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안에서 무엇을 합니다~"이런 기도는
죄인인 우리로서는 안 맞는 다고 하셔요.
근데 신부님은 천상의 책은 많이 안 읽어 보셨다고 하신듯 합니다.
"~하면 좋겠습니다"하는 희망기도도
성경에 나오지 않는 기도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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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욱프란치스코 2015.05.16. 14:31
제가 가끔 말씀드리지만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겼다."는 것은,
그리하여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한 영혼이 하느님의 것이 되고
하느님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완전한 사람이란 곧 "거룩한 사람"을 말합니다.
완전한 사람이란 곧 "하느님과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한 번 내맡겼다' 해서
하느님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겼다는 것은
"거룩한 내맡김을 통하여" 완전(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김으로
"완전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면
완전(거룩)한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완전(거룩)한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는 말은
사람이 아직까지도 "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래서
"죄를 벗어나기 위한 걸음"을 계속해서 걸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하느님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천상의 책 6-142 하느님이 뜻 안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은 맡김이다.>
천상의 책에 쓰여진 예수님의 말씀처럼
첫걸음을 통하여 계속해서 하느님 앞으로 걸음을 걸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걸음을 멈추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날개를 계속 저어야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지속적인 내맡김이 필요합니다.
내맡김이 생활화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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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삶(영성)"이란 도대체 어떤 삶을 말하는 것입니까?>
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삶(영성)"이
죄 속에서도 '지속적인(끊임없는) 내맡김'에 의한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점점 죄에서 벗어나 마침내는 완전히 죄를 벗어난 삶"으로 변화되어 가는 삶이라면
"하느님 뜻 안의 삶"은
루이사 피카레타가 오랜 세월에 걸쳐 마침내 도달한 삶,
"죄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 삶(영성)"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느님 뜻 안>으로는 "도무지" 죄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하느님 뜻밖에 있다"는 뜻이 아닌지요?
죄를 짓는(하느님의 뜻밖에 있는) 인간이 어떤 행위들을 행하면서
"하느님 뜻 안에서 ~~ ~~을 합니다."라고 하는 기도가
그 사람에게 참 어울리는 기도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닙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하느님 뜻 안에서 ~~ ~~을 합니다."라는 기도가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은 루이사 피카레타와 같이
죄 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루이사 피카레타의 삶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보통인간의 삶"을 살지 못하셨습니다.
긴 수십 년의 세월을 병자로서 "집 안에서만 생활"하셨습니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아니 거의 모든 시간을 기도만 하는 삶을 사실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특별한 사람을
특별하게 聖別하셔서 당신의 작은 종으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아마도 세상에는
루이사 피카레타가 살아간 삶(루이사가 바친 여러 기도문 포함)을
거의 그대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분명,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루이사 피카레타처럼 "준비가 된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느님 뜻 안에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하느님 뜻 안에서 ~~ ~~을 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이
참으로 그 사람에게 참 잘 어울리는 기도일 것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 기도의 가치와 효과 및 예수님의 약속 - 카를로스 신부님 강의록에서 (2010.9.8)>
"수난의 시간들을 30년 묵상한 후에야
주님께서 하느님 뜻의 선물에 대해 이야기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루이사는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루이사는 수난의 시간을 하면서 예수님을 닮아서
주님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 있는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그렇게 늦게 서야
주님께서 루이사에게 하느님 뜻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루이사는 희생 제물로서 그렇게 준비되고 나서야
비로소 하느님 뜻의 궁전으로 인도되었습니다.
루이사도 그전에는 안 되었습니다."(이상이 카를로스 신부님의 글입니다.)
준비가 안 된 사람이 "하느님 뜻 안에서"라는 문구를 넣어 기도하면
"무엇이 어떻게 좋아지더라(하느님의 선물)."라고 말 하는 것은
하느님 뜻 영성의 올바른 목적을 모르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뜻 영성의 목적은 <천상의 책> 머리에 잘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이
바로 그 목적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좋은 것)을 얻기 위함이 절대 아닙니다.
"사람이 창조된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자신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주님(주인)으로 섬기며
오직 그분만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할 때
이 세상의 그 무엇은 저절로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올바른 순서(질서)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6,33)
사람이 올바른 질서(순서) 속에서 살아갈 때
그때 비로서 사람들 가운데 하느님 뜻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사람들이 하느님 뜻의 나라에 살아가는 상태가
바로 사람의 본연의 위치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상(피조물)의 모든 애착에서 벗어나 "하느님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 모든 일을 행하며
하느님만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살아갑니다.
이 세상의 무엇을 얻기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이 잘못되고 그 무엇을 다 빼앗겨도
오직 하느님만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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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wee 2017.06.12.22:38
<아버지 뜻대로 이끌어주시고 치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짬뽕 + 비빔밥 기도 입니다.
