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4권

{천상의 책 4권56장} 순명은 매우 예리한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자애심은 심한 근시이다

은가루리나 2018. 2. 12. 21:46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4-56 


1901년 2월 10일


순명은 매우 예리한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자애심은 심한 근시이다



1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계속 오시는 중이다. 
더없이 강렬하고 맑은 빛으로 환히 빛나는 눈으로 나타나셨기에 
나는 그 눈부신 빛에 놀라면서도 황홀감을 느꼈다. 

예수님은 내가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황홀해하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내 사랑아, 
순명은 날카로운 시각(視覺)을 가지고 있다. 
그 아름다움과 예리함에 있어서 햇빛을 능가할 정도다. 

반대로, 자애심은 매우 근시안적이어서 
걸음을 옮기면 반드시 헛디디게 한다. 

그러니 언제나 근심과 의심이 많은 사람들이 
이 날카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해선 안된다. 
반대로 그런 것은 자애심이 짜는 그물(덫)이다. 


자애심은 극도로 근시안적이기에 
우선 그들 자신을 넘어지게 하고 
다음에는그들 안에 온갖 생각과 동요(動搖)와 주저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숱한 의심과 두려움을 느끼며 
오늘 싫어하는 것에 내일 거듭 떨어지곤함으로써 
그들의 삶은 그것이 교묘하게 엮은 인위적인 덫에 
언제나 걸려 있게 된다.


3 이와 대조적으로 
순명의 예리한 시각은 자애심을 죽인다. 
그것은 날카롭고 투명해서 
옳지 못한 발걸음은 즉시 예견하고 미리 피한다. 

이리하여 
하느님의 작은 자녀로서의 거룩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어둠이 어둠을 끌어당기듯이 빛은 빛을 끌어당기기에, 
순명은 이 빛으로 '말씀'의 빛을 끌어당긴다. 
이 두 빛이 합쳐져서 모든 덕행의 빛을 짜는 것이다."


4 이 말씀을 듣고 놀란 나는 이렇게 여쭈었다. 

"주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위를 의심하며) 주저하는 생활 방식은 거룩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5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더 진지한 어조로 이렇게 덧붙이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이쪽이 참된 순명의 표지라면 저쪽은 자애심의 표지이다. 
저런 생활 방식은 내게 사랑보다는 역겨운 마음을 일으킨다. 

진리의 빛이 거짓을 밝혀 줄 때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근시안적인 자애심은 그런 영혼들을 짓누르면서 
참된 성덕의 길에서 조금도 진보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기만 하니 
말이다."





 

 

 

4권56장 순명은예리한시각을갖고있지만자애심은심한근시이다.m4a.avi

 

 

 

 

 

 

 

 

 

 

에고~ 에고~~ 아이고 죽겠다 에고~~~ ╋ 보조교사방 

 

 

 

이해욱프란치스코60 등급변경▼ 조회 235  추천 0  2015.11.12. 21:26

 

 

"Ego"에 대하여

 

흔히들 하는 말로

"아, 정말 자존심이 콱 상해버렸어!"

"나는 자존심이 강해서 그런 말은 절대로 못 받아들여!" 등을 사용합니다.

 

저는 "自尊心"을 "自愛心"이라고도 표현해 왔습니다.

또는 "Ego"라고도 사용해 왔습니다.

 

저는 그 말들 자존심, 자애심, Ego 등이

심리학적으로 정확히 같은 의미의 말들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같은 의미로 사용하여도 그리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Ego에 대하여 말해보겠습니다.

우리의 내면 안에 각자가 지니고 있는 Ego는 다 같은 Ego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의 Ego는 어린 시절 외부로부터 크게 상처를 받아

정상적이고 건강한 Ego가 아니라 잘못된 모습으로 변형된 Ego도 있을 것이고,

상처를 받은 시기와 종류와 충격의 강도에 따라 다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5년이 넘게 영적지도를 해 오면서

저로부터 잘못을 지적받게 되면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사람들을 보아왔습니다.

 

그 결과 스스로 카페를 탈퇴하든가 아니면

탈퇴를 하지 않더라도 그저 방문만 하고 댓글에 아예 손을 떼든가 하게 됩니다.

 

 

 

저의 영적지도는 이냐시오 성인처럼 정해진 어떤 윈칙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적 성장의 정도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그 정도가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벼운 한 마디로 쉽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놀라자빠질 정도의 벼락을 칩니다.

영적지도로 매 번 그 사람의 신앙의 정도가 잘 드러남을 경험해왔습니다.

 

저는 영적지도에 대한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영적식별에 대한 책도 조금 읽다가 중단하였습니다.

지리산에 있을 때 

어떤 회원에게 부탁드려 저 스스로 그 책을 청하여 선물로 받았음에도 

읽어나가다가 읽기가 싫어져 책을 닫아야 했습니다.

물론, 그 책을 무시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너무 복잡하여 제 수준으로는,,,,

 

한 마디로 저는 영적지도에 대한 가방 끈이 짧은 것이 아니라

아예 가방 끈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님이시고 스승님께서

사람 사람마다 상황 상황마다 지혜를 주시어 다 이끌어주십니다.

