에 표현되는 신심을 강력하게 장려한다. 

왜냐하면 실제 공식적인 전례예식 안에서 마리아 신심은 확실히 믿을 만한 것이 되고 

온갖 탈선으로부터 보호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랜 동안 전통적으로 내려온 신심행위의 관습에 대해서는 중히 여길 것을 강조하지만, 

초라한 감상주의나 허황됨으로 빠지는 민간 신심행위에 대해서는 삼갈 것을 촉구한다.


(3) 사목적 규정

공의회는 마리아 공경의 쇄신과 개혁을 위한 구체적이고 특별한 지침을 마련하지 않았다. 

단지 실천적이기보다는 교리적인 것, 의도적이기보다는 

권유적인 것으로 보이는 일반적 규범 원리들을 천명할 뿐이며, 전통적으로 공인된 신심과 관습을 권장한다. 

또한 마리아 공경을 설명할 때는 성서와 성전, 교회의 전례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갈라진 형제들이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참된 교리를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5.5.『교회헌장』제8장의 마리아론의 의의


1) 마리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교의로서 제시하지 않고 이전에 정립된 마리아의 인격과 특권 및 사명에 대한 재확인과 종합을 이루었다.

2) 성서와 성전의 증언과 최근까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그 신실성을 더했고, 단순한 마리아에 대한 찬가가 아닌 구세사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현실적이고 궁극적인 마리아론에 대해 다루었다.

3) 그리스도와는 물론이요, 특별히 교회와의 관계 속에서 마리아를 살펴봄으로 

교회가 마리아에 대한 온전한 안목을 지닐 수 있는 교리의 신학적 종합을 이루었다.

4) 신학자들 간에 여전히 논의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의 가능성과 여백을 남겨두고 있다.




제 2부 마리아론의 기본 교의와 마리아의 중재성

6. 마리아론의 기본 교의


6.1. 마리아의 동정성


6.1.1. 동정성의 성서적 의미

고대 종교들은 ‘처녀성’ 또는 ‘동정성’을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르테미스, 아테나 등의 여신들은 ‘처녀신’으로 불렸다. 그것은 여신들의 영원한 젊음, 생생한 생명력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을 지녔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처녀성’은 불임과 동일시 되었고, 그것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자손의 번영을 축복으로 생각하는 그들에게는 불명예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깨끗함’을 의미하는 ‘동정성’은 결혼 준비를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처녀’나 ‘불임녀’는 하느님의 선택과 능력의 놀라움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기도 하였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을 자주 ‘처녀’로 불렀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지켜야 할 충실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에서도 ‘동정’은 혼인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스도 또는 하느님과의 혼인을 위해 ‘동정’으로 ‘깨끗함을 보존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를 ’처녀‘로 부르고 있다. 이 ’동정성‘은 그 혼인이 완성되는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종말론적 차원에 속한 것이다. 이러한 ’동정성‘의 종교적 의미는 마리아에게서 그 절정에 이른다. 마리아는 굴욕적인 처지로서의 동정을 축복으로 바꾸었다. ’동정‘을 보존하면서도 ’하느님 아들‘을 탄생시킨 마리아의 ’동정성‘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하느님의 신비로운 능력이 더욱 잘 드러나는 사건이 되고 있다. 바울로는 스스로 ’동정‘으로 살면서 신자들에게 동정적 삶을 권고하고 또 동정의 중요성을 말하였다. 동정적 삶은 교회를 위해서 종말론적인 삶의 모습으로 간주되고 있다.


6.1.2. 마리아 동정성의 근거


6.1.2.1. 성서적 근거

성서는 마리아의 예수 탄생 이전의 동정성만을 계시해 주고 있다. 예수 탄생 이후의 동정에 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출산이후, 출산 중의 동정은 교부들의 증언과 교회 전승에 근거한다.

이사7,14은 동정 탄생의 예언으로 보고 있다. 단어 ‘Almah'는 ’처녀, 동정녀‘보다는 ’젊은 여인, 결혼 적령기의 여인‘으로 번역되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지만 ’처녀, 동정녀‘로의 번역을 배제하지 않는다. 더욱이 그 사건이 하나의 표징적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동정 출산‘이 더욱 의미가 있다. 교회는 이 구절이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지시하는 만큼 이 구절에 나타나는 여인은 마리아를 지시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한 견해는 마태오 복음사가에서부터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루가(1,26-28. 34-35), 마태(1,18-25), 요한(1,13)복음도 성령으로 말미암은 기적적 사건으로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동정 탄생임을 암시하고 있다.


6.1.2.2. 교회 전승의 가르침

마리아의 동정성에 관한 교부들의 증언들은 초세기 부터 언급되고 있다. 교부들은 마리아의 동정을 ‘출산 이전’ ‘출산 중’ ‘출산 이후’의 동정으로 구분하여 논하고 있다.


1) 출산 이전의 동정성

출산 이전의 동정에 관해서는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유스티노, 이레네오에게서 발견되고 있다.

마리아의 동정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되어 있다. 예수의 탄생이 동정 탄생이라는 사실은 예수를 인간으로 보려는 이단자들외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여졌으며, 교회의 정통 신앙의 한 가지 조항이 되고 있다.

최근 신학은 새로운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마리아의 동정 잉태가 역사적 전승에 의존하고 있는지, 성령의 계시인지, 마리아나 요셉의 기억에 의존하는지, 이사야 예언을 근거로 한 복음사가들이 묵상한 결론으로서의 증언인지 묻고 있다. 이런 질문에 대해 가톨릭은 역사적 전승으로 보고 있다. 마리아의 동정 잉태를 증언하는 마태오와 루가의 유년사화들은 서로 다른 전승에서 유래하기에 차이점이 있지만 공통점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마리아의 동정 잉태이다. 그래서 마리아의 출산 이전의 동정성은 역사적 전승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2) 출산 이후의 동정성

논쟁이 심각하였던 것은 예수 탄생 이후의 동정성에 관한 것이었다. ‘출산 이후의 동정성’에 관해서 신약 성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성서로부터 본질적인 암시를 얻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클레멘스는 외경 「야고보 복음」을 인용하면서 평생 동정을 주장하였고, 오리게네스는 하느님의 모친에게 걸맞은 모습으로서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옹호하였다. 그외에도 아타나시오, 에프렘등의 교부들이 앞선 교부들의 이론을 따르고 있다. 특히 대 바실리오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위해서 마리아의 평생동정은 적합한 것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신자들은 마리아께서 한 순간이나마 동정이기를 멈추었다고 느끼지 않는 ‘신자들의 신앙감’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내세웠다.

아우구스티노, 베드로 크리솔로고 등의 교부들에게서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이 삼중형식으로 고백되고 있다. “동정으로 잉태하셨으며, 동정으로 출산하셨고, 출산 후에도 동정으로 머무신다.” 이러한 교부들의 이론을 그 후 모든 교부들과 교회가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수용하였다. 교도권은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선언하였다. 649년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이 입장을 재천명하고 있다. 그 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신앙의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 출산중의 마리아의 동정

‘출산 중 동정’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인데 성서의 공백을 메워주는 외경들이 있다. 대표작이 야고보 복음인데 마리아가 출산하는 순간에도 동정이 보증되었다는 것을 살로메라는 산파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오리게네스는 가현설주의자들을 거슬러 마리아의 동정성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는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며, 생물들 가운데 단성으로서 출산하고 번식하는 경우가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원죄 없는 잉태를 보증하기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교부들은 고통없는 출산과 “잠겨진 문”의 비유와 마리아의 동정성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분의 육화에 타당하다는 이유로 출산 중에도 동정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잠겨진 문을 통과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듯이 어머니 마리아의 동정성에 아무런 해도 주지 않고 잉태되고 출산되셨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이는 신앙에 속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테르툴리아노 이후 마리아의 출산중의 동정을 포함한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은 모든 교부들에게 문제없이 수용되었다. 이러한 입장은 공의회를 통해 선언되었다.


6.1.3. 마리아의 동정에 대한 신학적 성찰

오늘날 마리아의 동정성에 관하여 여전히 문제를 제기하는 기본 입장은 다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자연과학적인 입장으로 고등동물이 단성 출산을 할 수 있느냐? 둘째 종교학적 입장으로 그리스도교가 신화적인 기적적 출산의 관념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냐? 셋째로 성서의 해석학적 입장으로 마리아의 동정성에 관해서는 마태오와 루가 두 곳에만 언급하고 있고, 바울로, 마르코, 요한 등 다른 복음에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런 점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1) 성서나 교부들도 마리아의 동정이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러기에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로 받아들였다. 하느님은 창조주이시며, 초월적인 분이시기 때문이다. 즉 교회가 마리아의 동정성을 선포하는 기반은 자연적 기반이 아니라 초자연적 기반이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되는 것이 없다”(루가 1,37)는 신앙이 그 기반이다. 즉 마리아의 동정성은 다른 신앙과 마찬가지로 신앙의 진술이지 과학적 진술이 아니다.


2) 마리아는 고대 종교의 여신들과 동일시 될 수 없으며 여신이 아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신화에서 특별한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가 탄생할 때 신의 힘이 개입되며 항상 ‘기적적 탄생’을 말하고 있으며 ‘동정녀 탄생’은 아니다. 성서와 교회가 주장하는 마리아의 동정 탄생은 이방인들이 주장하는 신의 성적 개입도 배제한다. 그 방법은 분명하지 않지만 성령에 의한 잉태라는 점을 강조한다.


3) 현대 신학자들도 마리아의 예수 탄생 이후 동정은 초기부터 유래하는 역사적 전승임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 증거로 외경 「야고보 복음」, 유스티노, 클레멘스, 오리게네스 등의 논거를 인용하고 있다.

성서는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의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그 목적이나 관심이 아니다. 종교적 진술이 그 목적이요, 관심이다. 성서가 전하려는 것은 신앙의 진술이요, 신앙의 진실이다. 즉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이시라는 진실을 깨닫고 그 진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한 것이다. 마리아의 동정성을 통하여 성서가 진술하고자 하는 신앙의 진실은 하느님의 전능성이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사실이다.


6.1.4. 결론

마리아의 동정은 마리아에게 주어진 영광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가 누구이신지,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의 교회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신론적, 그리스도론적, 교회론적, 인간학적 그리고 종말론적 의미와 가치가 담겨 있다.


1) 신론적 의미 : 자연을 넘어서는 기적적 사건으로서 전능하신 하느님이 인간 역사에 깊이 참여하였음을 드러내 준다. 한 여인이 자신을 온전히 봉헌한 의미로서의 마리아의 동정성은 그 대상으로서 하느님의 지고하신 거룩함을 드러낸다.


2) 그리스도론적 의미 : 예수가 마리아로부터 동정으로 탄생하셨다는 사실은 예수의 아버지가 오직 하느님이시라는 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임마누엘이신 예수의 신성을 드러내는 한 가지 표징이기도 하다.


3) 인간학적 의미 : 마리아의 동정성은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었던 한 인간의 지고한 사랑과 충실성을 드러낸다. 단지 인간들간의 사랑을 초월하여 하느님과 상통할 수 있는 높은 차원의 사랑을 드러낸다. 하느님과의 사랑은 하느님 성화의 은총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인간이 하느님의 호소에 기꺼이 자발적으로 응답하는 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4) 교회론적 의미 : 마리아의 동정성은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가 온전히 하느님께 속해 있어야 하고, 하느님께 온전히 충실해야 한다는 그 현실적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의 동정성은 교회의 모범이며, 교회 구성원들을 위한 이정표가 된다.


5) 종말론적 의미 : 교회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마지막으로 실현해야 하는 목표이다. 하느님 나라에서 교회와 하느님 백성 모두가 이루어야 할 미래이다.

마리아의 동정성의 이러한 복합적인 의미는 마리아의 신적 모성, 무죄한 잉태, 승천과 내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6.2. 마리아의 모성


6.2.1. 마리아론의 기반으로서 신적 모성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예수의 어머니로서 다루는 마리아론은 그리스도론의 한 분야이다. 성서가 마리아에 관해 진술하는 이유 역시 마리아에 관한 진술이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잘 알려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어떤 분인가를 아는 것이 예수가 누구인가를 아는 데 중요하다. 또한 예수로 말미암아 마리아가 누군인지도 잘 알 수 있게 된다. 바로 예수의 어머니가 되신다는 사실에서 마리아의 모든 사명과 특권들이 이해된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로 불려졌다. 이 칭호는 많은 논란을 겪었지만 에페소 공의회를 비롯한 기나긴 논란의 역사적 과정은 이 칭호가 결코 마리아를 여신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6.2.2. 마리아의 모성에 관한 성서적 가르침


6.2.2.1. 구약성서

메시아 모친에 관해서 구약성서의 3가지 언급을 들 수 있다. 창세 3,15; 이사 7,14; 그리고 미가 5,1-4이다. 창세 3,15은 아담과 에와를 유혹하여 죄를 범하게 했던 뱀을 짓밟는 메시아와 그 어머니를 예시해 주고 있으며, 요한 묵시록 12장과 서로 연관되어 있다. 이사 7,14에는 새로운 시대를 열 엠마누엘과 그의 어머니가 예언되고 있으며, 미가 5,1-4에는 메시아의 탄생지 베들레헴과 그 어머니로서의 여인이 등장한다. 미가서는 이사 7,14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며 다윗의 고을 베들레헴이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날 메시아의 표징이 되고 있다.