<아버지 뜻대로 이끌어주시고(거내영 기도) + 치유해주시면 좋겠습니다(희망기도).>
이 자리에서 제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왜,
희망기도, 하느님 뜻 영성 기도 하시던 분들이
이곳으로 모여오시는 줄 아시나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주님의 기도>뿐이십니다, 아닙니까?
다른 기도를 가르쳐주신 적이 계십니까?
없습니다, 주님의 기도외에는!
그리고 < 기도에 대해 강조하신 사항 >이 있으시다면,
그것은 < 루카복음 18장 1절 이하 >의 말씀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2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5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7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루카 18)
그리고,
소위 제 표현으로 < 청.찾.두 >기도인 <루카 11, 9 이하>의 말씀입니다.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마태 7,7-11)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루카 11)
그리고 이 말씀(루카 11, 9-13 ) 바로 전의 말씀이,
끊임없이 간청하여라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루카 11) 입니다.
그런디~~~
잘 모르는 사람덜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청원기도,
소위 다른 표현으로 땡강기도 라고도 말씸하시는디~~~ ?
사실 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 세상의 것들>을 청하라는 청원기도가 아닙니다.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 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
청원기도의 목적을 가르쳐 주시는 무지~~~ 중요한 말씀입니다.
청원기도의 목적은,
오직 하느님을 청하고 찾고 구하는 것 입니다.
<희망기도>를 잘 아시는 분들께,
오랜 기간 희망기도를 열심히 바쳐오셨던 경험이 있으신 분들께 < 질문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 ~~~ 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 라고 가르쳐주신 말씀이
성경의 어느 곳에 나오는지요?
하느님 아버지의 메시지 -아버지영광 위한 삶-
44. 성령과 성체성사를 통해 거룩함을 주시는 아버지
4
이 성사를 받아모시는 것은 쉽게 나를 이해할 수 있는 행위이니,
내가 어떻게 너희에게 오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5
내가 너희 안에 있을 때에, 내 소유 중 어떤 것을 너희가 청한다면,
나로서는 더 쉽게 그것을 줄 수 있다.
이 성사를 통하여 너희와 내가 긴밀히 일치하기에,
이 친교 안에서 내 사랑을 너희에게 쏟아 부어
내 거룩함이 너희 영혼 속에 퍼져 가게 하는 것이다.
6
내 사랑으로 너희를 충만케 하면
너희는 오로지 덕행들이나 너희에게 필요한 완덕만을 내게 청하게 되고,
하느님께서 당신 피조물 안에서 쉬고 계시는 그런 순간에는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으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moowee 2017.06.03.09:29
<1코린 13>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이제 < 믿음 >과 < 희망 >과 < 사랑 >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 입니다.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다 하느님만 믿고, 하느님만 희망하고, 하느님만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
아이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생각은
먹는 것(세상의 것)과 노는 것(기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늘 어린이들의 입에서는 라는 말(청원)만 나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그리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
부족한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겨
온전한 것(하느님)을 얻게 된 어른들에게 있어서의 중요한 생각은 늘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더욱 기쁘시게 해 드리나,
어떻게 하면 더 죽도록 뜨겁게 사랑할 수 있나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의 입에서는 늘
사랑하는 주님 제가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하는 주님께 저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사랑하는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부족한 저를 통하여 당신 마음껏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가
떠나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입에서는
이제 먹을 것을 라는, 또 놀겠다는 소리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먹는 일이라곤 <하느님의 뜻>을 먹고
노는 일이라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일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하는 하느님께서 하느님께 내맡긴 삶을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가장~ 바라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태 6>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루카 12,22-32)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은 늘~
스승 예수님의 말씀만 <믿고> 하느님아버지만 <희망>하며
아버지하느님만 죽도록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 아버지하느님의 영광 이
참으로 부족한 하느님의 젖먹이 똥싸개 하내영들을 통하여
크게 드러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moowee 2016.01.14.
하느님은 절대로 인간을 위한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십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느님을 도구로 사용해서는 절대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 번 기회에 모든 하덧사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소위 하느님을 얻기 위한,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한> 끊임없는 화살기도 外에
다른 지향을 둔 내맡김의 화살기도는
이스라엘 원로들이 취한 태도와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에 있어서는 그 어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희망기도>가 기도의 효과가 좋다고 하더라도
<무엇을 얻기 위한> 희망기도는
하느님을 도깨비 방망이로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또,
하느님 뜻 안에 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하느님 뜻 안에서 기도합니다>라고 말하면
기도가 잘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여
앵무새처럼 <하느님 뜻 안에서>를 덧붙여 기도하는 것도
다를 바가 없는 행위입니다.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려는 사람들이나,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맡긴 사람들은,
<오직 하느님만 죽도록 사랑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내맡김의 화살기도를 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순명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하느님께서 그 고통과 어려움을 거두어 주실 때까지
하느님께만 집중몰입하며 하느님만 죽도록 뜨겁게 사랑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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