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4권

{천상의 책 4권55장} 예수님이 영혼 안에서 완전한 기쁨을 누리시려면 영혼이 그분 안에 확고하게 머물러 있어야 한다

은가루리나 2018. 2. 12. 21:43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4-55



1901년 2월 6일



예수님이 영혼 안에서 완전한 기쁨을 누리시려면 

영혼이 그분 안에 확고하게 머물러 있어야 한다




1 평소대로 있는데 

복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의 은총은 

사람들을 많이 소유할수록 

더욱 즐겁고 유쾌한 축제 기분이 된다. 


이는 시키는 대로 시중을 드는 이들이 주위에 많이 있을수록 

그것을 더욱 즐기며 기뻐하는 여왕들과 같다.




3 너는 내 안에 확고하게 머물면서 나를 바라보아라. 


그러면 내게 깊이 잠기게 되므로 

물질적인 모든 것에 아무 관심도 없게 될 것이다.



4 나를 너 자신 안에 온전히 끌어당기기 위해서도 

내 안에 확고하게 머물러 있어야 한다. 


내가 네 안에서 완전한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면, 

내가 한 인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기쁨을 

네 안에서 얻게 되기에, 

다른이들이 내게 저지르는 (그릇된) 행위들이 

그다지 거슬리지 않게 될 것이다."




5 그때, 이 말씀을 마치신 그분께서 내 안에 온전히 들어와 계시면서 

여기에서 완전한 기쁨을 누리기 시작하셨다. 


오! 사랑하올 예수님 전체를 내 안에 끌어당길 정도에 이른다면, 

나 스스로를 얼마나 복된 자로 여기게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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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4 .하느님을 찾음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김시연크리스티나45 등급변경▼ 조회 53  추천 0|2017.12.02. 23:08



4.하느님을 찾음



모든 피조물은 본성상 하느님을 닮고자 한다.


하늘이 하느님이나 하느님 모상의 자취를 따르지 않았더라면 

회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느님이 모든 사물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자연은 죽은 채 멈추어 있을 것이며, 

활동을 하지도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모든 피조물은 인간에게 큰소리로 이렇게 외친다.


"당신은 진리와 선함을 찾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찾으십시오.

하느님이야말로 진리요 선하심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거룩함과 행복을 추구한다.

당신이 자고 있을 때나 깨어 있을 때나 하느님은 활동을 계속하신다.


우리가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의 혀에 피조물의 악취가 묻었고 

우리가 하느님 사랑의 소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느님 안에 머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분은 세 가지를 요구하신다.


우선 자기 자신과 모든 것을 버리고 

감각이 파악할 수 있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시간과 영원 안에 존재하는 어떤 피조물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선한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 되며, 

선 자체를 위해 선을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그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선하거나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에 이 말을 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그렇다. 


어떤 사람이 하느님을 찾으려고 또는 하느님께 도달하려고 자신 밖으로 나간다면 

그것은 잘못하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 밖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없고,

내 안에서가 아니면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때때로 덕행에 나아고자 하는 사람들은 

원을 그리는 것처럼 행한다고 말한다.


중심을 정하고 그 중심을 잘 잡아야 원을 잘 그릴 수 있다.


다시 말해 

먼저 하느님께, 

그리고 선과 선행에 마음을 두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낮은 데서 높은 데로가 아니라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 


하느님은 영혼보다 높으므로 

계속해서 영혼 안으로 흘러들어가며 영혼을 그냥 지나가지 않으신다. 


영혼은 하느님을 놓칠 수도 있지만, 

영혼을 하느님 바로 아래에만 둔다면 

하느님께로부터 직접 흘러나오는 영향을 즉시 받게 된다.



그 영혼은 다른 어떤 것에도 종속 되지 않는다. 

두려움에도 고통에도 쾌락에도 하느님이 아닌 그 어떤 것에도 말이다.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대가 피조물인 자신에게서 벗어나

하느님을 그대 안에 계신 하느님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보기 위해서는 높은 열망이 필요하다. 

뜨거운 갈망과 자기를 낮추는 겸손은 기적을 이룬다. 


맹세하거니와 

하느님은 전능하지만 간절한 염원을 가진 겸손한 영혼을 물리치지 못하신다. ...


목숨을 걸고라도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은 자기 의지로 철벽이라도 뚫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을 본 베드로는 그분을 만나려는 열망으로 물 위를 걸어갔다.




인간은 하느님을 떠난 곳에서 하느님을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다.


그대가 최근 하느님과 함께 있었다면 

지금 그분을 잃어버렸다 해도 그대로 내버려 두어라.


그러면 그분을 찾게 될 것이다. 

선한 의지는 하느님을 결코 잃거나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의지는 하느님의 의지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뜻대로 하려고 하고 하느님께 이래라저래라 지시한다. 

그것은 선한 의지가 아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의지가 무엇인지 하느님에게서 찾아내야 한다.

대체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포기하길 원하신다.


아무도 자기 약함이나 잘못이나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하느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만일 어떤 큰 결함이 그대를 방황하게 만들고 

그 때문에 하느님께 가까이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어떤 경우라도 하느님이 그대 가까이 계시다고 여겨야 한다.