6.2.2.2. 신약성서

복음서들은 예수를 마리아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다. 사도 바울로는 마리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예수가 인간인 한 여인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만을 전하고 있다. 마태오와 루가는 예수의 어린 시절을 소개하면서 마리아 모성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라는 점은 공관복음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마르 ,31-35; 6,3; 마태 12,46-50; 13,55-56; 루가 3,23; 4,22; 8,19-21; 사도 1,14). 요한 복음사가도 ‘여인’이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면서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요한 2,3. 5; 6,42; 19,25-26)

마리아와 예수는 혈연적 관계에서만 그치지 않고 종말론적인 관계, 영적인 관계에서의 모자관계이다. 루가 복음에 의하면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모든 여인 가운데 가장 복된 여인이며, 그녀의 자발적이며 순명적인 응답으로 절정에 이른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혈연관계에서의 어머니를 넘어서 예수가 요구한 종말론적, 영적 관계 안에서 믿음의 어머니가 된다.


6.2.2.3. 교회 전승

마리아가 혈연적 의미에서 예수의 어머니라는 사실은 교회 전승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리아는 거룩한 어머니로 이해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하느님의 선택, 하느님의 은총을 근거로 하고 있다.

하느님의 은총을 충만히 받은 것을 초월해서 은총에 대한 응답의 태도로써 보여준, 신앙과 순종과 겸손에 있어서도 ‘거룩함’이라는 칭호가 합당하다. 교부들은 마리아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총과 신앙의 응답을 ‘거룩함’이라는 표현만으로 부족함을 느끼고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6.2.3. 신적 모성에 관한 교의


6.2.3.1. “TheotoKos”라는 칭호의 유래

마리아를 ‘Theotokos’(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3세기부터이다. 확실한 것은 3세기경부터 전해오는 기도문 「천주의 성모여 당신 보호하심에」이다. 이 기도문은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고 있다. 그후 교부들에 의해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불리고 있다. 암브로시오는 Theotokos를 라틴어 Mater Dei로 번역하여 불렀다. 그러나 프로클로의 마라아에 관한 강론에서 마리아에게 Theotokos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다. 결국 네스토리오 주교와 치릴로 주교와의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6.2.3.2. “Theotokos”칭호의 공식적 선언: 에페소 공의회(431년)

Theotokos의 문제는 그리스도론적 문제에서 발단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이다. 당시 교부들은 ‘속성의 교환’이란 원칙을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에 적용하였다. 이 원칙은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인성과 신성)이 하나의 인격(위격)안에 긴밀히 결합되어 있어서, 예수의 인성이 주어일 때 사용될 수 있는 모든 술어들은 예수의 신성이 주어일 때도 여전히 같은 술어로 사용될 수 있고 그 반대에도 여전히 같이 사용될 수 있다는 원칙이다. 그 만큼 긴밀한 하나의 결합이라는 것이다. 네스토리오는 이 원칙을 인정하지 않고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거부하였다. 한편 육을 따라서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신 분은 말씀이요, 그리스도는 신성화된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느님-사람이라는 것이 치릴로의 입장이다.

430년 로마 시노드에서 네스토리오의 의견을 반대하는 결정을 내렸으나 해결되지 않았기에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는 것을 수락하였으며 네스토리오와 공의회에 불참한 안티오키아의 주교들이 단죄되었다.

451년 칼체톤 공의회에서 에페소 공의회의 결정을 재확인 하였다.

6.2.3.3. “Theotokos”칭호의 교의적 의미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 마리아의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는 마리아가 신성을 지녔다든가, 여신이라든가, 그리스도의 신성이 마리아로부터 유해한다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칭호이다.


6.2.4. 마리아 모성에 관한 신학적 성찰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육화 사건은 하느님의 개입이었으며,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에 의해서이다. 즉 마리아의 인격적인 응답이 살아있는 도구가 된 것이다.


6.2.4.1. 인간적 모성의 요소들

모성이란 모자관계에서 성립된다. 현대의 유전 법칙에 따라서 자녀들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성격, 모습, 취향등에서 뿐만 아니라 심리적 요소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예수가 마리아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예수의 인격적이 면에서 마리아의 인격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며, 마리아의 성덕을 예수의 성덕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다.


6.2.4.2. 마리아의 신앙과 순종과 그 신학적 의미

예수께서는 혈연적 관계로서의 부모와 형제자매의 관계보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일’로 규명하였다. 루가 복음사가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하느님 말씀에 대한 순종과 철저한 신뢰였다는 것을 ‘탄생 예고 사건’에서 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공생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가나의 혼인잔치) 그리고 예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도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모습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마리아의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탄생 예고 순간의 마리아의 신앙 응답은 하느님의 구원역사에 마리아가 동참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마리아의 신앙 응답은 구원 받아야 할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의미가 있으며, 마리아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어머니가 되게 하였던 마리아 생애의 중심이었음을 의미한다.


6.2.4.3. 구원 역사 안에서 신적 모성의 의미

교부들이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고 에페소 공의회를 통해서 그 칭호가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지어 불려지는 것이지, 마리아의 신성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1) 그리스도론적 의미 :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마리아의 모든 신비와 사명의 중심축이다. 하느님의 아들이 마리아로부터 인성을 받으셨다는 마리아의 신적 모성의 신비는 그분의 동정성을 감소하지 않고 성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적 모성과 그 사명의 목적은 마리아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구원을 향하고 있다. 성서는 마리아가 어머니로서 아들의 모든 구원활동과도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회헌장」은 이러한 마리아의 신적 모성을 성서가 ‘주님의 종’으로 요약하여 표현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야훼의 종’의 모습을 실현하고 있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 곁에서 마리아는 ‘주님의 종’으로 협력하였다는 것이다.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그리스도론적 배경을 지니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에 밀접한 연관성을 드러낸다.


2) 교회론적 의미 : 1958년 마리아 국제회의는 마리아의 신적 모성이 마리아론의 중심축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관계, 교회와의 관계를 위해서도 중심축 이라는 점을 밝혔다.

「교회헌장」은 암브로시오의 말을 인용하여 마리아가 교회의 예형이라는 점을 인식하였다. 무엇보다 예수를 낳고 세상에 전해 주어야 하는 교회의 사명은 마리아처럼 동정적이어야 하며 동시에 어머니여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였다. 따라서 교회의 역사적 사명의 실현을 마리아에게서 보고 있다. 마리아의 신적 모성이 교회를 위한 덕행의 모범일 뿐만 아니라 종말론적 교회의 모상이기도 하다.


6.2.5. 마리아 모성에 관한 종합적 요약

1)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유사성을 부인하지 못한다.

2)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

3) 육체적이고 혈연적인 차원을 넘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랐기에 종말론적 차원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신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형제자매, 어머니의 관계를 형성한다.

4)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 육화의 신비를 드러내며, 예수 그리스도 신성의 강조적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하느님으로부터 계획되고 선택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구원사업에 있어서도 하느님께 협력한 적극적 도구였음을 드러낸다.

5)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하느님께 순명함으로써 교회의 예형이며, 교회가 실현해야 할 원형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교회의 어머니’로 부른다.

6)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마리아론의 중심축으로서, 모든 마리아의 특권과 사명이 유래하는 원천으로서, 마리아에게 주어진 최고의 영예이다.


6.3.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과거엔 ‘무염시태’로 불렸던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한 교의는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의 회칙 「한량없으신 하느님」에 의해 선포되었다.


6.3.1.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6.3.1.1. 교부들의 견해

성서에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복음서는 마리아의 신앙과 인격적인 면모를 몇 군데서 시사해 주고 있을 뿐이다. 초기 교부들은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오직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데 관심을 보이고 전력을 다하여 변호하고 해설하였다.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선포하는데 마리아의 탁월한 신앙과 성덕이 도움을 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마리아가 언급되기 시작하였다. 교부들은 점차 마리아의 탁월한 성덕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에 외경들이 상당히 영향을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아담의 원죄와 관련하여 해설하는 가운데 에와-마리아 대조가 도움을 주었다. 즉 마리아의 성덕을 인식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유스티노가 처음으로 에와의 불순명과 마리아의 순명을 대비하였고, 이레네오에게서 더욱 심화되었다. 히폴리토와 아타나시오, 에프렘는 마리아가 예수를 태중에 모셨다는 육화의 신비 자체에서 마리아의 육신의 정결을 인식하고 있다. 디디모는 마리아의 노래에서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으며, 바실리오는 신앙의 어둠을 겪어 낸 마리아는 모든 신앙인들의 모범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니싸의 그레고리오는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셨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나지안의 그레고리오는 마리아가 하느님께 동정으로 자신을 봉헌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성화의 은총을 받음으로써 깨끗해졌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교의를 선포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암브로시오는 하느님 흠숭과 마리아 공경을 구별하면서도 마리아를 신앙의 모범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모범적 성덕은 예로니모, 아우구스티노에게 이어지지만 원죄로부터의 면제에 대해서는 주저하였다. 안치라의 테오도토와 첼리오의 세둘리오, 교황 대 레오, 안티오키아의 세베로, 사룩의 야곱등은 마리아의 완벽한 무죄성을 강조하였다.

그 후 교부 시대 말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교부들은 마리아의 무죄함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로마노 멜로데, 베난시오, 대 그레고리오 교황, 이시도르, 제르마노, 요한 다마쉐누스 같은 후기 교부들에게 마리아는 무죄함을 넘어 아름다우신 분으로 묘사되었다.


6.3.1.2. 중세 시대 신학자들의 견해

서방 교회는 중세 초기에 이르러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출산하기 위하여 합당하게 무죄하고 깨끗하며, 성덕에도 완벽했음을 주장하면서도, 아우구스티노의 원죄 이론에 강한 영향을 받아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섣불리 주장할 수 없었다. 따라서 마리아의 원죄가 예수 잉태 전에 성화 내지 선-정화되었다는 입장을 보였다. 당시 논쟁의 주제가 되었던 성모 승천도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주장하는 데 일조하였다. 즉 육신의 승천은 그분의 육체가 부패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분의 육체가 부패할 수 없는 것은 그분이 원죄에 지배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와 승천 교의는 중세 후반기부터 맞물려 논의되고 있었다. 안셀모, 베르나르도, 대 알베르토, 토마스 아퀴나스, 보나벤투라도 마리아의 완벽한 성덕, 무죄함을 언급하지만 아우구스티노의 이론에 따라서 마리아의 원죄로부터 면제를 수용하지 못했다. 둔스 스코투스가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는 마리아의 원죄로부터 면제가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적 중재 능력을 삭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마리아의 원죄로부터 면제 역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힘입은 은총이기 때문이다.

둔스 스코투스 이후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관한 주장은 더욱 강세를 띠었다. 이 논쟁은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교황 식스토 4세는 회칙을 반포하여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하여 논쟁하거나 상대를 서로 단죄하지 못하게 하였다. 사회적 분위기는 신학적 논쟁과는 달리 ‘마리아 신심 시대’라고 부를 만큼 성모 공경이 대중적이었다.


6.3.1.3. 근대의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교의 논쟁과 선포

에라스무스의 잘못된 성모 신심에 대한 비판과 종교 개혁자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종교 개혁자들이 제기하는 문제 직면하여 트리엔트 공의회는 그들에게 자극하지 않기 위하여 그 당시 논쟁이 되고 있었던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하여 다루지 않았다. 당시 개신교와 관건이 되었던 ‘원죄론’에 대해 언급하면서, 마리아에 관해서는 “일반적인 원죄 이론에 마리아는 포함시키지 않는다”라는 조항으로 그쳤다. 공의회는 교황 식스토 4세의 중립적인 입장을 재천명하였다. 개신교의 개혁에 반발하여 가톨릭 대중 신심은 더욱 더 마리아 신심으로 향하였다. 교황들에게 끊임없이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교의로 선포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1667년부터 1799년까지 13명의 교황들은 중립적 자세를 취하였다.

