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맡김의영성■

반드시 式(ceremony)을 올려야 합니다. ■ 내맡김 영성 ■

은가루리나 2017. 11. 25. 17:19





moowee 등급변경▼ 조회 1709 추천 1 2010.12.18. 10:19



우리 생활 속에는 많은 "식(式, ceremony)"이 존재합니다.


"식"은 격식, 의례, 의식, 형식 등을 말하는데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식"을 치르고 또 참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백일, 돌, 생일, 입학식, 졸업식, 약혼식, 결혼식, 장례식, 여러 기념식, 등등 - - -


구약의 제사도 하나의 "식"이고,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들도 "식"입니다.

우리 교회의 세례식을 비롯한 7성사와 준성사들도 "식"입니다.


신학생 때도 "수단"을 입는 "착복식"이 있는데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날은 아주 죽어나는 날입니다.


수단을 입은 사람을 때리면 죄가 되고

또 어렵게 입은 수단을 절대 벗지 말라는 뜻으로 

수단을 입기 전에 많은 선배들로부터 

대걸레 방망이로 엄청나게 엉덩이를 두들겨 맞습니다.


사랑하고 아끼는 후배는 더 세게 두들겨 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맞는 매에

정말 곤욕을 치뤄야 하는데 

이 의식을 소위 "성타식(聖打式)"이라고 합니다.


신약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예수님이 제자를 뽑으신 다음에

제자들과 함께 어떤 의식을 치루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제자들과 헤어질 때 최후의 만찬을 치루셨듯이 말입니다.



어떠한 의식은 그 일의 의미가 클수록 성대하게 치뤄집니다.


오직 믿음만으로, 성경만으로, 은총 만으로를 외치며

모든 형식을 배제하던 개신교에서도 

요즘은 외적인 형식을 하나하나 다시 들여오고 있는 듯 합니다.


과거에는 1년에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에만 거행하던 성찬식도

요즘 대형교회의 주일예배를 보면 매 주일 빠뜨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회력을 무시하거나 강조하지 않던 분위기에서

점점 교회력을 따라가려고 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 목사님들의 예배 복장도 점점 가톨릭을 닮아갑니다. 


어떤 의식이 너무 복잡하고 화려하고 더 나아가 짐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어떤 의미 있는 일에 있어서 "의식"은 필요한 것입니다.



하느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해 드리고 

자신의 소중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는 

"내맡김의 봉헌"에 있어서도 반드시 "식"이 필요합니다.


어떤 열심한 신앙인의 삶의 모습이 "내맡김의 삶"의 모습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의식을 통한 "하느님과의 서약"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삶"을 살아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 분명합니다.


만일, 외적인 의식을 통한 "서약" 없이도 

혼자만의 굳은 결의로 

많은 이들이 늘 변함없이 한결같은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다면

오늘날처럼 그렇게 수많은 수도공동체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맡김의 삶(영성)을 살아가려는 우리 하덧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떤 "규약"에 얽혀 있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단지, "하느님을 더욱더 사랑"하기 위하여 

"내맡김의 영성"을 함께 공유하며 

저마다의 분야에서

오로지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평범한 신앙인일 뿐입니다.


하느님을 더욱더 사랑하기 위해서 "무형의 성전(카페)"에서 서로 만나고,

하느님에 대한 서로의 체험을 나누며, 

말씀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이끌어 주며,

영적성장을 위하여 1년에 한두 번 기도모임을 가질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맡김의 삶(영성)"을 살아가려 개인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을 한다 해도 

"내맡김의 봉헌식"을 올린 분과 그렇지 않은 분과의 차이는 

분명할 것입니다.




"내맡김의 봉헌식"은 다음과 같이 간단히 이루어집니다.


1)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삶을 살 것을 굳게 결심한 사람은

자신의 뜻대로 살아온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뜻으로 

"고해성사"를 봅니다.


2) 내맡김(봉헌)의 최고 모범이신 예수님이 세우신 거룩한 미사에 참여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길 것을 서약하는 "봉헌문"을 낭독한 후

봉헌문을 사제에게 봉헌합니다.


3) 하느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 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성호경 몸기도"를 바칩니다.


4) 하느님과의 영원한 약속을 상징하는 뫼비우스의 반지를 축성한 후 

사제는 서약자손에 반지를 끼워줍니다.


5) 내맡김의 영성의 한 식구가 되었다는 표시로 사제와 "왼 볼 맞춤"을 한 후

내맡김의 봉헌자 서로와 또 기봉헌자들과의 왼 볼 맞춤을 합니다.




