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50 pp.247-252 제 3편 제 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①

은가루리나 2018. 12. 1. 23:00

옴니아 등급변경▼ 조회 135 추천 0 2012.11.06. 22:25



제3편 위탁의 대상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①

 제4절 장소와 환경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제8장 7장의 계속 - 실패와 과실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8장의 계속 - 내적시련의 일반


제10장 9장의 계속 - 유혹


제11장 10장의 계속 - 위안과 건조


제12장 11장의 계속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제13장 12장의 계속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제2절 각가지 공포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제4절 양심상의 小心


제14장 13장의 계속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례



p.247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4 장 육체(肉體) 및 정신(精神)의 

각가지 자연적 선(自然的 善)에 있어서의 위탁(委託) 


제 2 절  질병의 지연(遲延)과 그 결과 




질병의 지연과 

병에 수반하는 또는 그 후에 생기는 무력(無力)과는

더우기 질병의 불쾌감이나 혼미(昏迷)함을 더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것은 모두 

효애(孝愛)와 신뢰로부터의 위탁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의사와 의약을 만드신 것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므로」(집회서 38.1,4), 


필요한 경우에는 

세속 사람은 현명한 절도(節度)로써,

수도자는 순명에 의해서 허용되는 한,

그런 것에 의지 한다는 것은 섭리에 알맞는 것이다.


그러나 질병도, 의약도, 의사도

모두 절대 주권자(絶對主權者)로서의 천주의 손에 있다.


「주여, 모든 것을 낫게 하시는 것은 약초도 뜸질도 아니오며,

당신의 말씀이로소이다.」(지서 16.12)



예컨대,

주께서 한 말씀으로써 건강을 회복시키신 때와 같이,

천주께서는 전에 성의대로,

조금도 인간적 도우심이 없이 병을 고쳐 주셨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로 낫게 하신다.


전에 천주께서는 당신 뜻대로 무해(無害)한,

그리고 고칠 힘이 없는 수단으로써,


예를 들면,

「엘리세오」가 「나아만」을 「요르단」강에 보내어 

일곱번 모욕시킨 때와 같이,

또는 예수께서 병자 위에 손을 얹으시고,

혹 침을 조금 그들에게 바르셨을 때와 같이,

지금도 그렇게 하신다.


그리고 전에 천주께서는

주 예수께서 태생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바르셨을 때와 같이,

가장 유해하다고 생각되는 수단으로 병자를 낫게 하신 것처럼,

지금도 역시 그렇게 하신다.



의사의 기술, 간호인의 헌신적 노력, 의약의 효력에도 불구하고

천주께서는 뜻하시는 이를 병약(病弱)의 상태에 맡겨 두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최고의 명의(名醫)도, 가장 신분이 낮은 환자도 마찬가지로 죽는다.


그러므로 천주께서는

건강과 질병과의 절대주권자(絶對主權者)가 되신다.


따라서 천주만이 신뢰할 분이시며,

구약의 「아사」와 같이 

결코 인간적인 수단에 과도한 신뢰를 두어서는 안된다.


과연 그 성공도 실패도 오직 천주의 뜻에 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의사의 치료를 받고, 의약을 사용해도 

질병이 지연되고, 쇠약한 상태가 계속된다면,

겸손과 효애의 복종으로써 천주의 거룩하신 의지를 흠숭하여야 한다.



주께서는 의사가 옳게 진단을 하고,

의약이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거나,

또는 아마 간호에 의해서 병이 낫는다는 것보다도

오히려 그것이 악화(惡化)하기를 원하실지도 모른다.


천주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자비하신 아버지로서의 배려와 우리 영혼의 선익을 위해서이다.

이것을 선용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일이다.




p.248


그러므로,

우선 첫째 시련은 병이 지연되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그것을 한탄하거나, 낙담하거나, 불평하거나, 또는 그 까닭을 

간호하는 이에게 돌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의심없이 정성을 다하여 그 임무를 수행했음이 분명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깊이 감사 하여야 한다.


