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30 p.149-156 제 2편 제 4장 신뢰 계속 - 難問에 대한 해답 ②

은가루리나 2018. 5. 11. 23:46


제2편 거룩한 위탁과 기초


제1장 이탈

제2장 섭리에 대한 신앙 ②③④

제3장 섭리에 대한 신뢰 

제4장 신뢰 계속 - 難問에 대한 해답 

제5장 천주께 대한 사랑

제6장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제7장 聖主에 대한 모범



p.149



제二편 거룩한 위탁(委託)의 기초(基礎)


제四장 신뢰(信賴) -계속。난문(難問)에 대한 해답(解答) 



① 마지막


여하튼 

만사를 완전히 배합(配合)하시는 천주의 예지(數智)를 흠숭하자。


이 천주의 예지는 장애(障碍)까지도、수단으로 사용하시고、

또한 허락하시는 해악(害惡)에서、원하시는 불변의 선(善) 

즉 성부의 영광이 되는 성교희와 사람들의 영혼의 진보발전을 

꼭 항상 거기에서 이끌어 내신다는 것을 

깊이 확신하여야 한다。


따라서、우리가 만일 만사를 천주의 영광에 비추어 바라본다면、

이 세상에서는、

흔히 불행은 불행이 아니며、행복은 행복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실제、

섭리의 타격(打擊)인 불행도 있고 벌(罰)이 되는 성공도 있다。


이제 무수한 보기 가운데서 몇을 들어、

이러한 진리를 될 수 있는대로 명백히 해 보자。


(지난번에 여기가지 봤어요)



p.149


천주께서는 「아브라함」을 커다란 민족의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종족(種族)에 있어 모든 나라들을 축복하실 뜻을 스스로 약속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후 약속하신 아들을 희생으로 바칠 것을 명하셨다


천주께서는 그 말씀을 잊으셨겠는가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천주께서는 그 종의 신앙을 시험하시려고 생각하셨던 것이며、

그 후 적당한 때에 그의 팔을 멈추게 하셨다。



천주께서는 또한

「파라오」의 영토를 「요셉」에게 통치시키시려는 생각에서、

우선 「요셉」을 형제의 악의(惡意)에 맡기셨다。


어린「요셉」은 가엽게도 우물 속에 던져지고、

「에집트」에 연행 되어 노예로 팔렸으며、

드디어 옥에서 몇년을 비참하게 지냈다。


만사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거기에、그를 그 영광의 운명에 이끄시는 천주의 손이 있었다。 



또한 저 「제데온」은 조국을 「마디안」인의 압제에서 구출하기 위하여 

기적적으로 천주께 간택되었다。 


그는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잡병(雜兵)을 모았지만、

그 수는 겨우 적군의 四분의 一 에 불과하였다。


더구나 주께서는 그의 병력을 증가시키기는커녕、

거의 전부를 귀환(歸還)시키시어、

겨우 三백명만을 남게 하시고、

이에 나팔과 단지에 든 등불로 무장시켜 인솔케 하셨다。


그것은 싸움터에 나간다기보다는 도살장에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형편 없는 군대로써 

주께서는 놀랍게도 결정적인 승리를 당신의 백성에게 거두게 하셨다。


구약의 보기는 이정도로 그치겠다。




성지주일날에 있어서의 대환영(大歡迎) 후에、

주께서는 배반을 당하시고、체포되셨으며、

버림을 받으시고 배반되셨으며、

재판을 받으시고 유죄선고를 받으셨으며、

뺨을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며、

명성은 온전히 땅에 떨어져 버렸다。


이렇게 하여 천주 성부께서는 

성자에의 후예로서 여러 국민을 확보하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옥은 개가(凱歌)를 올리고、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간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반대로 

구원(救援)은 바로 이것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강한 이를 거꾸러뜨리시기 위하여、예수께서는 약한 이를 간택하셨다。


그이가 세계정복(世界征服)의 길에 오르심에 있어 이끌고 가신 이는、

무식하고 권위가 없는 열두 어부였다。


그들은 전연 보잘것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행동하셨다。



또한 三세기 동안이나、

성교회위에 박해의 폭풍이 미쳐 날뛰는대로 버려두셨다。 


그리고、당신의 예언적인 말씀에 따라서 박해는 그칠줄 몰랐다。p.150



그러나 박해는 성교희를 전복시키기는커녕、

도리어 이것을 쇄신(刷新)시키고、

그리고 순교자의 피는 오늘에 있어서도 신자의 씨가 되었다。


불신(不信)한 철학자나、

이론(理論)을 좋아하는 이단(異端)의 창도자(唱導者)들은、

하늘의 별을 없애려고 덤비지만 

신앙이 더욱 명확하게 되고、 더욱 빛나는 것이 되는 것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모든 왕과 모든 국민은、

