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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누가 내맡김의 영성에 돌을 던지는가 ▣ 보조교사방

은가루리나 2017. 8. 1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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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누가 내맡김의 영성에 돌을 던지는가

moowee 추천 0 조회 444 17.07.27 21:25


【"내맡김의 영성"은 한글이며,
 한자로는 "委托(위탁)의 靈性"이다.

 수많은 성인들이 추구해 오던 "의탁의 영성"이 <위탁의 영성>이며,
 위탁의 영성을 우리말로 "내맡김의 영성", 더 정확히 말해서
 하느님께 맡기기에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다.

 이 내맡김의 영성은 그 사제(이해욱 신부)가 만들어낸 영성이 아니다!
 오히려 구약의 <아브라함의 영성>이며 <하느님 신앙의 영성>이다!

 또한 신약의 <성모 마리아의 영성>이며,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성>이다! 】


저는 감히
"내맡김의 영성에 돌을 던지는 행위는 곧,
아브라함과 성모 마리아와 그리스도 예수님이 사신 삶(영성)을 부정하는 행위"라
말하고 싶습니다.

그분들의 삶이
하느님 아버지께 "의탁(위탁)하는 삶"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특히 제가 "위탁(의탁)의 영성"을
우리말로 "내맡김의 영성"이라는 말로 사용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를 만들어준 책이 바로 <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 >인데,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살았던 이 책의 저자 프랑스의 영성가
예수회의 '코사드의 요한 베드로 신부님'의 영성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책소개>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을 중심으로 한 영성서.
저자인 코사드의 요한 베드로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살았던 프랑스의 영성가로서,
당시의 합리론과 계몽주의 사상에 신중심주의인 기회 원인론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영성을 종합하였다.

그러한 영성의 종합이 바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하느님 섭리에 내어맡기는 위탁의 자세이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눈길로 바라보고,
매순간을 현존의 성사로 받아들이는 그의 영성을 통해
하느님 중심주의로 사람과 사물, 사건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옮긴이 김현태(루가) 신부는

1981년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1982년부터 1988년까지
로마 교황청립 안토니안 대학교 철학부에서 수학하였으며
동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이후
서강대학교와 가톨릭대학교 수도자 신학원에서 철학을 강의하였고,
1990년부터 1995년까지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겸 강화천주교회 주임신부로 있다.

지은 책으로 [둔스 스코투스의 철학 사상](가톨릭대학교출판부, 1994)
엮은 책으로 [종교철학](가톨릭대학교출판부, 1996)


옮긴이의 글 - 김현태 신부
서론 - 요한 비버스

제1장 우리의 몫을 행하고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겨 드림에 관하여
제2장 거룩함이 끊임없이 샘솟아나는 원천인 현 순간을 감싸안음에 대하여
제3장 하느님께 순종함은 모든 덕을 실행하는 것이다
제4장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따르는 것이 영성의 본질이다
제5장 완전하고 참된 신앙만 있다면,
영혼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제6장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내맡기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질 것이다


특히, 이 책에는
<성녀 소화 데레사>에 대한 영성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데,
성녀 소화 데레사가 말하는 "작은 길(Little Way)"이야 말로
<내맡김의 영성>과 다를 바 없습니다.

따라서,
내맡김의 영성에 돌을 던지는 행위는 곧,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에 대해 돌을 던지는 행위와 다를 바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고>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 pp. 24-27


성녀 데레사는 1873년에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코사드의 책은 1861년에 이미 발행되었고 많은 편집들이 뒤따랐다.
내가 지금 쓰는 것은 순전히 추측이지만 사실일 수도 있다.

성녀 데레사의 가족은 신심이 깊었고 많은 영적 독서를 하였다.
혹시 코사드의 책은 그 책들 중의 하나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성녀 데레사의 아버지 마르탱(Martin)씨가 리지외의 가정집,
뷔소네에 있는 2층 서재에서 그것을 사려 깊게 살펴보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그 가르침은 거룩하게 되기를 갈망하던
가톨릭 신자들의 온몸을 적셔 주고 말끔하게 해 주었음이 확실하다.

코사드에 관한 탁월한 현대적 권위자로서
예수회의 올프-갈리아(Olphe-Galliard)신부는
코사드가 지난 세기 말의 신학자들 -그들 역시 저술가였다- 에게 끼친
지대한 공로를 아주 또렷하게 밝혀 준 바 있다.

그래서 성녀는 강화(講話)에서 또 고해 신부들을 통해
자아포기에 대해 들었으리란 편이 훨씬 더 가합하다고 말해야 옳다.

성녀가 14살이 되었을 때,
자신의 영적 지도자가 된 예수회의 알미르 피숑(Almire Pichon)과
10년 동안 긴밀한 연락을 취했음도 기억해야 한다.

그 신부는 이전에 여러해 동안 마르탱 가족의 친구였고 고해 신부였다.
그 후 그는 캐나다로 떠나갔지만,
성녀 데레사는 편지로 계속 그와 연락을 취했다.

성녀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 피숑 신부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저의 온 영혼이 이 속에 있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피숑 신부는 성녀의 모든 편지를 없애버렸으니 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점을 겸허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나는 이 예수회 신부가 코사드에 관해 무지하지 않았고,
이 18세기 사제에 대한 그의 지식이 성녀 데레사를 통해 길러졌다는 것도
상상해 본다.

이제 우리는 추측과 상상을 끝내고 분명한 것을 살펴 보도록 하자.



성녀 데레사가 늘 주장하기를,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행위의 탁월성이나 위대함이 아니라고 하였다.