 

영적지도를 받을 때,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고 Ego가 아프기도 하지만

자신의 영적성장을 위하여 감사히 받아들인 사람은 분명 영적성장을 이룹니다.

 

저의 영적지도에 상처를 크게 받고 카페를 자퇴한 사람도

그 사람이 영적성장을 이루면 분명 저로부터 받은 상처를 감사히 여길 것입니다.

 

제가 만난 하느님이나 그분이 만난 하느님은 다 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과거에 밝혔듯이 그분이 나중에 저보다 큰 영적성장을 이루시면

저는 정말 기꺼이 그분께 영적지도를 청할 것입니다.

 

저의 영적지도의 규정이나 원칙이나 기준은 단 하나,

그것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입니다.

 

그분의 뜻을 알아듣기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사람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뜻을 잘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만 정말 죽도록 사랑하면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느님을 죽도록 사랑하십니까?

그분을 죽도록 사랑한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목숨"을 그분께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여러분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여러분의 "자녀"를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여러분의 자녀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돈"을 전부 다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선 사람은 "진실로 하느님을 사람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영적지도자인 저의 말을 잘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저의 어떤 영적지도에도 기꺼이 순명합니다.

저의 영적지도에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자신을 높이기보다 하느님을 높여 드리기 위해 자신을 바닥에 깝니다.

그래서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절로 겸손해집니다.

 

이미 그 사람의 '자아(Ego)'가 하느님의 차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自尊心'의 중심을 차지하고 계신 분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自愛心'은 어느덧 自己愛가 아니라

자신을 차지하신 그분에 대한 '尊重과 사랑'으로 바뀌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서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하여 자기(Ego) 이부자리를 깝니다.

자기를 위하여 이부자리를 깔지 않습니다.

자신이 낮은 자리에 자리합니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자신을 위하여 이부자리를 까는 사람은

사랑한다는 그 사람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소위 '자애심'이 큰 사람입니다.

소위 '자존심'이 센 사람입니다.

소위 'Ego'가 강한 사람입니다.

 

Ego가 강한 사람은,

자존심이 센 사람은,

자애심이 큰 사람은 

삐뚤어진, 이그러진, 상처난, 병든 영혼입니다.

 

자신의 삐뚤어진, 이그러진, 상처난, 병든 영혼을 몰라보게 하는 놈이

그 영혼에 검은 휘장을 씌어 놓았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Ego가 그런 Ego(자존심, 자애심)인지 모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여러분의 'Ego'는 이미 부서져버렸습니다.

여러분의 '自尊心'은 이미 헤어져버렸습니다.

여러분의 '自愛心'은 이미 죽어버렸습니다, 거룩한 내맡김으로!

 

그럼으로 내가 주인이 아니라

사랑하는 그분께서 주인이 되셨습니다,

나(Ego, 자존심, 자애심)의 거룩한 바침(내맡김)으로!

 

 

에고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거룩히 내맡겨드리면

망가지고 찌그러지고 상처로 얼룩진 에고가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됩니다,

 

참으로 말입니다, 에고의 참주인은 여러분을 창조하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산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86, 87, 88)

 

 

4. 에고와 이기주의로서의 마야

 

 

 

□ 에고의 악마성

 

p.24

 

 

86. 에고가 뿌리뽑히지 않는 한 인간은 구제받을 수 없다.
송아지를 보라.그의 모든 문제점은 에고로부터 시작된다.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움메(Ham hai, 나는 .....이다)하고 운다.

에고의 결과는 그가 다 자랐을 때 온다.
숫소라면 쟁기로 밭을 갈든가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암소의 경우 도살장으로 끌려가 도끼로 최후를 마쳐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심판에도 불구하고 이 어리석은 짐승은 그의 에고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의 가죽으로 북을 만들어치면 거기 그의 숨어 있는 에고가 소리친다.
「둥」(Ham, 나다).
이 불쌍한 짐승은 그의 내장을 꺼내어 활시위를 만들 때까지는 겸손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의 내장으로 활시위를 만들게 되면그 후에야 이 불쌍한 짐승의 창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딩」(Tu hai, 당신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당신>에게 나의 자리를 양보하고 만다.

 

이는 영적인 자각을 체험하기 전까지는 성취할 수 없는 경지다.


87. 그대의 <나(에고)>가 사라져 버리고 그대 자신이 신 속에 흡수될 때에거기 진정한 자유가 있다.

88. [문] 언제 나는 자유롭게 될 것인가.
[답] 너로부터 <나>라는 이 에고가 사라질 때이다.
나, 내것------이것은 무지다.당신, 당신의 것-----이것은 지혜다.
진정한 구도자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신이여, 당신은 내 생명의 주인입니다.당신은 이 모든 것입니다.
나는 당신 손에 쥐어진 한낱 악기에 불과합니다.당신이 시키는 것이면 나는 무엇이든지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영광입니다.이 집이며 이 가족들은 모두 내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것입니다.

 

나에게는 오직 당신의 명령에 따를 의무만이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