주와 그 성교회가 그들의 참된 지지자(支持者)임에도 불구하고 

몸부림치며 이에 반역(反逆)한다。



그러나 항상 승리자이신 「목수의 아들 갈릴레아 사람」은、

정해진 순간에 그 박해자들을 무덤에 갇히게 하시고、

그 심판 마당에 그들을 소환(召喚)하신다。


세상은 

그칠줄 모르는 허다한 변동의 소용돌이 안에 말려 들어가고 있는 동안、

십자가는 옥좌(玉座)와 여러 국민의 폐허(廢虛)위에 으젓하게 

확고부동(確固不動)한 자세로 드높이 솟아 있다。


p.151


그리고 또한 천주께서는 어떤 국민을 구출하고、군중을 움직이시며

각가지 수도단체를 창립시키기 의하여 역시 독특한、

상상도 미치지 못하는 각가지 방법을 선택하신다。


「프랑스」왕국이 촌망(存亡)의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이를 전멸(全滅)의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하여 

천주께서는 강력한 군대로써가 아니라、

가련한 양을 치는 한 소녀를 택하셨다。


「오를레앙」의 겹친 포위를 뚫고、

개선 환희 가운데 왕을 「프랑스」에 안내하여、

거기에서 왕위에 오르게 한 것은 

실로 이 나약한 연장으로 하셨다。



현대에 있어서도 

천주께서는 가장 겸손한 촌의 한 사제에 불과한、

그 성덕을 빼놓는다면、무엇 하나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아르스」의 주임사제 「비안네」의 소리에 의해서 

몇 나라를 움직이셨다。



p.151


우리 수도회(「시또」수도회)의 창립은、천주의 뜻에 의한 것이다。


천주께서는 그 때문에 우선 세 성인을 일으키시어、

가장 풍성한 축복을 본회를 위하여 준비하셨는데、

럼에도 불구하고 

박해는 「모렘」의 우리 선배들 위에 덮치고、

「시또」에까지 추궁의 손을 뻗혔다。


성 「로빨도」는 순명으로써 

그 미완성된 사업을 부득이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 「알베리꼬」는、시작한 전 기간 중、 성「스테파노」는 몇년 동안 

거의 한 사람의 지원자도 얻을 수 없었다。


그에 덧붙여 

죽음은 그 황폐(荒廢)의 위세를 휘두르고、

악역(惡疫)은 이 작은 집단의 반을 앗아 갔다。 


살아남은 이는、과연 후계자가 있을 것인가、

또한 그들의 사업은 자기들과 멸망해 버리지나 않을 것인가 하고 

불안스럽게 자문(自問)하였다。


그러면 천주의 섭리는 

그들의 거룩한 계획을 수포로 들아가게 하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니、도리어 섭리는 그 성공을 확인하셨는데、

그것을 당신의 특유한 방법으로 이룩하셨다 . 


즉、천주께서는 창립자들의 성화(聖化)를 완성하시고 

회칙(會則)의 모든 점을 다시 엄격히 지키게 하시어、

수업 (修業)과 내적생활(內的生活)」을 근본적으로 확립시키셨다。


벌집이 일단 갖추어지자、꿀벌은 떼를 지어 거기에 모여 왔다。

(「시또」 「소 창립기」 一 장 및 「시또」 「대 창립기」 一편 一○장 둥 참조)



