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위탁

35 p.166-181 제 2편 제 6장

은가루리나 2018. 6. 16. 13:44

p제2편 거룩한 위탁과 기초


제1장 이탈

제2장 섭리에 대한 신앙 ②③④

제3장 섭리에 대한 신뢰 

제4장 신뢰 계속 - 難問에 대한 해답

제5장 천주께 대한 사랑 

제6장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②③

제7장 성주(聖主)의 모범(模範) ①② 



p.175



제二편 거룩한 위탁(委託)의 기초(基礎)


七장 성주(聖主)의 모범(模範) ① 




느 영혼이 주께 대한 사랑에 불타오르고 있을 적에는、

그 지극히 사랑하올 스승의 모범처럼 이 영혼을 

위탁의 길에 나아가게 하는 것은 없다。


그에게 있어 천주는 가장 기쁜 분이시며、

그는 오직 주만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하며 

 결과 무슨 일이거나 주를 모방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런데 주의 온 생애는 순명과 위탁 그 자체 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주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은 「게」주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첫째로 성부를 위해서였다。


그 경신덕(敬神德)의 전체의 대상(對象)도、그 희생의 목표도、

오직 성부였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성부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부여, 나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왔나이다라고. 


그러나、주께서 내림하신 것은 

거룩한 교훈을 말씀하시고、일하시며、

고통을 당하시고、죽으시며、지옥을 정복하시고、교회를 세우시며、

십자가로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셨던가。



그렇다、주의 사명은 확실히 거기에 있었다。

주께서는 그것을 알고 계셨다。


즉 눈을 뜨시자마자 모든 것을 전망(展望)하시고 

그 성심(聖心)은 즉시 그것을 포옹하셨다。


주께서는 모든 것을 

그 최후의 한 점、한 획(劃)까지도 성취하시기를 바라셨으며、

더구나 진실과 사랑과 효과에 충만한 의지로써 이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 그러한 모든 것을 바라신 것은、

그것이 성부의 영원한 의지였기 때문이다。


의지만이 주를 움직이고 결심케 하였다。


다른 모든 일을 바라보시면서도, 

주께서 주시(注視)하신 것은 이 의지 위에 뿐이며、

주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 의지에 관해서 뿐이며、

따르려 하신 것도 이 의지 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성부의 의지야말로, 주에게 있어 모든 것이며 

시작과 끝, 원리(原理)와 광명(光明.)、지탱과 안식、양식과 보답이시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이 의지에 자신을 굳게 밀착시키시고 귀속(歸屬)시켜 들어박히셨다。


그리고 후일 

그처럼 많은 탁월한、감탄스러운 초인간적(超人間的)인 사업을 성취하셨어도、

단지 어린 아이라도 모방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극히 간단한 일、

즉 성부의 의지를 행하시고 남김없이 자신을 그것에 바쳐、

완전한 위탁 안에서 그것에 살으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

(「게」주교 「위탁」 서문 및 一)



p.176


이 순명과 위탁은 성부께 대한 주의 사랑에 그 원천(源泉)을 두고 있다。

그것은 사랑의 충실이므로 또한 위탁의 충만이다。


즉 그것은 효애(孝愛)와 신뢰(信賴)와 무사(無私)와 관대(寬大)에 충만한 

아낌없는 사랑이다。 


그것은 또한 

그 거룩한 인성(人性)에 있어 받으신 모든 은혜에 대한 감사에 넘치는 사랑이며 

열심과 헌신(獻身)과 겸손에 충만한 사랑이다。


주는 온 세계의 죄를 짊어지신 희생으로서 

모든 벌을 당연히 받아야 할 자 성부의 영광을 회복하고 방황하는 자녀들、

더구나 그처럼 인자로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성부 앞에 되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난도 과중(過重)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셨다。





주의 사랑은 효애(孝愛)이며 더구나 항상 어린이로서의 사랑이었다



「우리의 주 예수、천주의 영원한 성자、성부와 마찬가지로 

참 천주신 예수께서도 

인성에 있어서는、항상 한 어린이 외에 다른 이가 아니셨다。


우리의 눈에까지 주께서 최초에 보이시려고 하신 것은 

이런 상태에서이다。 


그러나 천주 성부의 눈에、천주성(天主性)의 눈에、

당신의 천주성의 눈에까지도 

주께서는 항상 어린이시며、어디까지나 어린이심을 그치지 않으셨다。


이 인성(人性)은 모든 것을 지배하시며、 

『세라핌』등은 그 발에 친구하며、

 우주는 의당 그 인성을 자기 최상의 지배자、 주권자(主權者)로 흠숭한다。


제왕(諸王)은 그 신하(臣下)이며、

모든 국민은 그 소유이고、

천사들은 그 사자(使者)다。


천주 자신이 왕이신 것과 같이 이 인성도 또한 왕이시다。


더구나、그러면서도、

인성은 결국 한 어린이、하루、한 시간의 어린이、

자기 혼자서는 생각할 수도、말할 수도、움직일 수도 없는 

한 영아(嬰兒)에 불과했다고 나는 말한다. 


