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위탁

27 p.125-??? 제 2편 제 3장 섭리에 대한 신뢰 ①

은가루리나 2018. 4. 5. 15:13



제2편 거룩한 위탁과 기초


제1장 이탈

제2장 섭리에 대한 신앙 ②③④

제3장 섭리에 대한 신뢰

제4장 신뢰 계속 - 難問에 대한 해답

제5장 천주께 대한 사랑

제6장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제7장 聖主에 대한 모범



p.135



제二편 거룩한 위탁(委託)의 기초(基礎)


제三장 섭리에 대한 신뢰(信賴) 




「인간의 의지는 놀랄만큼 의심이 깊으며、

보통 자기 자신에만 신뢰하여 

남의 원의와 세력을 자신을 위하여 항상 두려워 하고 있다。


남을 깊이 신뢰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귀중한 것、재산, 명예, 호평、건강、생명 자체도、

결코 그 손에 맡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애덕과 거룩한 위탁의 실행에는 천주에의 완전한 신뢰가 필요하다。

(「러·고디에」신부「영적생활의 완덕」三부 二편 一七장) 


따라서 일치(一致)의 길을 외면하고는、보통 완전한 위탁을 발견할 수 없다。


왜냐 하면、일치의 길에 있어서야말로 

비로서 천주에의 신뢰는 충실의 절정에 달하기 때문이다。



실제 

인간의 예지(叡知)는 시야(視野)가 좁고、

의지는 나약하여 변하기 쉬우며、몇 번이고 낙담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광명(光明)에는 신뢰를 두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천주께 대해서까지도 불신(不信) 또는 의혹을 품는 것을 피하며、

자기 의지가 아니라.,

천주의 의지가 성취될 것만을 오로지 절원(切願)하고 서둘러야 한다


그것은'「천주의 의지는 선(善)이며、그 것 자체로서 선이요、

또한 우리에게 있어서는 은혜 깊은 것이며、

지선(至善)하신 천주와 같이 선이며、

거의 필연적으로 은혜를 베풀만큼 선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주교「위탁」一 장)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시며、

섭리의 손으로써 우리를 처리하시는 분은、

과연 어떤 분이겠는가。


그것은 지선(至善)하신 천주시다。


천주께서는 그 본질(本質)에 의한 선(善)

더구나 사랑 자체이실만큼 선하신 분이시며、

그리고 이 의미에 있어、

「하나이신 천주 외에는 아무도 선한 자 없나니라。」(루까1819)



p.136


성인들 가운데는 

이 천주의 지선(至善)하심을 놀랄만큼 자신의 소유로 삼은 이가 있었다。


그렇지만、인간 중에서 가장 선한 자도 말하자면 

선의 작은 흐름이거나、또는 냇물이거나、고작 강물에 불과하지만、

천주께서는 선의 대양(大洋)이며、무한하여 그칠줄 모르는 선이시다。


거의 무수한 은혜를 우리위에 쏟으신 후에도 

아직 그 은혜를 풍부하게 베푸시는데 피로하신다든가、

그것 때문에 가난하게 되신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천주의 손에는 베푸실 수 있는 선은 아직도 무한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실로 천주께서는 주실수록 더욱 더 풍부하게 되시기 때문이다。 


즉、천주께서는 그것으로써 적어도 

마음이 고귀한 사람들로부터 보다 잘 알려지시고 사랑을 받으시며、

섬겨지시게 되기 때문이다。



천주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선한 분이시며、

「선인이나 악인이나 태양으로 다 비추시고 

훙의한 자에게나 불의한 자에게나 비를 다 주신다.」(마테오5 .45) 



천주께서는 은혜를 베푸시는 일에 싫증을 느끼시는 적은 결코 없으시다。


그 인자로써 우리를 정복하시려고、

우리의 무수한 '죄과(罪科)에「많은 애련」을 대치(對時)시키신다。


무한한 선이심과 마찬가지로、무한한 정의(正義)시기 때문에、

의당 죄를 벌하지 안으면 안되시지만、

그러나 「진노 (震怒) 중에라도 그 애련함을 잊지 않으신다。(하바꾹3 . 2)



그렇게도 선하신 천주야말로、「하늘에 계신 아버지」시다。(마테오6.9, 기타) 


천주께서는 이 지선하신 천주라는 성명(聖名)을 기뻐하시고、

그 애련하심을 흡족할 정도로 우리에게 상기(想起)시킴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아버지라고 스스로 선언하시는 것을 기꺼이 여기신다。