마리아 신심이 뛰어난 교황 비오 9세에 의하여 1854년 12월 8일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축일을 맞이하여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을 선포함으로써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교의를 선언하였다.


6.3.2.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의 구조와 근거

비오 9세의 회칙은 끊임없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성모 신심과 봉헌으로 출발해서 교부들과 성서로부터 그 선포의 권위를 변호 받고 있다. 이 교의 선포는 다음과 같은 사상이 그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즉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는 ‘하느님의 어머니’로서의 권위에 요구되는 것이다. 또 마리아는 ‘은총이 충만한 분’이시다. 또 육화의 신비의 관점에서 볼 때, 당신의 구원 계획을 위해 마리아를 선택하신 ‘하느님의 선택’에는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는 ‘성자의 권위’를 위해서도 마땅한 일이다. 그러므로 성서의 침묵은 반대보다는 동의로 해석되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은 하실 수 있고, 원하시고, 따라서 하신다”는 공식이 적용되고 있다.


6.3.2.1. 회칙의 내용과 구조

회칙의 내용과 구조를 10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마리아가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 탁월한 위치에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2)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한 교회의 전통적 신앙을 소개하고 있다.

3) 선대 교황들이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신심과 공경의 내용에 대해 격려했던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4) 선대 교황들께서 이 교의에 반대되는 입장들을 금지시킨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5) 트리엔트 공의회가 마리아의 원죄 없음을 확인한 사실과 이러한 공의회의 결정이 교회 전통과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6)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한 교부들의 가르침들을 제시하고 있다.

7) 교부들이 발굴해 낸 성서적 근거로서 창세기의 원복음, 노아의 방주, 출애굽기의 불타는 가시덤불 등이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예표해 주는 상징으로 열거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는 천사와 엘리사벳의 인사를 통해 마리아 자신의 노래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은총’과 ‘위대하심’에서 그 증언을 찾을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8) 교부들의 신학적인 업적으로서 에와-마리아의 대조와 교부들의 마리아 찬양이 열거되고 있다.

9) 가톨릭의 온 교회가 보편적으로 믿고 있는 신앙의 진리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10)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교의로 선포하며, 신자들에게 마리아 안에 희망을 둘 것을 격려하고 있다.


6.3.2.2. 회칙의 성서적 신학적 근거


① 구약 성서

창세 3,15 : 마리아는 옛 뱀에 대적하여 승리를 쟁취한 후손의 어머니로서의 여인이시다. 뱀이 악마를 뜻하는 만큼 악에 대한 승리는 무죄함으로 이해된다.

출애 3,2-3 : 어떤 것으로부터도 해를 입지 않는 마리아의 모습을, 타도 타 없어지지 않는 모세의 불타는 가시덤불이 잘 보여주고 있다. 마리아의 동정만이 아니라 흠 없는 모습까지도 상징해 준다.

그 외에도 (창세 6,8-8,19. 28,12) (아가 4,4. 4,12) (시편87,1.3) (1열왕 8,10-11)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② 신약 성서

루가 1,28(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 1,42(믿음으로 복되신 분). 1,49(전능하신 주님께서 큰 일을 이룩하신 분)에서 은총과 무죄함이 잘 나타나고 있다.


③ 신학적 전거

1)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육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랐다는 점에서 종말론적 차원에서도 주님의 어머니로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2)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진 영예이지만, 그 은총을 상실하지 않고 보존한 마리아의 윤리적 성덕의 결과이다. 복음서는 그러한 마리아의 윤리적 성덕을 동정, 순종, 겸손, 용기, 침묵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라는 복음적 계시의 구체적 표현이다.

3)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대한 신자들의 신앙이 하나의 근거가 된다.

4)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자들, 즉 구원된 자들의 마지막 운명의 실현이라는 희망 안에서 이 교의가 선포되고 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마리아만의 구원과 영광이 아니다. 모든 인간들의 구원과 영광이다. 마리아는 구원된 자들의 선취적 실현이다. 즉 우리들의 미래적 모습에 대한 신앙이다.

5) 하느님의 전능성이 그 근거이다. 하느님께서 전능하시기 때문에 원하시는 것을 행하실 수 있다.


6.3.3. 결론

복음서는 마리아가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으로, 교부들은 마리아가 “믿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잉태”하셨음을 통찰하였다. 그 후 신학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선택되시고, 예정되셨다는 점을 인식하였다. 마리아의 역할에 대한 구원 역사적 인식은 에와-마리아의 대조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마리아의 윤리적 성덕에 관심을 고조시켰으며, ‘무죄한’이라는 단어를 적용하게 되었다. 이 ‘무죄한’이라는 단어는 ‘흠, 탓’을 전제하므로 교부들은 마리아의 성화 내지 정화를 언급하였다. 여기에서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언제 정화되었느냐에 많은 논란을 벌였다. 예수가 잉태하는 순간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화되었다는 입장을 표명하였으나 그보다 정화의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마리아가 원죄를 물려받고 태어난 것인지, 원죄로부터 면제받고 태어난 것인지 논쟁의 촛점이 되었다. 안셀모, 베르나르도, 보나벤투라, 토마스 아퀴나스 등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정화 시기를 태어나는 순간 즉시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원죄로부터 면제를 주장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인간은 출생을 통하여 원죄를 물려받으며, 그럼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중재로 사함을 받는 것이라는 원죄론 때문이었다. 이러한 신학적 문제점과 달리 대중 신심은 마리아의 원죄로부터의 면제를 주장하였다. 이에 둔스 스코투스는 마리아를 원죄로부터 보호하는 것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을 보다 위대한 것임을 입증해 주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후 마리아 신심이 더욱 활발해지고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교의가 선포되었다.

오늘날 아담과 에와의 이야기가 사실적 보도가 아니라는 것을 성서신학이 밝혀 냈기에 전통적인 원죄 이론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여전히 아담과 에와의 범죄로 인하여 자손들에게 출생을 통하여 계속 그 죄가 전달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성서 신학은 원죄론의 근거가 되는 로마 5,12이 희랍어 본문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아담과 에와의 범죄가 설화임에도 불구하고 신학은 원죄론이 인간 실존 안에 보편적으로 깔려있는 죄를 역으로 설화화 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견을 일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 실존에 깔려 있는 원죄는 여전히 진실이라는 데 변함이 없다. 또 이 원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한 구원 중재의 보편성을 대조적으로 드러내는 음영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각 개인이 저지른 죄 이외에 인간 실존 안에 깔려 있는 그 원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시하는지는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마리아의 무죄성과 그리스도의 구원 중재성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구원은 무죄성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구원은 하느님으로부터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무죄한 대가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제8장이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타 종파와의 대화를 위한 사목적 배려의 관점이다.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교의는 그들과의 대화에 있어서 분명 하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는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라는 성서적 계시의 구체적인 한 가지 표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또 이 교의는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기인한다는 것을 말한다.


6.4. 마리아의 승천

교회는 예수의 승천을 ‘Ascensio’(상승 오름, 올라감)로 표현하고, 마리아의 승천을 ‘Assumptio’(올림을 받음)로 표현하며 구별하고 있다. 즉 예수의 승천은 능동성을 드러내는 데 비해 마리아의 승천은 수동성을 드러낸다.


6.4.1. 성모 승천 교의의 선포의 역사적 과정


6.4.1.1. 교부 시대의 성모 승천에 관한 초기 증언들과 교부들의 견해

마리아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또는 승천에 관해서는 4세기 말엽에 이르러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오 교부에 의해서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다. 성서가 마리아의 생애 마지막에 관하여 침묵하고 있는 점을 인식하면서 그는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자연적인 죽음을 맞이하셨을 가능성이 있으나 그 분은 순결한 동정성으로 영예의 화관을 얻게 되셨을 것이다. 둘째, 시므온의 예언 “칼”(루가 2,34)을 고려할 때 순교의 가능성이 있다. 셋째, 요한 묵시록(12장)에 비추어 보면 하늘에서 불려 올림을 받으실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구원된 모든 사람들이 장차 얻게 될 상급이기 때문이다. 에피파니오는 하느님 흠숭과 성모 공경을 구별하며, 지나친 성모 신심을 지적하였다.

그외에도 예루살렘의 디모테오(루가 2,34 해설), 헤시키오(시편 인용)등이 성모 승천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가명-피아첸자의 안토니오」, 「에우티미아카 이야기」, 가명-요한의 「거룩하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잠드심」, 「아리마태의 요셉의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이주」등의 외경에서 마리아의 승천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리아 승천에 대한 외경은 다양하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운명의 시간을 알려주고, 그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려서 모든 제자들이 모여 삼일간 하느님으 찬양하며 기도하고, 마침내 마리아의 영혼이 하늘로 올림 받고, 육신은 베드로와 제자들에 의해 삼일간 지켜지다가 주님이 오셔서 육신 마저 올림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마리아 승천에 관한 강론은 콘스탄티노플 의 제르마노, 크레타의 안드레아, 다마스커스의 요한에게서 절정에 이른다. 제르마노는 마리아의 운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과 다를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안드레아는 마리아의 빈 무덤을 전하면서 순결한 그 분이 죄의 벌로 죽음을 겪으셨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승천을 주장하였으며, 요한은 마리아의 승천을 마리아의 동정성의 신비와 연결시키면서 주장하였다.


6.4.1.2. 중세시대 신학자들의 논쟁

중세의 신학자들은 성모 승천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육을 주신 어머니로서 예수의 육체와 유사성을 들어 승천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중재를 위해 하늘에 계셔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며, 예수의 승천과 장래에 있을 우리의 승천의 중간 단계로서 마리아의 승천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주장과 더불어 중세는 성모 승천에 관한 라틴어로 된 많은 문헌들이 속출하였다. 「가명-사르디나의 멜피토」, 「가명-젤라시아노의 선언」, 「가명-아우구스티노」등이 성모 승천 신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6.4.1.3. 성모 승천의 논쟁과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선포

1868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의 선포에 있어서 교황의 무류지권을 선포하였는데, 성모 승천 교의에 이 무류지권이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교의와 마찬가지로 성모 승천 교의도 교황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청원에 의한 것이다.

많은 신학자들이 성모 승천 교의 선포를 지지하였다. 추기경 알렉시오 레피시에는 신앙의 진리는 계시적 유산에 맡겨진 내용이라고 주장하였고, 마린솔라는 승천 신앙은 물론 마리아의 보편적 중재성도 교의로 선포될 수 있다고 보았다. 결정적으로 공헌한 신학자는 예수회의 휠로그라씨인데 그는 교회가 어떤 신앙의 진리를 교의로 선포할 때 인간적인 방법, 또는 신학적 과학의 방법과 달리 독자적인 방법을 따라 고유한 방법과 고유한 권리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방법론으로서 연역적 방법과 귀납적 방법 두 가지 모두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도 지적하였다.

1869년에서 1940년까지 3018건의 청원을 분석한 결과 96%가 마리아 승천을 교의로 선포될 것을 염원하였다. 그 동기는 신학적이라기보다 사목적인 측면이었다. 신자들의 마리아 신심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마침내 교황 비오 12세는 모든 성인의 축일에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하였다.


6.4.2. 회칙의 구조와 성서적 신학적 근거


6.4.2.1. 회칙의 내용과 구조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은 그 내용을 9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1) 마리아의 은총의 특권의 하나로서 무죄한 잉태 사실을 재확인 하고 있다.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는 그분의 신적 모성과 깊이 관련된 특권이다. 이 무죄한 잉태는 마리아의 육체적 승천을 준비해 주었다.

2) 성모의 승천을 교의로 선포하기를 열망하는 교회의 입장과 많은 주교들과 신자들의 동의와 지지를 설명하고 있다. (일치된 신앙)

3) 마리아의 승천에 관한 백성들의 신앙은 오랜 세기 동안 거행되어 온 마리아 공경과 전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지적하였다.(축일과 로사리오 기도)

4) 신앙의 진리를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가르침에서도 찾아볼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5) 전승의 증언에서 얻어낼 수 있는 비유들도 열거하였다.(시편 132,8 계약의 궤 등)

6) 성서적 근거로서 에와-마리아의 대조와 구원 계획을 위해 태어나기 전에 선택되었음을 제시해 주는 창세 3,15과 은총의 충만함을 계시해 주는 루가 1,28 등이 언급되고 있다.

7) 성모 승천 교의가 성서 외에도 다양한 이성적 근거가 있음을 제시한다.(신앙감, 다른 계시 진리와의 조화등)

8) 성모 승천 교의는 인류의 축복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하느님과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녀에게의 영광은 신자 각자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9) 마리아의 육체의 승천을 장엄하게 선포하며 성모 승천에 대한 신심을 격려하고 있다.