이렇게 간단한 의식이지만,

이 의식으로 "하느님과의 서약"이 이루어지며,

내맡김의 봉헌자들은 이 서약에 따라 

자신의 분야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아직, "내맡김의 봉헌식"을 올리지 않으신 하덧사들께서는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Re:제4장 -03 내맡김의 적극적 실행< 나에게 모두 맡겨라 >| ★하느님섭리에내맡김(韓)


나에게 모두 맡겨라 - 도린도 루오토로 신부님


위무위 등급변경▼ 조회 1066 추천 0 2019.06.27. 10:36


다음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사목하면서 거룩하게 살다 선종한 도린도 루오토로 신부가 

생전에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들은 말씀을 받아 적은 글이다.




왜 너희는 불안과 혼란에 빠져 있는가?

나에게 너희의 근심을 맡겨라

그러면 모든 것이 안정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에 대한 깊은 신뢰로 진실하고 완전하게 나에게 봉헌함으로써 

너희가 그토록 원하였던 것들을 얻고, 

너희가 안고 있는 가시로 덮인 상황들을 해결하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나에게 봉헌한다는 것은 두려워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절망적인 마음으로 기도를 올려서 

내가 너희 곁에 서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봉헌한다는 것은 조용히 영혼의 눈을 감고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그럼으로 해서 어머니가 자신의 팔에서 곤히 잠든 아이를 안고 가듯이, 

오로지 나만이 너희를 은총의 물가로 데려갈 수 있게 된다.



너희를 혼란에 빠뜨리고 너희에게 심한 해를 끼치는 것은 

다름 아닌 너희 자신이며 너희의 생각이다. 

너희가 안고 있는 근심은 물론이요 

좋은 일까지도 너희의 힘으로 직접 해결하고 노력해야만 된다는 그런 사고방식이 

바로 너희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영적인 필요나 물질적인 필요 때문에 나에게 고개를 돌리고, 

나에게 시선을 보내고, 

깊은 신뢰의 마음으로 “돌보아주소서!”하고 말해준다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주고 너희가 거둘 열매를 풍성하게 하겠는가! 


눈을 감고 나의 팔에 안겨 쉬어라! 

은총을 얻으려고 너희 자신을 괴롭힌다면, 너희가 받을 은총이 적을 것이다. 

나를 온전히 믿고 나에게 의탁하는 기도를 바친다면, 너희가 받을 은총이 많을 것이다.



지금 고통에 직면해 있다면 너희의 고통을 가져가달라고 나에게 기도하여라. 

너희가 상상할 수 있는 대로 그대로 하여라.


너희는 내가 너희의 뜻에 맞추어주기를 원하면서 나에게로 향한다 

너희는 너희의 방식과 원의를 그대로 고집한다. 

마치 진단과 처방을 먼저 설정하고 의사에게 치료를 부탁하는 환자처럼….



그렇게 하지 마라. 

주님의 기도에서 내가 너희에게 가르쳐준 대로 하여라.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는 

지금 내가 처한 곤란과 고통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라는 의미이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아버지의 나라에 기여하기 위해서라는 의미이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는 

나와 관련된 모든 일이 

영원하고 복된 삶을 위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의미이다. 


너희가 나에게 진심으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혹은 “돌보아주소서.”하고 말한다면, 

나는 나의 전능한 능력으로 너희의 일에 뛰어들어 

너희가 맞닥뜨리고 있는 가장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줄 것이다.



좋아지기보다는 상황이 더 악화되더라도 불안해하지 마라.

고요히 눈을 감고 나를 신뢰한 가운데 말하여라. 

아버지의 뜻 안에서 저를 돌보아주소서.”


그러면 나는 말할 것이다. 

내가 너를 돌보아주고 의사처럼 간섭하며, 필요하다면 기적도 이루어주겠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진다고 불안해하지 마라. 

오히려 눈을 감고 나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돌보아주소서.”그럼 내가 대답할 것이다. 

“내가 돌볼 테니 안심하여라.”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해 미리 추측하여 걱정하고 불안에 떨고 좌절하는 것은 

봉헌의 의미에 반대되는 것이다

그런 것은 어머니가 해주도록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뜻과 생각만으로 먼저 나서서 행함으로써 

어머니의 도움을 방해하는 어리석은 아이가 하는 것이다.



눈을 감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가 일하도록 기다려라. 

눈을 감고 너희의 생각을 미래로 돌려라. 

내 안에 쉬어라. 나의 선량함을 믿어라. 

너희를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맹세하건대

너희가 나를 믿는 마음으로 “돌보아주소서.”하고 말한다면, 

나는 전적으로 너희를 돌보아주고, 위로해주고, 해방시키고, 이끌어줄 수 있다.



너희가 생각하고 원했던 결과와 다른 방향으로 너희를 이끌어야 한다면, 

나는 너희에게 알려준다. 

