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섭내 새 번역본

Re:Re:Re:Re:Re:하섭내 새 번역본 제5장/ 단순(單純)함 | ╂ 오늘의 복음

은가루리나 2018. 7. 8. 16:55

moowee  등급변경▼ 조회 222 추천 0  2017.12.02. 22:46



moowee 17.11.30. 23:23 new         




사실, 제가 <하느님의 性的 정체성>에 대해서
끊지기 여러분께 질문을 드린 이유의 속내는 그것보다
★ 순결 ★ 이라는 덕목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 위하여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순결>이라는 덕목을 생각할 때
<육체적 순결>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난>이라는 덕목을 생각할 때,
<물질적 가난>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순결>이라는 덕목을 생각할 때도 <육제적 순결>만을 생각헤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마 전,
<童貞>에 대한 저와의 대화 도중 이곳을 떠나버린 어떤 하덧사가 생각납니다.

<童貞性>을 자신의 신앙생활의 최고 가치로 여기는 그 자매에게
저는 <童貞에 대한 저의 생각>을 이야기했으나,
그 자매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곳을 떠나간 것입니다.



<童貞>에 대해서도 저의 생각은 마찬가지입니다.
동정을 <육제적 동정>만을 생각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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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 17.12.01. 23:28 new


[칼 라너(1904-1984)


라너는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해서도 숙고했다.
그는 교회가 믿고 있는 마리아의 동정성을 원죄론적 관점보다는 오히려 구원론적 관점에서 이해하려 시도했다.

그에 따르면 마리아의 동정 출산은 구원을 약속하신 하느님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행위다.
마리아는 자신의 몸에 하느님을 받아들여 구원받지 못한 세상에 하느님 구원 은총이 구체적으로 시작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의 동정 출산은 생물학적ㆍ육체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학적ㆍ구원론적 관점, 즉 하느님의 구원행위에 대한 인간의 전적인 긍정이라는 시각에서 고찰돼야 한다고 라너는 말한다.]

무소 17.12.01. 23:29 new



[이해욱프란치스코62 17.04.07. 15:00


하느님아버지의 소중한 참생명,
영혼들을 구원시키지 못하는 <육의 童貞>은 오히려
창조주 하느님의 위대한 창조 업적을 훼손시키는 행위이며
'하늘 나라' 때문이 아닌 '자기'를 위한 <靈肉간의 고자(마태19, 12)의 삶>일 뿐입니다.


지금도 깊은 산속에는
결혼하지 않고 동정으로 사는 삶 자체를
마치 아무나 할 수 없는 <거룩한 삶인 양> 살아가는 童貞人들이 적지 않습니다, 힘든 세상을 멀리 한 채.

혼자만의 산속생활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나는 생활인지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압니다.

제가 과거의 글에도 이미 밝혔지만
처음엔 저도 저 혼자만의 더깊은 산속생활을 생각했던 것이 그 증명입니다.


요즘 TV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되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해보신 분들은
저의 그 심정을 잘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창조주 하느님의 가장~ 뛰어난 작품 人間,
인간의 참생명, 자신의 영혼은 물론이요 다른 영혼을 구원시키지 못하는 한 人間誕生처럼
불행한 탄생은 없을 것입니다.

영혼구원 없는 童貞生活은 창조업적을 팔아먹는 犯法행위입니다.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마태 26, 24)


사랑하는 창조주 아버지하느님,
童貞을 위한 童貞을 살아가는 童貞女男를 맡기오니 이끌어주소서, 結婚性召.(청원기도)]




<천상의 책>

{3-18 순결은 영혼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보물이다

7 , 순결한 영혼을 보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의 가슴에서는 오로지 순결하고 천진무구한 숨결만이 나올 뿐이다.
하느님을 향한 것이 아닌 사랑은 추호도 없으므로 그의 몸에서도 순결의 향내가 난다.
그에게는 일체가 순결하다.}


<순결>

[영혼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보물인 순결 = 깨끗한 마음 = 100% 내맡긴 영혼의 마음.]-moowee-

[*童貞*
지키고 돌보고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기 위한 것입니다.

*純潔*
자신을 내맡은 이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자신을 더욱 내버려 두는 일입니다.

그러하지 않는 童貞,
그러하지 않는 純潔,
*아무것도 아닙니다(1 코린 13, 2)*,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 코린 13, 3)*.



하라, 하지 말고 하라.
하지 마라, 네가 하지 마라.
네 안에 계신 그분께서 하시게 하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 20)


사랑하는 아버지,
당신께 童貞을 바친 하내영을 맡기오니
그들을 온전히 차지하시어 그들이 더욱 純潔해지도록 당신 마음껏 하소서, 그들 안에서!]

- 이해욱프란치스코62 17.04.08. 10:46 -


★ <동정녀 마리아에서 순결한 처녀 마리아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붙여진 처음 이름은 Virgin Mary, 동정녀 마리아였다.
성서는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 예수의 탄생을 예고했을 때 마리아는 아직 결혼 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마태1,23)


'처녀 어머니'가 탄생되는 순간이다. 이것이 과연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는다. 과학적 사유가 일상이 된 오늘날, 어머니 마리아에게 주어진
동정녀라는 이름은 종교적 전제가 붙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름임에 틀림이 없다.


'처녀''어머니'는 생물학적으로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리아의 존재를 기록했던 성서시대의 동정녀 개념을 먼저 살펴보자.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본래의 동정녀 개념은 단순히 생물학적 차원에서
육체적 순결을 지키고 있었던 일반 처녀를 이르는 말은 아니었다.

일생을 하느님을 위해 살겠노라고 종교적 순결을 서원한 미혼 여성을 구분하여
부르는 개념이었다.


신약 성서에는 기독교 탄생에 영향을 미쳤던 여성들을 이르는 말 가운데 동정녀 외에
과부라는 이름이 여러 군데 나온다.

이것도 단순히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남겨진 여성을 부르는 일반적인 개념이 아니라
남편과 사별하고 일생을 '하느님의 딸'로 살아가기로 결단하고 종교적 삶에 온전히
헌신했던 여성을 존중하여 부르는 개념이었다.

하느님께 자신의 일생을 바치며 신실한 삶을 살았던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신앙의 모범이
되었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특별히 존경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교회가 제도화되면서 동정녀의 개념은 종교적 신실함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고 육체적 순결을 지키는 삶으로 그 의미가 대폭 축소된다.

헬레니즘적 세계관에 익숙했던 남성지식인들이 기독교를 변증하고 교회의 리더로
자리 잡으면서, 동정녀 마리아는 하느님을 향한 신실함을 끝까지 지킨 신앙의 모범에서
점차로 육체적 순결을 간직한 순종적인 처녀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 상위카페에서 옮겨와 보았습니다.>



<순결>은 이렇듯 육체적 순결의 개념이 아닌 온전히 하느님으로 가득 채운, 하느님 없이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하느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영혼의 깨끗함, 영적 올곧음'
- 하느님 뜻대로 거룩히 살고자 하는 절대적 이상을 품은 영혼의 마음이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