6.4.2.2. 회칙의 성서적 신학적 근거


① 구약 성서

창세 3,15 : 죄와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투쟁에 마리아가 함께 하고 그 승리로 얻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함께 참여함을 예언하고 있다.

이사 60,13 :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몸을 얻으신 그 어머니를 탁월한 방법으로 영광스럽게 하셨음을 시사해 준다.

시편 45,10.14-16 :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왕후는 그 임금이신 주님 오른편에 계셔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외에도 출애 20,12 시편 132,8 아가 8,5에서도 성모 승천의 근거를 말하고 있다.


② 신약 성서

루가 1,28 : 모든 여인 중에 복되시고, 은총이 가득하신 그 분은 은총의 충만함의 완성으로서 승천의 신비를 납득하게 해 준다.

요한 묵시록 12장에서 여인을 천상에 오르신 마리아로 표현한다.


③ 신학적 전거

1) 마리아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 육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어머니와 아들이 이러한 일치와 연결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으로부터 마리아의 승천을 이해하게 해 준다. 마리아는 태중에 모셨던 감실이다. 따라서 그분의 운명도 유사성을 지닌다. 그리스도와 마리아는 분리될 수 없다.

2) 마리아의 신적 모성의 특권이 마리아의 승천을 요구한다.

3) 마리아의 동정적 육체의 거룩함 역시 마리아의 승천을 요구한다. 무죄한 육체가 부패될 수 없다.

4) 마리아의 충만한 은총은 다른 모든 사람들, 천사들보다 탁월한 위치에 있음을 드러낸다. 성모 승천은 그러한 충만하고 특별한 은총의 표현이다.

5) 생명과 불멸성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효도를 고려할 때 성모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

6) 성모 승천은 그리스도인이 미래의 마지막에 얻을 영광의 표징이다. 마리아의 승천 신앙은 우리 자신들의 부활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

7) 성모 승천(Assumptio)과 예수 승천(Ascentio)은 구별된다. 마리아의 승천은 예수 승천의 참여다.


6.4.3. 결론

볼프강 바이너르트에 의하면 마리아의 승천은 마리아가 그의 구세사의 목표, 즉 구원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셉 라징거에 의하면 성모 승천 교의는 공경의 행위이며 마리아를 찬미하고 찬송하는 최고의 표현 형식이다. 라너에 의하면 성모 승천은 마리아가 근원적으로 구원받은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마리아의 승천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잉태되는 순간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은총을 충만히 받은 분임을 드러낸다. 그러한 마리아론적 의미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듯이 인간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마지막에 얻게 될 영광의 선취적 표현으로서 교회론적이며 또한 종말론적 의미도 지닌다.

교의의 발전 과정과 축일의 명칭의 변화 과정을 볼 때, 마리아의 잠드심, 이주, 천상 탄일, 승천으로 발전해 왔다. 무엇보다도 무죄한 그리스도께서도 죽음을 통하여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7. 중재자 마리아

마리아의 중재에 관한 교리는 최근에야 비로소 신학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지만, 마리아의 보호와 신뢰를 표명하는 간구의 호칭은 교회 안에서 아주 오랜 기원을 가지고 있다. “천주의 성모여 당신 보호하심에 우리를 맡기오니…”(Sub tuum) 이 기도문은 바로 교회의 역사 안에 지금까지 나타난 가장 오래된 마리아의 전구를 비는 기도문이다.

역사 과정 안에서 교회는 마리아의 전구에 매달려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을 빌어 왔다. 그러나 특히 갈라진 형제들의 편에서는 성인들의 전구에 대하여 거부한 나머지 교회의 마리아 공경에 반기를 들었고, 그로 인하여 전통적인 가톨릭 교회에 공격을 가해 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서와 교회의 역사, 그리고 교부들의 사상 안에서 마리아의 중재에 관하여 섭렵하여 연구하여 갈라진 형제들에 대한 오해와 공격에 답하여 그리스도교 재일치운동의 확고한 기반을 다지려 노력했다.


7.1. 마리아 중재의 성서적 근거

중재에 관한 신학은 신약성서 구절들 위에 건립되어 온다. 

이 신학의 빛에서 볼 때에 구약에 까지 소급해 보면 

중재자들은 하느님의 특별한 권능 혹은 비추심에 대한 움직임 안에서 보는 예언자들과 동일시 되고 있다. 

천사들 역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개입한다. 

중재자란, 종교상 하느님과 인간을 일치시키는 자이다.1)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자 참 사람으로서 완전한 중재자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한 분 뿐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도 한 분 뿐이신데 

그분이 바로 사람으로 오셨던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바치셨기 때문이다”(1디모 1,5-6). 

그렇다면 마리아의 중재성이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그리스도의 중재 역할에 근거를 두고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여기서는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마리아의 중재의 모습을 찾아 보기로 하자.

신약성서에는 대략 3부분에서 마리아의 중재역할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요한2,1-12 ; 19,25-27 ; 사도1,14 이다.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의 첫 번째 기적이 마리아의 중재로 인해 일어났음을 증언하고 있는데, 

그 근거는 예수는 늘 기적에 앞서 항상 믿음을 요구하였는데, 

이 기적은 바로 마리아의 믿음의 결과라는 것이다. 

마리아는 믿음의 여인이었음을 성서에서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요한 19,25-27은 마리아와 예수의 사랑 받는 제자 사이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가 형성되는데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이들 사이의 가족 관계를 의미하며, 

여기서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로만 머무르지 않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사도 1,14은 마리아가 제자들과 함께 성령이 오시길 기도드리는 장면을 전해주고 있는데 

이는 마리아가 기도에 성실한 분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마리아를 중재 기도자로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7.2. 마리아 중재에 관한 교회 전승


7.2.1. 교부들의 가르침2)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마리아의 중재 능력을 신뢰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도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것은 “천주의 성모여, 당신 보호하심에”라는 기도이다. 초대 교회는 마리아의 중재를 믿고 있었으며, 이 중재가 항상 그리스도의 중재에 속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교부들의 사상을 통해 알 수 있다.

교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며 중재 개념을 고찰해보면 매우 복잡성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 진리의 열쇠를 이루고 있는 것은 하와-마리아의 유비 개념 안에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을 제안하고 있는 이들이 모두 이 유비의 내용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기록했다 : “마리아 역시 미리 선정된 남자와 정혼했으면서도 동정인 채로 남아 있었으며 그녀의 순종을 통하여 그녀 자신과 전인류에게 구원을 불러들였다.”

4세기에 이르러 하와-마리아 교리가 이렇게 표현되어 있었다 : “하와를 통한 죽음, 마리아를 통한 생명.” ‘통하여’라는 전치사를 모든 말에 사용하고 있는 것은 언제나 중재적인 역할을 말하고자 하였다. 시리아의 에프렘은 교회와의 관계속에서 마리아의 중재역할을 강조하는데, 마리아는 기도로써 보호를 청하는 자들의 영혼을 악으로부터 보호하는 중재 역할을 맡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아울러 구원에 있어서 마리아의 역할은 이 세상에 국한되지 않고 죽은 자들의 세계인, 셰올에까지 미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당시 교회 공동체는 마리아에게 특별한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죄에 대한 속죄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성인들의 중재기도, 그리고 마리아의 중재기도를 통해서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다마스커스의 요한도 마리아의 중재에 커다란 신뢰를 보이고 있다. 하느님 훔숭과 마리아 공경을 구별하면서, 마리아를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고귀한 사다리에 비유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교부시대에 마리아의 중재에 대한 믿음이 보편적 현상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중재는 그리스도의 중재에 근거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7.2.2. 중세, 근대 시대의 논쟁.

마리아의 중재에 대한 교부들의 이해는 중세에도 계속 이어진다. 끌래보의 베르나르도로부터 처음으로 구원사업 안에서의 마리아의 중재성의 생각이 계발되었다. 마리아는 교회의 여러 지체를 위해 하느님께 그치지 않고 전구하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에게 은총을 전해주는 수도와 같다는 것이다.3)

암브로시오 아우트페르트는 마리아의 모성적 애정을 강조하며, 마리아에게 ‘바다의 별’, ‘간구하는 자들의 도움’, ‘고통에 시달리는 자들의 피난처’ ‘갇힌 이들의 해방’이란 칭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강조가 마리아의 중재능력을 과장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에 의해 하느님의 능력을 초과하는 것으로 과장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대중신심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은 정의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마리아의 심판은 자비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말하자면, 분노하시는 하느님과 자비하신 어머니로 대비하여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대중신심은 당시 100년 전쟁, 교황의 아비뇽 유수, 위클리프의 개혁 등 불안했던 사회적 상황과 신비주의, 그리고 마리아를 기적적인 도움을 주는 기도의 대상으로 이해하도록 만들었던 갖가지 과장적이고 환상적인 마리아의 전기의 영향에 의해 더욱 가열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신심에 대항해 대 알베르토, 토마스 아퀴나스, 보나벤뚜라는 마리아의 중재성이 항상 그리스도에 종속되어 있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러한 잘못된 신심은 종교 개혁자들로 부터는 물론, 가톨릭 교회 내의 신학자들로부터도 호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곳곳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비오9세의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교의 선포는 그러한 과장된 대중 신심을 더욱 부채질했다.


7.3. 마리아 중재에 관한 교도권의 가르침

마리아의 중재에 관한 교회 교도권의 첫 번째 암시는 교황 대 그레고리오의 편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레고리오 교황은 성인들의 중재 효과를 인정했고, 

그런 이유로 마리아의 중재와 그 신심을 권장했었다. 

마리아의 중재에 관한 교도권의 가르침은 

교황 보니파시오 9세, 베네디토 14세의 회칙 

‘영광스러운 여주님’, 비오9세의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리아의 중재에 관한 분명한 언급은 레오13세의 회칙 ‘10월’에 나타난다. 

또한 교황 비오10세의 회칙 ‘그날에’에서도 

“당신의 신적 아들과 함께 세상 전체의 변호자요, 

능력 있는 여성 중재자가 되신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는 표현을 통해 

마리아의 중재를 인정하고 있다. 

이 밖에도 비오11세의 회칙 ‘진리의 빛’, 비오12세의 회칙 ‘신비체’, ‘하느님의 중재자’에서도 

마리아의 중재에 대해 언급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헌장’을 통해서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이 예수의 유일한 중재성을 흐리게 하거나 감소시키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거임을 강조한다. 

즉 마리아의 중재성은 그리스도의 중재 역할에 근거를 두고 그것을 도와주는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60항).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회칙 ‘구세주의 모친’에서 회칙의 3분의 1을 마리아의 중재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마리아의 중재가 그리스도 예수의 중재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여종’으로서 하느님께 온전한 신앙의 응답 자세로 일관한 마리아의 모성이 

그 중재의 근본적인 차원을 이루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39항).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는 당신의 중재를 통하여 구원을 위한 봉사를 중단하시지 않는다고 덧붙여 

언급하고 있다(41항).


7.4.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마리아 중재 이해4)

마리아는 하느님과 인간의 유일하고 참된 중재자인 성자를 낳은 모친이되는 만큼 그리스도의 구원활동과 밀접하고 탁월한 관계를 지닌다. 그리스도가 유일하고 참된 중재자라면 또 다른 중재자가 필요한가? 교회는 마리아를 특수한 의미에서 중재자로 이해한다. 즉 마리아는 자신의 신앙 및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통해 그리스도의 구속활동에 가장 탁월하고 완전하게 참여하고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승천 후에도 그리스도와 함께 인류구원에 온전히 이바지하고 자신의 전구로써 교회에 구원의 은총을 얻어준다. 마리아는 순례하는 나그네인 교회를 천상에서 보살피며 하느님의 백성이자 당신의 자녀들을 구원으로 인도한다. 이 때문에 교회는 마리아를 변호자,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라고 불러 왔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참된 중재적 지위와 역할을 결코 감소시키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중재자역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것이지만, 그것에 참여하는 피조물의 협력은 배제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요구된다. 마리아는 교회의 생명이요 머리인 그리스도의 모친으로서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결합된 신부인 교회, 즉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하느님 백성의 영적 모친이 된다. 그리스도의 구속공로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천상의 유산을 이어받을 ‘공동상속자’로서 성부를 영원한 아버지로 섬기게 된다.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모친으로서 하느님의 백성에 속하는 각 사람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기를”(에페4, 13) 바란다. 어머니인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잉태와 탄생 및 지상생애에서도 언제나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세말까지 그의 구원활동에 온전히 협력하는 것이다.