「천주께서는 그렇게도 위대하시고 거룩한 분이시고、

우리는 그렇게도 비천하며、죄 많은 자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가 천주께 두려움을 품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신뢰와 애정을 획득하시려고 

천주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자비하신 아버지시라는 것을 

성경 안에 끊임없이 거듭 말씀하신다。」(코린토전서1.3)



p.137


「하늘과 땅에 있는 아버지를 가진 온갖 단체는 

이 다 성부로 말미암아 일컬음을 (=존재와 특징)받으며」(에폐소서3 .15)

아무도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가 아니다。


천주께서는 그 관대(寬大)하심으로써 아버지시며、

그 유화(柔和)한 자애(慈愛)로써 어머니가 되신다。


세상에는 자기망각(自己忘却)과 깊은 애정과 싫증날줄 모르는 자애에 있어、

어머니의 마음에 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따라서 그처럼 신뢰와 위탁을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 밖에는 또 없다。


그런데、

천주께서는 우리에게 있어 가장 선한 어머니보다 무한히 탁월하시다.



「여인이 자기 아이를 잊고、

자기 뱃속에서 난 아들을 가엽게 아니 볼 수 있겠느뇨. 

그 여인들이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겠노라.」(이사야49.15)


「세상을 사랑하시어 당신 독생 성자를 주시기까지 하신」(요왕3 .16)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거절하시겠는가。


천주께서는 참으로 우리보다도 탁월하시게 

우리의 영혼과 육신에 필요한 것을 속속들이 알으신다. 


더구나 기도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다만 충분히 구하지 않는 것만을 책하시며(야고버서1 .5、요왕16.24) 

그리고 빵을 원하는 자기 자녀에게는 결코 돌을 주시는 일이 없으시다。

(루까11. 11) 


만일 우리가 멸망의 구렁에 달려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부득이 엄하게 대하실 적에도、

그 손을 무장(武裝)하시는 것은 사랑의 성심(聖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므로 

그 매의 수를 조절하시고、

그리고 적절한 때를 보시어 우리의 눈물을 씻어주시며、

상처에는 기름을 발라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대한 천주의 사랑을 믿자。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따사로운 성심을 언제나 의심하지 말자。



p,138


우리를 지켜 보시는 분은 우리의 구세주시다。

그이는 우리의 형제보다 탁월하신 분、둘도 없는 친구보다 탁월하신 분이시다。

즉、우리 영혼의 명의(名醫). 우리를 구하시는 주시다。


그이께서 오신 것은、

「세상을 죄에서 구하시고」(마테오1 .21)영혼의 병을 치료하시어、

「우리에게 생명、 더구나 풍성한 생명을 가져오시며」(요왕1..12), 

「세상에 하늘로부터의 불을 놓기」위해서였다. (루까12.49) 


우리를 구원하는 것、그것이 

그이의 천직(天職)이며、그 사명이며、그 존재이유(存在理由)였다。

이 사명의 성취、그것이 그이의 영광이며、그이의 행복이었다。



어찌 우리 일에 무관심하실 수 있겠는가。


그 노고와 굴욕에 충만된 생애、

온통 상처를 입으신 육체、고민에 싸이신 영혼、「갈바리아」도、제단도、

이러한 모든 것은 우리에게 대한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참으로、「그이는 그와 같은 비싼 값으로 우리를 구속하셨다.」(코린토전서 6 . 2.) 

우리가 그이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 않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이 없이는、영원한 멸망의 길을 헤멜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이 자비로우신 구세주에게 아니고 누구에게 신뢰를 둘 것인가。


그 위에 

그이는 우리의 천상정배 (天上淨配)가 아니신가。


누구에게 대하여도 관대(寬大) 하시고 유화(柔和)하시며 자비 깊으신 그이는、

그이에게만 애착하기 위하여 모든 것에서 떠난 사람들을 

특별한 사랑으로써 총애하시고 

그들을 그 감실 곁에 머물게 하시며 

가장 감미로운 친밀한 일치 안에 그들과 함께 살으시기를 

무상의 기쁨으로 여기시는 것이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루카 18,19)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마태 6,9)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마태 1,21)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루카 12,49)





