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뜻 영성

서약///Re:하느님 뜻 영성과 내맡김의 영성 차이 (타 카페에서)|-"봉헌 서약"에 관하여|▣ 보조교사방

은가루리나 2017. 10. 21. 17:50




<무위신부님은 그러니깐 

'내맡김의 영성'이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먼저 단계이고

그 다음에 '하느님 뜻 영성' 단계로 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무위 신부님도 내맡김의 영성이 차면 그 다음에 하느님의 뜻 영성에 들어가

그때 봉헌식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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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책 12권18,18-52 (Ⅲ)} 둘째,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것'에 대하여 

- 무위신부님의 댓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보시면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루이사 피카레타와 같은  완전한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으셨습니다.

정말로 어리석은 제자들, 그리고 세리, 창녀들과 어울려 

그들에게 큰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만 하더라도 보십시오!

얼마나 용감히 무식한 사람들이었나를 말입니다.


제자들이 처음부터  예수님과 완전한 사랑의 일치를 이루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일치를 이루기 보다  자신들의 이익에 더 급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그들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지만 

그들의 모든 것을 품어 주시고,

3년 동안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잠자고 하셨던 분입니다.


코 찔찔이 제자들이  스승 예수님과 완전한 사랑의 일치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나중에  당신이 그들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한 뒤, 성령을 통해서 입니다.


제자들이 그들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예수님과 완전한 사랑의 일치를 이룬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에 의해서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루이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을 사랑하려는 노력도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하느님의 이끄심(사랑과 은총에 의한)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자신의 노력으로 코찔찔이 신세를 벗어난 성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더구나, 루이사는 

사회생활도 거의 없이  집 안에서만 생활한 사람이었던 점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의 뜻의 도구로 사용되기 위하여 

특별히 선별되어  온실과 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간 루이사와 

세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동일화시켜서는 아니 됨을  다시 상기시켜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내맡김의 봉헌 서약"을 하려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참으로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우리 자신의 성화를 이룰 수 없기에

하느님의 은총에  부족한 우리를 맡겨드려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화된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내맡김(위탁)의 서약" 은 

이미  세례나 견진이나 수도서원이나 사제서품으로 이루어졌으나,

우리가 실지로 하느님께 위탁된 삶을 살지 못하기에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굳은 결심" 을  하느님 대전에 재봉헌하는 

세례 갱신식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결심이 완전하면  

하느님이 우리의 모든 부족함을 100% 다 받아주시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나날이 조금씩조금씩 성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장 큰 활력이 되는 것이 "화살기도" 입니다.


화살기도는 루이사의 위의 글 

"36번(이 변화에 이르는 과정이야말로 끊임없는 기도이기에)" 처럼,

부족한 우리를 변화된 삶, 성화된 모습의 신앙인으로 바꾸어 줍니다.



기도란 어려운 것이 절대 아닙니다.

기도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 안에서 키워 나가는 행위일 뿐입니다.

가장 쉬운 기도 방법이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 "화살기도" 입니다.


내맡김의 봉헌 서약 이후에 

이 화살기도를 집중해 나가면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내 안에 들어차기 시작했다는 것임다.



우리는 아직도 너무 부족한 주제이기에 

루이사 피카레타처럼  무죄한 최고의 경지를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부족하기에 

우리의 죄를 통해서도  

점점 당신의 거룩함으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심을 굳게 믿고 

기쁘게  그리고 즐겁게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대개  영성의 최고의 경지에 이른 훌륭한분들은  늘 걱정이 앞섭니다


루이사의 글대로  

내맡김의 영성은 성덕의 첫걸음이기에 부족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앞 날을 이끌어 주시는데 

무엇을 빨리 성취하려 안달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moowee 13.07.08. 10:45


하느님 뜻의 <마지막 걸음>인 

하느님 뜻 영성 봉헌서약을 지키기 어려운 분은,

하느님 뜻의 <첫걸음>인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서약부터 시작하시길 적극 권장해 드립니다, 적극!


저도 언젠가 주님이 원하시는 때가 오면, 주님이 이끌어 주시면,

반드시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 하느님 뜻 영성의 봉헌서약>을 하겠습니다.


저의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서약은 맹세 수준의 <굳은결심>이지만,

루이사 피카레타의 하느님 뜻 영성의 봉헌서약은 

그야말로 <맹세> 그 자체입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맹세>를 하고 싶습니다, 맹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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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2 더하였음



moowee 11.09.08. 09:00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 서약을 한 영혼들이야말로, 

'예수님이 머무는 처소' 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우리가 현재는 부족하고 죄스러움이 남아 있더라도 

분명 예수님의 처소입니다.


왜? 

그분께 온전한 결심(100%)을 내맡겼기 때문입니다.

내맡기기 전에는 우리의 부족함과 죄스러움이 내 것이었는데,

내맡긴 후에는 그것이 전능하신 하느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인간의 기본 논리로 따져 보아도 이 말은 잘못됨이 없을 것입니다.

또 왜냐하면, 다시 강조해, 

나의 모든 것을 하느님이 다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느님이 인간의 부족함과 죄스러움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인간도 내맡길 인간은 전혀 없을 겁니다.


또,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께서 루이사 피카레타에게

'내맡김은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첫 걸음'이라고 하지도 않으셨을 겁니다.


사랑하는 자기 아기가 똥이 묻었다고 품어주지 않을 어미는 없겠지요.

하느님은 인간의 어미보다 더 부족하고 죄스러운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거룩한 내맡김의 삶을 살면 

여러분이 사는 지역과 주변 사람들이 저절로 하느님께 나아갑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 그렇게 해 주시는 겁니다.


그냥 여러분은 내맡김을 기쁘게 살면 그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