7.5. 마리아 중재에 관한 신학적 성찰

사도 바울로는 믿음이 강한 사람은 믿음이 약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각자의 은총은 서로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역설하였다. 

칼 라너는 우리가 하느님의 거룩하고 거대한 공동체에 속하는 한,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받은, 이 하나인 사회를 구성하는, 타인을 위하여 존재하는 한, 

모든 인간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중재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건 사실이다. 

인간은 인간이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가지고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느님께 기도한다. 

그리고 도움을 청할 때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한 사람이 청하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뜻을 모아 기도하면 더욱 힘이 된다는 것을 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중재자이시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성인들의 통공’도 믿고 있다. 

이 신앙은 하느님과 함께 계신 성인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이와 같은 도움은 마리아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받을 수 있다.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이실 뿐만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보다도 사랑하신 그분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원하고, 

그분이 온 몸과 마음으로 순종하신 그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세상 구원을 잘 인식하고 계셨다. 

따라서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지상 생활 동안에도 그리스도의 육화와 공생활과 수난에 동참하였듯이, 여전히 협조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낳아 주신 육화 사건 자체 역시 크나큰 은총의 중재이다. 

그래서도 마리아 그분 중재의 놀라운 효과를 강조할 수 있고, 

다른 여느 성인보다 그분의 탁월함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강조로 말미암아 마리아께서 아들 예수를 명령할 수 있다든가, 

마리아의 자비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보다 더 크다는 

못된 중세적 표현을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론을 대신해서)

지금까지 간략하게 나마, 중재자로서의 마리아에 관한 성서와 성전, 그리고 공의회의 가르침에 대해 살펴 보았다. 신앙의 여정안에서 마리아는 충실히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였고, 믿음으로 엄청난 시련을 감내함으로써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모범이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헌신한 그녀의 신앙의 여정은 전 그리스도 신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되었다. 그것은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인격적 자유와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예속시킨 순종 안에서 구세주이고 구속자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자격구비와 조건을 전 그리스도인과 안류 앞에 밝혀주고 있다.

은총의 질서 안에서 그녀가 차지한 특권은 무엇보다도 그녀의 신적 모성에 있는 것이며, 그 모성은 물리적으로는 그리스도와 직접 연결되고 인류와는 영적으로 연결된다. 마리아의 모성의 작용은 바로 지상적 자연 인간의 모성이 지니고 있는 특성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그 모성은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구원의지에 예속된 모성으로써 그 의지에 협력하는 특권을 부여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모성은 그리스도와 일치되고 전 인류와도 일치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마리아 그리고 마리아와 교회와의 관계는 사랑과 도움, 그리고 협력의 관계가 아닐 수 없다. 모성의 특징은 모성애로 나타난다. 그 모성애는 언제나 자녀들의 구원과 관련되고 그들의 행복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마리아의 모성은 천사의 아룀을 듣고 충실히 동의하신 그 순간부터… 뽑힌 이들의 수가 찰 때까지 영구히 끊임없이 계속된다”(교회헌장 62항).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 역시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끊임없이 청하는 것이리라.




부록 ․ 마리아 공경의 전례와 성모 발현


8. 마리아 공경의 전례와 그 역사적 의미

지금까지 구약성서부터 2000년대까지 마리아에 대한 교의와 신심에 대한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발전들이 어떻게 진행되어왔고, 또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마리아에 대한 많은 논쟁들과 이론들을 뒤로하고 이제는 살펴보아야 할 것들이 남아있다. 바로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신심이 전례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신심은 전례와 함께 발전하였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이고, 교회의 어머니이고, 우리의 어머니이식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신심은 전례속으로 깊숙이 들어올 수 있었다.

이제 미약하게 나마 전례속에서, 그리고 일 상속에서 마리아에 대한 공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전례력안에서 이루어지는 마리아 축일(또는 기념일)에 대하여 살펴보고, 토요일 성모 신심 미사, 마리아에 관련된 기도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다.


8.1. 전례력 안에서의 마리아 축일


8.1.1.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1월1일)

오랜 역사를 가진 ‘천주의 모친 대축일’은 최근에야 로마 전례 개혁에 따라 복원되었으며, 이 대축일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다만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는 4세기경부터 생기기 시작하여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공적으로 승인되었으며, 1970년이래 1월 1일을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낸다 또한 1967년 12월 8일에 교황 바오로 6세는 이날을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날(세계 평화의 날)로 제정하였다.

이 축일은 마리아의 신적 모성을 하느님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비추어서 거행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의 신비 안에서 수행하신 마리아의 역할을 기념하고, ‘우리가 생명의 근원이신 성자를 맞아들이게 해주신’ 거룩한 어머니께 드리는 특별한 존엄성을 찬미하는 날이다.


8.1.2. 주의 봉헌 축일(2월 2일)

성탄 후 40일에 지내는 이 축일은 예수님을 낳으신 마리아께서 모세 율법대로 행하신 정결례1)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 봉헌(루가 2,22-38)을 기념한다. 그리고 이 날 전통적으로 교회는 1년 동안 사용할 초를 축복하며 모든 전례 때마다 그 불을 켜 놓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주님 봉헌 축일’(2월2일)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제정하시고, 전 세계 교회가 이를 거행하도록 하셨다. 봉헌 생활에 어버이다운 배려를 해 오셨던 교황께서는 봉헌 생활은 형제 자매들에게 예수님의 삶과 행동을 일깨워 주는 “살아 있는 기념”이라고 하셨다.2) 수도회성은 이 봉헌 생활의 날이 적극적인 성소의 날이 되도록 준비하여, 모든 신다, 특히 젊은이들이 하느님의 커다란 은총인 봉헌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는 계기로 삼자고 당부하였다.

바오로 6세는 회칙 「마리아 공경」에서 이 축일이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의 신비를 기념하는 축일이지만, 복되신 동정녀께서 ‘하느님의 고통받는 종’의 어머니이며, 옛 이스라엘의 사명인 고통과 시련으로 신앙과 희망을 시험 당하는 새로운 하느님 백성의 모델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7항)


8.1.3.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2월 11일)

이 기념일은 루르드의 성모 발현에서 비롯되는데, 1907년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설정되었다. 이 기념일은 성모 발현과 관련하여 교회가 전례로 기념일을 지내는 유일한 날이다.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프랑스의 루르드에 발현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기념하는 날인 2월 11일을 “세계 병자의 날”로 제정하셨다. 이 날 전 세계 가톨릭 교회는 병자들뿐만 아니라 병자들을 위하여 일하는 모든 의료인을 생각하며, 그들이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와 성령의 도움으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동참하여 사랑과 봉사 정신을 키우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교회의 권위와 이름으로 기도한다.

이 축일의 의미는 성모 발현의 메시지 가운데 하나인 ‘무죄한 잉태’와 관련하여, 우리들의 나약함으로 말미암은 우리의 죄를 돌이켜 보고 도움을 청하도록 하고 있다.


8.1.4. 주님 탄생 예고(성모 영보) 대축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은 성탄과 관련되어 있다. 하느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시어 나자렛 고을의 처녀 마리아에게서 구세주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고한 구세사의 중대한 사건(루가 1,26-38)을 경축하는 날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역사적인 사건에서 마리아께서 자유로운 신앙과 순명으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을 기념하는 이 축일은 18세기경부터 지내기 시작했다.

이 대축일의 핵심은 하느님의 육화(incarnatio)이다 우리 인산을 위하여 인간이 되신 하느님 사랑의 신비이며, 믿음에 대한 마리아의 순종 또한 강조한다.


8.1.5.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5월 31일)

이 축일은 주님을 잉태하신 마리아께서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가신 성서의 이야기(루가 1,39-56)를 기념한다. 이 방문은 ‘성모의 노래’라고 하는 찬미의 노래를 낳았다. 이 방문과 만남의 시간에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는 요한이 성화된다(루가 1,44). 성서의 이야기가 중세기 신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어 이 사건을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었다.

이 축일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전례력으로 기념하게 되었다. 보나벤투라 성인이 1263년 처음으로 그의 수도회에 이 축일을 도입하였는데, 그 때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 팔일축제 다음 날인 7월 2일에 지냈다.

이 축일은 우르바노 6세와 보니파시오 9세 교황을 거쳐 비오 5세 때 보편 전례력에 들어오게 된다. 이 때부터 세계의 모든 교회에서 의무축일로 지내게 되었다. 새 로마 전례력에서는 이 축일을 5월 31일로 옮겨 놓았다. 주님의 탄생과 성 요한 세례자의 탄생 사이에 이 사건을 기념하고자 5월, 곧 성모성원의 마지막 날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 축일의 핵심은 이웃 사랑의 실천이다. 이 이웃 사랑은 위대한 두 인물의 만남의 터전이 된다. 아울러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신비를 암시한다.


8.1.6.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축일(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

성모 성심 공경은 17세기에 장 에드(Jean Eudes)에게서 시작되었는데, 이는 예수님의 성심을 공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다. 성모 성심 공경은 19세기에 따로 날을 잡아 기념하기 전까지는 예수님의 성심 공경 미사에서 기억하는 형태로 전례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교황 비오 12세는 1942년 성모님의 파티마 발현 25주년을 맞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세상을 봉헌 학 이 기념일을 온 교회가 지내도록 하였다. 그리고 경신성사성은 1996년 1월 1일자 교령으로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에 ‘선택 기념일’로 지내 오던 이 축일을 ‘의무 기념일’로 지내게 하였다.

이 축일의 목적은 마리아의 깨끗하고 열절한 사랑의 마음속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찬양하고 그 기쁨을 축하하는 것이다. 또한 복되신 마리아의 마음에 주님 이 거주하도록 거룩하게 하신 하느님을 기억하고 찬미하며, 우리 자신도 하느님 영광의 살아 있는 성전이 되도록 마리아에게 전구하는 것이다.


8.1.7.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7월 16일)

성서는 에선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의 살아 계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옹호했던 가르멜산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12세기에 일간의 은수자들이 이 산에 정착하고(경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함) 그 후 천주의 거룩한 모친이신 성모님의 수호 아래 관상 생활을 하는 가르멜회를 설립했다.

14세기경 리용 공의회의 폐막(1274년 7월 17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를 기념하는 축일이 거행되었고, 가르멜회에서 계속 축일로 지낼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중세 말에는 스카플라(scaplar: 聖母聖衣)가 널리 사용되었으며, 1726년에 보편 교회에서 축일로 지내게 되었고 이후 기념일로 남게 되었다.

이 축일의 주제는 마리아를 찬양하며 아울러 마리아의 중재적 도움과 보호를 구하는 것이다.


8.1.8. 성모 대성당 봉헌 기념일(8월 5일)

에페소 공의회가 431년 예수의 어머니를 ‘천주의 모친’이라고 장엄하게 선포한 후 교황 식스토 3세(432-440)는 로마의 에스킬리노 언덕에다 천주의 거룩한 모친을 기념하여 대성당을 세웠는데, 훗날 그 성당은 성모 대성당(Santa Maria Maggiore)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것은 서방에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바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이 축일은 처음에는 로마에서만 거해되었으나, 14세기부터 다른 곳에서도 거행되었다.  교회에 보편화된 것은 비오5세 때였다.

우리는 이날 우리 죄의 용서를 위하여 마리아의 중재적 도움을 청하고 있다.


8.1.9. 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

이 대축일의 기원은 불투명하다. 이 대축일은 성모 마리아께서 지상생활을 마치시고 영혼과 육신이 하늘나라로 들어 높여졌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4세기 중엽에 ‘복되신 동정녀 기념일’이 마리아의 죽음과 승천 축일로 받아들여진 듯하며, 서방 교회에는 7세기 경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8세기에 들어 8월 15일로 날짜가 확정되었으며,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그 뒤부터 성모 축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축일인 이 날을 의무 축일로 지내고 있다.

이 축일의 메시지는 죽음의 승리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모든 제자에게 새 생명이 솟게 하신다. 그 생명은 구원된 이들의 첫째이신 마리아께서 승천하실 때에 마리아 안에서 충만하게 드러났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도 충만한 행복이 약속된다. 이렇게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영원한 행복의 보증인 것이다.


8.1.10. 여왕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8월 22일)

1900년부터 마리아에게 왕권적 권위의 영예가 주어져야 한다는 요청과 그 요청의 증가에 따라서 비오 12세는 “Ad coeli Reginam”을 통해서 마리아께서 여왕이심을 선언하였고, 5월 31일(지금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을 축일로 지내도록 하였다. 로마 전례력의 개정에 따라 성모 승천 대축일 8부인 8월 22일에 지내게 되었다.

이날은 성모 승천의 충만한 영광을 재확인하고 강조하는 날이다. 또한 마리아는 어머니이시며 여왕이시다. 그분은 하느님의 임금님이신 하느님께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시는 분이다.