p.139


「드·라·곰롬비에르」신부는 말하고 있다。


「그대들이 만일 고민 안에 잠겨있다면、이것을 생각해 봄이 좋으리다。


즉、그대에게 고민을 주신 분은 

또한 그대에게서 영원한 고민을 제거하시기 위하여 

그 온 생애를 고난 안에서 살으시기를 바라신 분이시다。 


그 천사로 하여금 항상 그대의 곁에 있게 하시어 

그대의 모든 길을 지키도록 명하시는 분、

우리의 제대 위에서、그대틀 위하여 끊임 없이 기도하시고、

하루에도 몇번이나 희생이 되시는 분、

성체성사 안에 그렇게도 광대한 총애를 지니시고、

그대의 마음에 찾아오시는 분은 

그대와 일치하여 그대와 함께 친밀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최상의 기쁨으로 여기시는 분이심을 항상 생각하여라。,,,,,



그러나、그이는 우리를 가혹하게 치시고、

그 손은 내 위에 중압감(重壓感)을 느끼게 하신다고 

우리는 호소할지 모르겠다。,,,,,


그대는、

그대를 위하여 못으로써 뚫리시고、십자가에 못박히신 손을 

어째서 무서워하는가。,,,,,


그이는 나를 가시밭을 걷게 하신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천국에의 길이 다른데 없다면、

그대는 순간적 고통보다도 영원한 파멸을 택하겠는가。 



그대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대에게 앞서 그이가 걸으신 이 같은 길이 아니겠는가。.....


거기에、

그대는 그이께서 성혈(聖血) 로서 물들게 하지 않으신 가시를 

한 그루라도 찾아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그이는 나에게 쓰디쓴 잔을 내민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렇다、

그러나 그대에게 그것을 내미시는 이는 그대의 구세주심을 생각하여라。


그렇게까지 하시어 그대를 사랑하시는 그이는、

특별한 이익을 위해서인가、 

그렇지 않으면 절박한 필요가 없는 한、

그대를 엄히 다루시기를 바라신다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신의에 대한 복종에 관해서의 설교」) 





천주는 지선(至善)하시고 지성(至聖)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작용하시는 것은 모두、

가장 숭고한、가장 자비로 목을 위해서이다。


「그 목적은 유일(唯 一 )하고 또한 항상 유일할 것이다。」

그것은 즉 당신 자신의 영광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주께서는 온갖 것을 당신을 위하여 하셨느니라。」(잠언16.4)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에 관하여 불평을 말해서는 안된다。


왜냐 하면、

이 영광이야말로 우리에게 영원한 환희(歡喜)를 주는 환희(歡喜)이며、

영원한 복락(福樂)을 보증하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p.140


「우주의 목적은 첫째로、

지혜 있는 피조물에게 영원한 복락을 주심으로써、

천주께 영광이 돌려진다는데 있으므로、


둘째로、

모든 사물의 목적은 

적어도 지상(地上)에 있어、구령의 어머니인 가톨릭 교회이다。


지상에 있어서의 모든 일은 전부、박해까지도 

성교회의 최대의 선익(善益) 을 위하여 천주에 의해서 행해지고、

또는 허락되는 것이다。


그리고 성교희 그 자체에 있어 모든 것은 

간선된 이의 선익 (善益)이 되기 위하여 질서가 마련되어 있다。


왜냐 하면 

천주의 영광은 지상에 있어 인간의 영원한 구령과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당연히 셋째로、

지상에 야기되는 모든 변동과 혁명과의 일정하고 불변한 종점(終點) 은 

간선된 이가 영원한 목적에 달한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젠가 천국에서、

어떤 나라 전체가 동요한 것은、간선된 몇몇 사람을 위한 것이었음을 

미구에 알게 되리라。


천주께서 어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여 

그들에게 있어、

만족하시겠다는 유일한 목적으로 온세계률 지배하신다는 것을 보는 것은 

감탄할 일이 아니겠는가。」(「드슈르몽」신부、「섭리」三장)


그러므로 천주의 뜻은 우리의 영혼의 성화(聖化)에 있다。(테살로니까 (전서4 . 3)



p.141


우주의 어떤 점에 있어서도、

천주께서 이것말고 다른 일에 관여하신다는 것은 

일각이라도 찾아낼 수 없다。


여러 국민과 가족과 개인을 여러가지로 동요시키는 

대소 (大小)일체의 사변(事.變)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천주께서 오늘、

내가 병에 걸리고、사람들로부터 반대(反對)、치욕(恥辱)을 받거나 망각되는 것、

또는 어느 때에는 행운(幸運)을 만나며, 

어느 때에는 곤경에 부딪치는 것등을 허락하시고、

'이 악표양의 돌에 부딪치게 하며、저 유혹에 괴롭히시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천주의 일체의 행동을 규정(規定)하는 것은 그 사랑이며、