우리가 행하는 보잘것없고 가장 하찮은 일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의 사랑을 위해 행해지는 경우라면
그것이 최고로 중요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의 마음에 작용하는 사랑에 따라
그분이 판단하신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행위들을 실천할 수 있음을
성녀는 선언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그러한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200여 년 전에 코사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최고의 성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것들이
 자신들을 거룩하게 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 여러분은 삶을 눈여겨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삶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보잘것없는 행위들로 채워져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그런 것들에 대해 만족해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행위가 되어져야할 때 행한다는 것은
우리가 완덕을 추구하는데 연출해야 할 우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성녀 데레사에게 되돌아가 보자.
성녀는 한 조수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자매님의 생활은 겸손하고 숨겨진 생활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앞에서는 아무것도 미소하지 않음을 기억하세요.
 자매님은 사랑으로 처리하고 있는 모든 것을 행하도록 하십시오."

병상에서,
성녀는사람들에게서 이 세상을 하직한 다음
성녀에게 맡겨진 모든 영혼들에게 무엇을가르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즉시 이르길
"신뢰와 완전한 위탁의 길인,
 영적 어린이의 길에 그들이 나서도록 권고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또한 성녀의 자서전 안에 언니 마리아에게 보내는 글, 마지막 장에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으셨던 비밀들" 을 말하겠다고 하였는데
그 말을 이러하다.

"예수님은 결코 드러나시지도 않고
당신의 목소리를 나로 하여금 듣게 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분은 은밀히 저를 가르치시지만
당신 사랑의 신적 용광로에로 이끄는 유일한 통로를
저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품 안에 두려움 없이 잠든 아기처럼 완전한 위탁과도 같습니다.
... 예수님은 위대한 행동들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모든 것은
자기를 온전히 내맡김이며 감사드림입니다.

... 오! 예수님,
당신의 측량할 수 없는 자애에 대해
모든 '작은' 영혼들에게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보다 더 연약한 영혼을 만나신다고 하고
그 영혼이
당신의 무한한 인자를 굳게 믿어 그 자신을 온통 내맡긴다고 한다면,
당신은 그에게 더 큰 은혜를 즐겨 넘쳐흐르도록 내려 주실 것 같이
생각됩니다."


우리는 코사드가
"현 순간의 성사(the sacrament of the present moment)" 라고 일컫는 것에 대해
주장하는 바를 고찰해 보고 있노라면,
성녀 데레사가 남긴 다음의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만약 제가 매순간 단순하게 살지 않는다면,
저로서는 인내심을 갖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현재만을 바라볼 수 있고
과거를 잊으며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무척 조심합니다.

우리는 실망하고 또 실망감을 느끼는데,
이유는 과거와 미래를 곰곰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조용히 쉬지 않고
안달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짓은 없습니다."


성녀 데레사의 "작은 길(Little Way)" 의 전 목적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이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만인이 하느님 뜻에 조금도 남김없이 내맡김으로써 거룩하게 되는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사랑 외에" 아무것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성녀는 성녀 체실리아를 두고 자기가 좋아하는 성녀라고 말했다.

"저를 특별히 기쁘게 한 것은
 성녀가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긴 것이었고,
 그분에 대한 끊임없는 신뢰심이었습니다."

위탁과 신뢰,
이것은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열쇠가 되는 두 개의 단어들이다.



* * *



moowee 작성자 17.07.27 21:39
첫댓글


다시 말하지만,
저는 제가 만난 하느님,
< 내맡김의 삶을 통하여> 제가 체험한 하느님을 알리고 전할 뿐입니다.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가 체험한 하느님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선포>입니다.

왜 제가 체험한 하느님을 전하는데,
하느님에 대한 체험을 전하지도 못하는 이들이 왜,
무엇을 누구에게 허락받고 전하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위탁의 영성,
내맡김의 영성은 제가 만들어낸 영성이 아니니,
내맡김의 영성에 돌을 던지는 이들은
<하느님 신앙에 대한 근본 영성>에 먼저 돌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그런 분이 계시면,
제가 말씀드린 그대로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꼭!


아버지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 꼭 그렇게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큰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또한,
내맡김의 영성에 돌을 던지는 분께

그분이 <하느님을 체험했는가?> 물어보시고,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을 증거한 적이 있는가?>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을 증거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었는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이 참으로 거룩하게 살고 있다면,
내맡김의 영성에 돌을 던지라고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 8)




******



★거룩한위탁
역자 후기(後記) pp..614-615


저 영해 예수의 귀여운 소화 「데레사」성녀가
최근 온 세계의 신자에게 그처럼 탁월한 솜씨로 가르친
「영적 유아(靈的幼兒)의 길」
사실은 거룩한 위탁의 길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유아(幼兒)의 본성은 온전히 그리고 조금도 남김 없이
착한 어머니의 품안에 그 몸을 맡겨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자의 착한 어머니란, 바로 천주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본서는
단지 「리쥬」의 사랑스러운 성녀에 의하여
현대의 사람들에게 새로이 불러 일으켜진 길을
이론적 교의(理論的敎義)와 다른 많은 성인들의 생활한 모범에 의해서 증명
하는데 불과합니다.

이 길은 근본에 있어, 
그리스도교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오래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그 영웅적인 모범과 그 숭고한 가르침에 의해서
제시하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김정진 신부 약력

▲1922년 황해도 출생
▲41년 동성상업학교 졸업
▲44년 일본 동경 명치대학 상학부 2년 중퇴
▲44년 학도병 입대
▲50년 사제서품
▲50년 잠실본당 보좌
▲52년 양평·용문본당 주임
▲57년 가톨릭대 조교수
▲66년 성신중고등학교 교장
▲74년 화곡본동본당 주임
▲79년 후암동본당 주임
▲83년 아현동본당 주임
▲85년 법원리본당 주임
▲90년 서울대교구 영신지도
▲96년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