8.1.11.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9월 8일)

이 축일의 기원은 4세기경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던 축일로 간주된다. 이 축인 적어도 7세기 말까지는 로마에서 지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나, 크레타의 성 안드레아의 글에 나오는 강론에서 이 축일의 기원에 대한 것을 알 수 있다. 공식적인 교회의 기록으로 나타나는 것은 잘츠부르크 주교대의원회의의 문헌에 이 축일이 오늘 날짜로 나오고 있다.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가 12월 8일이므로 정확하게 10개월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본다.

마리아의 탄생은 우리 구원의 영명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육화, 구세주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서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기 위한 준비라는 점을 잘 보여 준다.


8.1.12.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9월 15일)

이 기념일은 그 기원이 중세에서 발견되는데, 12-13세기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전통에서 고통받는 마리아 신심이 발견되고 있다. 이어서 두가지 통고의 마리아를 기념하기 위한 축제가 생겨났다. 하나는 마리아의 시종회에서 9월 셋째 주에 거행했는데 비오 7세에 의해 보급되었고, 비오 10세에 의해 9월 15일로 확정되었다. 또 하나는 쾰른 시노드에서 확정되었는데, 이는 성상파괴자 Ussiti들로부터 당한 신성모독 행위를 보상받기 위한 차원에서 였다.  1727년 모든 교회에 퍼졌으며 성지주일 전 금요일에 거행되었다. 1969년 로마 전례 개혁은 두 가지 축일을 하나로 합쳤다.

이날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세사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마음에 되새기고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아드님과 함께 수난하시는”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8.1.13.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10월 7일)

이 축일은 비오 5세 교황이 레판토 해전(1571년) 승리 기념일에 제정하였다. 그리스도교 신자 군사들은 그 때 자신들이 거둔 승리가 묵주기도를 바침으로써 받은, 천주의 거룩하신 어머니의 도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축제는 그리스도의 육화․수난․부활의 신비를 기억하고, 그 신비에 참여하신 특별한 방법으로 참여하신 동정 마리아의 인도 아래 그리스도의 모든 신비를 묵상하도록 권고한다.


8.1.14.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11월 21일)

이 축일의 기원은 역사적으로 불분명하다. 동방 전례에서는 12개의 대축일 가운데 하나이지만 서방교회에서는 하나의 기념일이다.

543년 예루살렘의 성전 가까이에 세워진 성모 성당의 봉헌과 결합되었던 하느님의 거룩한 어머니가 성전에 가심을 기념하는 예루살렘의 축일은 동방 전체에 신속히 퍼져 나갔다.  이 축일은 마리아가 주께 봉사하기로 자신을 봉헌한 것을 기념하였다. 14세기 중엽 프랑스 기사인 메찌에르의 필립이 이 축일을 서방에 전하였다. 라틴 사람들은 이미 키프로스에서 이 축일을 지내고 있었다. 교황은 이 요청을 1372년에 받아들였다.

이 축일에는 복되신 동정녀의 영광스러움을 찬양하는 한편, 우리들도 그분의 은총의 충만함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분의 중재기도를 청한다.


8.1.15.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12월 8일)

교회는 5세기 말부터 예루살렘의 마리아 성당 봉헌일인9월 8일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을 지내고 있었다. 8세기경부터는 이 날에서 거슬러 계산하여 9개월 전인 12월 8일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로 지냈으며, 이것이 9세기경 서방 교회에 전파되었다. 1476년 교황 식스토 4세는 이를 로마 전례력에 도입하였고,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12월 8일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시다. 이 축일을 전에는 ‘성모 무염시태 대축일’일고 하였다.

이 축일은 마리아가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아울러 교회와 우리들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자께서 육화하시기 전에 그 거주처로서 마리아의 육신은 정화되어야 했음을 말해준다. 아울러 교회는 우리의 죄가 정화되도록 마리아께 중재기도를 간청한다.


8.2. 토요일 성모 신심 미사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마리아 공경」은 복되신 동정녀를 기리는 모든 축일들이 로마 전례력에 다 수록될 수 없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매일, 특히 토요일에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드러내기를 즐겨하였다. 15세기에 꽃을 피웠던 마리아를 위한 시간 전례서3)들 외에 두 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시간전례가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는데 그것은 토요일 성모신심 미사와 성모 소기도이다.

알꾸인의 신심 미사 경본의 보급으로 인하여 토요일 성모 신심 미사가 봉헌되기에 이르렀고, 사람들은 미사 이외에도 완벽한 서모 시간 전례를 토요일에 바쳤고 11세기에 이 관행은 일반화되었다.

토요일과 마리아의 관련성은 특별한 근거가 없다. 하지만 나중에 그 의미를 찾아내었다.

첫째, 하느님께서 일곱째 날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과 마리아께서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축복 받으시고 거룩하게 되셨다는 것.

둘째, 휴식하는 날의 안식일과 마리아 안에서의 휴식을 연결시킨다.

셋째, 토요일은 무엇보다 주님을 기념하는 주일을 준비하는 날이기에, 마리아에게 봉헌하는 좋은 날로 간주하였다.

넷째, 주님께서 성 토요일에 무덤에 계시고, 오직 그날에는 성모님만이 제자들과 함께 지상에 남아 계셨음과 연결시키고 있다.

다섯째, 부활의 주일에 앞서 토요일에 마리아께서 시므온이 예언한 고통의 신비를 겪으신 것과 연결시키고 있다. 또 파티마의 성모 발현이 처음 다섯 번이나 토요일에 있었던 것과도 연결시키고 있다.


8.3. 미사경본의 마리아에게 드리는 기도문에 나타나는 성모 공경

개정된 미사 경본에서 미사의 가장 중심 부부인 성찬 기도문, 1양식과 3양식에 마리아 공경이 나온다. 그러나 로마 미사경본에는 모든 양식에서 마리아가 전구자로 불려지고 있다.

교회는 미사의 중심인 성찬기도 안에 다른 성인들의 이름과 함께 마리아를 부르는 것이 ‘성인들의 통공’의 신앙을 드러내는 한편, 다른 성인들보다 마리아를 특별히 공경하는 상격의 예를 표현하고 있다. 이 외에도 개정된 미사경본의 본문에는 마리아의 많은 주제들이 이야기되고 있다.

또 성무일도도 전례력에 따라 마리아 축일에 맞춰 찬미가나 교부들과 작가들이 성모께 바친 글들을 싣고 있다. 이는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신심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8.4. 대중신심에서 드러나는 마리아 공경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헌장」에서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고, 또 교도권이 권장해 온 신심 행위의 풍습들을 중히 여기고 권고하고 있다. 바오로 6세 또한 「마리아 공경」을 통하여 교회의 교도권이 권장하는 신심들을 진흥시키도록 권고하고 있다.


8.4.1. 성모송

성모송은 신자들이 가장 많이 드리는 기도 가운데 하나이다. 이 기도는 대림절 사계(四季) 수요일의 봉헌송의 형태로 로마 전례 안에 들어왔었다. 엘리사벳의 문안 인사에 천사의 인사말을 붙인 초기 형태의 성모송은 10세기 이후 퍼져 나갔다. 이 기도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라는 청원이 덧붙여진 것은 중세 말에 이루어졌다. 성모송의 결정적 형태는 비오 5세의 「소시간 전례서」(Breviarium, 1568)에서야 나타났다. 무엇보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로마 성무일도를 강조함으로써 서서히 오늘날 형태의 성모송이 널리 펴졌다. 성모송은 성직자들에게 먼저 사용되었고, 이것이 신자들에게 널리 보급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8.4.2. 묵주기도(로사리오 기도)

복음에 바탕을 두고 있는 묵주기도는 그리스도의 육화와 수난과 영광을 일관하는 그리스도 생애를 묵상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기도이다. 복되신 동정년 마리아가 철저하게 예수의 삶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기도이기도 하다. 묵주기도의 기원은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많은 변천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현재처럼 매 10변의 성모송 다음에 영광송이 첨가된 것은 17세기부터이다. 그리고 영광송 다음에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문이 첨가된 것은 1917년 파티마의 성모 발현 이후이다.


8.4.3. 삼종기도

아침․점심․저녁에 성모송을 외는 관습은 하루에 세 번 삼종기도를 맞아 종을 울리는 관습에 의해 보급되었다. 로마인들이 언제나 “Ave Maria”라고 부르는 저녁 성모송 낭송은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해질 무렵 종을 울리는 관습은 대단히 널리 퍼져 있었으니, 13세기 프란치스코 회원들의 영향을 받아 신자들은 종이 울릴 때 성모송을 세 번 하도록 권고 받았다. 요한 22세는 이 관행을 1327년에 로마에 도입하였다. 이 관행은 특히 프랑스에 보급되었다. 사람들은 새벽에도 종을 울렸다. 저녁때처럼 세 번 성모송을 하는 가운데 종을 새벽에도 울리는 것은 1317년 빠르마(Parma)에서 시작된 듯하다. 낮 삼종기도는 프랑스의 왕 루이 11세가 시작하였다.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왕국의 평화를 위해 세 번 성모송을 하도록 종을 울리도록 지시하였다. 식스토 4세는 이러한 결정을 인준하였다.

또한 교황 바오로 6새는 「마리아 공경」에서 삼종기도는 “수세기를 거치면서도 불변의 가치와 때묻지 않은 신선함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권고한다.


8.4.4. 성모 호칭기도

송인 호칭기도나 성모 호칭기도의 기원과 발전의 역사는 매우 복잡하다. 연구가들은 성모 호칭기도가 성인 호칭기도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본다. 또한 성모 호칭기도는 여러 가지 상이한 형태가 있었다. 교황 식스토 5세는 1587년 7월 11일 회칙을 통해 성모 호칭기도에 은사를 베풀었으며, 클레멘스 8세는 1601년 9월 6일 모든 라틴 교회에서 성모 호칭기도를 바치도록 하였다.

마리아를 찬양하는 칭호 하나하나의 기원과 역사적 유래는 매우 복잡하다. 대부분의 호칭들은 중세 신학자들의 작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8.4.5. 성모 성월4)

한 달 동안 꾸준하게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를 기억하고 묵상하도록 정해진 성모 마리아의 성월은 전례적․신심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로마에서는 필립보 네리에 의해서 미약하게 나마 5월을 마리아 성월로 지내기 시작하였다. 성인 필립보는 5월 한 달 동안 젊은이들에게 성모 마링아를 공경할 것을 가르쳤다. 17세기 말엽 마리아 운동과 더불어 5월이 성모성월로 구체화 되었다. 도미니코 수련원에서는 1701년부터 5월 한 달 동안 매일 축제를 지냈고, 성모 호칭기도가 노래로 바쳐졌다.

오늘날의 성모 성월은 1725년부터 시작되었다.


8.4.6. 로사리오 성월(묵주기도 성월)

묵주기도는 전에는 ‘매괴 신공’ 또는 ‘로사리오 기도’라고 했는데, ‘로사리오’는 라틴 말로 ‘장미 화관’, ‘장미 꽃다발’을 뜻한다. 교황 레오 13세는 10월을 묵주기도 성월로 정하고, 성모 호칭 기도에 “묵주기의 모후”라는 호칭을 덧붙였다. 교회가 묵주기도를 권장하는 10월에, 우리는 가장 깊은 체험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전적으로 협력하신 성모님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다.


8.5. 그 밖의 마리아에 관련된 것들


8.5.1. 마리아께 바치는 기도들

마리아께 바치는 기도들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것은 시간 전례를 마칠 때 부르는 노래들이다. 무엇보다도 끝기도 끝에 부르는 이 노래들은 그 후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끝에도 부르게 되었다. 1249년의 프란치스코회의 총회의 법령 안에 이미 함께 나타나고 있는 네 개의 노래들 (Alma Redemptoris Mater, Ave Regina caelorum, Regina caeli, Salve Regina)은 각기 그 기원이 다르다.

중세에는 마리아를 공경하는 찬가들과 부속가들이 상당히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가장 애송되는 성모 기도는 성모송이다.


8.5.2. 성모의 밤

교회는 성모 마리아를 특별히 공경하는 달인 5월을 성모 성월로 정하였다. 그리고 신자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성모께 봉헌하고 성모의 모범을 따라 특별한 전구와 은총을 간구 하게 하였고, 성모께 대한 신심을 실천하게 하는 일환으로 각 교구별 혹은 본당별로 ‘성모의 밤’을 거행하게 하였다.