나의 최대의 선익(善益)에 대한 원의(願音心)시다


만일 우리가 천주의 이 자비의 길을 잘 깨닫는다면、

얼마나한 신뢰와 온순(溫順)함으로써 그 하시는 바에 맡겨 버려、

그 의지에 응답할 것인가。


천주께서 자애로우시기 때문에 

끊임 없이 아버지로서의 그 무한한 능력과 그르칠 수 없는 예지(叡知)룰 사용하시는 이상 

더욱 그러하다。



실제、천주께서는 

각 영혼의 각기 목적도、천국에서 누릴 영광의 정도도、영혼에게 주셔야 할 성덕 (聖德) 의 범위도 

모두 알고 계신다. 


또한 영혼이 그 종국에 달하여、완전하게 되기 위하여 

어떠한 시련을 겪으며、어떠한 치욕을 감수하여야 되는지 모두 알으신다。


우리의 생애의 올을 이루는 무수한 일의 실마리를 섭리의 손은 잡으시어、

만사를 그 바라시는 종국에로 이끄신다。 


그런 것을 처리하시는 천주의 편에는 

무엇 하나 광명, 예지, 은총, 사랑, 구원의 연장(道具)이 아닌 것은 없다。


그런데、천주께서는 무한이 강력(强力)하신 분이시므로、

바라시는 것은 모두 이것을 행하실 수 있으시다. 



천주께서는 우리의 주시며、생사지권(生死之權)을 장악하시고、 

우리를 죽음의 입구에 인도하시는 것도 다시 거기에서 데려나오시는 것도、

천주의 뜻대로 이루어진다。(지서16.13)


인생에는 허다한 암흑도 있는가 하면、광명도 있고、

무사평온(無事平穩) 한 때가 있는가 하면、고뇌(苦惱)의 때도 있으며、

화복(禍福)은 상반(相伴)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천주에게서 나오고、

그 최상의 주권(主權) 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하나인들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이사야서45.7)


천주께서는 모든 것을 그 자유로운 계획에 따라 행하시며(에페소서 1 .11)、

일단 「이스라엘」을 구하려고 결정하신 후에는、

그 의지에 거스르는 이는 한 사람도 없으며(에스텔13. 9)、

그 계획을 바꾸게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욥23.13)


주를 거스른다면、예지(叡智)도、현명(賢明)도、고려(考慮)의 깊이도 없다。

(잠언21.3.)


p.142


물론、천주께서는 이성(理性) 이 있는 인간을 처리함에 있어 

그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존중하실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사람은 자기의 의지를 천주의 의지에 대항(對抗)시켜、

천주의 의지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만、


그러나 실제는、

어떤 이의 반항도、다른 이의 순명도 영원으로부터 알고 계시는 천주께서는 

그러한 모든 것을 고려에 넣으시어、계획을 세우셨다。 


천주께서는 그 전능하신 예지의 무진장한 자원(資源) 안에、

여러가지 장애(障碍) 도、

지옥과 인간이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간계(奸計) 도、

우리의 선익 (善益)에로 가장 쉬이 바꿀 수 있는 수단을 찾아내신다. 


주께서는 「이사야」예언에서、

「내 계획은 서고、내가 원하는 바는 다 내가 행하노라」(이사야46.1.) 

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비록 우리가 어떻게 하든、

천주의 의지는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


즉、천주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 로써 행동하기를 허락하시지만 

그러나 훗날 각자의 행위에 맞갖게 보답하신다。


우리는 천주의 계획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어떠한 수단을 사용하여도、

천주께서는 그것도 같은 계획의 성취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하신다.


p.143


「그러한 까닭임을 안다면、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하시려고 바라실만큼 자애에 풍부하시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선의 방법을 갖추시는데 그렇게도 지혜로우시게、

그 적용에 있어서는 그렇게도 현명하게、

바라시는 것엔 그렇게도 인자로이、

명하시는 것엔 그렇게도 총명하게、

실행에 있어서는 그렇게도 신중하신, 

성부의 자녀인 우리에게 희망해서 안될 것이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

(「신애론」四편 八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