그럴 때면 나는 너희를 나의 두 팔로 안고 간다. 

사랑으로 간섭하는 것 말고는 너희를 치유하는 약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희가 내 앞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면, 

즉 나를 진심으로 원하고 온전히 신뢰한다면, 나는 너희를 돌보아줄 것이다.



너희는 잠을 잘 줄 모른다. 

너희가 직접 모든 것을 판단하고, 깨닫고, 생각하고, 해나가려 한다. 

인간적인 능력에 맡기고, 

더욱이 너희의 안목으로 볼 때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 누군가의 개입을 신뢰하면서 

그의 손에 맡긴다. 


그것은 나의 말과 나의 뜻을 가로막는 큰 방해물이다. 

너희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너희의 봉헌을 원하는지 아느냐? 

너희가 불안에 뗘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나를 슬프게 하는지 아느냐?



사탄은 너희에게서 나의 영향력을 빼앗아 가기 위해서 

너희를 불안으로 몰고 가려고 쉼 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너희가 완전히 인간적인 생각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믿고 의지하며, 내 안에서 쉬고,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라


나는 너희가 나를 믿고 맡기는 만큼 기적을 일으킨다. 

반면 나를 신뢰하지 않고 불신한다면 기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온전히 “가난해지면”, 나는 너희에게 은총의 보물을 선물할 것이다!




비록 하찮은 작은 일에서도 

너희가 자신의 힘에 의지하여 도움의 수단을 구하거나 강구한다면, 

너희는 단지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게 되고 

그것을 따르게 되어 자주 사탄의 방해를 받게 된다. 


모든 것을 인간적인 수단으로 해결하는 사람은 기적을 만나지 못한다. 

성인들도 그 사람에게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봉헌하는 사람만이 

힘을 얻고 하느님과 함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모든 것이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도록 엉켜있는 것을 볼 때면, 

영혼의 눈을 감고 말하여라. 

“예수님, 돌보아주소서.” 


너희의 마음과 영혼의 눈의 방향을 돌려라. 

불안에 휩싸인 이성은 너희가 나쁜 것을 보도록 이끌고 

나에게 의탁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필요로 하는 모든 것에서 나에게 의탁하여라. 

모든 것을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위대하고 엄청나면서 고요한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돌보아줄 것이다. 

나는 이를 약속한다.



항상 이런 마음으로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여라. 

그러면 비록 내가 너희에게 

고통이 따르는 희생이나 보속과 같은 사랑의 은총을 선물한다 하더라도, 

너희는 큰 평화를 누릴 것이며 큰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것이 어렵고 불가능하게 여겨지느냐? 

눈을 감고 온 영혼으로 말하여라. 

“예수님, 돌보아주소서.”

불안해 하지 마라. 내가 돌보아준다. 

너희는 다만 겸손해지고 나의 이름을 찬미하여라.



깊은 신뢰로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미사여구만 늘어놓는 기도보다 낫다. 


이를 명심하여라.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만 늘어놓으며 바치는 9일 기도보다는 

이 한마디로써 나에게 모든 것을 봉헌하는 것이 훨씬 낫다.


오,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저를 돌보아주소서!”




- 마리아 174호 2012년 7·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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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나에게 모두 맡겨라 - 도린도 루오토로 신부님

● 내맡김영성 관련글 


위무위|등급변경▼|조회 64|추천 0|2019.06.27. 23:52



예수님의 말씀도

여러 상황(시대, 문화, 사람)에 따라 변화, 발전, 성장, 진화(進化)합니다!


저는 도린도 루오토로 신부님께 내려주신 예수님의 말씀은,

도린도 루오토로 신부님께서 처하셨던 상황에 알맞게 내려주신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저를 돌보아주소서!


이 기도도,

도린도 루오토로 신부님께 알맞는 말씀을 내려 주셨음을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도 분명,

<내맡김 + 청원>의 짬뽕기도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도린도 루오토로 신부님께 내려주신

예수님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내맡김).

저를 돌보아주소서(청원)!"라는 기도보다,


"오, 예수님, 저는 당신께 위탁(내맡김)합니다!"라고

완죤~히 전적으로 내맡기는 기도만 하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분명,

도린도 루오토로 신부님께서 받은 기도보다

저의 오롯한 <내맡김 기도>를 더욱 좋아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오, 예수님, 저는 당신께 위탁(내맡김)합니다!"





"오, 예수님,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깁니다!"

"오, 예수님,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깁니다!"

"오, 예수님,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깁니다!"





moowee 17.02.10. 09:42


전에 선앤진리님이 올려주신 글인데,
12일 봉헌자들을 위해 다시 올려드립니다.


moowee 17.02.10. 09:57 



하느님께 맡기지 않고서 
하느님 가까이에 나아가려는 것은 모래성 쌓기와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봉헌식을 통해서 하느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자기 뜻을!