교회의 성모 신심(결론을 대신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성자 다음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들 위에 들어 높임을 받으신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신 지극히 거룩한 천주의 모친으로서, 교회의 특별한 예식으로 공경 받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8항 66항)

에페소 공의회 이후, 하느님 백성의 마리아 공경은 존경과 사랑과 기도의 모방에 있어서 놀라운 정도로 발전하였다. 

교회 안에 언제나 있었던 이같은 마리아 공경은 비록 온전히 독특한 것이기는 하지만 

혈육을 취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받으시는 흠숭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며, 

오히려 성모 마리아께의 공경의 표현은 

성삼위께 드리는 흠숭을 더욱 진실되고 참되게 하는 촉매제가 된다고 하겠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인류 구원계획에 자유롭게 동의하시어 구원사업의 협조자가 되시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와 당신 어머니를 자녀와 어머니의 관계로 맺어주심으로써 마리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어머니요 나아가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다.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의 믿음 안에서의 마리아는 모든 인류를 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녀는 모든 인류의 어머니, 구세주의 어머니이시다. 그녀는 모든 인류의 아버지에게서 선택된 ‘그 여인’이시다. 그녀는 모든 인간이 지극히 거룩하고 나누어지지 않는 삼위일체의 영광을 위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의 한 백성이 되게 하는 목적 실현을 자유로이 분담하기 위해서 선택되신 ‘우리의 어머니’이신 것이다.


9. 성모 발현과 사적 계시


9.1. 발현(發顯, apparitio)이란?

발현은 넓은 의미의 시현(示顯, Visions)에 속하는데 통상적으로 한국에서는 시현이라는 말마디를 사용하지 않고 발현이라고 한다.5)이러한 의미에서의 발현을 살펴보면, 발현은 자연 현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현(顯現)을 말한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구세사를 이끄시며 세상에 개입하시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여 보통 사람들이 보거나 들을 수 없는 대상이나 물체를 목격하거나 경험하게 되는 영적인 체험을 의미한다. 그리고 발현은 실제처럼 감각에 부딪히기에 눈으로 보고, 귀로들을 수 있으며 만지거나 그 대상과 통교도 가능하므로 육체적이며 감각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발현은 불가의 한 현시(顯示)나 유령을 경험하는 것과는 구별되며 하느님께로부터 기인되는 신비적 특성을 가진다. 발현은 하느님께서 직접적으로 드러내시거나 혹은 천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6)


9.2.계시(啓示, revelatio)

계시라는 단어를 어원적으로 보면, ‘드러나다’, ‘나타나다’, ‘열어 밝히다’라는 의미의 Revelare라는 단어에서 유래한다. 이를 바탕으로 계시의 의미를 일반적으로 살펴보면, ‘어떤 감추어져 있는 것’ ‘가려져 있는 것’이 ‘자기를 드러내다’ ‘자기를 나타내다’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를 그리스도교 안에 적용시키면, 계시란 숨어 계신 하느님이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는 것이라는 뜻한다.7) 즉 하느님께서는 인류에 대한 당신의 구원의지를 인간에게 드러내 보이시며, 그 거룩하신 당신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 보이시는 것이 계시이다.8) 그런데 하느님의 자기 전달은 특별한 사건, 특별한 인물, 특별한 장소에서만 제한되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자기 전달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으며, 하느님의 인격적이고 자유로운 행위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기 계시가 이간의 이상한 행위를 통해서 드러내는 것으로 알아들어서는 안된다. 하느님의 계시는 일상의 삶 안에 계시되며,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점을 깨달은 존재이자 한 사건이다.9)


9.3. 나주 성모 발현10)

1998년 광주대교구장인 윤공희 대주교는 「‘나주 윤 율리아 문제’에 대한 공지」에서 나주의 성모 메시지에 대한 금지조치를 내렸다. 이는 피눈물 흘리는 성모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나주의 율리아 측근이 소위 성체기적을 조작하여 이를 사진에 담아 율리아의 편지와 함께 전국에 배포한 일에서 기인한다. ‘율리아의 일기(1)’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께서 미카엘 천사를 시켜 죄 많은 사제가 미사 중에 모시려는 큰 제병을 빼앗아 율리아에게 가져다주었고, 율리아는 그 반 조각을 교황 대사에게 그리고 다른 반 조각을 파 신부에게 전해주었고 거기에 모인 성직자들과 평신도들 70여 명에게 그 성체를 나누어 영해주고 남은 성체를 파 신부가 가지고 있는 작은 성합에 모셨다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일을 ‘1997년 6월 12일에 일어난 일’이라는 비디오 테이프를 만들어 전국에 유포시키며, 율리아는 성직자와 며 몇의 신도들이 있는 자리에서 성체가 하늘에서 떨어지기에 앞으로 달려가 “앗” 소리지르면서 그것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며 이 사건을 전국적으로 알렸다.

나주 성모가 세간의 주목을 끈 것은 ‘피눈물 흘리는 성모상’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눈물 흘리는 성모상(1985년 6월 30일부터 1992년 1월 14일), 향유 흘리는 성모상(1992년 11월 24일 ~) 성모의 메시지(1985년 7월 18일 ~)가 전해지면서부터 이다. 특히 피눈물 흘리는 성모상과 성모의 메시지는 많은 이들에게 신비함을 주며 주목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나주 성모의 목격자인 윤 율리아는 자신에게 성모님만이 발현하지 않고 예수님도 발현11)했다고 주장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나주 성모의 메시지는 종말 신앙적 메시지12), 가정파괴13), 낙태14), 사제15), 성체16)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특히 문제시되는 것은 종말 신앙적 메시지로서 종말을 종말론적 의미로서의 완성이 아니라, 인류의 마지막이라는 성격을 띠면서 교회의 가르침과는 상반된 내용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성체의 기적에 관한 사건도 문제시된다. 왜냐하면 율리아의 편지와 함께 전국에 배포된 성체의 기적의 내용은 교회의 전통 교리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많은 문제점들이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사는 예수께서 수난 전날 제정하신 것으로서 성모 마리아가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 더러 거기 있으라 말라 명령할 권한이 없다. 더욱이 미사를 드리는 사제가 죄인이라 하여 성모 마리아가 그에게 성체를 빼앗았다는 것은 성체성사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행위앋. 또 율리아가 주장하는 대로 성모 마리아가 죄 많은 사제에게서 빼앗을 성체를 율리아에게 주고 이를 다시 교황대사에게 주어 분배하도록 하셨다는 것은 율리아가 직무 사제의 기능을 대신할 뿐 아니라, 교황 대사보다 더한 위치에 서 있음을 주장하는 말로서 교회의 질서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또한 율리아가 성체가 하늘에서 떨어지기에 앞으로 달려가 받았다고 하지만, 여기서도 미사는 거행되지 않았다. 따라서 율리아가 받은 제병은 밀떡일 뿐 성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9.4. 성모 발현과 사적 계시


9.4.1. 성모발현

성모 발현은 교부시대까지 소급된다. 니싸의 그레고리오(†270)는 타우마투르고의 그레고리오(†270)에게 성모 발현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성모님이 제자 요한과 함께 나타나셨고, 마리아는 요한에게 그레고리오가 신앙의 진리를 알려주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투르의 그레고리오(†594) 역시 ‘기적의 책’에서 마리아께 봉헌된 성전을 지으려는 건축가에게 무거운 기둥을 옮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타나셨다는 이야기 등 성모 발현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전해지고 있다. 특히 19세기에 이르러 성모 발현이 자주 보도되었다.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모 발현은 다음과 같다. 1531년 멕시코 과달루페, 1830년 프랑스 파리의 뤼 뒤 박(BAC), 1846년 9월 19일 프랑스의 라 살레트, 1858년 2월 11일 - 7월 16일 프랑스의 루르드, 1871년 프랑스의 퐁맹, 1879년 8월 21일 아일랜드의 노크, 1917년 5월 13일 - 10월 13이 포르투갈의 파티마, 1932년 11월 19일 - 1933년 1월 3일 벨기에의 보랭, 1933년 벨기에의 바뇌 등이 있다.17)


9.4.2. 과달루페의 성모 마리아

멕시코의 과달루페에서 1531년 12월 9일 새벽, 중년의 아즈데카 원주민이었던 후앙 디에고는 성모 발현을 경험하게 되었다. 개종 전부터 혼자 있기를 좋아하던 그년 기도와 묵상을 열심히 하면서 자작농에 종하사며 지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57세였다. 그리고 성모님의 발현의 메시지는 당시 후앙 디에고가 지나가고 있는 ‘테페야크 언덕’에 성모성당을 세워라는 내용이다.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은 멕시코인들에게 있어서 실로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당시 멕시코는 정복자와 원주민들과의 싸움이 연일 계속되었으며, 정복당한 민족들은 정복자들에 의해 온갖 압제와 수모를 겪고 있었다. 한편 많은 선교사들은 스페인으로부터 멕시코로 건너가 멕시코 원주민들에게 그리스도교 정신을 전해주고자 했지만, 정복과 피정복의 도식 안에서는 선교의 결실을 거의 맺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모 발현은 중요하다.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은 침략자의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원주민들의 종교로의 전화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후앙 디에고에게 발현한 성모님의 모습은 젊은 메스티짜 여인, 즉 혼혈인의 모습이있다. 즉 정복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 중의 한 분으로서 발현하신 것이다. 그분이 입고 계시던 옷 또한 멕시코 사람들의 것이며, 후앙 디에고에게 말씀하실 때에서 아째크 사투리인 니후아틀어를 사용하셨다. 이는 성모님이 멕시코인들과 하나되어 계심을 의미한다. 곧 성모님은 신세계에서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 당하고 있던 사람들, 그리고 압제 당하고 있던 사람들과 하나가 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은 이 백성의 문화적, 언어적 측면에서 그들과 하나되어 그들과 함께 그들의 종교적 전통을 소중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원주민들에게 그리스도교가 외부에서 없었던 것을 강제로 떠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적 전통으로부터 솟아 나오는 그 어떤 것이라고 여겨지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되었다. 그리고 이 역할은 발현 후 7년만에 당시 멕시코 인구의거의 전부에 해당하는 8백만 명의 인구가 가톨릭 신자로 개종하게 된 결과를 초래한다.18)


9.4.2. ‘기적의 메달’

성 빈체시오 데 바울로의 ‘사랑의 딸’ 수녀원 청원자였던 가트린느 라부르는 당시 24세로서 그해 4월에 입회한 청원자였다.

가트린느에게 나타난 성모의 첫 발현은 1830년 7월 18일서 19일 사이, ‘성당으로 가보라! 성모님이 너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말에 잠을 깬 그녀가 자기의 수호 천사라고 생각되는 어린 소년의 인도를 받아 성당에서 성모님을 목격하면서 이루어진다. 당시 발현한 성모님은 그녀에게 ‘나의 달아, 하느님은 네가 한 가지 사명을 떠맡기를 원하신다. 그 일을 하려면 너는 많은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 일이 하느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어려움을 극복할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프랑스에 무서운 일들이 닥쳐올 거이며 전 세계에 큰 재난이 닥쳐올 것이다. 그러니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이 사실을 믿고 열심히 청하는 자에게는 특별하고 풍부한 은총을 주리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두 번째 발현은 첫 번째 발현이 있은 후 4개월이 지난 1830년 11월 27일에 있었다. 두 번째 발현 당시 성모님은 지구의(地球儀)위에 서 계셨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작은 지구의(地球儀)를 들고 계셨는데, 그 위에는 작은 십자가가 꽂혀 있었고 손가락에 끼어 있던 보석에서는 여러 가락의 광선이 흘러나와 큰 지구의 위를 비추고 있었다. 잠시 후 형상이 바뀌어 타원형으로 된 어떤 형체가 성모님을 둘러쌌는데 그 형체에는 ‘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을 의지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금빛 글씨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뒷면에는 M자위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고 아래에는 가로지른 막대기가 있었으며, 그 밑에는 열 두 개의 금빛 나는 별들이 둘러싸인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이 그려져 있었다. 성모님께서는 ‘이 모양과 같은 메달을 만들어라. 그리고 그것을 착용하는 삶은 풍부한 은총을 받을 것이니 목에 걸고 다녀라’고 권장하셨다. 12월에는 세 번째 발현이 있었는데, 그 메달을 만들라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메달은 실제로 2년 후에 파리 교구장의승인으로 만들어졌다.19)

‘기적의 메달’이라고 불리우는 ‘뤼 뒤 박(BAC)의 성모 마리아’의 발현의 특징은 우선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어린 소녀가 아니라 성장한 사람에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둘째, 본인이 성모 마리아를 뵙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었고 발현한 분이 누구인지 즉시 알았다는 점. 셋째는 성지순례를 위한 어느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메달을 받았을 뿐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발현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크게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발현한지 24년 후 1854년 비오 9세에 의해 ‘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에 대한 믿을 교리가 반포되었다.