비록 그들에게 무엇인가 탓할 점이 있다 하드라도,

그 과실을 규명하시는 것은 오직 천주 한 분이시다.


그러나 천주께서는 우리에게 계속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사용하시는 것을 바라시는 것이며,

우리는 거기에 역시 섭리의 계획을 보아야 할 것이다.


과오 또는 단련도, 태만 또는 헌신도,

천주께서 그 섭리에 의해서 분명히 예견하지 않으신 것,

부러 택하지 않으신 것,

또는 우리를 당신의 목적에 이끄시기 위하여 유용케 하시지 않으시는 것은 

무엇 하나 없다.


그러므로 거기에 천주만을 보고,

그 사랑을 믿으며,

그리고 아버지의 손으로 주어지는 선물로써 시련을 기꺼이 받아 들이자.



p.249


간호의 부족을 너무나도 쉬이 호소하는 이를 어루만지며,

성 「알퐁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유감스럽게 여기는 것은,

그대의 병고가 아니고, 인내의 부족이다.


실제, 그대는 정신과 육체의 이중(二重)의 병에 걸려 있다. 


사람은 그대를 잊고 있지만,

그러나 그대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만인에게 버림 받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는 잊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러저러한 사람에 관해서 불평을 말하는가.


그대는 오히려, 

자신의 예수.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 그처럼 모자라고,

그 때문에 인내를 드러내는 것도 그처럼 적다는 것을 

스스로 탄식하고 슬프게 여겨야 하지 않겠는가.



『갈라상시오』의 성『요셉』은,

『사람은 병에 걸렸을 적에 인내만 실천한다면,

불평하는 소리는 지상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 틀림없다.』라고 말하였다.


『살비아노』도 또한,

많은 사람은 건강하다면, 결코 성덕에 이르지 못하리라.고 말하였다.



참으로 자기 성화에 열중한 부인들에 관해서 말하드라도,

그대가 그들의 전기를 읽는다면,

모두 각가지 병으로 고심한 사실을 알 것이다.


『아뷜라』의 성녀 대『데레사』는,

병고에 시달리지 않았던 날은, 40년 동안 하루도 없었다.



그러므로 『살비아노』는 덧붙이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에 몸을 바친 사람들은 모두 병을 앓았으며,

더구나 병을 바라고 있다.』라고.」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정배」12장 3절의 1)





다음에,

질병으로 인하여 생기는 각가지 무력(無力)

매우 고통스러운 또 하나의 시련이다.


다소 차이는 있을 망정 어느 정도에 있어,

수도자는 이미 건강할 때처럼 회칙 전체를 준수할 수 도,

성가대에 참여할 수 도, 성체를 영할 수 도, 기도나 고행을 할 수 도,

일이나 연구 그 밖에 자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도 없다.


그리고 질병이 끈질길 때에는,

그러한 각가지 무력은 오래 계속될 수 있다.



p.250


성「알퐁소」는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충실한 영혼이여, 왜 그대는 이러한 것을 하려고 바라는가.

그것은 천주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러므로 그대는 천주의 뜻이 이미 이전과 같이

기도, 영성체, 고행, 면학, 전교 또는 그 밖의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고,

보내진 질병과 고통을 인내로써 감수하는데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이상,

도대체 무엇을 딴 곳에 찾을 것인가.」(「적합」5.3 )




「아뷜라」의 존자 「요안」신부는,

병중의 한 사제에게 다음과 같이 써 보냈다.


「벗이여, 그대는 

건강하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라고 너무나 마음을 써서는 안됩니다.