p.152


천주께서는 성녀 「마리아·막달레나、보스텔」에게 

많은 고난 가운데 

「구땅스」교구 안에서 가장 유명하게 될 수도회를 창립할 것을 

계시하셨다。


그런데 30년 동안이 천주께서는 

다만 그 성공을 방해하시는 일밖에는 하지 않으시는 것 같이 보였다。


「그가 암흑의 길에 인도되어 모든 시련에 부딪치고、

각가지 사건에 방해를 받으며、

몇번이고 불성공(不成功)의 시련을 겪고 있음을」 

세상 사람들은 목격하였다。


천주께서 모두 그 약속을 잊으셨겠는가。

아니다、바로 그 정반대(正反對)였다。


천주께서는 창립자를 가장 탁월한 성덕(聖德)에 높이시고、

태어나려는 수도회 안에 영구히 

이것을 생활케 할 정신을 뿌리 깊이 심어서、

이로써 그 약속의 완전한 실현을 확증하셨던 것이다。




유명한 속죄회(讀罪會)의 창립자 성 「알퐁소·드·리고리오」는 

만년에、두 사람의 회원으로부터 부당하게도 교황 앞에 고발되었다。


그는 유죄로 선고되고、총장직에서 파면되었으며 

자신이 창립한 수도회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고민에 부딪쳤다。


그러나、그는 

교육수도희(敎育修道 會)의 창립자 성「요셉·드·말라상시오」의 전기에서、

이 창립자가 자기와 마찬가지로 박해를 당하고、

그 수도원으로부터 추방되었으며、

수도회는 교황청의 명에 의하여 한때 폐지되었고 

그러나 후에 재건(再建)되었다는 것을 읽고 자신을 격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 「알퐁소」는、

천주께서 그의 수도회가 「나폴리」왕국 안에 있음을 바라셨으므로、

거기에서 수도회를 유지하고 그리고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을 적에、

「나자로」와 같이 수도회는 다시 생명에 충만되어

무덤으로부터 소생할 것임을 예언하였다。 p.153


「천주께서는 교황 영토 안에 수도원을 번창시키려고 

수도희의 분열(分裂)을 허용하신 것이다」 라고 그는 말하였다。



실제 

이 거룩한 노인이 굴욕과 고민의 쓰디쓴 잔을 남김 없이 마셨을 때、

가장 불요불굴(不燒不屈)의 인내로써 순교를 마쳤을 때에、

그 순교의 원인(原因)이었던 분열이 

마치 마술에라도 걸린 것처럼 종말을 고하고、

그 수도회는 전에 없었던 속도로 번창하여 각국에 그 가지를 뻗혔다。


이렇게 하여、

그의 수도회를 파멸시킬 줄 생각되었던、무서운 폭풍우는 

그 회를 전세계에 넓히게 하였고、

동시에 창립자 자신을 성덕의 절정에까지 이끌어 올리기 위하여 

천주께서 택하신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성인의 예언과 같이、

그 박해자들은 분열의 종식(終熄)을 가장 열심히 기원하는 날이 왔다。


순식간의 성공은 그처럼 그들을 당황케 하였고、

그 생애를 낙담과 후회로 충만시켰던 것이다。

(「베르뜨」신부 성「알동소·드·리 고리오」전 六권 ,二, 三 장)



개인의 성화(聖化)에 관하여 고찰하드라도、

천주께서는 항상 이와 같은 엄격한 수단을、

때로는 전연 빗나가는 것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신다



우리의 성인 「벨라도」는、

온전히 천주로 충만되어 있는 적막(寂寞)함을 정열적으로 사랑하여 

「그 행복한 고독은、그에게 있어 유일한 지복(至福)이었다。」 


그는 오직 한가지 일、

즉 이 고독 안에 여생을 보내는 은혜만을 주께 간구하였다。


아、그러나 천주의 뜻은 

몇번이고 수도원 내의 경건한 수업(修業)에서 그를 납치(拉致)하시어 

싫어하고 있는 세속의 한복판에 그 서원(誓願)과는 거의 무관계한、

더구나 천주 안에 안식한다는 원의에 거스르는 

무수한 시끄러운 세속사(世俗事)의 소용돌이 안에 던지셨다。


그는 이미 지극히 사랑하는 분에게도、

자신의 영혼에도、형제들에게도 자신을 온전히 바칠 수는 없었다。


그는 그 때문에 불안해 마지 않았다。 p,154



「나의 생활은 지극히 기괴(奇怪)한 것이어서 

양심은 번민에 가득 차 있다. 

