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제2장] 1. 방법|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은가루리나 2017. 12. 21. 01:22

[제2장] 1. 방법|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제2장





1. 방법



"마이스터 에카르트,

사람들이 열심히 하느님을 찾는 일에 그렇게도 느린 까닭은 무엇입니까?"


"한 사람이 어떤 것을 찾고 있는데

그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하면 시큰둥한 마음으로 괴로워하며 찾는다.

그러나 그 자취를 보게 되면 생기를 띠며 즐겁고 열심한 마음으로 찾아 나서게 된다.


불을 찾는 사람은

열기를 느낄 때 힘을 되찾고 기뻐하며 열성적으로 그 열기가 나는 곳을 찾는다.

하느님을 찾는 일도 마찬가지다.


하느님의 감미로움을 전혀 맛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맥이 풀리지만,

신성의 감미로움을 알고 나면 즐겁게 하느님을 찾게 된다."



마이스터 에카르트는

하느님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그분을 찾다가 지쳐버린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교가 비판받는 것 중 한 가지는

하느님을 찾아가는 뚜렷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많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동양으로,

불교나 힌두교로 가게 되는 원인 가운데 하나다.


<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을까? >

우리는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에카르트는 이를 직시하여 문제로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좋은 지향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우리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기 위하여,

그리고 영원한 탄생을 받기 위하여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그는 영원한 탄생이 다음과 같다고 말한다.
"쉬는 것, 행복하게 되기를 배우는 것, 걱정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
"이 탄생이 이루어지려면 우리는 평화 중에 있어야 하고

세상의 분심거리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과 조화를 이루어 일치해야 한다."



세상에서 물러남으로써

(이것은 자신을 고립시키거나 세상에 무관심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 지혜롭게 될 만큼 마음을 비우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영혼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고 잠잠하며 활동이 없다.


영혼의 '능력들', 곧 지성. 기억. 의지나 감각 능력들은

영혼의 본질에서 나오지만 끊임 없이 활동하며 소용돌이치고 있다.

반면 그 본질은 고요하다.



우리는 대개 감각을 통하여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서 지식을 얻는다.

그러나 영원한 탄생은 내면에서 솟아나오며 인식의 과정에 역행한다.

우리는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인식하므로 때로 그것을 '무지'라고 한다.

날마다 우리는 이성의 능력을 사용하며 살아간다.


'내 일생 동안 매일 해가 떴으므로 내일도 해가 뜨리라는 추측은 타당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 따라 계획을 세운다.

이성은 생존에 대한 사고와 밀접하고

외부 세계에서 오는 지각할 수 있는 표상들과 관계하며

거기에서부터 가능한 모든 감각과 유형을 만든다.



우리는 하느님까지 이런 식으로,

다시 말해 우리가 분석할 수 있고 양과 질로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유형으로,

하나의 '존재'로 격하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를 구분할 수 없으며,

하느님은 무를 초월해서 그리고 무 이전에 계신 분이다.


이성적 사고는 하느님을 비껴 지나갈 뿐이며

상상으로 어떤 것을 꾸며놓고 '이것이 분명 하느님이다'라고 주장할 뿐이다.


영원한 탄생은 '자신의 본성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하느님의 형상을 밝게 드러내는'사람에게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버리고 떠나 있음' 의 과정으로 영혼의 능력,

곧 지성. 기억, 의지, 감각을 잊음으로써

'하느님을 기다리기 위한' 자유와 고요에 도달함을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 준비해야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도록 내버려두기만 하면 그분은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


모든 분심을 버리고 떠남으로써

우리는 주의를 집중시킬 준비를 한다.


이것은 마치 강을 깊게 만듦으로써 물살을 강하게 만들듯이

이성을 초월하여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는 힘을 마련한다.



내버려둠은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분산시키는 모든 것을 제거한다.

이것이 성자가 탄생하는 '잠재적 수용'의 상태에 이르기 위한 첫걸음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정신이 자유롭게 되고

육신의 긴장이 풀리며 감각의 요구들이 고요해질 때 우리는 

단 하나의 유일한 모상 안에서 하느님을 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