천주의 성의인 한, 착한 병자로 있기에 만족하여야 합니다


그대가 바라고 있는 것이 참으로 천주의 성의시라면,

병이거나 건강이거나,

그대에게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건강과 질병의 어느 경우에도 

알맞는 의무를 우리에게 뜻대로 맡기시는 것은 

오직 천주의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천주의 거룩하신 의지만을 보고, 사랑하며, 흠숭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주의 의지는 항상 유일 최고의 규범(規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회칙이 정한대로 

건강할 때에는 건강한 이의 임무를,

병을 얻었을 적에는 병자의 임무를 다하자.


천주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수행한다면,

우리는 왜 마음을 흩어뜨리겠는가.


불안은,

사람이 자기의 의무를 깨닫지 않든지,

또는 악마의 간계(奸計)에 빠져 있든지 그 어느 것의 증거이다.



p.251


그러나 병이 오래 끈다면,

맡은 직책을 수행할 수도 없고,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라고 사람들은 말할지 모르겠다.


그것은 천주의 뜻대로 될 것이다.


천주께서는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이 일에 관해서도

우리를 자유로이 처리하실 권리를 가지시지 않으시겠는가.


그러므로,

장상이 올바른 판단에 의해서

우리를 같은 임무에 머물러 두는 것이 좋다고 한다면,

어디까지나 최선을 다하여 평화를 간직하여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보충하시는 무수한 수단이 있다.


천주께서는 원하시는대로 당신의 일꾼을 택하시고

바라시는대로의 방법을 이에 주신다.



초대교회에 있어, 

성「바오로」와 같은 사도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을 때에,

천주께서는 그를 2년 동안이나 감옥 안에서 신음하는대로 맡겨 두셨다.


그러나 어떤 이는 말할 것이다.

최소한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기도할 수만 있다면,

나는 자신의 무력에도 위안을 받을 것이다, 라고.




이에 대하여 성「알퐁소」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거룩한 의지를 기쁨으로써 껴안는 것보다도

더욱 탁월한 천주에의 봉사의 길은 없다.


천주께서 영광을 돌리는 것은, 우리의 업(業)이 아니고,

우리의 인종(忍從)과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에 대한

우리 의지의 적합(適合)이다.」(「적합」5.3 )



p.252


그러므로 성「프란치스꼬. 살레지오」는,

효애의 복종으로써 인내한 고통의 한 시간은

보다 적은 사랑으로써 행해진 며칠의 일보다도

훨씬 천주의 영광이 된다고 말하였다.


전에 

한 병자가 감미와 위안으로 삼고 있던 묵상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성인에게 호소하였을 때, 성인은 


「그것을 슬퍼해서는 안된다. 

섭리의 손이 가하신 타격에 견딘다는 것은,

결코 묵상에 못지 않는 것이다.


구세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은

다만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보다도 훨씬 훌륭하다.」라고 대답하였다.

(「성 프란치스꼬. 살레지오의 정신」18장의 50)




그러나 관대한 영혼

여전히 일상의 임무를 가능한 한 충실하게 계속 수행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익숙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잘 배당하여, 기도를 간단히 하고,

그것을 현재의 상태에 적용시키는 것만으로 흔히 만족하다.



「천주를 사랑하는 영혼에게 있어 병중의 참된 기도는

자신의 고뇌를 천주께 바치고, 

천주께 생각을 향하게 하며,

그 거룩한 의지와 일치하고 또는

그밖에 이와 비슷한 무수한 행위를 하는데 있다.


그와 같은 천주와의 친교(親交)에 들어 가기 위해서

무리한 노력을 해서는 안된다.」(자서전 7장) 라고.

「아뷜라」의 성녀 대 「데레사」는 말하고 있다.




성「알퐁소」는 이에 덧붙여 말한다.


「『성의가 이루어지기를!』이렇게만  천주께 말씀드리자.

이 말을 마음 속으로 백번이고 천번이고 되풀이 하자.


이 한마디 말만으로 

우리는 모든 고행과 모든 신심(信心)의 행위에 의해서보다도,

더욱 천주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다.」라고. (「적합」5절의 3)