어머니의 품에 안기고、그 팔로 옮겨지며、

그 아버지시고 어머니신 천주성의 권리와 의지와 뜻과 

말할 나위 없는 미소와 비할 바 없는 애무(愛撫)와 

무한한 사랑에 맡겨진 한 유아(幼兒)였다。



위탁에 사는 영혼이 모방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천주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시는 이상、

이 성부께 대하여 우리의 나이、키、태도는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비록 우리가 성베드루』、또는 성바오로』 

혹 다른 성덕 (聖德)의 거인(巨人) 중 한 사람일지라도 

천주의 어전에는 과연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게」 주교 「위탁」二)



만일 우리가 주의 생애의 가장 세밀한 점에까지 밟아갈 수 있다면、

도처에서 유아(幼兒)와 같은 사랑과 신뢰와 온순과 위탁을 발견하리라。



p.177


이제 성「프란치스꼬· 살레시오」의 말을 인용하여 

몇가지 보기를 들기로 한다。



「말구유에 누워계신 가련한 아기를 보아라。


그 아기는 가난함、알몸뚱이 동물의 동료、

천후(天候)의 모든 해(害)、추위 

또는 성부께서 그이 위에 도래할 것을 허락하신 모든 것을 감수하셨다。


그 아기가 어머니의 유방(乳房)에 매달리려고 손을 뻗혔다고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어머니가 주는 섬세한 위안을 거절하지 않으셨다。


그 아기는 성요셉』의 시중과 삼왕(三王)과 목동의 예배를 받으셨지만、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을 무관심으로써 받으셨다。 


그와 같이 우리는 아무 것도 스스로 바라지 않고 아무 것도 거절하지 않으며 

도리어 천주의 섭리가 우리 위에 도래하도록 허락하시는 모든 것을 

같은 태도로 참고 또한 받아야 한다 .」(「대화편」一二) 



p.178


「만일 누군가가、

성모의 품에 안기신 온화하신 어린 예수를 향하여 어디로 가시느냐고 

묻는다면 

그이는 반드시 이렇게 대답하시리라。


내가 가는 것이 아니고、어머니가 대신 가신다』라고。


그리고 또한、

그렇지만 당신께서는 적어도 어머니와 같이 가시지 않으십니까라고 

묻는다、

당연히 다음과 같이 대답하시리라。


아니다、나는 조금도 걸을 수 없다. 

비록 내가、어머니가 데리고 가는대로 간다 할지라도、

나의 다리로 가는 것이 아니고、어머니의 다리로 가는 것이다。


나의 인자하신 어머니는 나를 위하여 걸어가시는 것처럼、

어머니는 또한 나를 위하여 바라신다。


가는 걱정도 바랄 걱정도、마찬가지로 나는 어머니에게 맡기고 있다。

나는 가는 것이나 돌아오는 것에 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으며、

단지 어머니의 의지만이 어머니에게 있어서나、나에게 있어서도 충분하다。


나는 어머니가 빨리 가시거나、느리게 가시거나、

또는 오른쪽으로 가시든지、왼쪽으로 가시든지 조금도 유념하지 않으며 

어디에 가시느냐고 묻지도 않고、언제나 그 품에 안겨、

그 가장 사랑스러운 목에 매달려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다』」라고。

(「신애론」九편 一四장)




영원한 예지시고、또한 만사를 온전히 알으시는 주께서는 

「에집트」에 피난하시게 되었을 적에 

성「요셉」에게도、가장 인자하신 성모에게도、

장래의 일에 관해서 아무 것도 알리지 않으셨다。


또한 강생(降生)의 현의(玄義)를 알릴 사자(使者)로서、

따라서 성가정(聖家庭)의 전적인 관리인(管理人)과 같이 되어、

모든 일을 배려하기 위하여 영원한 성부로부터 파견된 

대천사 「가별」의 임무에 관해서 

당신께서는 아무 것도 하시기를 바라지 않으셨다。


이 전능하시고 마음이 유화 겸손하신 유아(幼兒) 는 

어디에서나、누구에게나 바라는대로 옮겨지도록 맡기셨다. 