9.4.3. 프랑스 라 살레트의 성모 발현

1846년 9월 19일 프랑스의 라 살레트 근방에서 양떼를 돌보던 가난한 집의 두 어린이인 멜라니 칼바라는 15살의 소녀와 막시망 지로라는 11살의 소년에게 성모님의 발현이 있었다.

막시망과 멜라니가 맨 처음 본 것은 눈이 부시게 광채가 나는 공 모양의 물체였다. 그리고 공 모양의 물체가 열리면서 한 여인이 말라 버린 우물가의 돌 위에 앉아 울고 있었다가 놀란 아이들을 부드러운 말로 안심시키고 눈물을 계속 흘리시며 ‘나의 아들이 너희를 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끊임없이 기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고, 다시 사람들의 불순명으로 인한 성모님의 고통을 이야기하셨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주일을 거룩히 지내지 않음과 당신 아들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이 자기 아들의 팔을 무겁게 하는 여러 가지 죄 중에 일부임을 특히 지적하셨다. 또한 재앙이 세상에 찾아오는 것은 죄의 결과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며, 무서운 재앙은 사람들이 죄의 생활을 고집할 경우에 한해서만 일어날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언급했다고 한다 . 그리고는 기도를 열심히 드리라는 말씀과 함께 주일 미사 참례 신자의 감소를 한탄하시며,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라고 하시고는 사라졌다.

당시 발현한 성모님은 처음에 상류 사회의 프랑스 말을 하셨는데 아이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자 지방의 방언으로 계속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성모님이 발현한 우물에서는 물이 솟아 나왔으며, 그 물을 마시고 수많은 환자가 병을 고쳤으며, 발현한지 5년 후인 1851년 그레노블 주교 브뤼아르에 의해서 승인되었다.20)

그러나 이 발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의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부정적인 견해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목격 증인들의 삶은 그 발현을 확실한 것으로 믿도록 하지 못한다. 둘째 발현에 관한 원천적 자료에 대한 평가도 없고, 메시지의 내용은 신학적으로 맞지 않고 , 당신에 알려진 대중신심의 내용처럼 마리아는 그의 아들이 백성들에게 벌을 주려는 것을 억제하고 있다고 전한다.


9.4.4.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발현

‘마리아의 죄 없는 잉태’ 교의 선포 4년 후 루르드에서 성모 발현이 있었다. 목격자는 매우 가난한 방앗간집 맏딸 베르나데트 수비루였다.

1858년 2월 11이, 베르나데트는 여동생과 친구 한 명과 함께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나무를 하러갔다가, 작은 개울을 건너기 위해 몸을 굽혀 신을 벗으려는 찰라에 갑자기 ‘질풍 같은 바람소리’가 드려오면서 개울 건너편에 있는 동굴 속에는 아름다운 부인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부인은 로사리오를 손가락 사이로 굴리고 있었다. 베르나데트에게 처름 발현하신 성모님은 그녀와 영광송을 합송하며 로사리오를 바쳤다. 이후 소녀가 개울을 건너갔는데 이상하게도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2월 14일 두 번째 발현에서는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나 2월 18일 세 번째 발현에서 성모님은 베르나데트에게 15일 동안 그곳에 오기로 약속하시면서 영원한 행복을 약속해주셨다. 여섯 번째 발현에서 성모님은 슬픈 표정으로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여덟 번째 발현 때에는베르나데트가 사람들을 향해 ‘회개하라! 회개하라!’하고 외쳤다.

아홉 번째 발현 때 성모님은 베르나테트에게 우물 자리를 알려주셨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백여 년을 두고 많은 병자를 낫게 한 루르드의 우물이다. 그리고 2월 26이 성모님은 베르나데트에게 ‘죄인들을 위하여 땅에 입맞추어라’고 말씀하신 후 3월 2일에는 ‘나는 이곳에 성당을 짓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배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3월 25일 성모 영모 축일에 발현하신 성모님께 베르나데트가 당신이 누구신지 처음으로 묻자,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여인이다’라고 대답하셨다. 그후 4월 7일과 7월 16일에 두 번 더 발현하셨다.

한편 타르브의 주교는 베르나테트에 대한 조사단을 임명하여 그녀의 이야기를 철저히 조사했다. 목격자들을 여러 차례 심문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수십 번 청취하여 작성한 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한 주교는 잉 사실이 진실임을 알게되었고 1862년 루르드의 성모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21)


9.4.5. 프랑스 퐁맹의 성모 발현

1871년 1월 17일 저녁 프랑스 북부 접경지역 퐁맹에서 성모 발현이 있었다. 목격자는 열두 살 난 유젠느 바르바뎃트와  열 한 살인 요셉이다. 그들은 마을 중앙에 있는 한 헛간에서 아버지의 일을 거들다가 이웃 집 지붕 7,8미터 위에 서 있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부인’을 보았다고 한다. 그 부인은 황금의 여왕관을 쓰고 있었고 얼굴은 작고 아름다웠으며, 나이는 18세나 20세 가량되어 보였다고 한다. 그후 아이들에게 성모님의 발현이 계속 되자 아이들의 어머니가 수녀를 불러 확인시켜 보려 했으나, 수녀 역시 성모님 등위에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는 별들만 보일 뿐 발현을 확인 할 수는 없었다. 그 후 4명의 어린이들도 바르베텟트의 두 아들이 목격한 부인의 발현한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발현을 목격한 아이들 모두는 성모님의 심장 위에 조그마한 붉은 십자가가 나타났으며, 성모님의 옷보다 더 푸른 빛깔의 둥근 원형의 형체가 성모님의 주위에 둘러져 있었고 그 원형의 형체 안쪽에는 네 개의 촛대가 걸려 있었는데 불이 켜지지 않은 채 초가 꽂혀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발현의 모습을 표현하는 아이들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깨달은 본당 신부는 로시리오 기도를 권유했다. 그러자 갑자기 하늘의 형상이 커지기 시작했고 부인의 키와 푸른 원도 그만큼 커지며, 별들이 나타났다. 로사리오 기도 후 사람들이 마니피캇을 불렀고, 성가를 부르는 도중에 평평하고 흰 띠가 약 1미터 넓이로 나타났고,  그 띠 위에 ‘Mais priez, mes enfantes(나의 어린이들아, 언제나 기도하라)’는 글씨와 ‘Dieus  vous exaucera en peu de temps(하느님께서 곧 너희의 기도를 들으시리라)’, 그리고 ‘Mon fils se laisse toucher(나의 아들은 마음을 움직였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형상은 다시 변하기 시작했고 ‘기적의 메달’에 새겨진 성모님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모 발현은 세 시간 이상 계속 되었다.22)


9.4.6. 포르투갈 파티마의 성모 발현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가 일어나던 1917년 5월 13일 파티마의 산골짜기에서도 성모 발현이 있었다. 파티마의 세 목동 루치아, 프란치스코, 히야친타가 발현의 목격자다.

성모의 발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월 13일(8월은 19일에 발현이 있었다) 5번에 걸쳐 일어났다. 발현의 주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세계 평화와 전쟁이 끝나도록 매일 로사리오의 기도를 해라!’, ‘예수님께서는 전 세계에 나의 하자 없는 성심에 대한 신심이 전파되어 사람들에게 더 알려지고 더 사랑 받기를 원하신다’ ‘이 메시지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구원을 약속한다. 그들의 영혼은 하느님께 사랑 받을 것이다’ ‘러시아를 하자 없으신 성심께 봉헌하고 매월 첫 토요일에 보속의 영성체를 하여라’ ‘로사리오의 기도를 바칠 때 매 단의 신비 끝에 다음의 기도를 드리도록 하여라. “나의 예수여, 우리를 용서하소서, 우리를 지옥불에서 구하시고, 모든 영혼들을 하늘로 들어올려 주소서, 특히 가장 필요한 영혼을”’.

1922년 주교위원회가 파티마의 발현을 현상을 조사하였다. 그리고 1930년 포르투갈의 주교회의는 파티마의 성모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고, 1942년 교황 비오 12세는 러시아에 대해 특히 언급하면서 세상을 성모의 하지 없으신 성심께 봉헌하였다. 그리고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는 발현 50주년 기념에 개인적으로 파티마를 찾아 순례하셨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2년 파티마를 순례하여 성모 발현 65주년을 기념하며, 파티마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합된다고 역설하였다.23)


9.4..7 벨기에 남부 보렝의 성모 발현.

1932년 11월 29일부터 5명의 어린이들은 학교 근처 철길 위에서 순백색의 부인복을 입은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들은 1933년 1월 3일까지 32번 성모 발현을 목격한다.

보렝의 성모 발현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항상 기도하여라!’ ‘나는 티없이 깨끗한 동정녀이다’ ‘나는 하느님의 어머니며 천국의 여왕이다. 항상 기도하여라’ ‘나는 모든 죄인들을 회개시킬 것이다’ 이다. 그리고 실제로 보렝의 많은 냉담 신자들이 회개하였으며, 실제로 벨기에가 독일에 점령되었을 때 독일군도 보렝을 떼지어 순례했으며, 연합군 역시 많은 이들이 보렝에 순례한 후 회개하여 교회로 돌아갔다.

그리고 보렝의 성모 발현을 조사하기 위해 1934년 교회는 조사단을 구성하여 현지에 파견하였으며, 마침내 교황 비오 12세는 1942년 12월 7일 나무르의 주교에게 보렝의 발현을 공식적으로 승인해도 좋다는 교령을 전달했으며, 1949년 7월 2일 나무르의 주교는 발현을 인정했다.24)


9.4.8. 벨기에 반느의 성모 발현

1933년 1월 15일과 3월 2일 사이에 성모 발현이 일어났으며, 목격한 이는 12세의 마리에트 베코라는 소녀였다. 그리고 발현은 8차례 일어났으며, 모두 저녁 7시경에 이루어졌다.

1월 15일 교실에서 창 밖을 보다가 매우 아름답고 빛나는 부인이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짓으로 부르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마리에트는 성모님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나, 신부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환시는 계속되었고, 세 번째 발현때는 ‘나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받았으며, 3월 2일 마지막으로 발현할 때 ‘나는 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기도를 많이 하여라’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후 1937년 리에즈의 주교 케르코프스는 마리에트 베코에게 마리아의 발현을 실제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교황청의 공식적인 언급이 없는 가운데, 소속 주교는 1949년 8월 22일 다시 한번 이를 재승인하였다.25)


9.5. 성모 발현과 사적 계시의 해석과 그 의미

발현은 ‘신앙의 유산’에 속하지 않는다. 교회의 승인은 단지 그 발현이 신앙과 윤리적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이 없고 신심을 위해 충분한 징후들이 있다는 교회의 판단일 뿐이다. 따라서 비록 승인되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동의하는 일이 의무는 아니다. 다만 교회는 언제는 발현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할 것은 사적 계시26)와 성서나 교회 전승 안에서 드러난 그리스도의 공적 계시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공적 계시는 성서와 성전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고, 마지막 12사사도의 죽음으로 끝났다. 한편 성모 발현과 같은 현대의 계시는 성 요한 사도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 공적 계시와 구별하기 위하여 사적계시라고 불리는데, 사적 계시는 공적 계시를 변경하거나 부인하는 보도나 지령을 줄 수 없다.27) 왜냐하면, 하느님이 세상에 대해서 말씀하시고자 한 것이 예수의 인물과 사건 안에 전부 드러났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와 함께 공적 계시가 “끝이 났다”는 표현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나 공적 계시로서 계시가 끝이 났다는 것을 그리스도 이후에는 더 이상 하느님의 계시가 일어나지 않는다거나, 하느님은 이제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수와 함께 계시가 ‘끝났다’는 것은 예수와 함께 모든 것이 ‘완성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28)

따라서 발현이나 사적 계시는 신앙과 희망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발현이나 사적 계시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러난 공적 계시를 보완해 주는 것일 수는 없다. 다만 이미 드러난 공적 계시를 어느 특정한 시대, 특별한 상황에 처하여 새롭게 강조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 기능은 이미 계시된 신앙과 희망을 생동적이게 하는 기능일 뿐이다. 또한 공적 계시에 의한 신앙은 어디서나 언제나 근본이 되는 진리이다. 그리고 이는 사적 계시의 메시지의 내용이 공적 계시의 내용을 하고 있을 때 참의 범주 안에 속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사적 계시의 내용이 교회의 공적인 가르침에 따른 계시의 내용에 부합되어야 한다. 만일 신앙의 진리나 도덕성에 상반된다면 잘못된 것이다.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