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효선리나 등급변경▼ 조회 93 추천 0 2016.05.16. 14:18
02. 윤홍식의 산상수훈 강의 중 - 무지의 구름 (중세의 관상기도, 향심기도)_윤홍식
자~ 그러니까 지금 이 올바른 기도하는 요령이요.
가톨릭에서 중시하는 책인데 중세영국의 신비주의자가 썼습니다
정말 묵상 관상의 대가가 쓰신 거에요.
자기 이름도 안 밝혔어요. 무명씨에요.
이게 엄청난 고전이고,
70년대 와가지고 이 기도가 최고의 관상이라고 해가지고
구름의 기도라고 처음에 만들어서 하다가
중심을 향하는 기도라고 해서 향심기도라고 이름을 바꾸어서 합니다.
향심기도의 바이블입니다.
향심은 이 心심 자가 우리 한자에서 심은 센터를 의미해요.
센터 중심. 향심. 중심을 향한 아버지를 향하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이 제목에서 말하는 게 무지의 구름은
모든 생각을 무지에 빠뜨려버리면 그대로 아버지를 만난다는 겁니다.
모세가 구름 속에 들어가서 하느님이 만났거든요.
그거를 가지고 상징으로 쓴 겁니다.
무지의 구름에 들어가시면 여러분 하느님 만납니다.
무지. 어떠한 생각도 내려놓으시고 "몰라"로 존재하시면 아버지랑 바로 만납니다.
이해되시죠?
이 기도를 지금 제가 알기로는 향심기도에서 그대로 하시기보다.
이 여기 중에 이 무지의 기도보다는 뒤에 굳이 해야 된다면 한 음절 정도만 써라.
‘아버지’ 라고 해라.
그거를 지금 향심기도에 주로 쓰는 거로 알고 있어요.
‘아버지’ ‘아버지’ 하다가 아~ 하면서 들어갑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무지를 제일 표방합니다.
바로 들어가는 게 최고다. 몇 구절 읽어드리려고요. 제가.
자~ 보세요. 제가 한번 읽어드릴게요.
[그래서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편으로 치워두고
내가 생각할 수 없는 그것을 내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생각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편으로 치워두겠습니다.
[왜냐고요? 왜냐하면 그 분을 족히 사랑할 수는 있지만
그분을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는 그분을 붙들고 차지할 수는 있지만 생각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어떤 생각도 다 내려놓으세요.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심지어 하느님에 대한 일까지도 다 내려놓으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에 대한 생각까지도 다 내려놔야 됩니다.
왜냐? 그건 내 생각이니까요.
이 책에서 뭐라고 하냐 하면 그건 당신 생각이니까.
하느님에 대한 어떠한 생각도 당신 생각이기 때문에 다 내려놓으시라.
또 보십시오. 아~ 이 말도 멋집니다.
[타오르는 사랑,]
왜 사랑만 남겨두라고 했냐 하면 하느님을 향한 마음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마음은 남겨두되 다른 생각은 다 꺼버리라는 겁니다.
[타오르는 사랑으로 단호하게 열정적으로 모든 그 생각들을 짓밟고 올라가서
그대 위에 드리워진 어둠을 꿰뚫어 보도록 노력해야 된다.]
이 어둠은 무지에요. 모름, 몰라 하는 그 상태에만 머무시면
[간절한 사랑이라는 날카로운 화살로 두꺼운 무지의 구름을 맞추되
결코 포기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또 하나 읽어드릴게요.
이 내용이 너무 다 좋은 내용들인데요.
[그대의 마음이나 의지 안에서는
오직 하느님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작용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하느님이 아닌 어떤 것에 대한 지식과 느낌 일체를 제압하고
망각의 구름, 무지의 구름 아래로 깊숙이 묻어버리십시오.
그대가 이 일에서 그대 자신 이외의 모든 것들뿐만 아니라
그대 자신과 심지어는
그대가 하느님을 위해 해낸 일까지도 모두 잊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떠한 일도 잊어버리셔야 되요.
[그대가 자신에게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그대의 마음과 의지 안에 출현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닌 한은
모조리 싫어하고 질색해 합니다.]
다 몰라 라고 잡아떼셔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무엇이든가 그대와 하나님 사이에 끼어들게 될 것입니다.]
자~ 제가 이거를요, "몰라" 를 한참 지도하다가 작년쯤에 이걸 봤어요.
이 책을 처음보고 놀랬어요.
우리가 쓰는 기법까지 똑같은 거에요. 몰라. 괜찮아 명상이랑. 보십시오.
[관상적인 완덕은 그 자체가 매우 멋지고 철저히 영적이라서
이를 제대로 이행하기만 하면
우리는 어떤 육체적 움직임이나 장소와는 정반대되는
대립개념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뭔 얘기냐 하면 진정한 관상은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냥 초월해 버린다는 겁니다.
이런 시공을 초월해 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왜 이 말을 하냐 하면 우리가 보통 ‘하느님 만난다.’ 그러면
하늘로 한참 올라간다고 생각을 하는 거에요.
그거에 대한 비판하면서 나온 얘깁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게 아니고, 저 하늘에 어디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진짜 하느님은.
이 시공을 그냥 초월할 때 만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변화입니다.
그래서 관상기도는 시간과 장소와 육신에 관한 일체의 것들을 망각해야 합니다.
그것만 망각하면 그대로 만납니다.
이거는 선사로 치면 엄청난 선사가 쓴 글입니다.
자~ 그래서 우리가 뭐라고 합니까?
우리 명상할 때, 몇 시입니까? 모르시죠?
여기 어딥니까? 모르시죠.
몸뚱이? 모르시죠.
여러분 자신까지도 잃어버리라고 했죠.
여러분 이름? 모르시죠.
존재하시죠. 이게 나는 존재할 뿐이다. 하는 겁니다.
이 자리가 성령자리입니다.
보고 듣고 말하는 건 다 그 자리에 의존해서 일어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순수한 참나, 순수한 성령을 만나시면요.
아버지를 만나고, 거기서 힘이 나와서 자선도 베풀고 기도도 하고, 금식도 하고,
다 거기서 하셔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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