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일본 대지진 1주기를 맞이하여(2012,3,11)| ▣ 주일강론

은가루리나 2018. 11. 1. 10:48

moowee|등급변경▼|조회 590|추천 0|2012.03.10. 15:30



오늘 3월 11일은, 지금까지도 일본 사회에 공포와 혼란을 주고 있는

동일본의 대지진이 있었던 1주기가 되는 날이다.

 

우선, 지난해 대지진으로 숨져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하여

잠시 고개를 숙이고 하느님의 자비와 영원한 안식을 빌어드리는 시간을 갖겠다.

(묵념)

 

어제는 세끼구찌 대성당에서 대지진 1주기 추모미사가 있었고

TV에선 대지진에 관한 내용의 그림이 눈에 많이 들어오고 있다.

 

그동안 일본의 자연재해와 불행을 "남의 일" 로 여겨오던 제가

이제는 일본의 자연재해나 불행이 "나의 일" 로 여겨지는 삶을 살게 되었다.

 

매년 여름, 태평양에서 크게 발달한 대형태풍이 동 아시아 쪽으로 올라온다는

기상 뉴스를 접하게 되면, 제발 그 태풍이 한국을 비켜나가 일본이나 중국 쪽으로

빠져나가 주기를 바라던 마음이 그 어디 한국사람들의 마음뿐이었겠는가만은

이제는 어느 누구라도 그러한 마음은 버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태풍이 어느 나라로 올라온다 하여도 그 나라가 태풍의 큰 피해 없이

무사히 잘 지나가 주기를 기도해 주는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

 

참으로 자연재해는 무서운 것이다.

일본의 대지진뿐만 아니라 과거 2004년 12월 태국에 닥쳤던

30만명이 넘는 엄청난 생명을 앗아갔던 쓰나미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러하다.

 

인간의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인간이 제 아무리 자연재해에 대하여

완벽히 잘 대비한다 하여도 그것은 "한계" 가 있는 것이다.

 

제가 강론 때 자주 "인간" 이라는 말의 다른 같은 말은 "한계" 라고 했듯이,

인간 그 자체가 한계적인 존재인데 그 한계적인 인간이 아무리 무엇을 완벽하게

잘 준비하고 잘 대비한다 하여도 그것은 한계가 있다는 말은 "진리" 나 다름없다.

 

인간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은 다 한계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한계가 없는 존재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대로

우리 인간과 우주의 만물들을 창조하신 "하느님" 뿐이시다.  

 

저는, 오늘 일본 대지진 1주기를 맞이하며 이 기회를 통하여,

자연재해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소위 신앙인이라는 사람들까지도

"자연재해를 하늘이 내리는 벌" 이라고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재해를 당하게 되면 흔히들 "하늘도 무심하시지,,,," 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 이란 곧 "하느님" 을 가르키는 말인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가족 중에 어느 누가 자연재해를 당하여 죽게 되면

하느님을 원망하여 성당에 아예 발길을 끊는 신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참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절대로 그러한 분이 아니시다.

 

우리는 하느님이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 "완전한 피조물" 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피조물" 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완전한 존재는 하느님밖에 없는 것이며,

완전자이신 하느님은 불완전한 피조물을 창조하시어 그 불완전한 피조물이

언젠간 완전한 피조물로 완성되기를 바라시는 것이 곧 하느님의 뜻인 것이다.

 

<로마서 8장 20절 이하> 에 이렇게 적혀 있다.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라고 말이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광활한 "대우주" 도 지극히 불완전합니다.

우리가 벌붙여 사는 "지구" 도 불완전합니다.

우리 "인간" 은 더욱더 불완전합니다.

 

대우주도 태어나서 엄청나게 팽창하다가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지구도 태어나고 자라나고 땅밑에서 부글부글 끓어대다가 언젠간 폭발할 것이다.

인간도 태어나고 왕성하게 자라나다 언젠간 늙고 병들어 죽어간다.

 

완전하신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모든 피조물은 

"완전함의 모델" 이신 하느님을 닮아 그 존재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

자연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대자연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 인 것이다.

 

따라서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화산폭발 등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 인 것이다.

그 자연스러운 일을 왜 인간만은 유독히 그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자연스럽게" 자신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원망하는가?

 

"피조물인 자연이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으려" 는 하나의 움직임이 지진과 쓰나미와 화산폭발인데

왜 인간은 피조물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원망하는가?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섬기며 사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러운 자연의 섭리를 자연스럽게 잘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 이란 정말 두려운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진짜 생명을 가진 인간이겠는가?

 

그러나 그 두려운 죽음도 자연스러운 것이며 "하느님의 뜻" 을 올바로 알게 되면

그 두려운 죽음마저도 자연스럽게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느님의 뜻이란 도대체 어떠한 것이기에

그 두려운 죽음까지도 자연스럽게 잘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다는 말인가?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은 우리 인간이 당신과 같은 神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당신의 자녀인 "작은 하느님" 이 되게 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참으로 놀라우신 하느님의 뜻이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1서 4장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라고.

 

<베드로 사도도 그의 첫째 편지 1장 15절 이하>에서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면, 도대체 "거룩한 사람" 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가?

거룩한 사람이란 "하느님과 같은 사람" 즉, 살아 있는 神작은 하느님을 말한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신 이유도 바로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우리 인간도 예수님처럼 하느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직접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14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신데 하느님의 친구는 누구이겠는가?

아무나를 친구로 삼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하느님의 친구도 하느님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친구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대로 살 것" 을 명령하셨고,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살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면 

하느님이 직접 그들을 하느님의 친구인 작은 하느님으로 만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바칠 수 있었던 것처럼,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사는 사람들은 다시 대지진이 찾아온다 하여도

또 후지산이 대폭발을 한다 하여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며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동경한인성당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대지진 1주기를 맞이하여 우리 모두 두려움에서 벗어나 늘 기쁘게 살아갑시다.

우리가 늘 하느님께 내어 맡기는 삶을 살게 되면 대지진이 찾아와

우리가 죽게 된다 하여도 우리는 하느님의 친구, 작은 하느님이 되어,

하느님과 함께 영원무궁히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가 바로 여러분 모두를 작은 하느님이 되게 해 드리기 위해서이다.

그 사실을 굳게 믿고 저의 영적지도를 잘 따라 주시기를

"도조 요로시꾸 오네가이시마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