자기 집에서나 장터에서보다 

사색과 기도, 신심행위들을 통해 

더 많이 하느님께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머리를 덮개로 가리고 탁자 아래 하느님을 숨기려는 것과 같다.


일정한 형식 속에서 하느님을 찾으려는 사람은 

형식을 고수하느라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하느님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한 형식 없이 하느님을 찾는 사람은 

자신 안에 계신 하느님, 

'아들과 함께 사시는' 하느님, 

생명 자체이신 하느님을 발견한다.


사람은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두려움에는 해로운 것도 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느님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10) 영성이란 무엇인가 (10)


‘변화’ 체험하려면 하느님께로 초점 맞춰야

주부적 영성은 영성생활의 최고 형태

단순하게 하느님의 이끄심에 응답을


발행일 : 2011-08-21 [제2759호, 10면]




주부적 차원의 영성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하자.



첫째, 주부적 영성은 영성생활의 최고 형태이다.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탑이다.


인간 노력에 의한 기술적, 전문적 접근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러한 노력들이 낮은 단계의 성취를 보장해 준다면,

주부적 영성은 최고 단계의 성취에 이르게 한다.


이 단계에서는 자동(automatic)으로 움직인다.

하느님께서 자동으로 직접 인도해 주신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뛰어난 영성가라고 해도, 주부적 영성을 체험했다고 해도

이러한 자동의 관계가 24시간 풀가동 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여기서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을 갈고 닦아서 은총의 터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 터 위에 엄청난 은총의 비를 내리신다.




둘째, 주부적 영성은 

일체의 특수하고 개인적인 표현 형태들을 뛰어넘어서

궁극적인 단순함에 이르는 것이다.


‘궁극적인 단순함’. 이 말이 중요하다.

성인 성녀들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단순함’이다.

그 분들은 복잡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뜻을 복잡하게 따지면 갈등이 일어나고, 고민만 쌓인다.

따지지 않고 그냥 알아들으면 된다.


예비신자에서 성인으로 나아가는 단계는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나아가는 단계다.


똑똑하고 계산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는 영성생활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함에서 오는 행복, 단순함에서 오는 충만함을 만끽하는데 

방해물이다.


일반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긴 하지만,

보통 사회적 지위와 성취를 중요시하는 남성은

그 논리적인 태도 때문에 하느님과 가까워지기가 힘들다.


하지만 여성은 감성적이고, 모성애적 사랑의 토대를 가지고 있다.

베드로에게 “장애물” “사탄”이라고 말했던 예수는 

여성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지극한 단순함의 경지를 이룬 분들이 바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소화 데레사, 프란치스코 등과 

같은 분들이다.


이분들은 공부를 많이 한 분들이 아니다.

이런 분들은 하느님과 직통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분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초점’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부적 영성의 초점은 바로 하느님 자체다.


‘나’는 교육에 의해, 환경에 의해, 주관에 의해 수시로 변한다.

인간은 각자의 교육과 환경, 주관에 의해 

시시각각으로 다른 입장을 드러낼 수 있다.

초점이 흐리다.


변하지 않는 초점, 핵심은 하느님이다.


신비신학, 관상, 주부적 영성을 체험하게 되면 

하느님이 초점이라는 걸 깨닫게 되고,

하느님에 의해 ‘변화되는 나’를 체험하게 된다.

초점만 확실하면 된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초점)을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하느님을 알고 보면 ‘나를 위한 하느님’일 경우가 많다.


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다른 가족을 무너뜨리고,

내 성취를 위해 다른 이의 성취를 깎아내리고, 

내 명예를 위해 다른 이의 명예를 더럽힌다.


그러면서 “나는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한다.

교회 내에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면 이렇게 타인에게 고통 주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방법’으로 해선 곤란하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냅둬(내버려 둬) 영성’이다.


하느님에게 초점이 맞춰진 사람은 ‘냅둬 영성’이 가능하다.

내가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 하시게 해야 한다.


나는 하는 데까지 하고 

계속해서 겸손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뿐이다.

그래도 안 되는 사람들은 ‘냅둬야 한다’.

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희생도 필요하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고, 평화다.


나는 내 할 일이 많다.

왜 다른 사람한테만 신경 쓰고 시간 다 바치고 허비하는가.

내 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할 일을 해야지 주부된 영성의 단순함에 들어간다.

다른 생각하며 복잡하게 살 필요 없다.


안타까운 사람에게는 

해 줄 수 있는 데까지 좋은 방법과 기도와 희생을 바쳐주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기면 된다.



‘초점’ 하느님은 ‘나’에게 계속 다른 일을 주신다.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께 맡겨 드리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한다.

다른 데 신경 쓸 틈이 없다.


주부적 영성은 

모든 초점을 ‘하느님’께 맞추고, 나를 그쪽으로 정향시키게 한다.


우리는 번뇌를 가질 필요가 없다.

하는 데까지 하고 안 되면 그분께 맡겨 드리면 되는 거다.

맡겨 드리면 그분께서 나한테 일 주신다.


그 일 하는 거다.

자유스럽게 평화스럽게 행복하게…. 기분 좋게, 웃으면서….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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