나는 온전히 시대의 괴물(怪物)과도 같다。

나의 생활은、성직자라고도 속인(俗人)이라고도 할 수 없다。


물론 복장으로 본다면 수도자지만、

이미 오랜 동안 수도자의 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


아、주여、 죽는다는 것、그렇지만 형제들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오히려 나에게 있어 좋은 일이로소이다.라고 그는 외쳤다。


그러나、천주께서는 이 기도를、

적어도 이런 모양에 있어서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 때문에 천주는 찬미되어야 한다。



왜냐 하면 후에 성인은、

「여러 교황에게는 탁월한 의견을 주었으며、

왕후(王侯)를 화목시키고、

민중을 회심(回心)시켰으며、

이교(離敎)를 종식(終熄)시키고、

이단(異端)을 넘어뜨렸으며、

십자군을 격려하였기」때문이다。


그와 같은 놀라운 활동과、승리 안에서도 그는 항상 겸손하며、

내적 고독을 유지하는 법을 알았으며、

완전한 수도자가 갖추어야 할 모든 덕을 몸에 지니고、

또한 허다한 제자들을 이끌고 수도원에 돌아 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는 그 세기의 괴물이기는커녕、실로 시대의 경이(驚異)의 대상이었다·



과중한 공무를 집행함에 있어 성 「베드루·철레스띠노」교황은、

가장 사랑하는 고독을 갈망해 마지 않았으며、

그것을 되찾기 위하여 교황위를 자진하여 사임하였다。


주께서는 그에게 이 고독을 돌려 주셨지만、

그러나 그가 예기했던 것과는 전연 다른 방법에 의해서였다。


왜냐하면 감옥에 갇히는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는 혼잣말로 속삭였다·


「베드루여、

네가 그처럼 열망한 고독과、침묵과、독방(獨房)과、담장과 어두움을、

이 좁은、그러나 행복한 감옥 안에서 발견하고 있다。


너는 항상 천주를 찬미함이 좋으리라. 


그것은、천주께서 네 영혼의 원망(願望)을 

네가 기도(企圖)한 것보다 훨씬 확실하고、

그리고 그 거룩하신 마음에 더욱 맞갖은 방법으로 

충족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천주께서는 네가 바라는대로가 아니고、

당신이 바라시는대로. 섬기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성 프랑치스코·살레시오의 정신」八장 一九절)


p.155


「빵뻘륜」의 요새에서 부상한 「로욜라」의 기사 「이냐시오」는、

자신의 장래는 파멸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마치 천주께서는 그를 거기에서 대기하시어、

이 행복한 사건에 의하여、

거기에서 미구에 「예수회」가 탄생하게 되어 있는 

감탄스러운 회심(回心)에로 그를 인도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우리를 치유하시기 위하여、천주의 손은、

날마다 우리들에게 상처를 주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죽음으로 우리의 계획을 빗나가게 하시고, 

의지하고 있던 사람들을 우리에게서 앗아 가신다。


믿기 어려운 보고(報告)는 우리의 의도나 행동을 곡해시키고、

그 때문에 우리에게 대한 장상의 신임은、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 타락해 버린다。


내심(內心)의 고통은 더해가고 

건강은 쇠퇴되며、

안에는 각가지 곤란이 떼지어 일어나고、

밖에는 끊임 없이 협박이 머리 위에 걸려 있다。


그 때 우리는 주를 향하여 부르짖지만、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마 우리들은、시련을 멀리하기를 주께 기구하리라。 


그런데、유화하시고 사랑에 충만하시지만、

우리보다는 무한히 현명하신 천주 성부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우리의 참된 선익(善益)과 일치하지 않을 적에는、

이것을 들어주실만큼 잔인한 동정은 갖지 않으신다。


주께서는 우리를 십자가 위에 머물러 두시어、

거기에서 보다 완전하게 자신에게 죽는 것、

신앙과 사랑과 위탁과 참된 성덕과의 새로운 수액(樹液)을 

거기에서 퍼 마시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것을 오히려 좋아하신다。



p.156


요컨대、

천주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결코 의심해서는 안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예지와 전능을 낙심하지 말고 굳게 믿자。


비록 어려움이 아무리 많드라도、

사건(事件)이 아무리 위협하는 것이라도、

기도하며 현덕(賢德)이 명하는 바를 수행하고、

그리고 천주께서 시련을 바라신다면、 

미리 이것을 수락(受諾)하고、

신뢰로써 자신을 착한 스승에게 맡기자



이로써、만사는 남김 없이 우리 영혼의 이익이 되리라。

장애 (障碍) 중의 장애、

우리에 대한 천주의 사랑의 계획을 방해할 수 있는 유일한 장애는 

우리의 신뢰와 복종의 부족이다。


왜냐 하면、천주께서는 

우리의 자유를 속박하시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반항하여、

그 자애로우신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한다면、

천주께서는 어디까지나 정의(正義)의 날에 있어 

최후의 말씀을 내리실 수 있으시며、

결국 만사는 그 영광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천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바라신 것보다 

풍성한 선익(善益)을 잃은 것이 되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