이 천사는 위엄이 높으신 천주신 당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지식도 예지도 훨씬 열등함에도 불구하고、

어린 예수님은 당신을 솔직하게 그 손에 맡기셨다



p.179


「주께서 에집트』에 있어、성 요셉』의 일터에 있어、

그 훔숭할 三○년 동안의 사생활에서 때때로 십자가를 손수 만드시어」

그것을 당신의 벗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어떤 관상가(觀想家)는 생각하였는데, 

주께서 하시는 방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성부와 성교희와 사람들의 영혼에 대한 열애에 불타오르시어、

「주는 사랑의 무수한 고뇌를 지니시며 피의 세례를 받으실 때를 바라보시고、

그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하시기 위하여 

그날이 오기까지 그것을 동경하고 기다리셨다。」 



그러나、주께서 「오리와」동산에 들어가셨을 적에는、

가장 혹심한 공포와 혐오(嫌惡)에 사로잡혀、


「그것을 면할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대한 사랑때문에 자진하여 몸에 그것을 느끼셨다。


고뇌는 그에게 죽음의 공포를 주고、

사랑은 그에게 그것을 극도로 바라게 하여 

이로써 죽음에 대한 원망(願望)과 공포 사이에 가장 맹렬한 싸움、

잔혹(殘酷)한 최후의 고민이 일어나 

성혈은 온몸에서 샘물처럼 땅에 홀러 내릴 정도였다。」 


그러나、주께서는 사랑에 충만된 위탁의 마음에서、

「아버지시여、내 원의대로 말으시고 오직 네 원의대로 하소서」라고 

되풀이 하시기를 그치지 않으셨다。 


따라서 

주께서는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려는 무리의 뜻대로 잡히시고、

가혹한 대우를 받으셨으며、끌려다니시고、

그 육체와 생명을 감탄할만한 태도로 그들의 손에 맡기셨다。


마찬가지로 그 영혼과 의지를 

극히 완전한 무관심으로써 영원한 성부의 손에 맡기신 것이다。」



p.180


그러나 그에 앞서、

「성부께 대한 사랑과 순명에 의하여 모든 것에서 이탈하신 후에、

마치 성부에게서 떠나고 버림을 받으신 것처럼 되셨을 적에 

가장 두려운 최고도의 고뇌가 주를 십자가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뇌의 격류(激流)가 

그 일엽편주(一葉片舟)를 황막(荒漠)한 비애의 대해(大海)에 

옮겨가 버렸을 적에、

주께서는 그 나침반의 바늘이 성부 쪽을 가르키고 있을 뿐 아니라、

성부와 불가분(不可分)의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간신히 느끼셨지만、 

그러나、영혼의 하부(下部)는 그것을 조금도 모르고 인식하지 않았다。


그것은 천주의 인자하심이 다른 어떤 영혼에게도 일찌기 주지 않으셨던、

또한 주시지 않으실 정도의 시련이었다。


왜냐 하면、다른 영혼은 그것에 견디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통이 극도에 이르렀을 적에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한 무엇을 할 것인지 우리에게 드러내시기 위하여 

주께서는 성부께 향하여 어린이 마음에서 

「나의 천주여、나의 천주여、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외치셨다。


그러나 즉시 전력을 다하여、가장 사랑에 충만된 복종으로써、

「성부여、내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라고 덧붙이셨다。


이와 같이 하여 주께서는、

「사랑 안에서 사랑으로써、사랑을 위하여 사랑으로써 죽으시면서」 

성부와 우리에게 그 사랑의 최대의 증거를 드러내셨다。


이와 동시에 주께서는、

우리의 고뇌가 극도에 이르렀을 때、

영적고뇌(靈的苦惱)의 경련(瘦攀)이 

우리에게서 다른 모든 완화(緩和)와 저항(抵抗)의 수단을 앗아 버리셨을 때에、

우리의 정신을 우리의 참 아버지신 분의 손에 맡겨

그리고 그 뜻에 동의(同意)의 고개를 숙이고 

우리의 의지 전체를 그 손에 넘길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신애론」九편 一 二、一五장、一○편 一七 장과 그밖의 저서에서)



p.181


이 유아와 같은 끊임없는 위탁의 태도를 

주께서는 모든 종류의 시련에 부딪치게 하셨다。


왜냐 하면、

「주께서는 그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유례(類例)가 없을만큼 고통을 받으시고、

천주와 사람과의 엄위를 범한 범죄자로서 선고되셨으며、

구타를 당하시고、채찍질을 당하셨으며、

우롱을 당하시고、보기 드문 굴욕의 책벌을 받으시고、


자연의 육체적 생활에 있어서는、

누구도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참혹한 가장 통절히 느껴지는 고뇌 가운데 죽으셨으며、


그 영혼의 생활에 있어서는 전에도 후에도 그 유례를 볼 수 없을 정도의 

마음의 비애、공포、경악(驚愕)、고민(苦悶), 유기(遺棄)、압박 등을 

참으셨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께서는 이러한 모든 것을 자진하여 받으셨다。


「물론、주께서는 영혼의 최상부(最上部)는、

원한 영광을 더할 나위 없이 누리셨다고는 하지만、

사랑은 이 영광의 기쁨이 감정에도、상상에도、

하부(下部)의 이성(理性)에도 이르기를 방해하고 

그럼으로써 

성심의 전체가 비애와 고민에 사로잡히는대로 맡기고 계셨던 것이다。」

(「신애론 九편 五장)


그처럼 주께서는 자연계와 초자연계와의 무수한 시련을 

관대한 마음으로 

조금도 싫어하지 않으시고 수락하는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이러한 시련에 관해서는 아래에 간단히 언급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