결혼식 없는 결혼이 비정상적이듯
봉헌식 없는 봉헌은 비정상입니다.

왜 사제서품식을 합니까?
왜 종신서원식을 합니까?

우리가 봉헌식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너무나 부족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부족함 없이 잘 나고 능력있는 사람은 봉헌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선 잘난 사람들에겐 당신의 뜻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루카 10, 21)


<마르 7>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영혼들이,
영적인 귀가 열리고 영적인 입을 열게 해 주는 예식이 바로 <봉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실 때 
분명 <한 마디 말씀>으로 그를 고쳐 주실수 있으심에도 
굳이 그를 군중으로부터 따로 데리고 가셔서(봉헌식 장소)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시는 행위를 하신 것도,
분명 하나의 <치유예식>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聖事(성사)가 뭡니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눈에 드러내 보여주시는 상징입니다.

여러분이 세례 때 왜 이마에 물을 적시고 기름을 발랐습니까?
그러한 예식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인정 받기 위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봉헌 없이 이곳에 머무는 것 >은 그리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한 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화 08:33 new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치유 장면은 죄의 근원을 치유하는 상징적 행위들입니다. 

진실을 듣지 못하게 하는 왜곡된 공동체로부터 병자를 따로 데리고 나오시고, 
당신 손가락과 침을 귀먹은 이의 귀와 혀에 닿게 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창조의 손길과 치유의 힘을 전달하십니다

그리고 “에파타” 곧 막힌 귀를 열어 주시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어” 
태초에 인간에게 불어넣어 주신 하느님의 숨결을 되돌려주십니다

치유 기적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우리 안에 닫힌 모든 귀와 입, 마음의 문을 열어 주시는 분은 오직 성령이시며 
교회는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자리가 되어야 함을 되새길 때입니다.]


{14-58 2 "딸아, 첫사람의 창조로 인류 창조를 시작한 나는
그의 몸을 빚은 뒤 내 전능한 숨으로 그 안에 영혼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숨으로 사람의 깊숙한 곳에 나 자신을 불어넣었다.

말하자면 사람을 떠받쳐 주며 다스리고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천상의 책 12권 8장 1917년 5월 ♧


{2 "딸아, 피조물은 다름아닌 나의 숨이다.
내가 숨을 내쉬면서 모든 것에 생명을 주니 말이다.

3 모든 생명은 숨을 쉬는 동안 지속된다. 
숨이 멎으면,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고 피가 흐르지 않으며 
손이 미동도 하지 않고 정신도 지성의 죽음을 감지한다. 
다른 모든 것도 그렇다.




4 그러므로 인간의 온 생명이 이 숨을 받고 주는 것에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숨으로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과 활기를 주고, 
내 거룩한 숨으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사랑하며 
아름다움과 부와 같은 온갖 좋은 것을 다 주고자 하는 반면, 
그들은 나에게 
모욕, 반역, 배은망덕, 신성모독, 거부 따위 그런 모든 것을 숨에 담아 보낸다.

5 나는 깨끗한 숨기를 보내건만 내게 오는 것은 더러운 숨기이고, 
나는 이를 축복하며 보내건만 내게 오는 것은 저주가 붙은 숨기이고, 
나는 온전히 사랑으로 보내건만 
내게 오는 것은 내 마음 가장 깊은 데를 모욕하는 숨기이다.



6 그럼에도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는 내 숨을 계속 내보낸다. 
인간 생명의 이 기관(氣管)들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들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파괴되어 없어지고 말 것이다.


7 아, 딸아, 너는 인간 생명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들은 적이 있느냐? 
(내가 방금 말했듯이) 바로 나의 숨에 의해 유지된다.

8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는 영혼을 보면 그의 숨결이 얼마나 감미롭게 느껴지는지, 
그가 나를 얼마나 즐겁게 하는지, 나는 기운이 나는 것을 느낀다. 
나와 그 영혼 사이에 일치의 화음이 메아리치고, 
이는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독특한 것이니 하늘에서도 그러하기 마련이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 정말로 그 복잡한 며러 행위들을 하신 다음 
"에파타"라는 창조적인 말씀으로 마우리를 하십니다. ★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의 모든 것을 맡기오니 오늘도 간절한 마음으로 화살기도를 하며 
저의 모든 것을 열어놓아 저의 귀와 혀를 완전히 풀고
당신의 숨울 마음껏 받고
당신께 향기로운 숨결을 드리게 하소서
당신만을 죽도록 뜨겁게 사랑합니다
<거내영>과 무위사제와 모든 하덧사를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